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상국의 생활과 경제 이야기 <14>독재자에게도 급(級)이 있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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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8월05일 17시07분
  • 최종수정 2022년08월12일 11시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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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쓸 때 원제목을 “나는 부패하지 않은 독재자가 두렵다. 그러나 그들은 반드시 부패한다.”로 잡았었다. 그러나 독재자들이라고 해서 같은 독재자가 아니기 때문에 제목을 바꿔 보았다.

 

근대사에서 독재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분석해 보면 그들 간에도 성격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히틀러, 스탈린, 무솔리니, 후세인, 팔레비, 프랑코, 차우세스크, 모택동, 이집트의 사다트, 후안 페론, 피델 카스트로, 싱가폴의 이광요, 캄보디아 폴포트, 시진핑, 김일성 및 그 가계, 미얀마의 군사정권지도자들, 트루키예의 에르도안, 일본의 자민당 등 독재자 리스트 자료를 찾아보면 독재자라고 불린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에 깜짝 놀랄 정도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아니 이 사람이 그런 평가를 받는 사람이야?”라는 의문이 드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하여튼 위에 열거된 사람들을 몇 개의 그룹으로 재(再)열거해 보겠다. 여기서의 그룹핑은 전적으로 나의 주관적 견해이고, 어떤 독재자를 미화시키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으니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우선 히틀러, 스탈린, 모택동, 사다트, 이광요, 카스트로 등이 한 그룹이 될 것 같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이름들이다.

 

우선 히틀러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히틀러는 누가 보아도 용서할 수 없는 독재자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2차세계대전 전(前) 또는 2차대전 중반 이전의 『기록영화』를 보면 독일 국민들이 ‘정말’‘열광적’으로 히틀러를 환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는가? 당시 독일 국민들은 진심으로 히틀러를 독일의 구세주로 생각하고 그를 열렬히 지지하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열강들은 독일이 재부흥을 못하도록 “베르사이유 협약”을 맺었다. 시작은 독일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배상금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독일은 ‘육해군을 합쳐 군인 10만명을 넘을 수 없다. 공군은 가질 수 없다. 새로운 탱크의 개발을 금지하고 전선에 배치할 수 없다. 잠수함을 가질 수 없다. 알자스 로랜 지방은 프랑스에게 반환(양도)한다.’ 는 등, 독일 국민으로서는 도저히 상환할 수 없는 경제적 요구와 그들의 자존심을 극도로 상하게 만드는 규정들이었다.

 

독일의 인플레가 너무 심하여 빵을 굽기 위해 장작을 사는 것보다 돈을 태우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는 얘기를 아마 여러분들도 들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집권한 히틀러는 매년 수천%가 넘는 인플레를 200% 이하로 줄였고, 게르만족의 영광과 부흥을 부르짖었다. 히틀러는 암울하고 희망이 없었던 당시 독일 국민들에게 빛과 희망을 가져다주는 거의 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 후 일은 우리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생략하겠다.

 

스탈린과 모택동도 비슷하다. 2차세계대전 당시 러시아는 연합군 쪽 이었지만 아주 약체인 나라였다. 쉽게 그 실상을 설명하겠다. 2차세계대전 때 유럽에서 민간인을 포함한 사망자 총수는 약 3천만이라고 한다. 그 중 독일이 3,4백만 미군이 40만, 영국이 27만명 사망하였다. 그런데 러시아는 무려 9백만명이 사망하였다. 얼마나 2차대전 중 러시아의 피해가 컸었는가를 너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뼈아프게 느낀 사람이 바로 스탈린이다. 그래서 그는 “슬라브 민족이여 일어나라.”라는 케치프레이스를 내걸고, 주변 국가들을 위성국으로 만들며, 소련연방공화국을 건설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독재 하에서 처참히 죽었지만 그는 소련을 미국 다음의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모택동도 비슷하다. 당시 아시아 최빈국은 중국이었다. 그러나 당시 중국은 설령 ‘종이호랑이’였을지언정 아시아 최대의 국가였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배가 고파 죽어 나갔지만 일부 사람들, 특히 장개석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부(富)는 상상을 초월했다. 이것은 지금 중국 공산정권에서도 큰 차이는 없다. 

