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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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프레임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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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1월12일 11시27분

작성자

  • 이상돈
  •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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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국민의힘이 안철수 때문에 시끄럽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안철수 프레임’에 제대로 걸려든 꼴이다. 서울시장 선거를 앞둔 그런 국민의힘을 보자니 2012년 대선이 생각난다. 

 

2012년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예상을 깨고 단독 과반수 의석을 차지함에 따라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일찌감치 박근혜로 정해졌다. 그런데 상대방이 누구일지가 불분명했다. 여론조사 지지도는 안철수가 문재인이나 김두관 보다 월등히 높아서 새누리당에서도 결국 안철수와 맞붙지 않겠나 하는 전망이 많았다. 나는 총선 직후부터 여러 인터뷰를 통해 대선은 민주당 후보 문재인과 치를 거라고 누차 밝힌 바 있었다. 정당, 그것도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주당 후보와 싸운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것은 범친노/야권 세력이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에게 물을 먹였다는 것이지 박원순이 제3후보로 이긴 것이 아니라는 게 당시 나의 대답이었다. 

 

2012년 대선은 ‘박근혜와 박근혜의 싸움’이라는 말이 있었다. 나는 그 말이 맞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그 싸움의 한쪽 축에 있었다. 2012년 9월에서 11월에 이르는 동안 박근혜 선대위와 새누리당은 후보의 부친인 박정희의 유산(legacy)를 두고 내전(內戰)을 치렀다. 상대방이 안철수이냐 문재인이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9월 10일 박근혜 후보의 ‘두개의 인혁당 판결’ 인터뷰부터 11월에 터진 ‘정수장학회 소유 MBC 지분 매각 시도’에 이르기까지 후보의 부친이 남긴 숙제가 폭탄이 되어 버려서 그것을 수습하는 게 일이었다. 나는 그해 여름부터 어차피 인혁당 희생자 가족에 대해선 사과를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나중에 억지로 하기 보다는 후보가 먼저 사과하면 선거는 그것으로 끝날 거라고 사석에서 이야기하곤 했지만 그것을 박근혜한테 설득할 사람이 없었다. (나도 인혁당을 포함한 여러 문제를 엮어서 메모랜덤으로 후보에게 전달했을 뿐이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나온 정수장학회 소유 MBC 주식 30% 매각 구상도 황당하기가 이를 데 없는 것인데, 그런 발상을 후보한테 심어준 세력이 있었다. 2012년 가을 두 달을 이런 내부 문제로 시끄럽게 보냈는데, 막판에 노인에게 한 달에 얼마씩 드린다는 노령연금 공약을 하고, 새누리당 의원들의 열정적인 선거운동에 힘입어 박근혜는 100만 표 차이로 승리했다. 당시 대구 경북 지역 새누리당 의원들은 관내의 유권자들에게 수도권에 사는 자식들에게 전화 걸기 운동까지 했다. 박근혜 안 찍어도 되니까 문재인은 찍지 말라고 하는 전화걸기 운동이었다. 이런 게 정당의 힘이다. 

 

그러면 당시 민주당 문재인 캠프는 무엇을 했을까 ? 짐작하건대, 안철수와 싸우느냐고 온 정신을 거기에 쏟았을 것이다. 모든 정보력을 총동원해서 안철수를 파보기도 하고 무게를 달아 보기도 했을 것이다. 안철수가 단일 후보가 되면 민주당은 망하는 것이고, 안철수와 동시에 나와서 3파전을 하면 선거는 해보나 마나 한 것이었으니, 아무 조직도 없이 아무 일도 하지 않지만 지지도는 높은 안철수 때문에 민주당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안철수와 싸우는 국민의힘의 모습은, 2012년에 민주당이 당했던 모습이 다운사이즈 되어 있는 형상으로, 오래 전 일이 생각나서 적어 보았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청와대에 들어간 그룹은 인혁당 판결이 두 개가 있고, 정수장학회 소유 지분을 매각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집단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큰 집’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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