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의 경제학 여정(旅程) <12> PALOLO VALLY, BERTANIA STREET, PUNHAU AVENU에서 비바람을 피하며.​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2년03월26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2년03월25일 10시59분

작성자

  • 김광두
  • 국가미래연구원 원장, 남덕우기념사업회 회장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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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72년 4월 28일 결혼했다.  

나의 평생 동반자는 캠퍼스에서 “TIME 독서 클럽”을 함께 했던 김인숙 씨( 영문과 졸, 경희대 의상학과 명예교수, 의상학 박사)였다.

 

그녀가 하와이에 왔다.

나의 출국 후 3개월 정도 지난 후였다.

우리는 처음엔 HALE MANOA 더블 룸에서 지냈다. 그러나 둘이 생활하기엔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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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하와이에 온 김인숙씨와 다이아몬드 드라이브 해변에서, 1973.>

 

밖으로 나가기로 하고 집을 구했다. EWC에서 주는 Housing Allowance의 크기를 고려하여 구한 집이 Bertania Street에 있는 집이었다. 오래된 One Bed Room 목조주택으로 일제 강점기에 사탕수수 노동자로 이주해 온 한국인 할아버지 소유였다. 이 집 마당에 망고나무가 있어서 좋았으나, 집안엔 Lizard( 아주 작은 도마뱀) 들이 벽을 타고 놀고 있었다. 하와이대 캠퍼스까진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이곳에서 6개월을 보냈다. 이 집엔 고 김재익 박사 등 주로 한국인 EWC Grantee들이 살아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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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Bertania street의 목조주택>

 

이곳을 떠나 좀 비싸지만 깨끗한 Punhau Avenue에 있는 아파트로 갔다. 첫 아이 출산에 대비해서였다. 이곳의 명문 사학인 PUNHAU HIGH SCHOOL(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이 학교 출신) 근처에 있는 집이었다. 식료품 가격이 저렴하여 우리 한국인 학생들이 애용했던 “HOLIDAY MART”와 가까웠다. 호놀룰루를 내려다보는, 울창한 거목들의 숲과 아름다운 계곡을 품고있는,  “TANTALUS 산”에 가까워 가벼운 드라이브하기에도 편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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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unhau Avenue의 아파트>

 

이곳에 살았던 시기에 첫 아이(여)가 “KAISER HOSPITAL”에서 건강하게 태어났다. 나도 그렇지만 김인숙 씨도 앞으로 Advanced Degree 학업을 할 계획을 하고 있어서, 고심 끝에 당분간 아이를 한국의 외가 댁에서 돌보아 줄 것을 협의했다. 이 아이를 깊은 사랑으로 보살펴주신, 지금은 저세상에 계신 장인, 장모님께 항상 감사드리고 있다. 그 아이가 지금은 미국 UCLA에서 Full Professor로 교육 연구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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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unhau 아파트에서 첫 아이와 함께>

 

이 아파트는 임대료가 비싼 편이라 장기간 이곳에서 사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우리는 PUBLIC HOUSE( 공공 임대 주택)에 입주 신청을 했다. 임대료가 저렴하고 Two Bed Room의 넓은( 당시 우리 형편으로는) 집이었다. 이 주택은 저소득층을 위해 건축되었고 하와이주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운영 관리되고 있었다. 선착순이고, 빈집이 나와야 입주가 가능했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종류의 Public House 단지는 호놀룰루 시내 여러 곳에 있었으나 한국 학생들은 캠퍼스와 가까운 PALOLO VALLY에 위치한 집을 원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엔 이미 여러 선배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김달현(경희대 명예교수), 정병수(성균관대 명예교수), 고 박종영( 당시 공사 교관, 한국외대 명예교수), 민병균(당시 한국은행, 한국외대 명예교수), 정찬길( 건국대 명예교수), 이정보(당시 재무부, 전 보험감독원장), 변상진(당시 한국은행, 현재 미국 거주), 최상진( 당시 육사 교관, 전 호놀룰루 총영사), 이훈구( 연대 명예교수), 안청시( 서울대 명예교수) 손봉숙(당시 이화여대, 전 국회의원) 부부, 안문석( 당시 KIST, 고대 명예교수), 고 박동운(당시 전남대, 단국대 명예교수) 김애실(한국외대 명예교수, 전 국회의원) 부부, 김국진(당시 연대, 전 주태국대사), 백영철(건국대 명예교수), 권연웅( 경북대 명예교수) 이원정(경북대 명예교수) 부부 등이 그곳에 자리 잡고 학업에 전념하고 있었다.

