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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 <20> 박재삼의 시 읽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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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6월25일 16시30분
  • 최종수정 2022년06월24일 18시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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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삼(朴在森.1933~1997)은 1933년 4월 10일 아버지 박찬홍(朴贊洪)과 어머니 김어지(金於之)의 5남 2녀 중 차남으로 일본 동경부(東京府)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막일을, 어머니는 노동판의 밥장사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궁핍한 가정환경이었다. 그의 가족이 귀국한 것은 박재삼이 네 살 되던 1936년이었다. 어머니의 고향인 경남 삼천포 서금동 72번지에 주거를 마련하였다. 귀국 후에도 아버지는 부둣가에서 노동을 하고 어머니는 어물장사를 했다. 박재삼은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성장하였다. 소년기의 이 가난 모티프는 박재삼 시의 주요한 특질로 자리 매김하게 되었다.

 

1949년 제1회 영남예술제(현 개천예술제)에서 「촉석루」로 차상에 입상하였다. 그때, 장원에 입상한 이형기와 교분을 맺었으며, 이후 둘은 각자 서로의 시 세계에 정진하여 한국시의 우뚝한 봉우리를 이룩하였다. 1953년 삼천포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같은 해 11월호『문예』지 11월호에 「​강물에서」​가 추천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취직을 먼저 해야 했던 시인은 은사 김상옥의 소개로 현대문학사에 취직해 창간 준비를 시작한다. 당시 주간은 조연현, 편집장은 오영수였다. 1955년 6월호 『​현대문학』에 「​섭리」​(攝理)가, 11월엔「​정적」​(靜寂)이 발표되어 시단에 등단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다. 그러나 학비를 자신이 손수 벌어야 했기 때문에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고 만다. 가난으로 인해 대학 과정을 마칠 수 없었고, 그 후 그는 그럴듯한 직장에 안주하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았다. 같은 시기에 등단한 여러 시인들이 대학 강단이나, 나름의 안정된 직장을 토대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과는 대비되는 삶을 산 셈이다. 그러나, 일생의 대부분을 안정적 직장이 없었던 것이 박재삼 개인에게는 불운이었지만 또한, 평생 그를 따라다니며 힘든 살을 살게 했던 가난과 노고는 그의 시의 거름이 되어 가치 있는 시로 다시 태어났다.

 

박재삼은 또한, 오랜 병고에 시달렸다. 잡지사를 전전하면서 폭주와 흡연으로 건강을 해치게 되고 1967년에는 고혈압으로 쓰러진다. 약 6개 월 가량의 투병 끝에 일어나지만 그 후에도 몇 번씩이나 병석에 눕고 일어서는 일을 반복해야 하였다. 

 

박재삼 시에 나타나는 ‘가난’ 모티프와 ‘질병 콤플렉스’는 그의 천부적 감성의 토대 위에서 ‘슬픔’과 ‘한’의 정서로 표출되어 나타난다. 특히, 한국시의 정통 서정을 이어받으면서 그 깊이와 폭을 넓혀간 그의 시적 궤적은 한국시사의 소중한 가치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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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으로 『춘향이 마음』​(신구문화사, 1962), 『​햇빛 속에서』​(문원사, 1970),『​천년의 바람』​(민음사, 1975), 『​어린 것들 옆에서』​(현현각, 1976), 『​뜨거운 달』​(근역서재, 1979), 『​비 듣는 가을나무』​(동화출판공사, 1980), 『​추억에서』​(현대문학사, 1983), 『​대관령 근처』​(정음사, 1985), 『​내 사랑은』​(영언문화사, 1985), 『​찬란한 미지수』​(오상출판사, 1986), 『​사랑이여』​(실천문학사, 1987), 『​해와 달의 궤적』​(신원문화사, 1990), 『​꽃은 푸른빛을 피하고』​(민음사, 1991), 『​허무에 같혀』​(시와 시학사, 1993), 『​다시 그리움으로』​(실천문학사, 1996) 등 15 권의 시집과 『​박재삼 시 전집Ⅰ』​(민음사, 1988)을 냈다. 

