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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 <17> 시(詩) 읽기의 첫 걸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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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5월14일 16시30분
  • 최종수정 2022년05월12일 19시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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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실한 기둥이나 곧게 뻗은 석가래나 번듯한 창문틀, 철근이나 시멘트가 마련되어 있다고 좋은 집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목수가 지닌 안목과 배려, 공교로운 솜씨가 어우러져야 하는 것이고, 뜨락에 조경수도 심고 처마 끝에 풍경(風磬)도 달려서 운치 있는 집 한 채가 완성되는 것이다. 

 

시(詩)를 읽고 감상하는 것도 시의 뼈대(주제, 의미) 도 있어야 하겠지만 그 뼈대를 감싸주는 표현의장(表現意匠)들이 중요하다. ‘의장’이란 표현 의도를 구체화해 좋은 건축물이 되게 하는 세세한 치장들을 말한다. 좋은 시에는 시인이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빛을 발하는 다양한 ‘표현의장’들이 있게 마련이다. 

 

‘보물찾기’ 놀이에선 눈 밝은 독자가 선생님이 숨겨놓은 ‘보물쪽지’를 찾는다. 사실 보물찾기의 진정한 재미는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가랑잎도 들쳐보고 돌쩌귀도, 나뭇가지도 흔들어보는 탐색 과정에 있는 것이다. 시의 감상은 주제·의미를 감싸주는 시인의 표현의장들을 밝혀내는 일이 핵심이 되는 것이다. 

 

시인은 자신의 표현의도를 직설적으로 들어내서 전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지, 비유, 상징, 알레고리, 운율, 행 가름과 더 많은 표현의장들 속에 차곡차곡 담아서 구조화된 시 한 편을 창작해 낸다. 시를 감상하는 것은 표현의장 속에 담겨진 시인의 노고를 밝혀내는 일이라 할 것이다.

 

인간의 영혼을 상승시키며, 안일과 타성에 빠져 나태해진 삶속에서 ‘발견’의 지평을 찾아 보여주는 시가 좋은 시이다. 시는 인간성의 핵심과 연관되어 있는 예술이다. 시는 사람의 정서와 상상력과 사유에 토대를 둔 예술이며, 인간 영혼을 심오한 가치로 고양시켜 주기도 하는 예술이다. 물질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피와 살과 뼈로 구성된 유한 존재이고 미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이지만 정서와 상상력과 사유와 영혼을 불러내서 영속하는 가치를 만들어 제시해 보여주기도 한다. 그럴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 위대한 존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좋은 시를 접하면 가슴을 치는 감동을 느낄 수도 있고, 섬광처럼 눈 시린 깨달음을 느낄 수도 있다. 시를 읽으며 가슴을 치는 감동이나 눈 시린 깨달음을 만날 때, 사람은 심리적 긴장(tention)을 느끼게 마련이다. 여러 시편들 속에서 심리적 긴장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시가 좋은 시이다. 시 읽기는 그런 시를 찾아내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좋은 시를 만났으면 그 시를 어떻게 감상해야 할 것인가를 짚어보기로 한다.

 

시어(詩語) 읽기

 

 시는 짧은 형식 속에 고도로 정제된 감각과 사유와 상상력을 담아내는 언어 예술이다. 단 몇 줄의 시에 천둥 벼락같은 감동을 담아내기도 하며, 사람의 뇌리에 평생 진한 그리움을 심어주기도 한다. 시는 이런 특이한 힘을 지닌 말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 시적 말하기이다. 시인들은 단 몇 마디로 전달할 수 있는 직설 화법의 말을 버리고 더 곡진하고 세세한 말을 찾으려 한다. 시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말은 관념이나 상식의 말이 아니고 보다 근원적이고 구체적인 말이다. 그러므로 시인들이 즐겨 쓰는 말하기를 이해해둘 필요가 있다. 시인들이 그들 나름의 필요에 의해서 쓰는 말을 ‘시어(詩語)’라고 한다. 

