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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의 오페라 이야기<5> 오페라 라보엠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2년01월29일 16시30분
  • 최종수정 2022년01월28일 11시19분

작성자

  • 이소영
  • 솔오페라단 단장,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 명예이사장

메타정보

  • 2

본문

우리들의 젊은 날

가장 아름답고 슬픈 보헤미안의 사랑! 오페라 라보엠


 어젯밤, 제비를 보았네.

봄을 알리러 찾아온 그 제비를

난 아름다운 그녀를 생각 했다네.

시간이 있을 때면 나를 사랑해주던 그녀

 

그리고 하루 종일

생각에 잠겼다네.

지나간 달력들을 들추며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시간이 담긴 그 달력을

 

안녕

잘 가시오. 옛 사랑..

이제는 시들어버린 그 옛 사랑

이제는 시들어버린 우리의 젊음은

이제 저 낡은 달력 속으로 사라진다네,

 

달력 속에서 재로 변해버린 우리의 과거 

그 과거를 들추어 보면

잃어버린 낙원으로 가는 열쇠를 찾을 수 있을지도 

앙리 뮈르제의 <보헤미안의 삶의 정경>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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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오페라 라보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세계 곳곳의 무대에서 오페라 라보엠이 공연된다. 배경이 크리스마스이브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파리의 허름한 다락방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네 명의 가난한 젊은이들을 통해 우리들의 젊은 날을 추억해 보기엔 겨울이라는 계절이 어쩐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

 

손이 시리도록 추운 다락방에서 손을 호 호 불어가며 떨고 있는 세 명의 친구들. 

시인 로돌포와 화가 마르첼로, 그리고 철학자 콜리네가 그들이다. 월세도 내지 못했지만 함께여서 마냥 즐겁다. 주인이 올라치면 잠시 쥐죽은 듯 정지 상태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예술을 사랑하고 이상을 동경하며 꿈속에 산다지만 그것이 추위를 날려주고 주린 배를 채워주는 건 아니니까. 시인 로돌포가 잠시라도 추위를 덜어보려고 그동안 애써 써놓은 연극 대본들 한 뭉치를 찢어 스토브에 넣어 불을 지피자 환성을 지른다. 모처럼 돈이 좀 생긴 쇼나르(음악가)가 흥분한 채 들어온다. 그가 낸 술과 음식, 담배로 찬바람이 불던 다락방은 파티 분위기가 된다. 그들은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의기양양하게 크리스마스이브를 즐기기 위해 시내로 나선다. 공연이 이쯤 전개되면 관객들 마음속엔 벌써 하숙하던 친구 집에 우르르 몰려가 라면만 끓여 먹어도 즐겁던, 살을 파고들 듯 차가운 겨울 칼바람도 아랑곳 않고 서로의 어깨에 어깨를 맞댄 채 어깨동무 하고 목청을 돋우며 노래 부르던, 그 시절의 기억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청춘은 항상 가슴 시리고 아팠지만, 추억은 남아있으니까.

그래서 겨울이면 많은 이들이 라보엠을 기다리고 기다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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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를 갈망한 디아스포라, 보헤미안

가난도, 추위도 꺾을 수 없었던 그들의 꿈…

 

오페라 라보엠은 파리 ‘라탱지구(Quartier Latin) 뒷골목 젊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묘사한 앙리 뮈르제(Heny Muger 1822-1861)의 소설 <보헤미안의 삶의 정경 (Scènes de lavie de Bohème. 1851)>을 토대로 한 오페라다. 문지기와 재봉사의 아들로 태어나 13세 때 학교를 그만두었던 앙리 뮈르제는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자유분방한 파리 예술가들의 생활로 들어서게 된다. 

 

앙리 뮈르제는 4년간 <보헤미안 삶의 정경>이라는 단편 형식의 글을 잡지에 연재했다. 그는 이 작품을 극작가 테오도르 바리에르와 함께 <보헤미안의 일생>이라는 희곡으로 각색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1851년 앙리 뮈르제는 이 작품을 장편으로 개작하였다. 자전적 성격의 이 소설 속에서 그는 로돌포라는 인물로 등장한다. ​

 

 

 

 

푸치니는 바로 이 소설의 뼈대만 추려내 토스카, 마농 레스코를 함께 작업했던 단짝 대본가 G. 지아코사와 L. 일리카와 함께 오페라로 개작했다. 개작한 작품은 한층 더 낭만적이고 자유롭다. 소설과 달리 로돌포와 미미 두 사람의 관계를 집중 조명하고 같은 비중으로 등장했던 마르첼로와 무제타, 쇼나르, 콜리네는 배경 인물로 축소시켰다. 원작자인 앙리 뮈르제가 그랬듯 푸치니 역시 밀라노 국립음악원을 졸업하고 밀라노에서 힘들고 배고팠던 보헤미안적 생활을 경험했기에 더욱 실감나는 작품이 탄생되었으리라. 