 

35세에 처음 고혈압으로 쓰러진 후 그를 계속 괴롭히던 병마와의 오랜 투병 끝에 1997년 6월 10일 타계하였다. 장례는 한국시인협회장으로 치뤄졌으며 공주 인근의 장지에 묻혔다.​

박재삼의 시 세계는 3단계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 그 첫 단계는 한과 그리움의 정서가 주요 모티프가 되어 있는 시집 ​춘향이 마음』, ​햇빛 속에서』​, ​천년의 바람』​이고 두 번째 단계는 생활인의 삶을 노래해 보여준, ​어린 것들 옆에서』​ ​뜨거운 달』​, ​비 듣는 가을나무』​의 세계이다. 그리고, 셋째 단계는 유년의 추억과 삶의 허무를 노래해 보여준 ​추억에서』​, ​대관령 근처』​, ​내 사랑은』​, ​찬란한 미지수』​, ​사랑이여』​, ​해와 달의 궤적』​, ​꽃은 푸른빛을 피하고』​, ​허무에 같혀』​ ,​다시 그리움으로』​의 세계이다. 

 

박재삼의 초기시집 ​춘향(春香)이 마음』​, ​햇빛 속에서』​, ​천년의 바람』​에는 <한>의 정서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의 정서는 주체가 객체에 대해 지니는 일관된 심적 지향이 철저히 좌절되거나 단절되고 있을 때 주체가 지니게 되는 자기 구현 욕구이다. 그러므로 '한'은 이런 상실과 좌절에서 연유되는 원망, 한탄, 비애 등을 짙게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삭이고 익혀 가는 과정에서 점차로 예술적 승화, 윤리적 안정을 획득해 가는 일종의 승화 조절의 장치인 셈이다.

 그러므로 주체가 감당할 좌절이나 단절이 절대적인 것이 될 때 <한>의 정서 역시 사무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박재삼의 초기시에 <한>의 정서가 짙게 나타나는 것은 그의 가정환경과 연관이 있다. 그의 아버지는 부둣가에서 노동을 하고 어머니는 어시장에서 어물장사를 했다. 심지어 그의 형까지 여관에서 잔심부름을 해야 했다고 한다. 이처럼 근근히 연명하는 형편에 소년 박재삼은 바다와 하늘을 벗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시 곳곳에 등장하는 ‘바다, 가난, 햇빛, 섬, 바람, 누님(소박맞고 바다에 빠져죽은 젊은 이모

)’ 등은 그에게 ‘한’의 정서로 침착되게 되었던 것이다.

 

<춘향>은 한국인의 심리적 기저에 폭넓게 자리하고 있는 비극적 인물이다. 정절을 지키기 위해 물리적 정신적 위압과 응전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춘향의 일편단심은 위압의 현실로 인해 실현될 수 없는 것이 되어 있다. 춘향의 <한>은 그래서 절실한 호소력을 지니게 되고 한국인의 집단무의식과 긴밀히 연계된다. 박재삼은 슬픔과 한스러움을 설화적 인물들을 통해 표현해 낸다. <춘향>도 그런 인물 중의 하나이다.

박재삼 초기시의 두드러진 특성 중의 하나가 농축된 정서의 표출이다. 박재삼의 초기시에 나타나는 정서의 농축은 그의 시를 강한 긴장이 되게 한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 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가는

소리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위의 시는 박재삼 초기 시에 나타나는 정서의 긴장과 탄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시의 화자는 지금 자신의 심적 정황을 저물녘 노을 속으로 흘러가는 강물로 치환해 보여준다. 한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없을 만큼 안타까운 심적 고양상태 속에서 그는 자신이 당면한 슬픔의 현실을 거리를 두고 인식하려 한다.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에서 그런 심리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강물이 바라다 보이는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이 나는 것은 그가 당면하고 있는 슬픔의 현실 때문이다.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에서의 슬픔의 인식 역시 깊이를 지닌다. <제삿날>은 이미 고인이 된 지인을 그리며 추모하는 자리이다. 그런 제삿날 큰집에 등불이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시적 화자가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이 나게 된 연유도 거기에 있는 것일 게다. 그리고, 그런 시적 화자의 격정의 슬픔이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으로 치환되어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런 정서의 격정이 <첫사랑 산골물 소리>로부터 시작되어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당도해 간다. 이런 심리의 변이 과정을 따라 가면서 <산골 물소리>도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이 되어 바다의 넓이와 깊이로 확장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한국 현대시사에 드물게 보는 견고한 서정이다.

