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상국 교수의 생활과 경제이야기<8>나는 왜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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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6월24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22년07월01일 09시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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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교 교수다. 그러니 아무래도 교육에 대한 관심이 남보다는 많을 것 같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주위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그 다양한 모습에  감탄할 때가 있다. ‘어쩜 저렇게 다르게 생겼을까? 어쩌면 저렇게 다르게 생각할까?’ 

 

우리 어머니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분이시지만 참 현명한 분이셨다고 생각한다. 그 어머니께서 가끔 “같은 뱃속에서 나왔지만 어떻게 너희들은 그리 아롱이 다롱이냐?”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때는 무심중에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유전학적 질문이고 교육환경에 대한 질문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인간 사회는 불평등하다. 내가 하고 싶은대로 표현한다면 『매우』 불평등하다. 혹자는 금수저, 흙수저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맞다. 그것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요즘처럼 돈으로 대부분의 것을 살 수 있는 환경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나는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요소가 많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남자인가 여자인가? 맏이인가 막내인가 아니면 그 사이 어디인가? 서울출신인가 시골 출신인가? 특히 부모님이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계신 분인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부(富)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성년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고, 더욱이 우리 스스로도 나이가 들면 부(富) 이외 다른 요소들이 훨씬 더 본질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무의식의 세계를 말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남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에 대한 관찰을 기점으로 말해 보겠다.

 

나는 깡촌 출신이다. 집이라고 해봐야 20~30채도 안 되는 작고 한적한 마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마을에는 어린이들이 없었다. 당연히 나는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있는 아이가 시골에서 할 수 있는 너무 빤하다. 집안을 뱅뱅 돌며, 보고 또 보던 것을 반복해서 관찰하는 것밖에 없다. 봉숭아, 작약, 감꽃, 옥잠화 등이 피고 지는 것을 보거나, 더 심심할 때는 괜스레 장독대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다 해가 져서 일하러 가신 할머니가 돌아오실 때가 되면 대문이 잘 보이는 마루에 앉아 노래를 혼자 부르는 것이 나의 매일 매일의 일과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꽃을 좋아하고, 계절에 매우 민감하다. 나에게 있어서 봄은 작약의 빨간 순이 올라오는 것이며, 옥잠화의 더 없이 아름다운 연두색 새순이 돋아나는 것이다. 가을의 확실한 전령은 뭐라 해도 빨갛게 익은 감과 고개를 푹 숙이고 한들한들 춤추는 수숫대다. 그래서 지금도 가을이 되면 감을 사다 베란다에 펼쳐놓고, 불그래한 수수를 사다 놓아야 나에게 가을이 된다. 시티 마우스인 마누라는 당연히 좋아할 리 없다. 그러나 별 상관없다.

 

아마 나의 꽃을 사랑하는 마음, 식물을 키우고 싶은 마음,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버릇은 그때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우스운 얘기이지만 감방에서 큰 벌이 독방에 수감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것이 벌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그냥 웃고 넘기시기 바란다.

 

그렇게 살다가 아버지께서 도시로 전근을 가셨고, 나도 따라 도시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이 때 처음으로 책을 읽는 기회가 생겼다. 우리 친척한 분이 역사 선생님이셨는데 당시에는 매우 드물게 동화책을 집에 매우 많이 가지고 계셨다. 마침 또래의 형제도 있고 하여, 토요일 일요일은 그 집에 놀러가서 레슬링을 하고 책 읽는 것이 반복적 일과였다. 그리고 집에 올 때는 책을 빌려주셨는데, 절대 한권만 빌려주셨다. 동화책 한권이야 한 두 시간이면 읽는 것인데 무슨 만족이 있었겠는가? 다음 토요일, 일요일이 기다려질 수밖에 없다.

 

친척 아저씨의 고차원적인 교육수법에 나는 희생(?)된 불쌍한 어린아이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저씨는 “기아(飢餓) 마켓팅”의 천재이셨던 것 같다. 그 때 읽었던 ‘소공자, 소공녀, 비밀의 화원, 몬테크리스토 백작’ 등은 지금도 나에게 너무 선명하다.

 

그때 읽었던 ‘빨강머리 앤’은 나이 칠십이 된 지금도 나에게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아마 열 번은 더 읽었을 것이고, ‘빨강 머리 앤’을 보기 위해 넷플릭스를 신청했으니 좀 주책이 없는듯하다. 내가 꼭 가고 싶은 여행지에는 캐나다의 프린스 에드워드 섬이 지금도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어떻든 나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그때 읽은 동화책들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자식들에게도 동화책 읽기를 많이 권했었다. 

