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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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대학 과잠, 도대체 무엇이 문제죠?”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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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4월02일 19시54분
  • 최종수정 2016년11월21일 03시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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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봄이 만연한 4월, 우리 대학에서는 이른바 ‘새내기’로 불리는 대학의 신입생들이 떠들썩하게 캠퍼스 곳곳을 누빈다. 동시에, 먼저 학교에 들어온 선배들이 새내기들에게 밥을 사주며 친분을 쌓는 ‘밥약 (밥 약속의 줄임말)’이 연일 잡히며 새로운 공동체에 적응해가는 풍경이 관찰된다. 이런 설렘 가득한 신입생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단연 ‘과잠’ 이다. 

 과잠이란 ‘과 점퍼’의 줄임말로, 야구 점퍼 형태로 만들어진 단체 유니폼이다. 등 뒤에는 소속 대학과 과 이름을, 팔 양쪽에는 학교 고유의 엠블럼과 상징 동물을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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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양대학교 정보사회학과 2016 과 점퍼 디자인)

 

 과잠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여러 논란이 있었다. 소위 ‘SKY’ 로 통칭되는 명문대학이나 의약 계열과 같이 학벌 체계에서 높은 순위를 점한 집단의 학생들이, 학교가 아닌 일반적인 장소를 갈 때에도 과잠을 자랑스러운 듯 즐겨 입고, 이는 상대적으로 학벌이 낮은 타 대학생들과 일반인들에게 ‘위계질서 류’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학교에 갈 때 무난히 입고 다닐 수 있다는 ‘실용성’ 과 공동체 구성원 간의 ‘동질감’을 형성해준다는 순기능, 그리고 “자랑 좀 하면 어떠한가?” 와 같이 대학생에게 너무 지나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지 말자는 의견이 힘을 얻으며 논란이 사그라드는 듯 했다.

 

 그런데 최근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바로 한쪽 팔에는 자신의 소속 대학을, 다른 한쪽에는 자신의 ‘출신 고교’까지 드러내는 과잠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민사고 – 서울대’ ‘대원외고 – 고려대’처럼, 같은 명문 대학생이더라도 자신은 일반 고등학교가 아닌 ‘명문 고등학교’ 출신임을 나타내는, 즉 뼛속부터 ‘성골’임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면서부터다.

 이에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의 공식 페이스북에서 누리꾼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오가기도 하며 다시금 뜨거운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나 이런 사람이야… 출신高까지 새긴 학교 점퍼” ☞ http://me2.do/Gjwrj1P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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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서울경제신문)

 

 논란을 살피는 내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물론 학연 * 지연으로 점철되는 한국 사회 고유의 사회적 출신성분 문화에서 자신이 가진 ‘상징자본’ 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썩 환영받을만한 행동은 아니다. 그러나 경기, 경복, 휘문고처럼 주요 권력 집단에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특정 고교’의 출신임을 불순한 목적을 가진 채로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한번 즘 자랑하고 뽐내고 싶은 자신의 고교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이들이 특목고 출신임을 가지고 연합을 형성해 집단 유대 권력을 형성할 것인가, 또는 특목고 출신이 아닌 학생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할 것인가. 아직 대학생 신분에 불과한 우리들에겐 그럴만한 힘도 여유도 없다. 그저 “나 이런 사람이야.”하고 한 번 자랑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또한 의문을 갖는다. 왜 손가락질하는 대상이 ‘사회’가 아닌 ‘개인’일까? 이들은 스스로 학벌 서열화에 젖었을까? 고교 3년 간 오직 대학만을 위해 참고 달려온 새내기들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고교 시절 내내 들여다본 ‘대학 배치표’를 머릿속에서 한 순간에 지워버릴 수 있을까?

 청년마저 서열화에 순응했다고 분노하기 전에, 이명박 정부 때의 ‘고소영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출신이 주요 요직을 장악)’ 과 현 박근혜 정부의 ‘성시경 (성균관대, 고시, 경기고 출신이 주요 요직을 장악)’ 과 같은 사회의 권력 카르텔에 분노하라. 

 

 출신 고교를 새기는 과잠이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고 지적하기 전에, 이들을 순수하게 바라봐줄 심적 여유도 없는 야박한 사회에 가슴 아파하라. 또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는 자기검열 사회를 지적하라. 마지막으로, 이런 행동을 문제 삼아 특정 개인에게 집중 포화를 날리는 ‘분노 사회’를 걱정하라.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곳은 정글 같은 사회가 아닌 ‘대학’이다. 복잡한 조직이 아닌 ‘우리’다. 함께 입고, 먹고, 다니며 인생에 한 번 뿐인 추억을 만들어가는 곳이다. 바야흐로 각자도생의 시대, 마지막 연대의 보루로 남은 대학마저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하지 말아 달라. 

 과잠, 무얼 하든 편하게 입을 수 있게 ‘내버려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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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4월02일 19시54분
  • 최종수정 2016년11월21일 03시07분

댓글목록

타이피님의 댓글

타이피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대학생도 성인인데 학생인 걸 빌미로 비판받기 싫다? 더 큰 잘못 저지르는 이들이 있으니 우리의 잘못은 넘어가달라? 구세대가 경기, 경복, 휘문고로 카르텔을 만들었으면 지금은 특목고 중심으로 카르텔을 만들고 있지 않는가? 그래, '아직'은 대학생들의 신생 카르텔이 강력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앞으론? 벌써부터 비판에 귀 막고 있으니 똑같은 구태가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