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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 <19> 박용래의 시 읽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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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6월11일 16시30분
  • 최종수정 2022년06월06일 11시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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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박용래(朴龍來, 1925~1980)는 충남 논산군 강경읍 본정리에서 소지주이며 유생인 박원태(朴元泰)와 김정자(金正子)의 3녀 1남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박용래는 한국 정통서정을 세련된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한국현대시사에 개성적 시세계를 보여준 시인이다.

 

박용래는 한국 정통 서정의 맥을 계승, 심화시킨 시들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의 시의 가치는 주제나 정서적 특성보다는 방법적 특성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박용래는 한국어의 미학적 탐구를 리듬의 구조에서 보여 주면서 시어의 병렬과 반복의 패턴을 기술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한국적 정통 서정을 훌륭하게 형상화해 보여주었던 것이다.

 

박용래는 위로 누이 셋을 둔 남자아이로 집안의 기대와 지지를 한 몸에 받는 다재다능한 성품으로 성장하였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강경상업학교에 진학하면서 미술에 특기를 보이는가 하면 학교 대표 정구선수로, 혹은, 대대장으로 학생들을 통솔하기도 한 모범적 학생으로 성장하였다. 

 

한편, 바로 위 누이(鴻來)의 죽음은 박용래의 심리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사춘기 소년기에 겪게 된 이 혈육과의 사별의 기억은 그가 후에 맞이하게 된 간난의 시대 환경 속에서 겪게 되는 좌절과 회의와 함께 시인 박용래의 시적 정서와 상상력의 토대를 이루게 된다. 즉, 외향적 자기 구현의 적극적 자아가 정체, 퇴행하면서 안온하던 과거지향의 시공을 정서와 상상력의 주된 토양으로 한 시 세계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박용래는 중학교 졸업 후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규격화된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으며 은행원이나 교사의 책무를 온전히 감당할 수 없었다. 1965년 이후 그는 평생을 직장 없이 살았다. ​ 

 

박용래가 시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은 1946년 동백시회를 구성하면서 부터이다. 1946년에 창간호를 간행한 『동백冬栢』에 시를 발표하면서 지방 문인으로 지면에 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박용래는 1955년 「가을의 노래」(『​현대문학』​. 1955. 6), 「황토길」(『​현대문학』​. 1956. 1), 「땅」(『​현대문학』​. 1956. 4) 등 3편을 발표함으로써 정식으로 시단에 등단하였다. 추천자는 박두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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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단에 등단한 후 『싸락눈』(삼애사. 1969), 『​강아지풀』​(민음사. 1975), 『​백발의 꽃대궁』​(문학예술사. 1979)등의 시집을 남겼으며 시인의 사후에, 간행 시집들에 포함되지 않은 시편들을 포함한 시 전집 『​먼 바다』​(창작과 비평사. 1984)가 간행되었다. 

 

박용래는 1980년 11월 심장마비로 별세하였고 충남 대덕군 산내면 천주교 묘지에 묻혔다.

 

 

사실적 풍경을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그 배면에 농축된 에스프리를 표출해 가는 함축과 생략의 시법은 박용래 시의 원형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시는「​저녁눈」​과 같은 초기 시로부터 만년의 시에까지 일관되게 추구되었다. 박용래의 시가 세인의 평에 오르고 그 자신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출해내기 시작한 본격적 시 세계는 첫 시집 『싸락눈』이 세상에 나온 1969년부터이다. 이후, 그는 제재나 기법 면에서 별다른 변화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시 세계를 구축해 왔다. 
박용래의 개인 시집 『​싸락눈』과 『​강아지풀』, 『​백발의 꽃대궁』의 123편과 시인의 사후에 간행 시 전집 『먼 바다』(창작과 비평사. 1984)에 함께 수록된 37편(이 중 4편은 유고)을 포함한 160 편이 그가 세상에 남긴 전 작품이다. 등단 전의 시 「눈」(1953. 11)으로부터 1980년 겨울호 '세계문학'에 발표한 「음화(陰畵)」​등 3편의 시에 이르기까지 만 28년간의 작품으로는 매우 적은 편수이다. 

