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넬슨 록펠러 <4> 1974년 부통령 취임했으나 1976년 대선 민주당 승리로 공직 마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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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10월22일 15시00분
  • 최종수정 2021년10월19일 13시59분

작성자

  • 이상돈
  •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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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들어서 록펠러는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풀기위한 민간 위원회를 만들고 각계의 저명인사를 위원으로 위촉했다. 록펠러는 미국이 중요한 선택(critical choice)를 해야 한다면서,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런 민간위원회를 만들었다. 1973년 12월에  이 위원회 일에 전념하기 위해 임기를 1년 남기 놓고 지사직을 사퇴했다. 그 시점은 워터게이트 사건의 파장이 점점 커져가고 있던 때였는데, 록펠러는 백악관 내의 사정을 헨리 키신저 안보보좌관을 통해 전해 듣고 있었다. 

 

1974년 8월 9일, 결국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이 사임함에 따라 부통령인 제럴드 포드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8월 20일 포드 대통령은 넬슨 록펠러를 부통령으로 지명했다. 4개월 동안의 상원 인준 청문을 거쳐서 그해 12월에 상원과 하원은 각각 90대 7, 그리고 287 대 128로 인준을 통과시켰고, 12월 19일 록펠러는 부통령으로 취임했다. 상원 청문회 과정에서 록펠러의 재산과 수입, 그리고 납세액이 밝혀졌는데, 이로 인해 록펠러는 곤혹을 치렀다. 록펠러는 여러 사람에게 사적으로 후원금을 보냈음이 밝혀졌는데, 특히 헨리 키신저에게 그 간 50,000달러를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서 논란이 일었다. 

 

포드 대통령이 공석이 된 부통령을 지명할 때 당시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이던 조지 H. W. 부시(George H. W. Bush 1924~2018)가 가장 유력하게 거론됐는데, 록펠러가 지명된 데는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이던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Rumsfeld 1932~2021)의 영향력이 있었다. 럼스펠드는 자기의 라이벌인 부시가 부통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주지사를 은퇴한 록펠러를 부통령으로 밀었고, 이를 알게 된 부시는 럼스펠드와 그 후 계속 갈등관계를 이어가게 된다. 

 

럼스펠드는 포드 대통령을 움직여서 부시를 주중 미국 대사로 임명토록 해서 베이징으로 내보내는데 성공했다. 1975년 개각 때 부시는 상무장관을 원했지만 포드는 그를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부시는 외교와 안보에 관한 식견과 경험을 갖게 되었다.  

 

록펠러가 부통령이 되는데 대해선 로널드 레이건을 따르는 공화당 내의 보수파가  반대를 했다. 록펠러는 자기가 포드 행정부에서 일정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백악관 비서실장인 럼스펠드가 록펠러를 견제해서 상원 본회의 사회를 보는 외에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 1976년 대선을 준비하던 포드 대통령의 참모들은 진보 성향인 록펠러를 러닝메이트로 두고선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보았다. 

 

1975년 11월, 포드 대통령은 록펠러한테 1976년 대선 때 러닝메이트를 할 수 없다고 통보했고, 록펠러는 자기가 부통령 후보로 나서지 않을 것임을 표명했다. 이것으로 그의 공적 생활은 사실상 끝이 났고, 이는 공화당 내에서 진보파가 끝이 났음을 의미했다. 부통령으로 있는 동안 록펠러는 워싱턴에 있는 부통령 관저에서 살지 않고 맨해튼 아파트와 뉴욕 근교 저택에서 주로 머물렀다. 록펠러는 부통령 전용기 보다는 걸프스트림 자가용 비행기를 주로 사용했다. 

 

1976년 대선에서 포드 대통령은 공화당 후보로 나섰으나 민주당 후보 지미 카터에게 패배했다. 포드 대통령은 밥 돌(Bob Dole 1923~ ) 상원의원을 러닝메이트로 삼았고, 카터는 월터 먼데일(Walter Mondale 1928~2021) 상원의원을 러닝메이트로 삼았다. 밥 돌은 1996년 대선 때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클린턴에게 패배했고, 월터 먼데일은 1984년 대선 때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레이건에게 패배했다.  

 

정권이 민주당으로 넘어 감에 따라 제럴드 포드, 넬슨 록펠러, 헨리 키신저, 도널드 럼스펠드. 조지 H. W. 부시, 딕 체니 등 공화당 인사들은 모두 야인(野人)이 됐다. 1976년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포드 대통령에게 패배한 로널드 레이건, 그리고 CIA 국장으로 공직 생활을 마감한 조지 H. W. 부시는 1980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도널드 럼스펠드는 다국적 제약회사 임원이 됐고 딕 체니는 고향 와이오밍으로 돌아가서 의회 진출을 도모하게 된다. 헨리 키신저는 자기 이름을 내건 대외정책 컨설팅 펌을 만들었다. 그러면 넬슨 록펠러에게는 무슨 일이 생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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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포드 대통령(가운데) 시절의 록펠러 부통령(좌측)과 키신저 국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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