 

‘보헤미아’라는 말은 원래 켈트족의 지족(支族)인 보이족을 일컫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 기원전 2세기 경, 이탈리아 북부에서 로마인들에게 패한 보이족들이 오늘날의 체코 서부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그들을 로마인들은 “보이족의 땅”을 의미하는 “보에뭄(Boihemum)”이라 불렀다. 보헤미아는 이러한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지리적 위치를 일컫는 말이었지만 19세기 이르러서는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예술가와 배우, 지식인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사랑은 그렇게..

달빛 내리는 다락방으로 운명적으로 찾아왔다.

 

친구들이 나간 방에 쓰고 있던 원고를 마무리하기 위해 홀로 남은 로돌포

차가운 밤이지만 창으로 들어오는 크리스마스이브의 달빛은 아름답기만 하다. 시를 쓰느라 골몰하고 있는 조용한 방문을 누군가가 두드린다.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미미가 촛불이 꺼져 불을 빌리러 온 것이다. 같은 건물에 산다지만 서로 인사를 나눈 적조차 없다. 그런데 어쩐지 창백해 보이는 미미가 잠시 정신을 잃고 만다. 기운을 차린 그녀는 불을 빌려 돌아가려다 열쇠가 없어졌다는 걸 알게 된다. 바람에 로돌포의 촛불마저 꺼져버리고 어둠속에서 열쇠를 찾던 두 사람의 손이 닿는다. 

 

바로 이 장면에서 “이 조그만 손이 왜 이다지도 차가운지….내가 따듯하게 녹여 주리다” 라며 가장 아름다운 테너아리아로 알려진 “그대의 찬 손”을 로돌포가 부른다. “거칠 것 없는 가난한 생활이지만 시와 사랑을 노래하노라면 왕이 된 듯 호화롭답니다. 꿈과 환상으로 하늘에 그린 성에서 마음만은 백만장자지요”라며 자신이 시인임을 소개하며 “아름다운 당신의 두 눈이 내 꿈을 빼앗지만 소중한 희망을 남겨주었지요”라며 가슴 벅차게 노래한다. 특히 희망(Speranza)이라는 단어를 노래할 때 테너의 최고 음역인 하이 C로 팽팽한 긴장감을 주며 관객을 압도한다. 

 

사랑과 봄, 그리고 꿈과 환상에 대한 갈망

“내가 만드는 꽃에는 향기가 나지 않아요”라는 절대 고독의 표현 

 

그리고는 내 얘기를 들었으니 이젠 당신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로돌포의 요청에 미미는 아름답고 서정적이기 그지없는 아리아 “내 이름은 미미”를 이어 부른다. “사람들은 나를 미미라고 부르지만 내 이름은 루치아에요“라고 시작해서 자신이 자수와 바느질로 살아가며 그 일이 지치면 장미와 백합화의 조화(造花)를 만든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은 사랑과 봄 그리고 꿈과 환상을 그려내는 “시”라고 얘기한다. “시”라는 공통분모는 두 사람의 일체감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그녀는 혼자 생계를 유지하며 미사에 가지는 않지만 혼자 곧잘 기도를 드린다며 자신이 독신임을 고백한다. 이어서 “하지만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첫 햇살과 4월의 첫 키스는 제 것이죠”라며 로돌포의 희망을 은근히 자극한다. 미미의 외로움이 로돌포의 희망이 된 것일까…. 사람이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는데 고작 몇 초밖에 안 걸린다더니 그 잠깐의 순간에 그들은 서로에게 깊은 친밀감을 느낀다. 

 

아리아의 마지막 부분에서 미미는 홀로 화분의 장미를 가꾸지만 자신이 만드는 꽃(造花)은 향기가 없다고 얘기한다. 이 부분에서 그녀의 고독과 외로움을 엿볼 수 있다. 그 고독과 외로움은 “시”라는 공통분모가 주는 일체감으로 로돌포를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격랑으로 이끈다. 참으로 절묘한 심리 묘사이다. 사실 뮈르제의 원작 캐릭터에서 미미는 상당히 적극적이고 세상 경험이 많은 여자다. 로돌포와 헤어진 뒤 추운 스튜디오에서 누드모델로 일하는 등 생계를 위해 갖은 고생을 한다. 때론 돈 있는 남자들을 상대로 매춘을 하기도 하는 도발적인 여성이다.