작품에 엄격했던 시인의 개결한 면모의 일단을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 박용래의 시 세계를 ‘화해 공간으로의 퇴행’, ‘여성성의 추구’, ‘소외된 사물들의 발견’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그의 시에 나타나는 방법적 특성들을 알아보기로 하겠다.​ 

 

Ⅱ-1

박용래의 시는 ‘화해 공간으로의 퇴행’이 주요 모티프로 노래된다. 박용래가 현실적 간난의 자리에 자신을 정립하려는 노력을 방기하고 ‘한’의 정조로 세계를 인식하게 된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사춘기에 겪게 된 혈육과의 별리, 해방 공간에 겪었던 아나키즘적 분위기 등이 원인으로 제기 된 바 있다. 15세 소년기에 겪게 된 누이의 죽음은 비감 어린 충격이었을 것이며, 청년기에 지녔던 낭만적 정치 이념이 후에까지 보이지 않는 걸림돌이 되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시인의 자아는 위축되고 축소되었을 것이다.

 

그가 당면한 충격과 현실적 좌절을 감내하기에 박용래는 지나치게 소심한 감성의 소유자였으며, 그것과 응전해서 좌절의 현실을 극복하기엔 지나치게 무력하였던 것이다. 결국, 충격과 좌절을 자신의 내면으로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박용래의 시적 자아는 위축되고 축소되었으며, 끝내는 위압적 현실 속에서 난파한 자아를 과거의 공간으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시인이 시적 자아를 과거의 공간으로 옮겨가게 된 것은 그 퇴행의 궁극에 안존하고 화해로운 유년의 공간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퇴행 현상은 현실의 욕구 불만을 원시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무의식적 반응이며, 불안과 공포감이 그 요인이다. 그러므로 퇴행이란 어머니의 모태와의 공존을 향한 정신적 도피현상일 수 있다. 박용래는 현실과의 현격한 불화에 처한 자아를 퇴행시켜 화해의 공간에 자아의 자리를 마련한다.

 

박용래의 시가 노래하는 공간은 그러므로 실제로 자아가 응전하고 있는 리얼한 현실이 아니다. 박용래가 노래하는 공간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들, 잊혀진 것들로 이루어진 과거 속에 있다. 그는 과거의 이미저리들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고자 하였다. 과거는 지나가 버린 시간이고 지나가 버린 것들은 자아에게 고통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창에 기댄 뾰족지붕의 은행, 그 정문을 돌아 구도립병원 뒷길을 더듬으면 해구로 슬리는 돌담, 돌틈에 회상짓는 30년대의 미두米豆

 

오늘, 내 불시 나그네 되어 빈손 찌르고 망대에 올라 멀리 갈매기 행방을 좇으면 갑岬은 구비치는 탁류, 채만식

 

금강을 거슬러 만국기 단 똑딱선 타고 처음 보던 수평선, 바다를 넘던 욕망, 소금기 뿐인 군산항

 

저무는 대안의 제련소 연기없는 굴뚝, 빛 바랜 필름의 흑백.

- 「군산항」

 

위의 시에는 과거의 모습들이 노래되고 있다. 위의 시의 화자는 지금 망대에 올라 군산항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인식돼오는 군산항은 과거의 건물이며 과거의 골목들이다. 즉, 이 시의 화자는 지금 빛바랜 필름 같은 과거의 기억 속에서 현실을 굽어보고 서 있는 것이다. 그런데, 화자는 이런 현실 앞에서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과거의 기억 속으로 달려간다. 항구 근처에 있던 뾰죽 지붕의 은행이며, 그 은행 정문을 돌아 도립병원 뒷길로 따라가면 바다로 이어지는 돌담이 있다. 일제가 수탈한 쌀을 실어내던 항구, 그곳이 군산항이다.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수평선을 보게 되었던 것도 이곳이었다.

 

박용래는 스산하고 황량한 현실을 마주하면서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그런 현실의 과거태를 복원해놓고 있다. 박용래가 그런 과거태를 복원하고 있는 것은 비록 지금은 소금기뿐인 항구가 되어버렸지만, 그가 바다를 넘던 욕망을 지니게 되었던 곳이 군산항이며 삶의 파멸감을 체험하기 전의 온전한 자아가 거닐던 공간도 그곳이기 때문이다.

