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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망하게 하는 확실한 법칙-혼군 #16-2: 전한(前漢) 원제 유석(BC75-BC49-BC33) <L>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2년01월21일 16시50분
  • 최종수정 2021년12월07일 12시02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 3

본문

 

 혼군(昏君)의 사전적 정의는 ‘사리(事理)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다. 암주(暗主) 혹은 암군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군의 숫자는 너무 많아져 오히려   혼군이라는 용어의 의미 자체를 흐려버릴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통틀어 사리에 어둡지 않   은 군주가 몇이나 될 것이며 어리석지 않은 군주가 몇 이나 되겠는가. 특히 집권세력들에   의해 어린 나이에 정략적으로 세워진 꼭두각시 군주의 경우에는 혼주가 아닌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의 혼군 시리즈에서는, 첫째로 성년에 가까운 나이   (17세) 이상에 군주가 된 사람으로서 군주의 역할이나 올바른 정치를 펴지 못한 군주로써 둘째로 결국 외부 세력에 의해 쫓겨나거나 혹은 제거되거나 혹은 국가의 존립기반을 크게 망쳐 놓은 군주를 혼군이라고 정의하였다. ​

 

<46> 대조 가연지贾捐之의 남방포기정책 제안(BC47) 

 

처음 무제 때(BC110) 남월국을 멸망시키고 주애군과 섬이군을 지금의 해남도에 설치했다. 그곳 관리들을 모두 중국인으로 두었는데 자주 침략을 당하고 그곳 주민 역시 포악하여 관리들을 사로잡고 몇 년에 한 번씩 반란을 일으켰다. 조정에서는 즉시 군사를 일으켜 진압했지만 최근 이십 년간 여섯 번의 반란이 있었다가 금년 또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원제가 즉위한 다음 해 주애군 산남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군사를 보내 진압했지만 다른 여러 현들이 난을 같이 일으키면서 해를 이어 불안하였다. 원제가 군신을 모아 놓고 대병을 일으킬 계획이었다. 대조 가연지는 군대 일으키는 것을 반대했다. 그 논거는 다음 몇 가지다.

첫째로 요순시대도 나라가 작았으며 우너하지도 않는 나라를 억지로 병합하여 다스릴 필요는 없다는 것,

둘째로 진나라처럼 나라를 병탄하다가는 국고가 텅 비게되어 어려워 진다는 것,

셋째로 국내 특히 관동지방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우니 이곳부터 먼저 다스리느 것이 옳다는 것,

넷째로 남쪽 나라는 습하고 질병이 많고 땅이 메말라 쓸모가 없다는 것,

끝으로 거금을 들여 출병했다가 군사는 죽고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 등이었다.

원제는 승상과 어사를 부러 그 문제를 상의했다. 어사대부 진만년은 당연히 출병해야 한다고 했지만 승상 우정국은 지난 정벌에서 비용도 많이 들었고 병사도 많이 죽었지만 항복시키지 못한 점과 관동지역의 경제적 궁핍을 이유로 들어서 가연지의 말이 옳다고 대답했다.원제도 그 말을 좇아서 남쪽 지방의 두 군 정벌을 포기했다. 다음 해인 BC46년 봄 조서를 이렇게 내렸다.

 

   “ 주애군의 야만족들이 관리와 백성들을 죽이고 반역을 일으켰다.

     금번 조정에서 의논하기를 혹 출격하자고 하고

     혹 지키기만 하자고 하고

     혹 버리자고 하면서 의견이 각각 다르다.

     짐이 주야로 의논한 것을 생각해본 즉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수치를 생각하면 그들을 주살해야 할 일이고

     난을 피하기만 하자고 하면 둔전하여 지키자는 것이며

     시시각각 변하는 것에 제 때 적응하자니 백성들이 걱정이다.

     만민들이 기아에 허덕이는 것과 먼 야만인들을 토벌하지 않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크고 위태로운 것인가?

     또 종묘사직 제사도 흉년이 들면 준비하지 않는데

     하물며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굴욕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반란조차 정복하지 않는다는 굴욕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지금 관동의 경제상황이 매우 어려워 창고가 텅 비어있고 

     서로 도와 줄 방법이 없는데

     그 위에 병사를 일으킨다면 백성을 피곤하게 할 뿐만 아니라

     흉년이 따라오지 않겠느냐.

     주애군을 없애고 은혜를 사모하여 들어오고자 하는 주민들은 

     편하게 받아들이되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강제로 편입시키지는 말라.”

            

 

<47> 원제의 행정개혁 (BC44) 

 

원제는 공우와 같은 유학자들의 말을 듣고 조서를 내려서 제사를 지낼 때 살생하지 말 것과 제물을 반으로 줄일 것 등을 지시했다. 마굿간의 말 먹이도 꼭 필요한 정도를 넘기지 않도록 줄였으며 각저(일종의 오락)을 없애고 자주 찾지 않는 궁궐은 폐쇄했고 삼복관도 줄였고 북가(지방 이름)의 전관, 염철관 및 상평창도 닫았다. 백성 중에 한 가지 경서에라도 능통하면 다시 불러들였으며 형벌 칠십여 가지를 대폭 줄였다. 

