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나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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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6월27일 16시47분
  • 최종수정 2020년07월01일 18시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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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지시를 절반 잘라먹었어요. 장관의 말을 겸허히 들었으면 좋게 지나갈 일을 새삼 지휘랍시고 일을 더 꼬이게 만들었어요.”

“역대 법무부장관이 말 안 듣는 검찰총장과 일을 해본 적도 없고, 또 재지시라는 발상을 해본 적도 없는데 제가 아침에 샤워를 하면서 (한명숙 사건 위증 교사 진정 감찰 사건에 대해) 재지시를 해야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두고 쏟아낸 말이다. 지난 6월 25일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주최로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초선의원 혁신 포럼에서다.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는 이 발언은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믿기지않는다. 전날 추장관은 윤 총장을 ‘법 기술자’라고 꼬집기도 했다.

 

윤석열 총장은 문재인 정부가 검찰총장 최적임자로 추켜세우며 임명한 검찰총장이 아니던가? 더구나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5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현재의 여당 당 대표까지 지내신 분이다. 그런 장관의 언사로는 적절하지 않다. 언론들은 “윤 총장을 작심 비판했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비판이 아니라 ‘넋두리’ 정도가 아닐까 싶다.

 

왜 그랬을까? 가장 보편적인 해석은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의 일환이라고 한다. 조국사태이후 정부 여당이 못마땅해 하고 있고, 임기가 보장돼 있지만 스스로 나가주기를 은근히 기대해왔는데 뜻대로 되지 않으니 이제 막말이라도 퍼붓는다는 해석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다음 대선을 염두에 두고 벌이는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의 일환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언론에 많이 등장하면 도움이 된다.”는 정치인들 특유의 대국민 인지도(認知度) 올리기 작전이라는 그럴듯한 추론이다. 

 

어찌됐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대립하는 모습은 보기 흉한 모습임에는 틀림없다. 윤 총장은 아직 말이 없지만 추 장관처럼 “이런 법무부장관과는 처음 일해 보는 것 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요즈음 나라 일 돌아가는 형세를 보면 “이런 나라도 있구나!” 라는 그런 생각으로 새삼 놀란다. 국회는 원(院)구성도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총선에서 압승을 했으니 “국회는 이제 우리 맘대로 운영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야당의 비협조에 대해 “감히 국민들의 선택을 무시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을 보면 틀림없는 현실이고, 또 오만(傲慢)이다. 30년 관행인 야당 법사위원장을 단독국회를 열어 빼앗고, 국회 의사일정은 야당 없이도 진행해 나가겠다고 협박한다. ‘오만하다’는 비판이 나올만한 형국아닌가.

 

 요즈음 이른바 ‘인국공’ 사태를 둘러싼 여당 인사들의 언급은 그런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 처음엔 ‘인국공’이 뭔가 했는데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준말이라고 한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비정규직인 보안검색원들의 정규직 전환을 발표하자 취업준비생이나 노조 등에서 갖가지 의견이 대두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취업준비생들이 일률적인 정규직 전환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취업기회의 제한이라는 생각에서다.

 

청와대 관련 수석과 여당 인사들이 이를 설득시키겠다고 내놓은 논평들이 젊은 취업준비생들의 심사(心思)를 더욱 긁어놓은 결과를 초래했다. 가장 문제가 된 발언은 김두관 의원이 본인의 페이스북에 올린 다음과 같은 논평이다. 

 

“조금 더 배우고 시험에 합격해서 정규직이 됐다고 비정규직보다 2배가량 임금을 더 받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이다.”

 

 그러자 김 의원에 대해 비판이 쏟아졌고, 급기야 '국회의원 월급, 최저시급에 맞춰 달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발의돼 27일 현재 1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고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공기업은 물론이고 민간기업들도 업무의 성격과 감당 가능한 재정상황 등을 고려해 정규직화를 추진해야 함에도 대통령의 약속이란 명분으로 무조건 밀어붙이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공기업이건 민간기업이건 기업들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 것이 정답이다. 처음부터 정부가 개입할 일이 아니었다. 무차별적인 정규직 전환은 공기업부채를 급증하게 만들고,이는 결국 국민세금으로 빚을 갚는 결과를 초래한다. 민간기업에도 정부정책의 명분으로 정규직화 종용은 그치지 않고 있다. 기업들이 비용부담 증가로 손실이 쌓이면 인건비 증가를 정부가 보상해줄 셈인가?

 

 이번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화가 그런 대표적인 사례다. 더구나 정규직화 전환의 기준을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 회사를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화’를 선언했던 날(2017년 5월 12일)을 기준으로 전환에 따른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 입사한 사람은 간단히 평가하고, 그 이후 입사자는 공개채용에 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통령 방문 이후 내부 임원들의 비정규직 채용비리가 우려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지만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는 약간 의문이다. 채용비리가 없도록 대비했으면 될 일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얼마 전 일어난 북한의 대남비방과 관련한 우리 정부의 대응도 참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이 온갖 욕설을 동원해 남북관계를 대적(對敵)관계로 전환하다고 공언했고, 심지어 개성에 있는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행사도 벌였다. 6.15공동선언 20주년행사에서의 문재인 대통령 기념사를 조롱하는 논평을 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의 대응은 어땠는가? 한마디로 뜨뜻미지근했다. ‘심한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정도였다고나 할까? 

 

 김여정의 군사적 대응 발언이후 며칠 뒤인 6월 24일 김정은 위원장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에서 군사적 대응을 보류했다. 이를 두고 통일부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면서 “긍정적 신호”라고 반겼다. 남북관계가 이런 식으로 진행돼도 좋은가? 왜 우리는 북한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가?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는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이 개성에 있는 우리 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남북 특수 관계를 고려하면 우리 공관이 폭파당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굴욕이 없다. 어떤 나라가 주재하는 우리 대사관을 폭파했다고 가정해보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관계 단절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도 각오해야 하는 중대 사태다. 보통 국가라면 선전포고도 생각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퍼주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대선잠룡이라는 김두관 의원은 "미국이 반대하더라도 바로 개성공단 문을 열고 금강산 관광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이 기회에 개성에 공동연락사무소 1개를 둘 것이 아니라 평양과 서울에 남북 대사관 역할을 할 연락사무소 2개를 두는 협상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글쎄, 정신 나간 소리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일까?. 

 

요즈음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이래도 좋은가?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이런 입법부, 이런 사법부, 그리고 이런 행정부로 과연 미래를 일궈나가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을까? 과거에 집착해 입만 열면 친일청산이요, 적폐청산을 노래하는 지금의 집권세력은 어떤 끝맺음으로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 적(敵)으로 간주한다고 밝히고,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덤비는 북한에 대해 ‘잘 대해주어야 평화가 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기만 하다.

‘이런 나라’에 사는 우리는 무엇부터 극복해 나가야 할까? 코로나19 ? 물론 당장 급한 일이긴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그게 아니다.국가의 존망과 정체성을 어떻게 지켜갈 것인가? 이게 문제다. 국내문제도 그렇고, 국제외교도 그렇고 걱정스럽기만 하다.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민망하다. 정치놀음을 보고 있으려니 화만 치밀고, 속만 타들어 간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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