 

머리가 마늘쪽같이 생긴 고향의 소녀와

한여름을 알몸으로 사는 고향의 소년과

같이 낯이 설어도 사랑스러운 들길이 있다

 

그 길에 아지랑이가 피듯 태양이 타듯

제비가 날 듯 길을 따라 물이 흐르듯 그렇게

그렇게

 

천연히

 

울타리 밖에도 화초를 심는 마을이 있다

오래오래 잔광이 부신 마을이 있다

밤이면 더 많이 별이 뜨는 마을이 있다.

- 「울타리 밖」

 

위의 시에는 박용래가 그리는 공간이 노래되어 있다. 이 공간은 현실로부터 퇴행해가서 만나게 된 화해로운 곳이다. 이 공간은 낯선 사람까지도 화해로 이어주는 사랑스런 <들길>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서로 낯이 설어도 고향의 소녀와 고향의 소년이 ‘낯설음’의 거리를 화해롭게 좁힐 수 있다. <사랑스러운 들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 길>은 어떤 단절이나 갈등과도 관계가 없다. 마치, 봄날의 아지랑이가 피어나듯이, 여름 하늘에 태양이 타오르듯이 제비가 하늘을 나는 것과 같다. 봄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은 그냥 자연 현상으로 그런 것이다. 어떤 역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름하늘의 태양이나 하늘을 나는 제비 역시 그러하다. 그야말로 모두가 사랑과 화해 속에 융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시에서 <천연히>라는 부사형 형용사 하나가 세 번째 연을 이루고 있다. 조작이나 거짓 없이 자연스럽다는 의미를 지닌 이 형용사 하나가 이 시의 파장을 격정으로 끌어올린다.

 

인위적이고 세속적인 현실의 중압을 벗어나 순연한 현실 속에 안주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가 <천연히>라는 형용사 하나의 연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울타리>는 원래 주거 공간의 경계에 둘러 세운 장애물이다. <울타리>는 그 울타리 안을 안식의 공간으로 선택한 인간이 설정한 소유 거리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울타리>는 내 것과 남의 것을 전제로 하게 마련이고, 모든 소유물은 울타리 안에 두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울타리밖에 화초를 심는> 것은 화초를 나만의 소유로 한정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나아가 남을 배려하는 화해로움의 인간애의 발로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이 마을은 <오래오래 잔광>이 눈부시게 빛나게 마련이고 더 많은 별이 뜨는 아름답고 순연한 마을이다.「울타리 밖」은 박용래가 과거 속으로 되돌아가 찾아 낸 화해로움의 공간인 것이다. 박용래는 화해의 공간으로 퇴행해 가 안식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박용래의 시에는 여성성이 지배적 모티프를 이루고 있다. 박용래 시의 아니마적 특성은 시적 정조는 물론 어조에 이르기까지 두루 나타난다. 박용래의 시에 나타나는 여성성은 성장기 그의 가족 구성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3명이나 되는 누이들의 지지와 보살핌 속에서 성장하였다. 천성적으로 다감하고 유약한 성품을 지닌 시인이 누이들 속에 서 성장하면서 심리의 저변에 ‘누이 콤프렉스’가 침착되게 되었던 것이다. 박용래는 이처럼 누이 콤프렉스 속에서 자아를 키워온 것이며, 누이의 죽음

을 맞으면서 아예 자신을 죽은 누이의 자리로 전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박용래의 시에 나타나는 여성 모티프는 이렇게 해서 시적 정서로부터 어조에 이르는 모든 부면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박용래는 규격화된 사회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으며 은행원이나 교사의 책무를 온전히 감당할 수 없었다. 1965년 이후 그는 평생을 직장 없이 살게 된다. 때문에, 아내 李台俊은 남편 박용래가 방기한 사회적 책무를 감당해야하게 되었고 박용래의 남성적 자아는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 박용래 시에 나타나는 아니마적 성향에는 이런 역할 전도의 가족 구성도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박용래는 사회적 책무를 벗어나 여성적 욕구를 표현하게 되었다.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대려서 약으로 먹던 기억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