 

바로 이러한 계급간의 격차를 강력히 비판하고 나선 것이 모택동과 주은래다. 국민당 정부의 백분의 일도 안 되는 공산당이 어떻게 국민당을 이길 수 있었겠는가? 당시 압박받는 수많은 중국인들의 협력이 있었기 때문에 12,500km를 넘는 대장정을 ‘걸어서’ 연안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천안문 광장에는 그의 사진이 지금도 걸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려대학교 총장을 지낸 김상협 전 국무총리의 『모택동 사상』이라는 책을 보면 그를 ‘공상적 공산주의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는 중공이라는 나라를 건국하였지만 그 후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이라는 생각하기 어려운 운동을 펼쳐 중국을 다시 도탄에 빠트렸다. 그러나 모택동의 재임기간 중 중국 인구는 5억5천만에서 9억으로 증가하였다. 또한 그의 재임기간 중에 약 4천만에서 8천만 명의 사람들이 기아, 박해, 투옥 등으로 사망하였다. 근대사 인물 중에서 모택동만큼 이중적인 평가를 받아야 할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하여튼 이 첫 번째 그룹의 독재자들은 엄청난 독재를 하였지만 자기 조국에 대한 강력한 사랑과 동시에 조국의 발전을 이룩해 낸 사람들이다. 그래서 최소한 자국 국민들로부터는 지금도 애증이 겹쳐있지만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기 개인의 부』를 축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떤 독재자가 개인적인 부를 쌓았느냐 그렇지 않았느냐를 구분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명료하다. 그들의 자손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보면 된다. 

 

다음 부류는 후세인, 팔레비, 프랑코, 차우세스크, 시진핑, 미얀마의 군사정권, 후안 페론, 마르코스, 캄보디아의 폴포트 등이다. 그리고 북한의 김일성 일가도 여기에 해당된다. 독재자 리스트에서 가장 흔히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뭐라고 국민들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기 자신 또는 그에게 속하는 그룹들의 부귀영화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무슨 수단이든지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무력, 감옥, 언론통제, 제한적인 경제발전, 낮은 수준의 의료시설 제공, 낮은 수준의 교육 제공 등이다. 

 

경제활동과 관련된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국가 기간산업의 사유화(私有化), 해외 재산도피, 외자를 빌려 사업성 없는 국가 단위 대규모 투자, 호화요트, 호화저택 그리고 그 친족들의 호화생활이다. 무슨 긴 말이 필요 없다. 그들이 입으로는 무슨 말을 하든, 그들의 목적은 자신이 속하는 그룹의 부귀영화이고, 이것을 깨트리려는 어떤 시도에 대해서도 단호히 그리고 ‘무자비’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성공적인 경제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 그러나 자주 지적되지는 않지만 나는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마음가짐을 진심으로 지적하고 싶다. 능력에 있어서는 대통령 간 차이가 있겠지만 그들은 한결 같이 나라를 사랑하였고 근면했다. 재산의 해외도피 등을 하지 않았다. 단 한사람의 예외가 있는듯하여 안타까울 뿐이다.

 

이 두 번째 독재자 그룹 중에서 약간 다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스페인의 프랑코다. 그는 살아생전에 강한 독재정치를 하였지만 개인적 부를 크게 챙기지 않았다. 그리고 죽을 때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던 후안 카를로스를 자기 후계자로 내세워 스스로 자연스럽게 독재정치를 청산하였다. 그리고 그는 생전에도 후안 카를로스를 은근히 지원하여 부드럽게 권력이 이양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런 점을 참조한다면 독재자 평가 시 자기 후계자를 키우는가 아닌가를 기준에 넣는 것도 좋을듯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두 개의 그룹과 전혀 다른 독재그룹이 있다. 그것은 시진핑의 중국과 자민당의 일본이다. 

 

우선 시진핑의 중국을 먼저 말해 보자. 사실 시진핑이라는 인물이 탄생하는데 가장 적극적인 공헌을 한 사람은 의외로 강택민(장쩌민)이다. 

 

중국에서 모택동 다음으로 현대 중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이 등소평이라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의 “흑묘·백묘론”을 여기서 논하지는 않겠다. 그는 미국의 닉슨 대통령을 만나 탁구외교와 판다외교를 통해 중국을 개방시켰고, 엄청난 경제발전의 기초를 쌓았다. 그러나 그러한 그도 자연의 늙은 나이에는 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사후 ‘중국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무엇이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될까?’를 생각했다. 