하지만 오페라 라보엠에서 미미는 이렇듯 사랑의 아픔을 안고 죽어가는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그려졌다. 이는 자신의 이상형에 여주인공을 맞춘 푸치니의 시도로 원작보다는 더 감성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푸치니가 창조한 미미는 요샛말로 ‘내숭녀’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층에서 로돌포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친구들이 재촉하자 두 사람은 오롯이 둘만의 공간이었던 달빛 가득한 다락방을 나서며 사랑의 이중창 “오, 사랑스런 그대”를 부른다. 푸치니는 1막의 불 꺼진 다락방 장면을 로돌포와 미미가 열쇠를 찾다가 손을 붙잡고 서로 소개하는 장면까지 노래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도록 구성했다. 

두 사람의 만남이 시작되는 이 장면은 수세기동안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며 오페라 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장면으로 꼽히고 있다. 운명적인 사람을 만나 마치 마법에라도 빠지듯 한 순간에 사랑이 이루어지는 환상적인 장면이다. 하지만 사실은 가진 것 없어 잃을 것도 없는, 따지지도 계산하지도 않는 자유분방한 보헤미안적인 사랑을 그린 것은 아닐까 싶다. 

 

카페 모무스 앞..

달빛 사랑과 오렌지 빛 사랑

 

크리스마스의 분위기가 한창인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로돌포는 미미에게 장미꽃이 달린 모자를 선물한다. 그들이 카페 모무스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는데 무제타가 돈 많은 늙은 애인 알친도르와 호들갑스럽게 등장한다. 알친도르의 손에는 그녀를 위한 선물꾸러미가 가득하다. 무제타는 가수이며 마르첼로의 헤어진 연인이다. 아직도 서로에게 미련이 남아있음을 이 장면은 여실히 보여준다. 

“내가 길을 걷노라면 남자들이 발길을 멈추고 정신없이 나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모두들 처다 본다네”라며 무제타는 마르첼로의 관심을 끌어보려 왈츠풍의 아리아 “사람들이 나를 볼 때면”을 노래한다. 이 노래를 들은 마르첼로는 분개한다. 무제타의 관심 끌기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자신에 대한 마르첼로의 열정이 아직 식지 않은 것을 확인한 무제타는 신발이 작아 발이 아프다며 알친도르에게 신발을 사오라며 내보낸다. 그리고는 친구들과 신나게 먹고 마신 비용을 알친도르의 테이블로 넘기고 나가버린다. 

 2막에서​푸치니는 달빛 같이 순수한 로돌포와 미미의 사랑과 오렌지 빛깔의 화려하고 현실적인 무제타와 마르첼로 두 커플의 사랑을  대조적으로 그리고 있다. 

 

2막에 등장하는 카페 모무스(Cafe Momus, 모무스는 그리스 신화의 냉소의 신이다)는 오페라의 원작자 앙리 뮈르제가 작가 샤토브리앙, 화가 쿠르베, 시인 보들레르 등과 어울렸던 파리의 샤마르탱(Chamartín) 부근의 카페로 원작 소설 보헤미안의 삶의 정경에도 등장한다. 

 

소설에서 “주인공 로돌포 일당이 자리를 잡으면 그 순간부터 다른 손님들은 다른 단골집을 알아보아야 했고, 카페의 물만 축내던 이들이 모처럼 요리라도 시키면 또다시 외상을 들이밀까 두려워 주인이 먼저 안절부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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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서로를 ‘위대한 철학가 귀스타브 콜린느’, ‘그림의 거장 마르셀’, ‘음악의 대가 쇼나르’, ‘거룩한 시인 로돌포’라고 불렀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카페 모무스에서 뭉쳤고, 사람들은 언제나 붙어 다니는 이들에게 ‘4총사’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말 그대로 네 명은 올 때도, 갈 때도, 놀 때도, 음식을 먹고 계산하지 못할 때조차도 함께였다.”라고 앙리 뮈르제는 카페 모무스 장면과 그들의 보헤미안적인 삶의 태도를 그렸다.


꽃이 필 때 이별하다니..

언제나 난 당신의 것이에요

 

우울한 빛이 감도는 2월의 이른 새벽이다. 

그들의 사랑이 시작 된지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미미가 창백한 얼굴로 기침을 하며 파리로 들어가는 앙페르 관문 근처로 걸어온다. 2월이 다 지났지만 아직 사방에는 눈이 쌓여 있다. 무제타와 함께 여관 겸 술집을 하고 있는 마르첼로의 집을 미미가 찾아온 것이다. 미미는 로돌포가 지나칠 정도로 질투가 심하고 광적으로 집착한다며 싸우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옥 같은 생활을 더 이상 지속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헤어지려고 마음먹은 것만도 벌써 몇 차례지만, 지난 밤 끝이라며 나간 로돌포를 찾으러 새벽이 되자마자 또 나선 것이다. 