 

 보통 일반인들은 말을 의미전달의 도구로 쓰고들 있다. 가급적이면 국어사전의 뜻풀이 범주로만 쓰고들 있는 것이다. 가령, “내일 10시 30분 지하철 충무로역 4번 출구에서 만나자.” 와 같은 말들이 그렇다. 일상생활에서 쓰는 거의 모든 말들이 그런 말들이다. 그러나, “나의 본적(本籍)은 늦가을 햇볕 쪼이는 마른 잎이다. 밟으면 깨어지는 소리가 난다.” (김종삼 「나의 본적」)같은 말은 전혀 쓰임새가 다르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선택된 말들의 결합이 아니다. 오히려 국어사전식 단일한 의미전달이 아니라 여실한 감각이나 느낌 등의 다양성을 전하기기 위해서 선택된 말들의 결합이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늦가을 햇볕 쪼이는 마른 잎“의 감각으로 찾아낸 시인의 안목은 청신한 감각의 파장을 환기해준다. 이를테면 시를 비유적 언어로 바꾸어 쓰니 전혀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가장 순정한 말,  궁극의 말은 의미의 때에 쩔어 있는 상식어가 아니다. 가령, 첫 사랑 고백의 언어는 상식과 타성의 말이 아닐 것이다. 상대에게 진심이 닿아주기를 바라는 비유의 말이며, 순정의 말이며, 설레임의 말일 것이다.

 

그러니까 시를 읽는 독자는 국어사전식 어법이 아니라 시인들의 어법 쪽으로 가서 시 속에 시인들이 담아내려 한 감각이나 직관, 상상력 등에 참여해서 ‘시의 문장’이 담고 있는 것들을 스스로의 경험으로 되살려내는 ‘시 읽기’에 참여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낯설고 서툰 시 읽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익숙해지면 시 속에 담긴 눈 시린 환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시의 제목 이해하기

 

시의 제목은 특정 시 작품을 가리키는 지시 대명사가 아니다. 시의 제목은 시의 본문 전체와 긴밀히 연결되면서 의미론적 변용을 창출해낸다. 시의 독자는 시 제목의 쓰임새를 깊이 살펴야 한다. 시의 제목은 한 편의 시로 진입하는 암호 코드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젤영양 한 마리 물 속의 악어에게 먹히고 있다. 순간이었다. 가문 대지 목마른 가젤영양들이 가물어 말라붙은 초원을 걸어 물을 찾고, 그 물 속에 머리를 들이미는 순간, 코도 귀도 눈도 물속에 감추고 숨어 있던 악어들이 돌진하였다. 정확히 몸통을 물린 가젤영양은 물린 채  깊은 곳으로 끌려갔고, 먹이를 가로채려는 다른 악어 떼들의 다툼 속에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잠시, 가련한 이 짐승의 머리 부분을 삼키는 예리한 이빨의 악어 모습을 끝으로 연못은 다시 적막 속으로 빠져 갔다.

  --- 이건청 「시인」    

                  

 위의 시 제목 「시인」은 현대 사회에서의 시와 시인이 처한 험난한 처지를 보여주는 알레고리 시이다. 만약 이 시에 「동물의 왕국」같은 제목을 붙였다면 그냥 본문 내용의 설명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 시는 상상력과 감수성이 메마른 현대 사회에서 섬세하고 예리한 감성을 지닌 시인이 처한 비극적 현실을 투시해낸 시이다. 약육강식의 생존법칙이 엄존하는 열대 밀림에서 악어에게 먹히는 가젤영양은 시인의 위상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장면의 묘사가 시의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제목과 본문이 은유의 관계를 이루면서 새로운 의미 체계를 창조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시는 제목과 시 본문과의 의미 층위가 멀어지는 것이 좋고, 그것도, 은유의 관계가 되도록 선택되는 것이 좋다. 시의 제목과 본문 사이의 거리가 멀게 선택될 때, 한 편의 시는 더 너른 시적 긴장을 지니게 된다.

 

 ‘행간(行間)’ 읽기

 

시의 독법에 있어 ‘행간(行間)’ 읽기는 시의 감상을 풍요롭게 한다. 시인이 쓴 시를 감상하게 될 때, 문자 표기 외에도 행과 행 사이의 여백에 묻어둔 함축 의미를 찾아 읽어야 더 깊은 시의 본질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행간 읽기’는 시 읽는 즐거움을 배가 시켜준다.