 

감나무쯤 되랴,

서러운 노을 빛으로 익어가는

내 마음 사랑의 열매가 달린 나무는,

이것이 제대로 벋을 데는 저승밖에 없는 것 같고

그것도 내 생각하던 사람의 등뒤로 벋어가서

그 사람의 머리 위에서나 마지막으로 휘드려질까본데,

그러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안마당에 심고싶던

느껴운 열매가 될는지 몰라!

새로 말하면 그 열매의 빛깔이

전생의 내 전 설움이요 전 소망인 것을

알아내기는 알아낼른지 몰라!

아니, 그 사람도 이 세상을

설움으로 살았던지 어쨌던지

그것을 몰라, 그것을 몰라.

- 「한 恨」

 

위의 시에는 두 개의 공간이 내재되어 있다. 그 하나는 시적 화자와 감나무와의 거리, 즉 인간과 자연과의 거리이고 다른 하나는 이승과 저승과의 거리, 즉 삶과 죽음의 거리이다. 시인은 자신이 지니게 된 ‘한’을 <감나무> 쯤의 거리에서 인식한다. 떫은 풋감으로부터 인고와 성숙의 오랜 과정을 거치면서 홍시로 익어 가지 끝에 열린 열매를 그가 이뤄내고자 하는 마음속의 사랑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 속의 <나>가 쉽사리 도달할 수 없는 거리에 있다. 열매와 나 사이에는 인간과 자연의 거리가 가로 놓여 있는 것이고, 더하여 이승과 저승과의 거리마저 겹쳐져 있다. 사랑의 열매가 달린 가지가 벋을 데는 저승밖에 없음을 인식하면서 화자의 슬픔은 ‘한’의 정서로 전이된다.

 

그런데, 박재삼은 저승으로밖에는 벋을 데가 없는 감나무에 자신의 의지를 투사하고 있고 저승에 있는 <내 생각하던 사람> 곁에 자신을 세우고 있다. <전 서름>이고 <전 소망>으로서의 열매를 달고 저승의 사람 곁에 서는, 그 은근하고도 처연한 사랑의 방식이 <한>의 정서를 농밀한 것이 되게 한다.

 

진주晋州장터 생 어물魚物전에는

바다밑이 깔리는 해다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진주 남강晋州南江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 「追憶에서

 

박재삼의 시에 나타나는 아니마적 특성들이 어머니 콤플렉스와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재삼의 <어머니>는 어물행상으로 장터 거리에 나앉아 있다. 모성은 유년의 아들에게 궁극적 귀의처여야 하는 것이고 아들의 황망한 자아에게 전폭적으로 소유되어야만 하는 전지전능한 것이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장터 거리에 나앉아 있고 해가 다 지는 어스름 속을 팔다 남은 몇 마리 고기를 이고 늦게서야 돌아오고 있다. 어린 시적 자아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모성은 항상 밖에 있거나 늦게서야 귀가하는 것이 되어 있다. 그러니까, <은전만큼 손 안 닿는 한>으로 어머니가 인식되고 있다.

신새벽이나 밤이 되어서야 진주 남강을 건너는 곤곤한 삶을 살았으니, 아무리 <진주 남강> 물빛이 맑은 것이었어도 그 물빛의 맑음을 볼 수조차 없었던 것이 어머니의 삶이었다. 박재삼은 그런 그의 어머니 마음을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는 <눈물>인 것으로 파악해 낸다. 삶의 중압감에 눌리고 병고에 시달리는 현실 속의 시인이 추억으로서의 유년을 떠올림으로써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모성의 진정성을 환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는 대체로 시조가락을 발전적으로 수용한 4음보 율격이 깔리면서 초기 시의 정서를 구체화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대구 근교 과수원

가늘고 아득한 가지

 

사과빛 어리는 햇살 속

아침을 흔들고

 

기차는 몸살인 듯

시방 한창 열이 오른다.

 

애인이여

멀리 있는 애인이여

이런 때는

허리에 감기는 비단도 아파라.

- 「무제

 

위의 시의 율격은 기본적으로 2음보 중첩의 4음보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4음보가 한국인의 미의식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과수원 근처를 힘들게 지나는 기차의 이미저리와 멀리 있는 애인이 연결되면서 아침 햇살 속을 지나는 <기차>가 의미론적으로 변용된다. 특히, <이런 때는 / 허리에 감기는 비단도 아파라>의 <비단>과 <시방 한창 열이 오른 기차>의 대비 속에 사랑의 본질이 구체화된다. 