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

여우가 우는 추분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

- 「구절초」

 

위의 시의 중심 상징인 <구절초>는 <누이>와 전치되어 쓰이고 있다. 초가을부터 온 산야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들꽃인 <구절초>를 통해서 누이의 모습을 인식해내는 것이다. 시인은 그런 누이를 <사랑>으로 명명해내고 있다. 그러니까, 그는 온 산야에서 <지천으로> 누이를 만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런 <지천으로 피어나 초가을 산야를 덮곤 하던> 누이는 지금 이승을 떠나고 없다. 화자는 그러므로, <사랑>으로서의 누이를 회상하고 추억함으로써 누이의 실체를 현현시키려 한다. <내 고장 부소산에 지천으로 피>는 것이며 때로는 약이 되기도 한다. <마아가렛>으로 불리우는가 하면 여름 모자 차양 같은 외양을 지니기도 하였다. 단추 구멍에 달기도 하고 머리에 핀처럼 꽂기도 하였다. 누이와의 인연은 이런 여성적 행태들을 통해 환기력 있게 노래되었다.

 

반짓고리 실타래

풀리듯

얼레빗 참빗에

철이른 봄비

연사흘 와서

찰랑찰랑 외나무 다리

부풀은 물살

발목 벗고도

건널 수 없어

거슬러

거슬러올라가면

저녁 까마귀, 까옥.

- 「얼레빗 참빗」​ 

 

 

위의 시는 철 이른 봄비의 이미저리에 실어 면면한 정서를 탁월하게 형상화해내고 있다. 철 이른 봄비 속에 느끼는 막막함을 세밀한 감각적 이미저리로 구체화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박용래가 세밀한 감각적 이미저리로 차용해 쓰고 있는 대표적인 이미저리들이 여성성이 두드러지는 것들이다. <반짇고리>, <실타래>, <얼레빗>, <참빗>같은 것들이 그것인데 떨어져 내리는 빗줄기를 시각화하고 있는 <반짓고리 실타래 / 풀리듯>이나 빗줄기의 세기를 <얼레빗 참빗>같은 이미저리는 또한 침선에 몰두하고 있는 으슥한 여인네의 규방 분위기까지를 구체화해 보여준다. 즉, 여성적 이미저리가 비의 정취를 승화시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찰랑찰랑 외나무다리 / 부풀은 물살 / 발목 벗고도 / 건널 수 없어 / 거슬러 / 거슬러 올라가면>은 봄비에 불어 오른 물의 높이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철 이른 봄비 속에 느끼는 아련하고 연연한 정서가 규방 침선의 분위기로 구체화되면서 형언키 어려운 절망감으로 표출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길 위에 놓인 외나무다리 위로 부풀은 물살이 넘쳐나 <건널 수 없어 / 거슬러 / 거슬러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형언키 어려운 절망감이 <저녁 까마귀, 까옥>이라는 청각 이미지로 나타나고 있다. 여성성이 시적 정서와 합일되면서 구조적 완결을 이뤄내고 있는 것이다.

 

박용래의 시에는 소멸의 이미저리들이 다수 나타난다. 시적 자아가 생성 확장되어가기 보다는 소멸, 축소되어 가는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박용래 시에 나타나는 소멸의 이미저리는 앞에서 논의한 과거지향성, 여성성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박용래의 시적 자아는 현실과의 응전을 포기한 채 과거 속에 안주하려하고 있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남성을 방기하면서 여성의 자리 위에 토대를 구축하려 하였다. 따라서, 그는 현실을 투시하거나 직시할 수 없었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 「저녁눈」

 