 

입주 신청한 지 두어 달 후에 입주 가능 일자와 배정된 주택의 동호수가 결정되었다. 2층 건물에 동일 규모의 아파트가 4채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집은 1층에 있었다. 이 집은 낡고 허름했지만 70년대 초 여의도에 건립되었던 시범아파트 30평형 규모였다. 거실이 넓었고 방 두 개가 쓸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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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alolo Vally의 임대주택>

 

옆집엔 하와이 원주민인 폴리네시안이 살고 있었다. 폴리네시안들은 체격이 매우 크다. 그런 그들이 그 집 현관에서 칼 던지기 연습하는 것을 보고 내심 크게 두려웠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것은 폴리네시안들의 심심풀이 레크레이션이었다. 그들은 아주 순수하고 부드러운 사람들이었다. 이들과 음식을 나누며 서로 따뜻하게 지냈다.

 

얼마 후 우리 집 2층에 새 식구가 들어왔다. 구자용(한국외대 명예교수) 박찬숙( 당시 KBS 앵커, 전 국회의원) 부부였다. 이웃 건물에는 안청시·손봉숙 부부가, 그 뒷 건물엔 김국진 부부가 살았다. 이런 친근한 사람들이 함께 가까이 살며 생활을 하게 되니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단지 내에 테니스장, 소프트 볼 구장, 실외 수영장 등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모두 있었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테니스를 즐겨 했다. 당시 미국의 Jimmy Connors가 랭킹 1위였다. 그의 플레이는 힘이 넘쳤다. 그가 시합하는 날, 나는 테니스 동호인들과 함께 게임을 보고, 곧바로 테니스 플레이를 하곤 했다. 그의 에너지 넘치는 써브와 스트로크 흉내를 내다가 게임이 엉망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 거주하는 주민 대항 소프프 볼 시합도 가끔 열렸는데, 그런 날엔 온 동네가 축제 분위기였다.

 

나는 이곳에 입주한 후부터 다른 볼일이 없으면 중고자전거를 이용하여 캠퍼스를 왕래했다. 그 당시에도 5단 기어가 장착된 자전거가 있어서 언덕을 오르거나 내려올 때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학교의 강의실 건물 입구에 자전거 거치대(据置臺)가 있었다. 때문에 대학 지정주차장에 차를 놓아두고 강의실로 걸어가는 시간과 주차료를 고려하면 이 방법이 더 효율적이었다. 

 

이곳에 사는 동안 김인숙 씨는 PACIFIC EXCHANGE SYSTEM이란 미국 정부 기관에서 일하고 저축하면서 의상 디자인을 공부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와이 대학에는 해당 학과가 없었으나 미술 대학에 유관 강의가 개설되어 있었다. 몇 개의 강의를 들으면서 대학들을 탐색했는데, TEXAS WOMAN UNIVERSITY( at Danton)를 결국 선택했다. 대학에선 영문학을 전공했으나  평소 그림 그리기를 취미로 삼아온 자질을 바탕으로 전문 분야를 바꿨다.

 

하와이 인구는 주로 폴리네시아인, 백인,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시 주지사( George Ryoichi Ariyoshi)는 일본계, 주 상원의원( Daniel Inouye)도 일본계, 호놀룰루 시장( Frank Fasi)은 이태리계 였다. 호놀룰루 최고급 저택들이 위치한 Tantalus 산등성이와, 개인용 비치를 가진Kahala 해변을 일본인들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었다. 2차대전 때 일본의 전폭기들이 진주만을 폭격한 지 30여 년이 지났는데 다시 하와이에 일본의 정치·경제 세력이 이토록 융성하게 되었다니! 가슴에 미묘한 파도가 일었다.

 

하와이에서 공부하고, 아이를 낳고, 꿈을 키우면서 비바람을 피했던 집들과 이웃들. 따뜻했던 많은 고마운 분 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빈다. 김인숙 씨가 의상학을 공부하러 Texas로 떠나가면서 나는 다시 HALE MANOA의 Single Room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마쳤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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