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의 경제학 여정(旅程)<13> 시장(市場) 메카니즘은 오묘(奧妙)하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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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3월31일 19시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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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ang doo, 어디 갔다 왔지?”

“???”

 

Micro-Economocs 강의 시간에 Miller 교수와 나 사이에 오간 대화였다. 내가 질문을 했는데, 밀러 교수는 이미 설명한 내용을 다시 설명하기 싫어서 짜증을 낸 것이다. 외국 학생들의 언어 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강의하는 교수들의 발음과 억양이 각각 달랐다. 앵글로 색슨 계통의 백인이 다수이긴 했으나 독일, 프랑스 출신도 있었고, 일본·중국·​인도 출신도 있었다. 이들 중 제일 알아듣기 힘들게 발음하는 교수가 Miller 교수였다.

 

그러나 그의 강의는 Insightful 했다. 시장(市場) 메카니즘이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그의 장점이었다.

 

“수억의 미국 사람들이 아침마다 우유를 마시지?

이 우유들이 어떻게 생산되어 매일 아침 수천만 가구에 배달이 될까?

이 작업을 누가 지휘하고 감독하지? 전지 전능한 Maestro가?“

 

그는 이런 화두(話頭)로 강의를 시작하곤 했다.

그는 George J. Stigler의 "The THEORY of PRICE"를 주 교재로, Armen A. Alchian의 "Exchange and Production. Theory in Use"를 부교재로 사용했다.

 

시카고대학의 스티글러 교수는 가격·​시장이론을 현실 경제에 적용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한 경제학자였다. 프리드만 교수와 함께 시카고학파를 이끌던 사람이다. UCLA의 알키안 교수는 시장의 원리를 세잔느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그리면서 그 효율성을 설명한 학자였다. 두 분 모두 시장경제 신봉자였다.

 

“시장경제 이론의 핵심은 체제나 국가에 상관없이 다 적용된다.”

 

스티글러, 알키안 그리고 밀러 교수, 모두가 가진 신념이었다. 그들은 “사유재산권이란 그 소유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하는 권리”이고, “자원배분이 가장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게 하는 제도”임을 확신하는 경제학자들이었다.

 

그러나 “Development Economics”를 연구하고 강의하는 교수들은 견해가 달랐다. 아프리카 Kenya의 Nairobi 대학에 머물면서 아프리카 케냐 경제를 연구한 후 U.H.에 온 John Power 교수나 아시아 국가들의 무역 패턴을 연구해온 Seiji Naya 교수는 시장의 왜곡 가능성과 정부 개입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분들이었다.

 

대학원 학생들은 경제학과 내의 모임으로 이분들이 함께하는 Faculty Seminar에 참여할 수 있었다. 여러 주제에서 이런 견해 차이는 치열하게 충돌했다.

 

“God Damn you!”와 같은 거친 말과 자기 방을 드나들며 자료를 가져와 제시하며 토론하는 모습이 신선했다.( 당시엔 요즈음의 PC나 I Pad, Mobile phone 등 자료를 저장해서 휴대하고 다니는 기기가 없었다.)

 

그들은 험악한(?) 토론 후, 생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 후 헤어지곤 했다. 이런 풍토와 토론 문화가 부럽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예의 바른 토론”이 일상화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Econometrics를 가르치던 M.Snow 교수는 이런 견해 차이에 전혀 끼어들지 않았다. 그는 철저히 통계 자료를 경제 분석에 활용하는 기법에만 관심을 보였다. 누군가 어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자기의 견해를 주장하면, 그는 그 통계의 출처와 신뢰성, 그리고 사용한 계량 경제 분석 기법에 대해서 질의하고 코멘트했다.

 

이런 논쟁을 이끌어 학문적 호기심을 고양한 교수는 거시경제학을 담당한 Campbell 교수였다. 그는 호탕한 웃음을 가진 미식축구 광(狂)팬이었다. 그가 가르치는 과목은 시장과 정부의 역할이 혼재하는 특성을 가졌다. 거시 정책은 대부분 Keynsian의 접근을 따르지만, 민간 투자·소비 등은 시장의 원리를 바탕으로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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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국을 방문한 B. Campbell 교수님과 함께 기흥 민속촌에서, 198?년.>

 

대학원 학생으로서 나에게 강의나 관련 문헌의 학습을 통해서 습득하는 경제학 지식도 좋았지만, 이런 토론 문화를 통해서 다양한 입장과 견해가 있을 수 있다는, 접근 방법의 다양성을 깨닫게 된 것도 좋았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분석 대상 국가가 처해있는 발전 단계와 국제적 위상에 따라, 접근 방법도 차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Faculty 세미나를 들으면서 선진 경제 강국의 시장 규모와 산업 구조에 적용되는 산업조직이론이 그대로 후진 약소국에 적용될 수 없다는 것도 인지했다. 동일한 수준의 후진 경제 소국이라 하더라도 부존자원과 교육 수준의 차이에 따라 분석 이론과 기법이 차별화되어야 한다는 인식도 뚜렷하게 뇌리에 자리 잡았다.

 

이런 인식에 따라 나는 John Power 교수를 지도교수로 모시기로 작정하고, 말씀드려 승낙을 받았다. 그는 아프리카는 물론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도 연구한 경제발전론 전공학자였다. 그는 University of Phillipines 에서 강의하면서 그 대학원 학생과 결혼한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다. 나는 그의 지도와 함께 국제무역이론을 강의한 Robert Heller 교수도 자주 찾아뵈었다. 그는 이 과목의 교과서도 저술했고 관련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며 한창 떠오르는 젊은 경제학자였다.

 

Power 교수가 한낮에 땀 흘리며 규칙적으로 조깅하던 모습, Heller 교수가 덩치 큰 애견(愛犬)을 교수실에 데리고 다니던 모습이 50년 가까운 세월의 흔적(痕迹)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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