「저녁눈」이 구체화해 보여주는 것도 소멸의 풍경이다. 저녁 무렵에 내리는 눈발이 환기시켜주는 정서를 노래해 보여주는 이 시의 이미저리들은 이미 소멸되어버렸거나 소멸되어 가는 정취를 환기해주는 것들이다. <말집 호롱불>이며 <조랑말 발굽>, 혹은 <여물 써는 소리>들은 과거의 시공 속에 존재하면서 이미 사라져 버린 것들을 떠올려주는 환기물들이다. 험난한 현실 속에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기보다는 소멸이 지니는 적막의 공간을 자기 영토로 선택한 것이다. 박용래의 소멸지향은 벼랑을 삶의 터전으로 선택한 산양의 심리를 통해 파악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볏가리 하나하나 걷힌

논두렁

남은 발자국에

딩구는

우렁껍질

수레바퀴로 끼는 살얼음

바닥에 지는 햇무리의

하관

선상에서 운다

첫 기러기떼.

- ​「하관」​

 

「하관」이 노래하고 있는 것은 소멸의 풍경이다. 무엇보다 시의 표제가 되고 있는 <하관>이 존재의 소멸을 지시하고 있다. <하관>은 지상의 존재가 삶을 다하고 땅에 묻히는 통과의례를 말한다. 박용래는 위의 시에서 소멸의 스산한 풍경을 표출해 보여준다. 즉, 시가 보여주는 풍경이 그냥 서경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서경의 배면이 지닌 함축을 표출해 보여주고 있다는 말이다. 이 시의 표제 <하관>이 <볏가리 하나하나 / 걷힌 논두렁>, <남은 발자국>, <우렁껍질>, <수레바퀴>, <바닥에 지는 햇무리>, <선상>, <첫 기러기떼>와 같은 이미저리들과 연관되면서 의미의 폭을 상승적으로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박용래가 파악한 <죽음>의 인식은 볏가리를 거두어들인 논두렁이며, 그 논두렁에 패인 발자국에 뒹구는 우렁 껍질 같은 것이다. 생명의 실체로서의 <우렁>이 소멸되고 나서 남은 껍질인 것이다. 수레바퀴처럼 도는 윤회의 삶과 살 곳을 찾아 날아오기도 하고 또 떠나가기도 하는 철새인 <기러기떼>가 연관되면서 소멸의 풍경을 심화시킨다.

 

박용래는 지나치게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였으며, 현실적 좌절과 맞설 용기가 없었다. 결국, 충격과 좌절을 안으로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박용래의 시적 자아는 위축되고 축소되었으며, 끝내는 위압적 현실 속에서 난파한 자아를 과거의 공간으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시인이 시적 자아를 과거의 공간으로 퇴행시켜 가게된 것은 그 퇴행의 궁극에 안존하고 화해로운 유년의 공간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박용래의 시에는 여성성이 지배적 모티프를 이루고 있다. 박용래 시의 아니마적 특성은 시적 정조는 물론 어조에 이르기까지 두루 나타난다. 박용래의 시에 나타나는 여성성은 성장기 그의 가족 구성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인다. 천성적으로 다감하고 유약한 성품을 지닌 시인의 심리의 저변에 ‘누이 콤플렉스’가 침착되게 되었다. 박용래는 시적 자아를 누이의 자리로 전치시키게 되었다. 또한, 박용래는 직장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였으며 아내에게 생계 책임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박용래 시에 나타나는 아니마적 성향에는 이런 역할 전도의 가족 구성도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용래의 시에는 소멸의 이미저리들이 다수 나타난다. 시적 자아가 생성 확장되어가기 보다는 소멸, 축소되어 가는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소멸을 노래함으로써 현실의 위압이나 좌절을 벗어날 수 있었으며 스스로를 보전할 수 있었다. 

 

Ⅱ-2

앞에서 박용래의 시에 나타나는 특성들을 의미 영역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러나, 박용래 시의 가장 중요한 특장은 그의 시가 지니는 의미나 정서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박용래 시의 가장 큰 장점은 그의 시가 지니는 형태미에 있는 것이다. 박용래 시의 운율을 분석한 조창환은 박용래 시의 아름다움을 “연속의 리듬과 단절의 리듬 사이의 미묘한 공간, 그 여백과 단층이 지닌 호흡의 쉼터에서 우리는 박용래 시의 미학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박용래의 시는 그의 시를 일관하는 어떤 규칙성에 의해 구조적 미학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규범적 리듬으로 그의 시에 접근하려는 독자의 기대를 계속해서 배반하고 있는 것이 박용래의 시이다. 그러므로, 불과 10 행 미만의 짧은 시일지라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텍스트 자체가 서술에 의지하기보다는 함축과 생략, 단절과 비약에 의해 불확실한 틈을 많이 지니고 있는 것이다.

