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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빚국’ 세금 퍼주기로 거덜난 곳간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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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9월23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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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가 덮치기 전인 2019년 5월 16일 국가채무와 관련,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문 대통령은 “기획재정부는 국가채무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40%대 초반에서 관리하겠다는데 국제기구는 60% 정도를 권고하고 있다. 우리는 적극 재정을 펼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

이는 당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40%대 초반에서 관리하겠다.”고 하자 문 대통령이 이에 대한 근거를 따져 물으며 발언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말은 ‘국가채무 방어선’을 뒤로 물리는 한이 있어도 정부 곳간을 더 열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문재인 대표 “국가채무비율 마지노선은 40%”

 

그러나 이는 문 대통령이 야당대표 시절 발언한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2015년 9월 9일 박근혜 정부의 재정 상황을 비판하면서 “국가채무비율이 마지노선인 40% 선을 넘었다.”며 “새누리당 정권 8년, 박근혜 정부 3년 만에 나라 곳간이 바닥났다.”고 비난했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재정건전성 회복방안이 없는 이 예산안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경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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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15년 문재인 대표가 비판했던 상황이 문 정부 들어 똑같이 재연됐다. 2019년에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위한 국채발행까지 반영한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39.5%에 달했다. 문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인해 2020년 예산안이 500조원을 돌파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럴 경우 국가채무가 780조원을 넘고, 국가채무비율은 40.3%까지 올라간다. 이러자 문 대통령이 입장을 바꾼 것이다. 

입장을 바꿔도 아주 통 크게 바꾸었다. 국가채무비율의 마지노선이 GDP 대비 40%라던 사람이 60%로 절반이나 올려버렸다. 문 대통령이 말을 바꾸거나 식언한 사례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국가채무 관련 발언은 국가의 운명이 달린 것으로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꾸어선 안되었다. 이후 우리나라 국가채무비율은 엘리베이터가 123층의 롯데타워를 오르듯 거침없이 올라갔다. 

문 대통령은 국가채무비율의 ‘국제기구 기준’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이 ‘국제기구’로 언급한 것은 유럽연합(EU)의 ‘안정 및 성장에 관한 협약’으로 알려졌다. ‘협약’은 일반정부 채무[D2; D1(중앙정부+지방정부 채무)+비영리공공기관 채무] 기준 채무비율을 GDP 대비 60% 이내로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이 기준대로면 한국은 2017년 기준 42.5%로 60%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공기업 채무를 포함한 D3를 기준으로 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EU 회원국들은 대규모 공기업채무를 가진 나라가 흔치 않다. 그래서 EU는 공기업채무를 포함하지 않는 국가채무비율을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공기업채무를 많이 지고 있는 우리나라는 국가채무비율에 이를 포함해야 한다. 비금융공기업 채무까지 포함한 한국의 국가채무비율(D3)은 2019년 60%를 넘었다. 당시에도 이미 EU가 권고한 국제기준치를 추월한 것이다.

 

문 정부서 국가채무비율 47%로 급등

 

게다가 한국은 달러, 유로화 등을 발행하는 기축통화 국가가 아니다. EU는 유로화를 쓰는 기축통화 지역이다. 한국을 유로화를 사용하는 EU 회원국들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기축통화국은 비상시 돈을 찍어 재정을 확충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쉽게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과거 외환위기를 겪어보아 잘 알지 않는가?

이 정도의 내용을 문 대통령이나 청와대 인사들이 파악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정부라면 향후 재정·외환위기를 막기 위해 긴축재정에 들어가야 한다. 그게 2015년 문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일 때 했던 말과 부합한다. 그러나 ‘포퓰리즘(인기영합) 정부’로 비판받는 문재인 정부는 재정확대로 내달렸다. 특히 이듬해 2020년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가 터지면서 문 정부는 국민의 세금인 재정을 제 돈인 듯 마음껏 사용했다. 

코로나19의 재확산 와중인 2020년 9월 22일 제4차 추가경정(추경)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7조 8천억원 규모였다. 그해 3월 17일 1차 추경(11조7천억원), 4월 30일 2차 추경(12조2천억원), 7월 3일 3차 추경(35조1천억원)에 이은 네 번째 추경 처리였다. 추경 규모로 볼 때 역대 최대였다. 한해 네 차례 추경을 편성한 것도 1961년 이후 59년 만이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4차 추경 편성 후 2020년 국가채무는 역대 최대인 846조9천억원,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하 D1으로 산정)도 역대 최대인 44%로 늘어났다. 2020년 본예산 기준 국가채무비율은 39.8%였는데, 네 번의 추경을 거치며 4.2%P가 높아져 44%가 됐다. 마지노선인 40%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방탕한 세금퍼주기 지속

 

국민 세금을 마음껏 사용하는 문 정부의 기조는 2021년에도 계속됐다. 2021년 7월 5일 문 정부는 33조원에 이르는 그해 2차 추경안을 내놓았다. 역대 최대 수준이다. 제1차 추경안(14.9조원)의 2배가 훨씬 넘는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로는 9번째 추경이다. 취임 이후 문 정부가 추경을 통해 더 지출한 세금은 132조원을 넘는다. 

