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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정치리더십 - 외천본민(畏天本民) <6> 국정(國政)의 근본 원칙과 목표 IV. 사람 중심의 바른 정치-2. 신중하고 신중하라.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2년02월11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2년02월03일 11시12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 4

본문

IV. 2 신중하고 신중하라. (欽哉欽哉 恤刑之欽哉)

 

[신중하고 신중하라(흠재흠재, 휼형지흠재,欽哉欽哉 恤刑之欽哉).]

 

법으로써 형벌을 정하고 형벌로써 죄를 다스리는 것은 동서고금의 떳떳한 법칙이다. 그러나 죄는 한정되어 있지만 사람이 범하는 행동과 죄는 무궁하다. 따라서 법에 없는 죄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마땅히 적용할 법조문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통상적으로 가장 가까운 법 조항을 적용하겠지만 이럴 때에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많다. 세종은 이런 경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대저 형벌은 성현도 조심하는 법이라. 털끝만큼 형벌을 올리고 내릴 

    때에도 너그러움으로 임해야 한다. 오늘날 관리들은 모두 무거운 쪽으로

    해석하여 적용하려고 하니 내가 매우 걱정스럽다. 죄가 가벼운 것 같기

    도 하고 무거운 것 같기도 해서 혼란스러우면 당연히 가벼운 법을 따라

    야 한다. 만약 그 정상이 무거운 형벌에 가까우면 법에 맞게 형벌을 내

    리고 있는지 조심하라. 

   <서경(書經)>에 ‘조심하고 조심하라, 형벌에 조심      

   하라’고 했다. 항상 내가 따르는 말이다. (夫刑 固聖賢之所愼 以上下比附

    毫釐之際 尤所當恤 今之法吏 於比附之際 率從重典 予甚愍焉 罪之疑於輕

    疑於重 情理相等者 則當從輕典 若其情理近於重者 疑合於法 <書經>曰 欽

    哉欽哉 恤刑之欽哉 予所服膺 : 세종 7년 7월 19일)”

 

[형벌이 잘못되면 천지의 화기가 상한다(刑罰不中 傷天地之和).]

 

재판과 형벌은 정치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형벌과 재판이 어떠하냐에 따라 ‘밝고 화평한 태평성세’냐 아니면 ‘어둡고 잔포한 난세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세종은 <서경(書經)>을 빌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형벌은 정치를 돕는 일이다. 옛날 태평성세시대에도 (형벌은) 없을 수가

    없었다. 순임금은 천자가 되어서 극진한 사랑으로 형벌을 내렸고  

    고요(皐陶)는 선비로써 다섯 가지 형벌(五刑)을 밝혀서 다섯 가지 가르

    침(五敎)을 깨우쳐 화합하는 밝은 정치를 폈도다. 

    (刑者輔具之治 雖古之盛世 固不得以廢也 舜爲天子 惟刑之恤 皐陶爲士 

     明五刑以弼五敎 克底雍熙之治 : 세종 13년 6월 2일)”

 

오형(五刑), 즉 다섯 가지 형벌은 이마에 글자를 새기는 묵형(墨刑), 코를 베는 의형(劓刑), 발을 자르는 월형(刖刑), 생식기를 자르는 궁형(宮刑) 그리고 목을 자르는 대벽(大辟)의 형벌이고, 오교(五敎)의 다섯 가지 가르침이란 아버지는 의리(父義)를, 어머니는 자애(母慈)를, 형은 우의(兄友)를, 아우는 공경(弟恭)을 그리고 자식은 효도(子孝)를 다 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오전 (五典) 이나 오상(五常)과도 같은 말이다.

 

재판은 사람의 생사가 관계되는 일이다. 형벌을 잘 못 내리면 백성으로부터 원망을 받고, 백성의 원망이 쌓이면 하늘로부터 천벌을 받는다는 생각이다. 

 

    “옥사란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이다. 진실로 참된 진상을 얻지 않고

     매질로 자복을 받아 죄 있는 자가 빠져나가고 죄 없는 자가 억울한 

     허물에 빠지면 백성이 원망하고 억울할 것이며 백성이 그 원통함을

     풀지 못하면 천지의 화기를 상하여 수재와 한재가 일어나니 이것은

     고금의 아픈 재난이었노라. (蓋獄者 人之死生係焉 尙不眞得其情 而求

     諸菙楚之下 使有罪者幸而免 無罪資陷于辜 卽刑罰不中 以致含怨負屆

     終莫得伸 足以傷天地之和 召水旱之災 此古今之通患也

     : 세종 13년 6월 2일)”

 

따라서 재판과 형벌을 바로 잡는 것은 굶어죽는 백성들의 원망이 쌓이지 않도록 철저히 구휼해야 하는 것과 목적이 같다. 세종의 민유방본 정치의 뿌리가 올바른 구휼과 함께 바른 재판, 바른 형벌에 두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한 번 목숨을 잃으면 다시 살릴 수가 없고, 한 번 형벌로 수족이 끊어지면 다시 붙일 수가 없으니 한 번 실수라도 한다면 앞으로 얼마나 후회할 것인가. 세종은 단 한 순간도 억울한 사람을 잊지 않았으며 밤낮으로 이를 애처롭게 여겼다고 했다. 세종은 형조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였다.   

