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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Country Music Hall of Fame and Museum... 음악 문화도시의 상징 박물관에서 <문화도시 조성사업>에 대해 생각하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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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2월08일 11시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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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협
  •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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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지방의 평범한 중소도시 내슈빌(Nashville)에서 <컨트리 뮤직 명예의 전당 박물관>을 둘러보며 떠오른 화두는 ‘문화도시’였다. 내슈빌은 인구가 70만이 안 되는데 통계를 보면 박물관을 찾는 방문객이 매년 120만 명을 상회한다(2019년 통계에 따르면 1,297,433명). 내슈빌이 미국의 대표적 <음악 문화도시>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주목받는 도시는 소위 ‘문화도시’들이다. 그래서 세계의 도시들은 자기만의 고유한 문화자원을 활용해 문화도시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데 열중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여러 도시가 다투어 문화도시 조성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경주의 역사 문화도시, 전주의 전통문화도시, 원주의 창의문화 도시, 남원의 소리문화 도시, 청주의 기록문화 도시, 광주의 아시아문화 중심도시 등이 그렇다. 한국이 이렇게 문화도시 열병을 앓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정부가 지난 10여 년 동안 매년 몇 개의 도시를 선정하여 막대한 예산을 지원하는 문화도시 조성사업을 추진해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면 미국의 한 지방 도시가 문화도시로 성장해온 과정에서 참고할만한 시사점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미국의 수많은 중소도시 중의 하나인 테네시주의 내슈빌에는 참 잘 지어진, 세계 유일의 특수박물관 <컨트리 뮤직 명예의 전당 박물관>이 있다. 이는 내슈빌이 컨트리 뮤직의 본 고장임을 말해주는 징표이다. 내슈빌은 컨트리 뮤직의 중심도시라는 인식이 매스컴과 음반 사업계에서 널리 확산됨에 따라 1950년 ‘Music City USA’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후 the World Capital of Country Music으로 불려왔다. 

 

미국의 변방 남부의 시골뜨기 음악으로 출발한 컨트리 뮤직(Country Music)은 1920년대에 자연스럽게 남부 지방도시 내슈빌에 둥지를 틀고 성장하고 발전을 했는데, 그 출발의 결정적 계기는 1925년 내슈빌의 라디오 방송국 WSM이, 그 당시 미국 최고의 음향효과를 낸다는 평가를 받아 유명세를 탄, Ryman Auditorium이라는 훌륭한 콘서트홀에서 시작한 <Grand Ole Opry>라는 명칭의 컨트리 뮤직 음악방송이었다. 

공개 라이브방송인 그랜드 올 오프리 공연은 2021년 5,000회를 훌쩍 넘기며 오늘날 세계 최장수 방송공연프로그램으로서의 기록을 세우며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으니 이제 전통을 넘어 미국에서 하나의 제도로 자리매김했다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랜드 올 오프리 공연, 방송의 성공이 내슈빌에 가져다준 부수 효과는 음악 관련 사업의 성장이었다. 

 

방송이 전국적으로 지명도를 높여가자 출연을 희망하는 가수와 연주자들이 각지에서 모여들었고, 그와 함께 작곡, 공연기획, 음반 및 악기제조 산업의 발전이 어우러져 내슈빌에는 음악 도시로서의 튼튼한 생태계가 조성되었다. 예컨대 1950년대에는 RCA 빅터레코드사가 녹음 스튜디오들을 설립하고 음반 제작을 시작했는데, "내슈빌 사운드"의 요람으로 간주되는 ‘RCA 스튜디오 B’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로이 오비슨(Roy Orbison), 돌리 파튼(Dolly Parton), 쳇 앳킨스(Chet Atkins), 윌리 넬슨(Willie Nelson) 등 수 많은 가수가 그들의 대표적인 컨트리와 팝 히트 송을 녹음해, 2012년 미국 국립 사작(史蹟)지로 이름을 올렸다.

 

내슈빌이 오늘날까지 역동적인 음악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요소는 내슈빌이 컨트리 뮤직에 더하여 경제적 측면의 성장과 발전을 병행해온 도시라는 점이다. 남부의 침체한 많은 도시와는 달리 내슈빌은 일찍이 일본의 닛산자동차 같은 국제기업의 미주본부를 유치하고 아마존이나 오라클 같은 첨단사업체의 투자를 성공적으로 끌어들여, 2013년 경제전문잡지 Forbes는 내슈빌을 사업과 직업 선택의 측면에서 미국에서 5번째로 좋은 도시로 선정했다. 이러한 도시 경제적 여건은 외부 관광객들의 대량 유입이 없어도 내슈빌로 모여드는 수많은 음악인의 활동을 가능케 만들었다. 쉽게 말하면 내슈빌의 수많은 라이브카페와 바, 호텔의 공연장들에서의 소비를 지역경제가 감당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체적인 배경을 뒤로하고 내슈빌의 <음악 문화도시> 사업을 보다 체계화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컨트리 뮤직 협회(Country Music Association)라는 민간단체가 1964년 출범하여 CMA의 주도하에 1967년 <컨트리 뮤직 명예의 전당과 박물관>(The Country Music Hall of Fame & Museum)이 만들어졌다. 또한 CMA는 매년 7월경이면 내슈빌 시내의 여러 무대에서 300개 이상의 공연을 진행하는 <CMA fest>라는 컨트리 뮤직 페스티벌을 나흘 동안 개최하여 전국적 관심과 참여를 성공적으로 유도했으며, Country Music Television에서는 1967년부터 매년 11월에 컨트리 뮤직 상(CMT Music Awards) 시상식을 CBS 같은 메이저 TV 방송망을 통해 전국에 중계해왔다.

 

한때 미국 남부의 시골뜨기 음악이었던 컨트리 뮤직은 그동안 블루스, 록, 재즈, 가스펠, 팝 등의 다양한 음악 장르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블루그래스(에미루 해리스), 컨트리 가스펠(돌리 파튼, 찰리 프라이드), 홍키통키(행크 윌리암스), rock’n roll과 hillbilly의 합성어인 로카빌리(엘비스 프레슬리), 컨템포라리 컨트리(셔나이어 트웨인), 프로그레시브 컨트리 (윌리 넬슨), 컨트리 팝(짐 리브스, 글렌 캠벨, 존 덴버) 등 여러 갈래의 컨트리 뮤직 유형을 만들어내며 발전을 거듭해 미국 음반 시장에서의 우위를 계속 유지해오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오늘날 컨트리 뮤직은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되었기에 내슈빌에서 컨트리 뮤직의 진수를 맛보려고 공연장과 카페, 바가 즐비한 음악의 거리와 음악 박물관을 찾는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내슈빌이 음악 문화도시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컨트리 뮤직’이라는 얼핏 보잘것없어 보이는 고유의 콘텐츠를 갈고 닦아 지역과 국경의 경계를 넘어 모두가 즐길 수 있게 만드는 노력을 창의적인 사람들이 힘을 모아 기울였고, 그에 더하여 음악의 즉흥적인 소비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문화산업으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병행하여 추진하였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내슈빌의 문화도시 성공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고유의 콘텐츠, 창의적인 노력, 활력 넘치는 경제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오랜 노력의 결과였다. 대체로 관 주도하에 진행되어온 우리의 문화도시 조성사업이 참고할 사항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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