단연 역대 최고 기록이다. 횟수 기준으로는 IMF를 겪은 김대중 정부(8회)를, 총액 기준으로는 박근혜 정부(39조9000억원)를 제쳤다. 문 대통령이 정부 씀씀이가 헤프다고 비판했던 박근혜 정부보다 3.3배가 많고, 금액으로는 자그마치 92조원이나 많다. 문 정부는 씀씀이가 헤픈 정도가 아니라 세금을 그냥 막무가내로 퍼주고 탕진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에 따라 2021년 국가채무는 963조9,000억원으로, 국가채무비율 역시 47.2%로 오른다. 대한민국 역사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고(高)국가채무의 길로 들어섰다. 

2020년 국가채무비율의 상승폭도 역대 최대였다. 2019년(38.1%)보다 5.9%포인트 오르며 상승폭이 외환위기 때인 1998년(3.9%P)이나 글로벌 금융위기시인 2009년(3.0%P)보다도 훨씬 컸다.

2020년 4월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2020년부터 6년간 약 21%포인트 올라 2026년에는 70% 수준으로 치솟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분석 대상 35개국 중 국가채무 증가 폭이 가장 크고 증가 속도는 선진국 평균보다 20배나 빠르다. 한국의 국가채무가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결국 오늘의 세대가 돈을 펑펑 써 미래세대, 청년세대에게 나랏빚을 모두 떠넘기는 셈이다. 

이런데도 문 대통령과 경제부총리, 청와대 참모들은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해 정부재정의 ‘상대적 건전성’만 강조했다. 재정건전성 악화라는 지적엔 “우려도 유념하겠다.”는 정도의 무책임한 답변이 돌아왔다. 

문 대통령은 2020년 5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지금의 위기 국면에선 충분한 재정투입을 통해 빠르게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성장률을 높여 재정건전성을 회복해야 한다.”며 “그것이 길게 볼 때 오히려 국가채무비율 악화를 막는 길.”이라고 말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그해 8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비율은 40.4%로, OECD 회원국 평균 비중 110%에 비하면 약 3분의 1로 낮은 수준”이라며 “재정 여력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하다.”고 썼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현금을 풀어 나눠준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확장재정에 대해 보다 강경한 찬성 입장을 보였다. 그는 그해 9월초 페이스북에 “국가채무가 증가하니 재정지출을 늘리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는 모두를 곤경에 빠트리는 매우 악의적이고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공격했다. 이 지사는 “우리나라 국가채무비율은 안정적 수준”이라며 “국가 재정건전성은 총액이 아닌 GDP 대비 국채비율로 판단하는데 2020년(예측치) OECD 채무비율은 우리나라가 인구 134만인 에스토니아 다음인 43.5%로 평균 126.6%에 비해 매우 낮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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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지출 중독증 걸려”

 

그러나 이후 재정분야 전문가들은 문 정부의 방만한 재정확대정책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은 “국가채무비율이 40% 수준으로 낮아 여력이 있으니 팍팍 써도 된다는 것은 무책임한 얘기”라고 비판했다. 이 IMF 국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늘린 재정을 어떻게 사용할지가 매우 중요하다.”며 “현 상황에서 단기 재정지출 증가는 불가피하지만 공적 영역의 일자리확대 같은 구조적인 지출을 늘리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재정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성명재 한국재정학회장(홍익대 경제학부 교수)은 “내상이 깊어지지만 지금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을 뿐”이라며 “한국의 국가채무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나쁘지 않다고 정부가 말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비판했다. 그는 “일본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0%대 중반 수준이었는데 2020년을 기준으로 250%가 넘는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돈을 마구 뿌리는 확장재정을 계속해 나랏빚을 급속히 늘린 탓이다. 우리의 고령화 속도는 일본보다 빠르다. 채무 증가속도를 조절하지 않으면 국가재정이 파탄 나고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을 겪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재정학 분야 석학인 구정모 대만 CTBC 비즈니스스쿨 석좌교수도 국가채무의 급증을 깊이 우려했다.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낸 구 교수는 “들어오는 세금이 모자라니 빚을 내 이를 메우는 게 습관처럼 반복되고 있다.”며 “브레이크 풀린 나랏빚 증가 속도와 전례 없는 채무규모로 인해 대한민국이 ‘대한빚국’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구 교수가 기재부의 ‘중기재정전망’에 따라 추산한 결과,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D3)은 2024년 81.5%(총 채무 1,855조원), 군인·공무원연금의 충당채무까지 포함한 국가채무비율(D4)은 2024년 130%(총 채무 2,961조원)를 웃돌았다. OECD국가 평균(109%)보다도 높은 매우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구 교수는 “지금 같은 속도의 재정적자 확대와 국가채무 누적은 과거 어느 때보다 막대한 기회비용과 희생을 치러야 한다.”며 “우리 경제가 ‘그리스+일본’식 복합형 불황에 허덕이다 결국 나라 곳간이 거덜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2020년 우리나라의 국가채무(재무제표상 채무)는 2019년 대비 241조6,000억원이 늘어난 1,985조3,000억원이었다. 2020년 총 GDP 1,924조5,000억원보다 60조원이 더 많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D4)이 103.2%로 이미 100%를 넘은 것이다. 한 해 국가채무(D4)가 241.6조원이 급증한 것은 1948년 건국 후 처음이다. 