 

    “이것이 내가 밤낮으로 애처롭게 여겨 단 한 순간도 억울한 사람을 

     잊어본 일이 없었다. 이제부터 나를 대신해 법을 집행하는 형조는 

     내 뜻을 몸소 잘 깨달아 전국 관리들에게 이를 깨우쳐 가르치라.(此予

     之夙夜矜恤 未嘗頃刻以忘于懷者也 繼自今爲吾執法中外官吏 尙其鑑古

     戒今 惟爾刑曹 體此之懷 曉諭中外 : 세종 13년 6월 2일)”

 

그러나 재판의 정황과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 공정하지 못한 재판이 나오기가 쉽다. 세종이 좌대언(左臺言) 김종서를 불러 오판의 현실에 관해 이렇게 말하였다. 

 

   “본부의 제조와 위관과 삼성들이 모두 재판전문가들인데 그런데도 

    지난 날 김경과 그 노예 부존이 잘못 매를 맞고 몸이 매우 상하였다.

    일을 아는 전문가도 이렇다면 외방수령(비전문가)이 지방의 일을 홀로

    도맡아 사감으로 법을 굽혀 태장을 가하는 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매우 슬프고 가엽다. (本府 提調及委官三省 皆素

    稱能折獄者也 而前日金徑與其奴夫存等 枉被菙楚以傷肌體 解使官吏合議

    鞠問 刑罰之誤 尙且如此 外方守令 獨任州縣 各以己私 枉加笞杖者 必多

    有之 思之如此 心用惻怛 : 세종 13년 4월 25일)” 

 

형조의 제조(提調) 및 위관(委官)이라면 재판의 최고 전문가들인데 이들이 합의하여 내린 판결에도 오판이 있다면 지방에서 그것도 단독으로 재판을 내리는 경우 얼마나 많은 오판이 있을 것이며 그로 인해 얼마나 무고한 백성이 고통을 받을 것인가. 그런 수령들이 

 

      “형벌을 과도하게 내리고 판결을 공정하지 못하게 단정하여 

       무고한 사람이 옥에 갇히고 천지의 화기를 해치는 것이다.    

       (安知無用刑過中 聽斷不明 至使無故之民拘繫犴獄 

       召傷和氣者哉 : 세종 27년 1월 18일)”         

 

특히 사형 죄와 같은 중한 죄 일수록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판결하는 이유도 불공정한 재판이 나와 백성의 억울함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형 죄에 관한 사항을 세 차례나 거듭 조사하여 판결을 내리는 

    이유는 인명은 중하므로 혹 잘못하여 착오가 있을까 염려되어서이다.

    (凡死罪三覆啓者 以重人命 恐或差誤也 : 세종 3년 12월 22일)”


[치밀하고 밝은 마음으로 재판하라(정백허심,精白虛心).]

 

세종이 생각하는 바른 재판은 세종 13년(1431)에 내린 교지에 잘 드러난다.

 

    “항상 옛일을 거울삼고 오늘을 경계하여 허심이 없는 치밀하고 밝은  

     마음으로 자기 생각에 구속받지 말고 선입견을 위주로 하지 말며, 

     부화뇌동하는 전철을 남기지 말고 일시적으로 미봉(구차,苟且)하는

     구습을 반복(인순因循)하지 말 것이며 쉽게 자백한다고 즐거워하지

     말고 여러 방면으로 반복하여 조사하라. (尙其鑑古戒今 精白虛心 無拘

     於一己之見 無主於先入之辭 毋雷同以効轍 毋苟且以因循 勿喜囚人之易

     服 多方以詰之 反復以求之 : 세종 13년 6월 2일)”

 

무엇보다 먼저 “옛일을 본으로 삼아라.”는 것이다. 옛날 역사에는 올바로 내린 재판도 많았지만 잘못 내린 오판도 무수히 많았다. 이런 과거의 잘잘못을 본보기로 삼기를 바랐다. 그리고 자기의 고정관념이나 혹은 남이 판단한 선입견에 구애받지 말 것이며 부화뇌동하지도 말고 힘들고 어렵다고 일시적인 미봉책으로 종결짓지도 말 것을 지시하였다. 끊임없이 여러 방면으로 탐문하고 조사하여 실체적인 진실로 재판하기를 독촉했다. 그리하여,   

 

     “죽은 자의 원성이 하늘에 다다름이 없도록 할 것이며 산 자의 원한이

      털끝만큼도 없도록 하여 모두의 따뜻한 정과 서로 서로 기뻐함으로 

      한명도 감옥 갇힘이 없는데 이르러 서로 화합하는 기운(협기,協氣)이 

      사방에 흐르고 비와 해 비치는 것이 제대로 되는데 이르도록 하라.

     (使死者不含怨於九泉 生者無包含怨於方寸 群情胥悅  致囹圄之一空 

      協氣旁流  臻雨暘之咸若 : 세종 13년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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