 

박재삼은 시집 『어린 것들 옆에서』를 1976년에 간행한다. 그리고, 『​뜨거운 달』, 『​비 듣는 가을나무』 등을 내는데 이들 시집에서는 생활인의 정한이 노래되어 나타난다. 이 시기 박재삼의 시에 들어나는 생활인의 정한은 삶의 곤곤함과 병고로 인한 괴로움이 두드러지게 들어나 있다. 

 

박재삼은 1967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건강이 여의치 못한 형편이었고 그 동안 관계해오던 잡지사, 출판사일들도 정리하고 완전한 전업 문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몇 개 신문에 바둑 관전기를 쓰고, 부지런히 잡문도 썼지만 집안 형편은 언제나 곤궁한 것이었다. 박재삼은 초기시의 격정과 정한의 세계로부터 생활인의 세계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가장으로서의 책무와 사회 속에서의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파악해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파악해 내는 책무와 인간관계들은 모두가 힘겹고 곤궁한 것들이었지만, 박재삼은 그런 시적 대상들을 포용하면서 화해에 이르고자 한다.

 

아내를 중심으로

어린 것들 셋이

손발들을 제멋대로

이리 뻗고 저리 뻗고

그것은 마치

질서가 없어 보이는

나뭇가지와 다를 것이 없다.

거기 베개를 고쳐주고

이불 깃을 당겨주어

질서를 잡는 전지剪枝여!

- 「전지」

 

오이나 배추들 사려!

싱싱한 깻잎들 사려

얼마 전에는 야채 장수가 지나가더니

지금은 맛있는 굴비를

들이라는 소리가 골목에 넘친다.

저렇게 먹을 것도 많건만

또한 그지없이 햇볕도 좋건만

몸이 아파 만사가 귀찮으면

저승에서처럼 듣기만 하리라.

-「집 보는 날」

 

위의 시가 보여주는 것은 곤궁한 삶의 모습이고, 평범한 날의 인상이다. 앞의 시 「전지」에서 일상의 현실로부터 귀가한 가장이 보게 된 것은 아내와 아이들이 뒤섞여 누워 잠들어 있는 모습이다. 손발이 이리 저리 펼쳐지고 엉긴 채 아내와 자식들이 잠들어 있다. 방 하나에 흩어져 잠든 가족들의 모습은 곤궁한 모습이다. 그리고, 지금 시적 화자는 가족들이 곤하게 쓰러져 잠든 시각에 귀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곤궁의 현실 앞에서 시적 화자가 할 수 있는 가장으로서의 선택이 <베개를 당겨주고>, <이불 깃을 당겨>주는 것이다. 지극히 사소해 보이는 가장의 행동이지만 혈육의 따사로운 유대와 간난의 현실을 헤쳐 가는 곤곤한 부성애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집 보는 날」에서 시인은 일상적 삶의 현실을 낯설게 인식한다. 박재삼의 초기 시에 보이던 이별의 정한, 슬픔의 정서 같은 것이 일상적 삶의 차원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몸이 아파 집에 남아있는 낮 시간의 감회가 그려지고 있다.

위의 시 「​전지」와 「​집 보는 날」​의 시적 제재는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선택된 것들이다. 그리고, 초기 시에 보이던 리듬감 역시 산문 속에 희석되어 나타나고 있다. 일상적 제재에 적합한 문체로 산문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된 것일 것이다.

 

기러기에게는 찬 하늘 서릿발이 아니다.

진실로 쓰리고 아픈 것은

공중에서도 강을 건너는 일이다.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도도한

저 순리와 같은 강을 질러가는 일이다.

 

그러한 기러기

그 기러기 마음을 나는 안다.

 

나는 시방

하늘이불을 덮은

하늘의 아기같은 아기가 자는 옆에서

인생이 닳아버린 내 숨소리가 커서

하마하마 깨울까 남몰래 두렵느리라.

- 「그 기러기 마음을 나는 안다

 

늦가을 찬 바람 속을 날아가는 기러기를 바라보면서 새들이 강을 건너고 있고, 그 강이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도도한 흐름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기러기를 바라보면서 쓰리고 아픈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은 기러기의 눈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늦가을 빈 하늘을 날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삶의 스산함을 환기시켜 주지만, 이 시의 화자는 그 새들이 힘들게 강을 건너고 있음을 발견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러기의 마음을 나는 안다고 토로하고 있다.