 

당연히 그것은 최상위 그룹 간의 권력다툼과 장기집권, 그리고 필연적인 부패였다. 이것은 중국 5천년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매우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했다. 권력집단 간의 『정기적인 권력 순환구조』였다. 그는 중국의 권력을 세 개의 그룹으로 만들었다. 전통적인 권력의 중심처인 상해를 중심으로 하는 『상해파』, 전직 높은 공산당의 자식들로 구성된 『태자당』, 그리고 마지막으로 14억 인구 중에서 똑똑하고 똑똑하다고 생각되어 뽑은 젊은 공산당원들의 『공청단(공산청년당)』  등 세 그룹이다. 

 

그래서 상해방의 방주였던 강택민(장쩌민)을 불렀다. “내가 너에게 권력을 물려주겠다. 그러나 한 가지 약속을 해라. 5년씩 두 기간 10년만 집권하고 다음 권력은 공청단의 후진타오에게 넘겨라. 네가 이 약속을 지킨다고 약속하면 주석직을 너에게 넘겨주겠다.” 

언감생심 장쩌민은 당연히 약속을 하고 권력을 이양 받았다.

 

그러나 사람은 권력을 잡으면 그것을 영속하고 싶다. 특히 중국의 5천년 역사는 그것을 가르쳤다. 그런데 등소평은 그런 가능성 또한 염려하여 장쩌민에게 개인적인 약속도 받았지만, 그 사실을 대외적으로도 공표하였다. 그래서 등소평의 영향력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는 당시 중국에서 강택민은 감히 3연임을 하지 못하고 공청단의 후진타오에게 권력을 넘겼다. 그러나 한번 잡은 권력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더욱이 5천년의 권력투쟁 역사를 가진 중국인으로서는 도저히 놓을 수 없는 욕심이다.

 

그래서 그는 형식상으로는 후진타오에게 서기장 자리는 넘겼다. 하지만 실질적 권한 즉 군사권, 경찰권, 사법권을 계속 자기 사람을 배치해 넘겼고, 특히 경제관료 임명에는 끊임없이 간섭하였다. 그래서 후진타오는 명색은 주석, 서기장이었지만 실질적 통치는 장쩌민이 한 것이다. 이것은 후진타오를 너무 힘들게 하였고 기분 나쁘게 만들었다. 그래서 후진타오는 차기집권자로 당시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시진핑을 선택하였다. 오직했으면 시진핑이 지목되었을 때 강택민은 “그가 누구야?”라고 자기 측근에게 물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럼 시진핑(習近平)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자. 시진핑은 공산당 혁명원로이고 부총리였던 시중쉰(習仲勳)의 아들이다. 당연히 태자당의 기운이 있는 사람이다. 또한 그는 상해시(市) 당서기를 지냈다. 상해방과도 인연이 있다. 그리고 그는 당시까지만 해도 매우 조용한 사람이었고, 남의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후진타오는 그가 주석이 되면 자기가 영향력을 계속 발휘할 수 있는 조금은 무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상해방과 태자당 그리고 공청단 모두의 암묵적 동의를 얻어 주석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주석직에 올랐지만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하게 그는 가장 강력한 독재자의 마각을 들어내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행동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14억 인구에 2억대의 감시카메라, 인공지능과 결합된 얼굴 인식 시스템, 거지도 동냥을 모바일로 받을 만큼 모든 『돈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전자 은행시스템, 코로나를 핑계 댄 이해할 수 없는 상해시의 장기 봉쇄(상해방의 행동 제한 목적) 등은 모두 다 시진핑의 금년 10월 당 대회에서 3연임을 초과하는 장기집권을 위한 포석인 것이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은 항상 큰 그림을 보아야 한다. 특히 중국과 일본을 볼 때는 더욱 그러하다. 중국과 일본의 기본 사고원리와 행동원리를 이해하면 우리가 무슨 행동을 하면 그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비교적 용이하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전 세계 모든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독재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을 독재국가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조금은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명백한 독재국가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어떤 개인이 독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집단』이 독재를 하는 정말로 희한한 국가다. 