로만 인가르덴과 볼프간 이저 같은 독서현상학자들은 문학작품을 객관, 또는 주관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순수한 객관도 주관도 아닌 존재의 양상으로 본다. 그리고, 작가에 의해 창작된 작품의 궁극적 의미는 독자에 의해 완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독서 현상학에서는 문학 작품은 상상에 의해 채워져야 할 틈과 공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그 텍스트 속의 불확실한 틈 또는 부분은 결점이 아니고 오히려 심미적 반응을 일으키는 기본적인 요소로 보는 것이다.

 박용래의 시에는 독자의 상상력에 의해 채워져야 할 많은 틈을 지니고 있다.

 

울먹울먹 모래알은

부서지기도 한다

부서진 모래알은

눈물인 양 짜다

눈물인 양 짠

모래알로 빚은

당신의 해시계에

삼가 꽂는 한 송이 백합.

-「해시계-목월 선생 묘소에」

 

위의 시 「해시계」에는 ‘목월 선생 묘소에’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통상적으로 시의 표제에 붙는 부제는 시인의 표현 의도를 부연해주는 단서로 제시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위의 시에서의 부제는 표현 의도를 구체화해주는 단서가 아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텍스트에 복합적 함축을 더하는 키워드가 되고 있다. 작품을 더 깊이 은유화함으로써 독자에게 고차적인 상상과 유추를 요구한다. 우선, 이 시에 접근하기 위해서 <해시계>에 대한 사유가 필요하다. <해시계>는 <해>의 운행에 따라 생기는 그림자의 변화를 일정한 독법으로 계량화해 시각을 읽어내는 기구이다. 그러므로, 이 기구는 <해>의 존재를 전제로 할 때만 <시각>을 읽어낼 수 있게 되어 있다. 박용래는 시인 박목월과 자신의 관계를 <해>와 <그림자>로 파악함으로써 <박목월의 죽음>을 의미화하고 있는 것이다. 

 

<울먹울먹 모래알은 / 부서지기도 한다>에서 선배 시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시인의 슬픔을 읽을 수 있다. 작은 개체인 <모래알>이 다시 짠 눈물로 부서지고 있고, 그렇게, 짠 모래알로 빚은 <당신의 해시계>에 꽃을 꽂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에는 마지막 행 말에 하나의 피리어드를 찍어 사별의 슬픔을 구체화해 보여주었다. 

 

눌더러 물어볼까 나는 슬프냐 장닭 꼬리 날리는 하얀 바람 봄길 여기사 부여, 고향이란다 나는 정말 슬프냐.

- 「고향」

 

평이한 진술처럼 보이는 위의 시는 그러나, 상당한 단절과 비약을 지니고 있다. 이 시가 지니는 단절과 비약은 특히 <장닭 꼬리 날리는 하얀 바람>에서 연유된 것이다. 지금, 이 시의 화자는 고향인 부여에 와있다. 그런데, 이 시의 화자가 고향에 와서 느끼는 시적 정서는 아주 복잡 미묘한 양상으로 다가와 있는 것 같다. 유년으로부터의 아리따운 추억이 아로새겨진 고향 마을이면서도 고향은 아름답고 포근한 것으로만 다가서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고향인 <부여>는 멸망한 왕조의 비운을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는 곳이다. 파괴되고 무시된 채 흔적만 남은 부소산성이며 낙화암, 정림사지 같은 것들이 비애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을 수도 있다.