 

로돌포는 어젯밤 이곳에 와서 잠들었다. 마르첼로가 그를 깨우러 가려는데 로돌포가 여관에서 걸어 나온다. 로돌포 역시 마르첼로에게 미미는 바람기 있는 여자라며 헤어져야겠다고 푸념한다. 마르첼로가 맘에 없는 소리라고 일축하자 로돌포는 사실 미미의 폐결핵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데 자신은 난방비조차 못 버는 형편이라 너무나 괴롭다고 털어놓는다. 숨죽이며 나무 뒤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미미는 가난이 결국 미미를 죽일 것이라는 로돌포의 말에 절망한다. 흐느낌과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기침 때문에 미미는 로돌포에게 들키고 만다. 슬픔에 젖은 미미는 로돌포에게 이별의 고하는 아리아 “기쁨은 어디에 있지”(Donde lieta)를 부른다. 

 

무제타가 다른 남자를 또 다시 유혹하려 했다며 마르첼로 역시 무제타와 격렬하게 싸우고 되돌아온다. 두 커플들은 각자의 마음속에 담긴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는 애달픈 4중창을 부른다. 결국 미미와 로돌포, 마르첼로와 무세타는 서로 헤어지기로 한다.

 “언제나 당신의 것이에요. 꽃이 필 때 이별하다니.. 겨울이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좋을 텐데”라며 헤어지는 아쉬움과 고통의 긴 여운을 남기며 미미와 로돌포는 멀어져 간다.

 

참으로 소중한 것은 왜 언제나 사라지는 것일까..

 

수개월의 시간이 또 무심히 흘렀다. 로돌포와 마르첼로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헤어진 연인에 대한 아련함이 가득하다. 죽음의 그림자가 시시각각 조여 오자 미미는 무제타와 함께 그들의 추억의 다락방을 찾지만 계단을 오를 힘조차 없다. 그런 그녀를 로돌포가 부축해서 침대에 눕힌다. 미미의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친구들은 그들이 지녔던 가장 소중한 것들을 아낌없이 내어 놓는다. 비록 낡았지만 오랜 세월 비바람을 막아주던 낡은 외투를 팔러 나가며 부르는 꼴리네의 “외투의 노래”는 그들의 진한 우정이 뚝뚝 묻어나온다. 

 

친구들이 모두 나가고 둘만 남게 된 미미와 로돌포.. 고요하게 로돌포의 아리아 선율이 다시 흐른다. 같은 선율 위에 만남과 헤어짐을 얹은 것은 정말 신의 한 수다. 관객들은 먹먹한 가슴으로 숨죽여 그들의 대화를 듣는다. 실로 눈물 없이 보기 힘든 장면이다.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그 순간조차 “아! 어여쁜 나의 미미”라고 부르는 로돌포에게 미미는 여전히 내가 예쁘냐고 물어본다. 여전히 태양처럼 아름답다고 답하는 로돌포에게 “지는 태양이겠지요”라고 말하는 미미의 대답에 서글픔이 묻어 나온다. 

 

죽는 순간까지도 사랑하는 이에게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게 여자의 욕망이다. 이어서 1막 “내 이름은 미미”의 선율 위에 “나는 미미라고 해요..”, “..그때 열쇠를 찾고도 못 찾은 척하셨지요?”라며 처음 만났던 날을 회상한다. 마지막 순간이 멀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아주 조용히 스러져간다. 언 손을 녹여줄 따뜻한 손을 찾았지만 그녀의 손은 차가운 땅 속으로 돌아간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간직하고 싶었던 꿈이 사라져 가는 순간 로돌포는 피를 토하듯이 미미의 이름을 외친다. 

 

시대를 역행한 센티멘털리즘의 영광​

절대 사랑, 절대 우정의 이 시대의 최고의 휴먼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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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4막의 슬프고도 감미로운 스토리가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오페라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1896년 토리노에서의 초연은 심한 냉대를 받았다. 