 

과거에는 그것이 사무라이라는 집단이었고, 지금은 자민당이라는 정당이다.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면서도 몇몇 정치가 가문들이 『세습』하여 권력을 장악하는 자민당이 지배하는 독재국가가 일본이다. 자민당은 1955년 창당 이래 단 5년을 제외하고 60년 이상을 장기집권하고 있다. 전 세계에 이런 나라는 일본 밖에 없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일본을 자주, 때로는 상당기간 동안 출장을 갔었다.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으로 백화점 같은 곳은 갈 수 없었고, 도서관, 문화유적, 박물관 등을 방문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도쿄 방문 기간 중 정말 이해 안 되는 신사를 보았다. 어떤 사무라이 신사인데 신사 앞 현판을 읽어 보니 그는 자기의 새로 만든 칼이 잘 드는가를 시험하기 위해 76명의 목을 베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후회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아무리 후회하는 삶을 살았다고 해도 우리나라라면 이런 사람에게 기념관을 지어줄까? 어떤 사무라이는 자기 자식이 떡을 훔쳐 먹었다는 떡장수의 말에 격분하여, 자기 자식의 배를 가르고 떡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떡장수의 목을 베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라면 떡 하나에 자기자식과 떡 장수를 죽이는 이런 사람을 아름다운 행동이라고 칭송할까?

 

2차대전 당시 중국을 침략한 일본의 두 군장교들 간에 1백 명의 사람 목을 누가 먼저 베는가를 시합하였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일본의 대표신문이 그것을 현장르뽀로 매일 몇 명의 목을 베었다고 연재하였다는 것이다. 2차대전 말 하나의 폭탄과 단 몇 시간의 이륙훈련만으로 조종사를 가미카제 비행대로 내보내는 군대, 미군에게 섬이 점령당하자 몇 천 명의 군인가족에게 절벽에서 떨어져서 죽기를 강요하는 일본군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기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져도 군사회의에서 그 사실 조차 논의하지 않은 일본 군부….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일본이다. 일본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일본을 지배하는 일관된 논리는 ‘누가 힘을 가지고 있느냐?’이다. 힘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는 무한히 허리를 굽히지만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는 잔인하게 강한 것이 일본이다.

 

하나의 예를 더해본다. 1945년 패전 직후 일본을 방문한 미군들의 경험이다. 그들은 아침에 외출 나갈 때 일본인들의 사보타지 공격을 두려워하여 권총 등으로 무장하였었다. 그러나 어디서도, 누구도 그런 사보타지를 당하지 않았다. 미국은 강하고 일본은 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승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일본인들이 취하여야 할 자세였기 때문이다.

 

옛날 사무라이들에게는 ‘즉결처분권’이 있었다. 즉 사무라이는 자기 혼자 판단하여 백성들을 죽여도 그것은 합법이었다. 이런 사람들 앞에 어떤 저항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들이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허리를 굽히고 있어야 한다. 자기가 원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대대손손 막부가 지정하는 직업 하나를 수백년 간 지켜야만 했다. 안하면 그것은 곧 죽음뿐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과거나 지금이나 『공포와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다. 민중이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지진이 일어나도 조용히 있는 일본 국민들, 항상 웃으면서 인사하는 그들을 우리는 그 진정한 내막을 모르고 예의가 바른 나라,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나라라고 생각했었다. 

 

일본국민들의 이러한 특징은 국가를 통치하는 입장에서는 편리한 측면이 매우 많다. 더욱이 변화의 속도가 느리고 다양하지 않은 시대에는 일본인들의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자세와 장인정신은 경제발전에도 매우 큰 도움이 된다. 1960~1980년대까지의 일본 발전은 바로 이러한 일본국민들의 특성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러나 다양하고 빠른 변화로 특징되는 21세기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형식을 깨는 아이디어, 특이한 생각, 창의적 생각이 부를 창조하는 원천이다. 그래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일본이 지금 어려워지는 것이고, 역으로 우리나라는 더욱 빠른 발전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신용등급은 미국의 무디스와 S&P, 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사 모두에서 일본보다 무려 두 단계나 높다. 우리는 영국, 프랑스와 동급이고 일본은 중국보다 한 단계 높을 뿐이다.

 

여기서 한마디 과감한 예측을 해보겠다. 우리나라 1인당 GDP가 내년에는, 늦어도 내후년에는 일본을 추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는 이미 2021년부터 인당구매력 지수, 즉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구매력에서는 일본을 추월하였다. 다시 말해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일본보다 더 잘 산다는 얘기다. 참으로 놀랄만한 얘기다. 그러나 사실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독재자에게도 급이 있다는 것과 각 나라별 특성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지속적 발전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영속적 발전은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달려있지 않다. 오직 우리에게 달려있다. 우리는 깨어있어야 한다. 더욱 열심히 효과적으로 노력하여야만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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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8월05일 17시07분
  • 최종수정 2022년08월12일 11시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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