 

<눌더러 물어볼까 나는 슬프냐>는 토로는 고향에서 느끼는 비애감과의 심리적 거리를 미묘하게 들어내 보여준다. <나는 슬프다>는 직설적인 토로가 아니라 그런 심리적 정서를 반문해볼 정처조차 없음을 나타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사라진 옛 영화의 현장인 부여에서 느끼는 심회를 <장닭꼬리 날리는 하얀 바람>으로 치환시킨다. 당당한 기품과 위용을 지닌 <장닭>과 그것의 <꼬리>, 그리고 <하얀 바람>이 고향에서 느끼는 자랑과 슬픔과 비애의 정서를 미묘한 파장으로 확산시킨다.

 

박용래는 말의 경제는 물론 행의 구분과 문장 부호의 효용을 가장 성공적으로 보여준 시인이다. 최소의 언표로 깊은 감동을 구조화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가 문장 부호나 행간의 여백을 사용할 때는 나름대로의 필연성을 지니고 있다.

 

노을 속에 손을 들고 있었다, 도라지빛.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손끝에 방울새는 울고 있었다.

- 「別離별리」

 

위의 시는 박용래 시가 지니는 언어 절제의 극한을 보여준다. 3행 3연으로 된 시의 행간 여백이 엄청난 의미를 소거해버리고 있는 것이다. <별리>의 현장에서 느끼는 슬픔의 정서가 앙상하고 견고한 뼈처럼 제시되어 있다. 3행 모두 행 말에 피리어드가 찍힘으로써 정서를 견고한 구조로 마무리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각 행의 정서가 뒤에 오는 행간 여백으로 전이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행간 여백이 독자성을 가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제 1행 <노을 속에 손을 들고 있었다, 도라지빛.>에서 앰비규티를 본다. 손을 드는 행위는 별리를 현실로 수용함을 나타내는데, 그 손은 <노을> 속에 들려져 있다. 하루 해가 저무는 일몰의 시각, 노을 속에 치켜 올려진 선연한 손이 별리의 슬픔을 구조화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노을 속에 치켜 올려진 별리의 슬픔’이 바로 뒤의 쉼표에서 여울처럼 잠시 머물다가 곧 바로 <도라지빛>으로 이어진다. 즉, <노을>에서 환기된 별리의 슬픔이 쉼표를 뛰어넘으면서 격랑처럼 <도라지빛>에 전이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별리의 슬픔 속에 들려진 손과 도라지꽃이 합일되고, 다시 <노을>과 <도라지빛>이 슬픔의 치환물이 되면서 정서를 다양화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제 3행 <손끝에서 방울새는 울고 있었다.>는 제 1 행에서 환기된 시각적 이미저리를 청각화하고 있다. 노을 속에 들려진 슬픔의 치환으로서의 <도라지빛>이 손끝에서 우는 <방울새>가 되고 있다. 제 1행의 <손> 에 어리던 도라지 빛 슬픔이 3행에서는 <방울새>가 되어 울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방울새의 울음소리는 행 말의 피리어드에서 여운이 되어 울린다. 즉, 행 말의 피리어드가 울림이 되어 찍혀 있는 것이다. 또한, 박용래의 상당수의 시편들이 행 말에 하나의 피리어드만을 찍고 있는데, 이미지의 배분이나 정서의 원활한 흐름을 고려한 선택이다. 

 

박용래 시의 리듬은 규격화된 패턴을 나타내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이어지는 리듬에 대한 독자의 기대감을 의도적으로 단절시키는 단속적 리듬감의 기묘한 배합에 의해 특이한 아름다움을 추구해 보여준다. 즉, 연속의 리듬과 단절의 리듬 사이의 미묘한 공간, 그 여백과 단층

에 박용래 시의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몽당연필이 촘촘 그리는 낙엽, 서리, 서릿발의 입김. 땅재주 넘는 난쟁이. 불 방망이 돌아 접시의 낙하. 말발굽 소리. 촘촘 창틀에 그리는 새, 홍시, 홍시의 꼭지. 어려라. 콧등이 하얀 원숭이.