이런 시 중에는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견고해서 찬연한 광채를 지니며 비싼 값을 지닌 시들이 있다. 이런 시는, 흔히 ‘난해시’로 불리기도 하지만 깊게 공들여 읽을수록 찬연한 환희를 건네준다. 견고한 보석이 귀한 가치를 지니는 것처럼.

 

반쯤은 재가 됐구나, 말아


네가 딛고 온 풍상이


검은 이끼 되어 돌 틈을 덮고 있다


채찍이 오히려 아프지 않구나, 말아


능 하나를 지키고 선 말아


---이건청 「말」

 

위의 시는 제목 포함 불과 6행만으로 되어 있다. 제목이 ‘말’ 로 되어 있지만 이 말은 형상만 ‘말’의 모습이지만 돌로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세상 떠난 지 오래된 왕이나 고관대작의 무덤인 ‘능‘ 앞에 능 지킴이로 서 있다. 삶의 허위(虛僞)나 무상성(無常性)을 풍자하고 있다. 그런데,  시인은 시어를 엄격히 배제하고 있다. 핵심적인 기둥을 세워놓고 나머지 부분을 독자의 상상력으로 복원해 내게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시의 도처에 단절과 비약이 놓여 있다. 이런 시는 독자가 상상력을 통해 능동적으로 시에 참여해서 함축과 단절, 비약을 복원해내야 한다. ‘행간’ 읽기는 시 감상자에게 무한 자유를 베풀어준다. 이런 시는 ‘행간(行間)’까지를 읽어야 시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게 배려되어 있다. ‘행간(行間)’까지를 읽어야 시의 총체적인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있게 배려되어 있다. 그리고, 행간 읽기는 이런 배제의 시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시편들을 읽을 때에도 유용한 독법(讀法)이 될 수 있음도 기억해두었으면 한다.

 

소리내어 읽기

 

시를 읽을 때 눈으로 읽을 수도 있고, 입으로 읽을 수도 있다. 시를 이해하기 위해 읽을 때는 입으로 소리 내서 읽기를 권한다. 시의 말(구어)은 시어의 의미와 소리가 결합으로 되어 있다. 우리가 명시로 기억하는 시편들을 거의가 의미와 소리의 결합이 공교롭게 되어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현대 한국시 중에는 시어의 소리기능을 감안하지 않고 쓴 시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 시 중에서도 김영랑이나 정지용, 박목월의 시들은 ‘의미와 소리’의 결합이 곡진하게 이루어진 시들이 많은 것 같다. 말의 소리 기능을 의식하지 않고 시를 쓰는 것은 언어예술인 시가 지니는 소중한 자산을 버리고 시를 쓰는 것과 같다. 글자로 인쇄되어 있는 시는 소리를 내서 반복해 읽으면 ‘의미와 소리’의 결합되어 울려내는 곡진한 표현을 이해할 수 있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 보담도 내 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망극한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박재삼의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은 말소리의 느린 울림의 반복과 저무는 날의 색채감 등이 기막히게 합쳐져 있다. 이런 시는 소래를 내서 낭송을 해야 이해의 궁극에 닿을 수 있다.

나는 교단에서 40여 년 시를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곤 하던 말이 있었다. 

“읽어서 가슴을 치는 시가 좋은 시이다. 좋은 시를 선택했으면 반드시 소리를 내서 읽어라. 소리를 내서 읽으면 훨씬 더 시의 진면목이 살아난다. 그리고, 되짚어 한 행 한 행을 읽고 그 함축을 떠올려보아라, 특히, 행과 행 사이 빈 공간의 함축도 읽어라, 행간(行間)의 함축까지를 읽어낼 때 시 한편이 지니는 총체적 가치를 모두 알 수 있는 법이다”. 

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녀 달라는 것이었다. 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시에 가까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공들여서 거듭 읽고 시를 상상과 감각으로 받아 드릴 때, 시는 온전한 제 모습을 들어 내 보여주게 될 것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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