 

장신소부 공우는 어사대부가 되었는데 원제에게 전후 수 십 차례에 걸쳐 건의한 것 중에서 더러는 채택되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원제가 그 질박함을 높이 사서 여러 번 채용하였다.  

 

 

<48> 卫司马 谷吉의 탄원 : 한 몸을 죽여서 나라가 편안해 지다 没一使以安百姓(BC44) 

 

흉노족의 질지선우는 한나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고 또 한나라가 호얀야선우만 돕고 자신을 돕지는 않는 것을 원한으로 삼아서 종종 한나라 사신 강내시를 욕보이면서 사자를 보내 인질로 잡혀있는 아들으로 돌려보내라고 재촉하였다. 한나라 조정에서는 의논 끝에 위사마 곡길을 보내 인질을 호송하게 하였는데 어사대부 공우와 박사 광형이 이렇게 지적했다.

 

   “ 질지선우의 풍습은 아직 교화되지 않았고  

     지역도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마땅히 사자를 시켜 그 아들을 돌려보내시되

     요새까지 간 뒤에는 사자를 돌아오게 하십시오.”

  

곡길이 상서를 올려 말했다.

 

  “ 중국은 야만족 사람들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십여 년 간 양육해 주었으니 덕택이 심히 깊습니다.

    괜히 호송을 그만 두어서 요새까지만 호송한다면

    버리고 양육하지 않는 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어서

    고향사람이 따르게 하는 마을을 잘라버리는 것이고

    과거의 은혜를 포기하고 원한을 쌓는 일이라 불편합니다.

    

    의논하는 사람들은 강내시가 적을 대응하는 기술이 부족한 것을 보았습니다.      

    지혜와 용기가 다 부족하여 치욕을 얻은 것입니다.

    이것이 신이 앞으로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다행히 신이 한나라의 강력한 지절을 받고

    밝으신 황제의 조서를 받들게 되어 

    후한 은혜를 펼치되 감히 포악한 짓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저들이 금수와 같은 마음을 품어 무도한 짓을 행한다면

    즉시 선우는 대죄를 짓게 되는 것이어서 

    필시 멀리 도망치고 말 것입니다. 

    한 사신을 죽여서 백성이 안전하게 된다면 

    이것이 곧 나라의 계책이요 신이 원하는 바입니다.

    원컨대 멀리 호송해 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원제는 곡길을 허락했다. 곡길이 목적지에 도착하자 질지선우가 노하여 마침내 그를 죽였다. 그러나 그 일로 한나라에 죄진 것을 깨닫고 또 호안야가 더욱 강해졌다는 소식을 듣고서 습격을 받을 것이 두려워 멀리 도망가기를 원했다. 마침 강거국이 질지와 연합하여 오손을 치자고 제안했으므로 질지는 강거국으로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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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어사대부 설광덕薛广德의 상서 : 思与百姓同忧乐(BC43)

 

어사대부 공우가 지난해 12월 죽고 그 자리에 장신소부 설광덕이 임명되었다. 설광덕이 이렇게 상서를 올렸다.

 

   “ 절실히 살펴보니 관동지방의 기근이 극히 심각하여

     백성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매일 망한 진나라 종만 치고 계시고

     음탕한 정나라, 위나라 음악만 듣고 계시니

     신은 진실로 걱정스럽습니다.

     지금 병사들은 모두 제대로 입지 못하여 헐벗고

     관료들은 업무에 지쳐있습니다.

     원하옵기는 폐하께서 서둘러 궁으로 돌아겨서

     백성들과 동고동락하시는 것만을 생각하시면

     천하가 다행이겠습니다.”

 

원제는 그날로 궁으로 돌아갔다.

 

가을에 원제가 종묘에 제사를 지내려고 문을 나섰다. 설광덕이 승여를 붙잡고 관을 벗고 막아서며 말했다.

 

    “ 마땅히 다리로 건너 가셔야 합니다.“   

 

원제는 관을 쓰라고 명했지만 설광덕은 듣지 않고 다시 말했다.

 

   ” 폐하께서 제 말을 듣지 않으시면 

     신은 스스로 목을 잘라 그 피로 수레를 더럽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폐하는 종묘로 들어가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원제는 불쾌했다. 먼저가던 광록대부 장맹이 나아와 말했다

 

   ” 신이 듣기에 주군이 성스러우면 신하가 강직하다主圣臣直 했습니다.

     배를 타고 건너시면 위태로운 것이고 

     다리를 건너시면 안전합니다.

     성스러운 군주께서는 위태로움에 빠지시면 안 됩니다.

     어사대부의 말을 듣는 것이 마땅합니다.“

 

원제가 말했다.

 

   ” 사람을 깨우치는 것이 

     이래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설광덕의 권고를 따라 다리로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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