- 「음화陰畵」

 

위의 시는 리듬을 지향하고 있지 않다. 체언이나 용언에 붙여 써야할 조사나 어미들을 의도적으로 사상함으로써 연속적인 리듬의식을 지닐 수 없게 하고 있다. 따라서, 위의 시는 단절된 이미지들이 상호 조응하면서 독립된 개체로서의 자율성을 강화해 보여준다. 이 시의 표제가 되어 있는 <음화>는 사진 필름처럼 실상의 음영이 반대로 나타나 있는 그림이다. 그러니까 박용래는 위의 시를 현실의 <음화>로 제시하고 있는 셈인데 아마도, 위의 시가 그리는 이미저리들은 천진스럽고 신바람 나던 유년 시절의 기억들을 서커스 곡예 마당의 정경을 중심으로 표출해 보여주고 있는 것일 게다. 

 

서술어가 생략된 채 제시된 목록적 이미저리들이 현실의 <음화>로서의 유년 기억들을 선연히 들어내 보이고 있다. 연속하는 리듬 속에 용해되는 정서가 아니라 독립된 개체로서의 자율성이 강화된 시 세계를 들어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박용래의 시는 그의 시를 일관하는 어떤 규칙성에 의해 구조적 미학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규범적 리듬으로 그의 시에 접근하려는 독자의 기대를 계속해서 배반하고 있는 것이 박용래의 시이다.

 

박용래는 말의 경제는 물론 행의 구분과 문장 부호의 효용을 가장 성공적으로 보여준 시인이다. 최소의 언표로 깊은 감동을 구조화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가 문장 부호나 행간의 여백을 사용할 때는 나름대로의 필연성을 지니고 있다.

박용래 시의 리듬은 규격화된 패턴을 나타내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이어지는 리듬에 대한 독자의 기대감을 의도적으로 단절시키는 단속적 리듬감의 기묘한 배합에 의해 특이한 아름다움을 추구해 보여준다. 즉, 연속의 리듬과 단절의 리듬 사이의 미묘한 공간, 그 여백과 단층에 박용래 시의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박용래는 한국 정통 서정의 맥을 계승, 심화시킨 시들을 보여주었다. 특히, 그가 추구해 보여준 방법적 특성은 개성적인 것이었다. 박용래는 한국어의 미학적 탐구를 리듬의 구조에서 보여 주면서 시어의 병렬과 반복의 패턴을 기술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한국적 정통 서정을 형상화할 수 있었다.

 

박용래는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였으며, 현실적 좌절과 맞설 용기가 없었다. 결국, 충격과 좌절을 안으로 끌어안으면서 시적 자아는 위축되고 축소되었으며, 현실 속에서 난파한 자아를 과거의 공간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안존하고 화해로운 유년의 공간에서 많은 이미저리들을 가져오게 되었으며, 상상력의 토대를 거기에 구축할 수 있었다. 

 

박용래의 시에는 여성성이 두드러진다. 박용래 시의 아니마적 특성은 시적 정조는 물론 어조에 이르기까지 두루 나타난다. 박용래의 시에 나타나는 여성성은 성장기 그의 가족 구성, 생계를 아내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던 역할 전도의 현실 등이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천성적으로 다감하고 유약한 성품을 지닌 시인의 심리의 저변에 ‘누이 콤플렉스’가 침착되게 되었으며, 시적 자아를 여성의 자리로 전치시키게 되었다.

 

박용래의 시에는 소멸의 이미저리들이 다수 나타난다. 그의 시적 자아는 생성 확장되어가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소멸, 축소되어 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소멸을 노래함으로써 현실의 위압이나 좌절을 벗어날 수 있었으며 스스로를 보전할 수도 있었다. 

 

박용래의 시는 그의 시를 일관하는 어떤 규칙성에 의해 구조적 미학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과감한 생략과 단절의 이미저리로 시를 낯설게 전경화 시키고 있다. 박용래는 말의 경제는 물론 행의 구분과 문장 부호의 효용을 성공적으로 보여준 시인이다. 최소의 언표로 깊은 감동을 구조화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박용래 시의 리듬은 규격화를 거부한다. 오히려 이어지는 리듬에 대한 독자의 기대감을 배반한다. 그리하여, 단속적 리듬의 기묘한 배합에 의해 특이한 아름다움을 추구해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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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6월11일 16시30분
  • 최종수정 2022년06월06일 11시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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