 

그런데, 시인은 방안에 잠든 아기가 <하늘 이불>을 덮고 있다고 토로함으로써 ‘아기’와 ‘기러기’를 같은 층위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세상사에 찌든 자신이 잠든 아기의 안온을 깨뜨릴까 저어해하고 있다. 기러기의 마음으로 티 없이 맑은 아기의 단잠을 지켜주고 싶은 것이다. 

 

봄 나뭇가지, 이를테면

수양버들을 오르던 물기운이

이제는 눈부신 공기 그것이 되어,

『여보게 기운을 내게, 기운을 내!』한다.

나는 허울을 벗은 한 마리 벌레

지금은 땅을 기고 있지만

나중엔 뛰다가 날으다가 할 것을.

 

이 나긋나긋한 손발과 등살과

그리고 가슴에 눈에

그것은 너무 벅차고 짐스럽고나.

- ​「봄길」​

 

1980년에 간행된 시집 『비듣는 가을 나무』에는 병고에 시달리는 시적 자아의 모습이 짙게 나타나 있다. 박재삼은 1967년 고혈압으로 인한 뇌졸중으로 6개월여에 걸치는 투병 생활을 하였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질병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고혈압 위궤양 등으로 인한 병고는 40대 후반에 접어든 이 시인의 의식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고, 많은 작품들 속에 질병 모티프들이 등장하고 있다.

 

위의 시 「봄길」에도 자신을 땅을 기고 있는 한 마리 벌레로 인식하면서 <너무 벅차고 짐스러운> 자신을 물 기운이 돋아 오르는 봄날의 수양버들과 접합시키고 있다.

이 시기의 시집들이 박재삼이 그의 일상 속에서 파악해 낸 책무와 인간관계들이 노래되었다. 그가 파악해낸 삶의 모습은 모두가 힘겹고 곤궁한 것들이었지만, 박재삼은 그런 시적 대상들을 포용하면서 화해에 이르려 하였다. 그러니까 이 시기에 와서, 종래에 도취의 표적이었던 자연의 의미는 순결무구한 혈육을 통하여 재생되고 있으며, 자연을 바로 보던 숙명적인 서러움의 시선이 삶의 빈곤과 궁핍에 반영된 혈육에 대한 연민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 시기의 시들은 긴장의 밀도가 낮아진 반면 제재의 폭이 넓어지게 된 셈이다.

 

 제7시집 『추억에서』 이후, 『​대관령 근처』『내 사랑은』​(시조시집), 『​찬란한 미지수』​, 『​사랑이여』​, 『​해와 달의 궤적』​, 『​꽃은 푸른 빛을 피하고』​, 『​허무에 갇혀』​, 『​다시 그리움으로』​등이 잇달아 간행되었다. 이 시기의 시에는 인생의 한계를 자각한 자의 자기 성찰을 통해 도달한 체념과 허무의 정서가 노래되고 있다. 박재삼의 후기시의 특징은 그의 시가 인생론적인 허무를 노래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어쩔가나, 이것들,

내 高血壓고혈압과 胃下垂위하수와

또 한 친구 신경통神經痛신경통들은

철도 모르고,

철따라 떠날 줄도 모르고

하염없이 陣진치고 있는 이 矛盾이여 

-「大關嶺 近處 대관령 근처」

 

세상에 둘도 없는 듯 여기던

사랑도 어쩔 것인가

세월이 흐르고 나면

한바탕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을,

아, 아깝지만 손가락 사이 사이

스르르 흘러가 버린 것을,

이제는 가까이 있는

노오란 은행잎을

눈물 속에서나 보던 것이

어느새 속속들이 골병이 되어

쌓이고 사무쳐 와서

연방 떨어지는 것이여.

-「은행나무 그늘에서」

 

위의 시「대관령 근처」와 「은행나무 그늘에서」는 박재삼의 후기시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인생론적 경향을 보여주는 많은 작품들 중의 일부이다.「대​관렬 근처」는 평생을 벗어나지 못하는 병고와의 관계를 노래하고 있다. <고혈압>과 <위하수>와 <신경통>은 그에게 고통을 주는 질병들이고 그로 인해 그의 삶이 더욱 힘들고 곤곤한 것이 되고 있지만 시인은 그것들을 <친구>로 인식하고 있다. 벗어나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곁에 두고 함께 살아야 할 이웃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은행나무 그늘에서」는 인생의 한계를 자각한 자의 자기 성찰이 노래되고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고 늙어가게 마련이다. 그리고, 궁극에 죽음이 예비되어 있다. 박재삼은 이 엄연한 사실을 노래한다. 그런데, 그는 사람이 늙고 늙어서 죽음에 이르는 사실을 섭리로 받아들인다. 그런 사실에 대해 반문하거나 회의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박재삼은 대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있는 것이며 자연 속에 용해되고 있다고 볼 수 있 있을 것이다.

