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최협의 박물관 이야기 <21> 클리블랜드 미술박물관(Cleveland Museum of Art)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1년03월14일 09시00분
  • 최종수정 2021년04월05일 11시12분

작성자

  • 최협
  •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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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이던가? 북한을 다녀온 유명 소설가가 펴낸 책 제목이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였던 것 같다. <클리블랜드> 우리에게 생소한 미국 오하이오주의 쇠락해가는 산업도시인 클리블랜드를 방문한 뒤 나의 소감은 그곳에도 문화가 있었네!”였다.

<클리블랜드미술박물관>은 내가 외국에서 처음 방문한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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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미국유학길에 올랐을 때 나보다 2년 먼저 간 내 친구 성룡이가 클리블랜드의 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내가 다닐 대학도 오하이오주에 있었기에 미국의 첫 기착 도시가 클리블랜드가 되었다. 친구 집에서 첫 밤을 지내고 다음 날 대학 주변을 안내받았는데, University Circle이라 불리는 <대학지구> 내의 공원에 미술박물관, 자연사박물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연주 홀이 있었다. 일단 <대학><문화시설>을 함께 배치한 도시계획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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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호수를 낀 오솔길을 지나 별다른 기대 없이 친구의 안내로 들어간 미술박물관은 내가 그 당시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규모와 수준의 문화공간이었다. 기분 좋은 충격을 느꼈다고나 할까?! 갑자기 다른 문화권으로 옮기면 경험하게 되는 혼란을 인류학에서는 <문화충격>이라 부른다. 60년대 한국의 생활 여건은 물론이려니와 문화시설 역시 참으로 빈약한 시절이었다. 가난한 나라에 온 가난한 유학생이, 미국 도착 다음 날, 급격히 변한 생활환경에 첫발을 내디딘 날... <카우보이 문화>정도를 예상했던 미국의... 그저 그런 무명의 도시에서... 뜻밖의 훌륭한 미술박물관을 접하게 되었으니 의외로 충격이 컸던 것 이다. 미국에 도착한 다음 날, 나는 클리블랜드에서 모네, 드가, 렘브란트, 로뎅 등의 작품을 내 생애 처음으로 실물로 만났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여하튼 이러한 이유로 클리블랜드 미술박물관은 나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박물관으로 남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찾아본 그때의 사진을 다시 보며 즐거웠던 옛 시간을 되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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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veland Museum of Art> 는 객관적으로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미술박물관이다. 19세기 말 클리블랜드의 기업인들이 마련한 기금을 바탕으로 1913년 설립되어 1916년에 개관한 이래 꾸준히 기금을 증액하여 2018년 현재 기금이 755백만 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미국의 미술박물관 중 네 번째로 많은 액수라 한다.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관행이 클리블랜드처럼 일하는 사람들의 산업도시에서도 활발히 이어져온 현상은 확실히 부러운 일이다. 충분한 기금 덕분에 클리블랜드 미술박물관은 무료로 시민들에게 활짝 열린 문화공간이 되었다.

클리블랜드미술관의 주요 소장품은 고대 이집트 미술에서 20세기 미술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회화, 조각, 공예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어, 미국의 그 어느 미술관에 비해 손색이 없다. 몇가지 만 소개하면 틴토레토의 그리스도의 세례’, 렘브란트의 젊은 남자의 초상’, 피카소의()’ 등이 유명하고, 특히 내가 좋아하는 모네의 그림 <The Red Kerchief Portrait of Madame Monet> 가 있다. 또한 동양미술품도 많을 뿐 아니라 한국실을 따로 두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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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석유와 철강 산업으로도 크게 흥했던 클리블랜드는 20세기 중반 이후 석유와 철강 산업이 쇠퇴하면서 쇠락의 길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문화적으로 긍지를 갖는 도시이다. 클리블랜드가 자랑하는 <Cleveland Orchestra>는 뉴욕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보스턴 심포니,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미국 5대 관현악단으로 명성이 높다.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연주홀의 명칭은 기부자의 이름을 따라 <Severance Hall>로 불리는데, Louis Severance는 클리블랜드에서 창립된 스탠다드 오일의 투자자로 한국의 세브란스병원에도 10,000달러를 기부하여 그의 이름을 남겼다.

 

Cleveland가 문화도시로서의 면목을 지켜오는 데는 대학도 한몫한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는 오하이오를 대표하는 명문 사립대학이다. 생명공학, 의학, 사회복지, 간호학 분야가 특히 유명하고 공대, 치대, 자연과학대나 경영대의 순위도 상위권에 든다. 경영대 건물은(Peter B Lewis Building) 스페인의 구겐하임미술관을 설계하고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유명 건축가 Frank Gehry의 작품으로 이를 보러 오는 관광객도 있다고 들었다. CWRU가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이라는 증거는 총 1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다는 사실이 말해준다. 이름도 몰랐던 대학의 노벨상수상자!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고 열일곱명씩이나! 개성이 존중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다원사회의 저력이 이런데서 드러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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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벌한 도시로 여겼던 클리블랜드에도 <문화>가 있었다. 사람이 사는 곳은 자신들이 가꾸기 나름이다. 그래서 광주, 문화도시를 생각해본다.우리는 어디에 와 있을까?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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