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의 경제학 여정(旅程) <10> EAST WEST CENTER(EWC)와 UNIVERSITY OF HAWAII.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2년03월19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2년03월19일 18시21분

작성자

  • 김광두
  • 국가미래연구원 원장, 남덕우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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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호놀루루로 가십니까?”

“네. 그 비행기 타실 건가요?”

 NW Airline이 한국의 김포 국제공항을 출발해서 일본의 하네나 국제공항을 거쳐 미국 하와이 경유 L.A.를 가던 시절이었다. 당시에 하와이나 L.A.직항은 없었다.

 

일본 동경의 하네다 국제공항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난 최상진 육군 소령(당시 육사 교관. 후에 전두환 국보위 전문위원, 주 호노룰루 총영사)과 나눈 대화다. 

요즈음엔 나리타 국제공항을 주로 사용하지만 유학길에 나선 1972년 12월엔 나리타 공항은 없었다.

 

최 소령과 나는 EWC GRANTEE( Full scholarship 대학원생)으로 선발되어 하와이 호노룰루로 가는 길이었다. 그는 정치학, 나는 경제학 전공이라는 것을 그날 알았다. 나는 원래 예정되었던 8월 출국을 약간 늦춰 12월에 출국했다.

 

“The EWC promotes better relations and understanding among the people and nations of the U.S. ASIA, and the PACIFIC through cooperative study, research and dialogue.”

 

EAST WEST CENTER(EWC)는 이런 목적으로 미국 의회가 1960년 설립한 교육·연구 기관이다. 미국 의회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후진국 청년·​학자들에게 미국에 와서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재정 지원을 해주고, 이들 간의 상호교류와 이해를 촉진함과 동시에 이들의 미국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는 의도로 이 센터를 설립했다. 

 

전 미국 대통령 오바마의 부친과 모친이 EWC GRANTEE로 와서 이곳에서 결혼했고, 오바마를 낳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바마가 졸업한 PUNAU High School은 EWC 캠퍼스에서 걸어서 30분 내의 거리에 있는 하와이 최고의 명문 사립학교이다.

 

한국에서는 FULLBRIGHT 한국위원회가 이 센터 관련 사무를 보았다. 이 위원회가 위촉한 GRANTEE 선발위원들이 서류 심사와 인터뷰 테스트를 거쳐 장학생들을 선발했는데, 나는 1971년 가을에 선발되어 72년 여름에 EWC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 해에 12명(?) 정도가 선발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미국에 공부하러 가려는 학생들에게 제일 어려웠던 장애 요인이 학비와 생활비 조달 문제였다. 가끔 부잣집 자녀들이 자비(自費)로 유학 가는 경우가 있었으나, 극히 예외적이었다. 1972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GDP)은 340달러 수준이었다. 50달러가 해외로 출국할 때 소지하고 갈 수 있는 외화의 한도였다. 유학생의 경우, 결혼했다 하더라도 부부가 함께 출국할 수 없어 일정 기간 동안 헤어져 있어야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의 대학원에서는 다양한 SCHOLARSHIP이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Research Assistant나 Teaching Assistant가 대종을 이루고 있고, 주어진 의무가 없는 Fellowship은 매우 드물었다. 더욱이 이런 장학금 혜택을 받아도 그 금액이 적어 별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그 시간만큼 자기 공부 시간에 제약을 받게 된다.

 

EWC GRANT는 이런 측면에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학비, 책값, 생활비, 주거비 등을 주었고, 결혼한 사람에게는 배우자 수당을 추가로 주었다. Grantee 본인과 배우자의 왕복 항공 요금, 논문을 쓰기 위해 특정 지역으로 여행을 할 경우 소요 비용(여비, 자료 수집비 등)도 지급되었다. 박사 학위 과정에 있는 학생의 경우, 본인이 선택한 특정 대학에 가서 강의를 듣고 싶을 경우, 6개월에 한해서 학비, 여비, 생활비 등을 추가로 지급했다.

 

의무 사항은 학위를 끝내면 반드시 귀국해야 한다는 것, 하나였다.  때문에 VISA도 “F(학생)”가 아닌 “J(교환)”로 분류되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UNIVERSITY DF HAWII at MANOA”에서 학업을 한다는 점이었다. 상위 RANKING 대학에 가고 싶었는데, 이 대학의 RANKING은 중위권에 있었다.