 

사람은 늙는 것이고, 사랑마저도 꿈에 지나지 않는다.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흘러가 버리듯 사라져 버리고 없다. 박재삼의 이런 인생론적 소회는 인생에 대한 통찰이나 천착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 면에서 위의 시는 타성적이기까지 하다. 초기 시에 보이던 슬픔에 대한 깊은 통찰과 살아 숨쉬는 한스러움의 정서가 구체적 실체를 사상하고 진술적 언어로 흘러나오고 있다. 다만, 위의 시 「은행나무 그늘에서」의 제목이 위의 시가 평이한 인생론적 진술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 내주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은행나무’는 나무 중에서도 장수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양평 용문사의 것은 천 여 년을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처럼 오래 사는 나무 ‘은행나무 그늘’과 유한한 인생을 대비함으로써 그의 시간 탐구가 평이한 진술에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재삼의 후기시에 보이는 이런 정신적 이완은 그의 시가 지니는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서정시는 대상과의 관계를 시인의 주관에 의해 파악하게 마련이고 그렇기 때문에 화해와 친화의 정서가 기본이 되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정시가 긴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정신적 단련과 강한 투시력을 필요로 하게 마련이다. 그런 정신적 단련과 강한 투시력을 평생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박재삼의 시는 평생을 사랑과 이별, 슬픔과 한스러움의 정서를 토대로 하는 시를 썼다. 다만, 시적 환경과 시인 자신의 체험 내용의 변모에 따라 시 세계가 바뀌어져 왔을 뿐이다.

 

박재삼 시에 나타나는 ‘가난’ 모티프와 ‘질병 콤플렉스’는 그의 천부적 감성의 토대 위에서 ‘한’의 정서로 표출되어 나타난다. 특히, 한국시의 정통 서정을 이어받으면서 그 깊이와 폭을 넓혀간 그의 시적 궤적은 한국시사의 소중한 가치이다.

 

박재삼의 시세계는 3단계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 그 첫 단계는 한과 그리움의 정서가 주요 모티프가 되어 있는 시집 『춘향이 마음』, 『햇빛 속에서』​, 『​천년의 바람』​이고 두 번째 단계는 생활인의 삶을 노래해 보여준, 『​어린 것들 옆에서』​ 『​뜨거운 달』​, 『​비 듣는 가을나무』​의 세계이다. 그리고, 셋째 단계는 유년의 추억과 삶의 허무를 노래해 보여준 『​추억에서』​, 『​대관령 근처』​, 『​내 사랑은』​, 『​찬란한 미지수』​, 『​사랑이여』​, 『​해와 달의 궤적』​, 『​꽃은 푸른빛을 피하고』​, 『​허무에 같혀』​, 『​다시 그리움으로』​의 세계이다. 

 

박재삼 초기시의 두드러진 특성 중의 하나가 농축된 정서의 표출이다. 박재삼의 초기시에 나타나는 정서의 농축은 그의 시를 강한 긴장이 되게 한다. 한국 현대시사에 자리한 견고한 격정이면서 순수 서정의 높은 고양을 보여주고 있다.

 

박재삼의 중기 시에는 생활인의 정한이 노래되어 나타난다. 이 시기 박재삼의 시에 들어나는 생활인의 정한은 삶의 곤곤함과 병고로 인한 괴로움이 두드러지게 들어 나 있다. 가장으로서의 책무와 사회 속에서의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파악해 내었다. 그가 파악해 내는 책무와 인간관계들은 모두가 힘겹고 곤궁한 것들이었지만, 박재삼은 그런 시적 대상들을 포용하면서 화해에 이르고자 한다.

 

박재삼의 후기시에는 인생의 한계를 자각한 자의 자기 성찰을 통해 도달한 체념과 허무의 정서가 노래되고 있다. 박재삼은 인생의 한계를 섭리로 받아들인다. 반문하거나 회의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박재삼은 대자연의 섭리에 순명하고 있는 것이며 자연 속에 용해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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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6월25일 16시30분
  • 최종수정 2022년06월24일 18시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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