 

초연 다음 날 토리노 신문은 “이런 별 볼 일 없는 오페라를 만들다니 거장 푸치니로서는 일생일대의 실수를 한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한술 더 떠 신문 <라 스탐파(La Stampa)>지는 “라 보엠은 우리들 마음에 아무 감동을 주지 못했다. 오페라 역사에서 기억될 것 같지 않다. 작곡가 푸치니가 이 작품을 한순간의 실수로 생각한다면 다행이다. 이 작품을 쓸 정력과 노력이면 다른 좋은 작품을 쓰고도 남았을 것이다” 라고 평했다. 당시 평론가들은 훗날 이 오페라가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오페라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라 보엠>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두 번째로 많이 막을 올린 작품이 되었고 1970년대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500회 이상 공연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푸치니뿐만 아니라 <팔리아치>를 쓴 루찌에로 레온카발로도 앙리 뮈르제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라 보엠>을 작곡하였다. 대본은 레온카발로가 직접 썼다. 

 

푸치니보다 작품은 먼저 완성하였지만 초연은 1년 늦은 1897년 베네치아에서 공연되었다. 푸치니의 작품보다 오히려 더 원작에 충실했던 레온카발로의 라보엠은 음악적인 면에서 더 현대적이고 드라마틱하다는 평을 받으며 초연 이후 상당한 인기를 끌었지만 푸치니의 <라 보엠>이 인기를 끌면서 레온카발로의 <라 보엠>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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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보엠은 베리즈모 시대의 낭만주의 오페라이다. 베리즈모는 1890-1910년까지 대략 20년 간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광범위하고 복잡한 문화현상의 하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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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즈모 오페라의 효시는 1890년에 작곡된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로 낭만주의의 역사적인 주제나 신화적인 주제를 거부하고 사실주의적인 묘사를 지향하였다.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실제 현실과 다를 바 없이 적나라하게 무대 위에 펼쳐 보이려 했던 베리스모 오페라는 격정, 절망, 분노 등의 감정들을 그야말로 날 것 그대로 표현했다. 푸치니는 동시대 작곡가이면서도 이태리 오페라의 전통인 서정성이 풍부한 유려하고 센티멘털한 낭만주의적 멜로디로 오페라 라보엠을 만들었다. 그래서 오페라 라보엠을 손수건을 적시는 신파조의 스토리라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랑스럽고 유쾌한 내용을 담고 있어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다. 

 

가진 것이 없기에 두려울 것도 없었고 

아팠기에 오히려 눈부셨던 우리 젊은 날의 초상이자 청춘 찬가

 

오페라 라보엠의 구성은 전체적으로 4악장 교향곡처럼 짜임새가 있다. 

 

1막은 앞부분은 가난한 삶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젊은 예술가들의 유머러스한 보헤미안들의 에피소드를 쾌활한 템포와 유쾌한 멜로디 그리고 뒷부분은 미미와 루돌프의 달콤한 만남만큼이나 서정적인 멜로디로 작곡되었다. 

 

2막은 혼성 합창과 어린이 합창, 간간이 들려오는 장사꾼들의 외침,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군악대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전후 사이에 무제타의 왈츠로 활기를 불어 넣은 3부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3막은 미미와 로돌포의 지독하리만큼 아픈 사랑과 마르첼로와 무제타의 혈기 넘치는 정념의 사랑이 대조되는 서정적이면서도 안단테의 느린 악장이다.

 

4막은 로돌포와 미미가 처음 만났던 첫 만남의 선율이 다시 나오며 소나타의 재현부와 같은 느낌을 준다. 첫 만남을 회상하면서 미미의 선율은 죽음이 가까워져 온다는 것을 느껴지도록 점점 움직임과 굴곡이 줄어든다. 

 

이토록 짜임새 있는 구성과 그 위를 장식하는 유려한 선율은 마치 우리가 오페라 라보엠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그대의 찬 손”, “내 이름은 미미”, “무제타의 왈츠” 등 주옥같은 아리아들은 이 아름다운 오페라를 더욱 꽉 채워 준다. 사랑과 열정, 고뇌와 아픔, 그리고 가슴 녹이는 따듯한 우정과 위트로 가득한 오페라 라보엠은 바로 우리들의 노래다. 인간 내면에 숨어있는 가장 순수한 사랑과 죽어가면서도 ‘사랑하였음으로 행복하였노라’고 고백하는 이 시대 최고의 휴먼 드라마이다.

 

 앙리 뮈르제는 원작의 에필로그에서 “남자들은 헤어진 여자를, 혹은 세상을 떠나버린 여자를 잊고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뒤 자신들의 가난했던 젊은 날을 추억하죠.”라고 말한다. 누구에게나 희망과 절망의 공존하던 청춘이 있었다. 오페라 라보엠은 가진 것이 없었기에 두려울 것도 없었고 아팠기에 오히려 눈부셨던 우리들의 젊은 날의 초상이자 청춘 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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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22년01월28일 11시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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