 

책은 어렸을 때 많이 읽고, 읽게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어렸을 때 읽은 책은 그 사람 일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나의 확고한 신념이다.

 

그렁그렁 살면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와, 말로만 듣던 서울로 유학을 왔다.’ 이것은 사건이다. 어느 면에서는 충격이었다. 어찌 그리 건물들은 높은지. 여자들은 왜 그리 예쁜지. 특히 시골에서 거친 어투와 말씨에 익숙한 나로서는 그녀들의 사뿐사뿐한 억양은 정말 너무 감격이었다. 그래서 대학생활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재밌게 보내는 행복한 시절이었다.

 

나는 나의 학생들에게 곧잘 “노는 것을 경시하지 말라, 취직걱정은 놀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제대로 놀면 제대로 공부할 수 있고, 당연한 결과로 취직은 되어지는 것이다.”라고 한다. 몇 명의 학생들이 받아들이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다 취직을 하고, 얼마 후 유학을 가게 되었다. 

미국으로의 유학은 중요한 사건이었다. 지금이야 많은 사람들이 유학을 가지만 40여년 전에는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취미 중에는 비행기와 잠수함을 만들고 싶은 것이 있다. 촌놈이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도 그렇지만 50년 전 우리나라에 무슨 그런 책이 있을 리 없다. 『과학동아』라는 책이 그즈음에 창간되어 허기를 면하게 해 주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하였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USIS 미공보원에 작은 도서관이 있고, 거기에는 비행기, 잠수함, 로켓관련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미 공보원 도서관은 나의 중요한 방문처가 되었다. 그래서 그 때 자연스럽게 나는 미국이 매우 큰 나라이고, 과학과 다양한 취미생활이 가능한 나라라는 과대한 기대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미국에 내가 유학을 가게 된 것이다. 깡촌 출신인 나는 우리 시골 표현대로 한다면 ‘잔뜩 주눅 들고, 쩔린 상태’에서 유학을 갔다. 영어도 시원찮은 판에 어떻게 교수, 학생, 어린이들까지도 그렇게 영어를 잘하는지... 주눅든 상태에서 공부하였고, 학생들도 가르쳤으며 박사도 따고 그랬다. 

 

내가 박사되어서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이제 더 이상 시험은 없겠구나.’였고, 귀국하여 제일 먼저 한 생각은 ‘이제 영어 안 써도 되고, 설령 실수가 있어도 출국 조치를 당하지는 않겠구나.’였다. 너무 소심했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나는 그랬다. 

 

그래서 대학 교수가 되었고 이제는 때가 되어 은퇴까지 하였으니 세월이 참 빠른 것 같다. 그러나 솔직한 심정은 나이든 것에 대해 그리 서운하지 않다. 그 질풍노도의 시절을 다시 반복하지 않아도 되고, 게으름을 피워도 누가 탓하는 사람도 없다. 설렁설렁 살아도 마누라 이외에는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으니 풍족(豐足)한 살림은 아니어도 유족(裕足)한 생활은 되는 것 같다.

 

18세기 위대한 교육사상가였던 잔 자크 루소가 “교육에 가장 좋은 환경은 ‘어렸을 때는 시골에서, 청년시절에는 중소도시에서, 성년기에는 대도시에서’ 사는 것이 좋다.”고  했다고 한다. 우연히 전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나는 살게 된 것 같다.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나는 나의 감성이 좋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좋다. 남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들이 참 많다. 다시 한 번 고맙게 생각할 뿐이다. 

 

내가 도시 부모님들께 권해보고 싶은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자식들에게 시골생활을 가능한 자주 접하게 해주고, 어렸을 때 책 읽는 습관을 길러 주라는 것이다. 

 

자식이 잘못될까 걱정하는 마음은 우리 모든 부모가 갖는 심정이다. 나는 효과적인 방법을 이렇게 생각한다. 자식이 잘못할 때 그 잘못을 고쳐주는 것도 좋지만, 본인 스스로 잘못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바로 자연을 사랑하게 해주는 것이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독서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다.

 

부모인 내가 나도 모르게 자식에게 이기적인 행동을 보여주면서, 그것이 내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고, 가장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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