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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니아 국민 피의 대가(代價): 러시아 금융출혈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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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3월07일 17시10분

작성자

  • 강태수
  •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초빙교수, 전 한국은행 부총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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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국민의 결사 항전이 눈물겹다. 전세계가 전쟁참상을 실시간 지켜보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우크라이나의 비행금지구역(no fly zone) 설정 요구를 거절했다. 군사개입이 세계대전으로 확전될까 걱정인 거다. 탱크, 미사일 대신 미국·유럽은 반격무기로 ‘금융전략자산’을 택했다. 프랑스 재무장관은 ‘핵폭탄급’으로 부른다. 

 

□ 러시아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 퇴출과 러시아중앙은행 해외자산 동결이 그것이다. 조치 발표만으로도 런던증시에 상장된 러시아 기업주가가 98% 하락했다. 루블화 가치도 30% 떨어졌다. 러시아 국민들은 루블화가 더 곤두박질할까 두렵다. 은행 앞에 긴 줄이 생겼다. 대규모 현금인출사태(뱅크런)가 발생한 거다. 

“더 떨어지기 전에 현금 찾아 미 달러화로 바꿔놔야 안심이다” 

ATM 예금인출 순서 기다리는 모스크바 시민 발언이다. 

 

□ 다급해진 푸틴은 자본통제를 명령했다. 기업과 개인은 외화수익의 80%를 거래은행에 매각해야 한다. 외화의 해외 송금도 막았다. 러시아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9.5%에서 20%로 두 배 이상 올렸다. 3월 1일에는 은행권에 700억 달러 규모 유동성을 공급했다. 하지만 속수무책(束手無策)이다. 골드만삭스는 2022년 러시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7% 위축을 예상한다. 2008년(-11%)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먹는 수준이다. 

 

□ 본격적인 서방진영 공격은 시작하기도 전이다. 진짜 핵폭탄이 기다린다. 우슬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발표한 러시아중앙은행 해외자산 동결이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 퇴출 뉴스에 가려 주목을 덜 받고 있다. 루블화에 대한 자국민 신뢰는 외환보유액에서 나온다. 금융위기가 터져도 루블화로 달러화를 원하는 만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루블화 가치를 보장하는 거다. 이 믿음이 깨지면 위기다. 

 

□ 외부 발표된 외환보유액과 급할 때 즉시 쓸 수 있는 금액 간 차이가 있다면 그 통화는 투기세력 먹잇감이 된다. 1997년 11월 21일 우리나라가 국가 부도위기를 맞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국제통화기금(IMF) 앞 구제금융을 요청한 날이다. 당시 공표된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244억 달러였지만 당장 사용가능 금액은 11억 달러에 불과했다. 숨기려 해도 시장을 속이지 못한다. 외환투기세력은 원화 가치 폭락에 베팅했다. 결과는 외환위기였다. 뼈아픈 교훈이다.

 

□ 러시아 공식 외환보유액은 6,300억달러 수준이다. 유가증권 3,113억 달러, 해외예탁금 1,520억달러, IMF 특별인출권(SDR) 240억달러, 금 보유액 1,323억달러 순이다. 러시아중앙은행이 급하게 쓸 수 있는 금액은 얼마나 될까. 

 

□ 우선 금보유액 1,323억달러는 보관처가 뉴욕 미 연준과 런던 영란은행 금고다. 서류상으로만 러시아 소유일 뿐이다. IMF 특별인출권(SDR) 240억달러는 달러화 유로화 등 기축통화(基軸通貨)로 교환이 보장된 유동성이다. 러시아는 자국의 IMF 지분(2.59%)에 상당한 금액을 갖고 있다. 그런데 IMF 최대주주 미국(16.5%)이 러시아의 SDR 사용을 거부하고 나섰다. 무용지물이다. 

 

□ 다음으로 해외예탁금 1520억달러다. 대부분 중앙은행, 국제금융기구(IMF, BIS), 외국은행 본점 예치중이다. 당장 꺼내 쓰기가 만만치 않다. 3,113억 달러 어치 유가증권도 마음대로 팔 수 없다. 그나마 이 가운데 중국채권 투자액이 840억달러다. 하지만 아무리 중국이 우방이라도 전액 매각을 반길 리 없다. 결국 러시아중앙은행 수중에 남은 건 달랑 현금 120억 달러 뿐이라는 게 시장의 평가다.  

 

□ 러시아 국가신용등급의 8단계 추락 배경이다. 세계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러시아 국가신용등급을 종전 BB+(투자 부적격)에서 CCC-로 강등했다. ‘CCC-’란 투자 원금과 이자 상환 가능성이 의심되는 단계다. 국가부도 사태인 ‘D’등급은 아니지만 회복 가능성이 불투명한 디폴트 상태를 의미한다. 루블화와 러시아 은행시스템 붕괴를 시사한다. 단기성 부채(1350억달러) 채무불이행이 코앞에 닥쳤다는 분석이다. 러시아 대외 총부채 30% 수준이다.

 

□ 다만 러시아만 피해를 보는 건 아니다. 독일은 천연가스·원유 러시아 수입의존도가 55%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결연하다.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인중절차를 중단했다. 독일과 러시아를 관통하는 가스관이다. 2021년 공사가 끝났지만 가동 전이다. 전세계 금융시장은 섬세한 배관(financial plumbing)으로 연결돼있다. 러시아 금융제재 부작용이 어느 나라로 튈지 모른다. 그래도 대다수 국가의 의지가 굳건해 보인다. 피해는 감수한다는 분위기다. 

 

□ ”국가를 전복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은 화폐를 타락시키는 것이다“(There is no subtler, no surer means of overturning the existing basis of society than to debauch the currency.”). 

레닌의 경고다. 한 세기 전에 죽은 니콜라니 레닌이 살아있는 블라디미르 푸틴을 공격한 꼴이다. 서방세계가 레닌의 처방전에 따라 러시아에 금융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이 흘린 피의 대가로 서방진영은 러시아에게 금융출혈(financial bleeding)을 요구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도 출혈이 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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