 

선택의 문제였다. 경제적 지원을 충분히 받아 내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과, 나의 시간은 제약을 받겠지만 좀 더 RANKING이 높은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 이 둘을 놓고 고민해야 했다. 교수님들과 상담도 하고, 유학하고 있는 선배들과 서신으로 의견 교환도 했다. 나는 내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EWC GRANTEE들의 특징은 대부분이 직장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분들이라는 점이었다. 대학이나 대학원을 갓 졸업한 사람은 희소했다. 이런 특성은 EWC가 “ GRANTEE들은 자국으로 돌아가 국가에 봉사하라”는 입장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경제과의 경우 경제기획원, 재무부, 한은에서 일하다 오신 분들이 다수 있었다.

 

최 소령과 호노룰루 공항에 내리니, Hawaiian Lei( 꽃목걸이)를 들고 환영나온 GRANTEE 선배들이 기다리고 계셨다. 꽃 향기와 상쾌한 하와이의 독특한 미풍(微風)에 쌓여, 선배들의 낡은 차를 타고 EWC 기숙사로 달릴 때, 나는 이곳이 바로 PARADISE 아닐까 하는 행복감을 느꼈다.

 

'HALE MANOA'가 남학생 기숙사, 'HALE KUHINE'가 여학생 기숙사였다. 나는 둘이 함께 쓰는 방을 배정 받았다. 아프카니스탄에서 온 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도 경제학 전공이었다. 수염을 기른 멋쟁이였다.( 이 친구 이름은 잊었는데, 현재 하와이에 거주하고 있다.) 이 두 건물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세자였던 고 이 구(玖)씨가 설계했다는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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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Hale Manoa(남학생 기숙사)>

 

나는 EWC의 TDI( Technology Development Institute) 소속임을 다음 날 알았다. 나를 담당하는 Economist는 거시경제학을 전공한 John Richard 박사였고, 사무적으로 지원하는 Program Officer는 Miss.Djunaidy(?) 였다. 

 

하와이대 캠퍼스는 EWC 캠퍼스와 맞붙어 있었다. 각종 꽃 향기를 맡으며 10분 정도 걸어 하와이대 경제학과에 들렀다. 학과장은 Campbell교수( First name은 잊었다)였고, 대학원 과장은 Seiji Naya 교수였다. Campbell교수는 거시경제학을 전공한 스탠포드대 출신인데 American Football에 관심이 많았고, Naya교수는 국제무역학을 전공한 위스컨신대 출신인데 Boxing 챔피언 출신이었다. 모두 운동을 좋아하고 즐기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Campbell 교수로부터 전두환 정부 시절에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고 김재익 박사가 EWC GRANTEE로 여기 경제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스탠포드 대학으로 가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당시엔 이곳 경제학과에 박사 과정이 없었다는 얘기도 함께 들었다.

 

하와이대학엔 주로 학부 학생들이 이용하는 Singclair Library와 주로 대학원생들이 이용하는 Hamilton Library가 있었다. Hamilton 도서관에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나의 기준으로는 추울 정도로 냉방 온도가 낮았다. 그곳에서 일하는 Librarian들은 자기 의자 옆에 조그마한 난로를 켜 놓고 일하고 있었다. 이런 일이!

 

EWC의 본관 건물은 Jefferson Hall이라 불렀는데, 그 건물 뒤편에 아름답게 꾸며진 Japanese Garden이 있었다. 일본 기업들이 모금하여 만들어 놓았다고 하는데, 그 안에 일본의 전통 다실(茶室)도 있었다. 1960년대, 일본은 세계 주요 도시에 Japanese Garden을 꾸며 일본문화를 널리 알리고, 일본의 좋은 이미지를 각인(刻印)시키려는 노력을 했다. 이런 노력이 일본 제품의 고급 이미지와 수출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 받았다. 미국, 아시아, 아프리카, 태평양의 젊은이들이 다수 왕래하는 이곳에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Japanese Garden!  자연미가 넘치는 Korean Garden은 언제 만들게 될까? 이런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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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WC Jefferson Hall(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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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22년03월19일 18시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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