 

재정전문가인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보다 강도 높은 목소리로 문 정부를 성토했다. 조 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은 재정지출 중독증에 걸려 있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재정 낭비가 심하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조 실장의 지적은 매우 예리하고 신랄하다. 2020년 9월 22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그의 인터뷰는 한국의 위기적 재정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경고한다. 

 

― 코로나19 사태로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채무비율 상승이 문제인가, 상승속도가 빠른 게 문제인가?

 

“둘 다 문제다. OECD의 통계를 보면 한국 정부의 채무비율은 2000년에서 2018년까지 연평균 4.4% 증가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기획재정부)의 발표를 보면 2016년 627조원이던 국가채무가 2022년 1,070조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6년간 연평균 9.3%씩 늘어난다. 증가율이 예전의 2배 이상이다. 현 정부 들어 3년간 220조가 늘었고 앞으로 남은 기간동안 220조원이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문 대통령이 임기 내내 슈퍼예산을 짜고 추경을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정부는 OECD 34개 회원국의 평균 국가채무비율이 109%인 반면, 한국은 40% 정도여서 재정을 더 풀 여력이 있다고 한다.

 

"비교 기준과 대상 국가를 잘 봐야 한다. IMF에서는 국가채무 기준을 파악할 때 대략 4가지 기준을 쓴다. D(Debt: 채무)1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채무를 합한 것이다. 한국이 대략 43.5% 정도 된다. 여기에 비영리 공공기관의 채무를 합하면 D2가 된다. 여기에 다시 공기업 채무를 합하면 D3가 되고, 정부가 지급을 보증한 군인연금과 공무원연금을 합하면 D4가 된다. IMF는 국가채무 기준을 이야기할 때 정부가 실질적으로 부담할 의무가 있는 D4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런데 D3와 D4 채무가 있는 국가가 그렇게 많지 않다. 한국 일본 호주 캐나다 등 8개국 정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D3와 D4 채무가 많다. 정부가 재정부담이 되는 사업을 직접 하지 않고 공기업에 떠넘기거나, 군인과 공무원의 연금 지급을 보증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제로 정부채무인 이런 것까지 포함해 비교해야 한다. 이것을 모두 포함하면 2018년 말 현재 한국의 국가채무는 43.5%가 아니라 106% 정도가 된다. 숨은 빚까지 고려하면 이미 OECD 평균 수준과 비슷해지는 것이다.”

 

―비교 대상 국가도 잘 살펴야 한다는 뜻은 무슨 말인가?

 

"미국과 EU 회원국, 일본 등은 달러, 유로, 엔 같은 기축통화 국가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기축통화 국가가 아니다. 경제위기가 오면 기축통화 국가들은 인쇄기를 돌려 돈을 찍어내 수입 대금을 지불하면 된다. 그래서 재정위기가 외환위기로 연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원화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기축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돈을 아무리 찍어내도 경제위기가 오면 해외에서 한국 돈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외환위기가 온다. 그러니 이런 나라들의 국가채무비율과 한국을 직접 비교하면 안 된다.

 

―문 대통령은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어도 괜찮다고 하는데.

 

“너무 근시안적이고, 포퓰리즘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본인이 야당 생활을 할 때에는 국가채무비율이 40%를 넘으면 미래세대에 빚을 떠넘긴다며 반대하다가 정권을 잡으니 막 쓰고 있는 것이다.”

 

―위기 때에는 재정을 쓰더라도 이후에 경제가 좋아지면 세금을 더 거둬서 국가채무비율을 낮추면 되는 것 아닌가?

 

"예전에는 대통령들이 취임 초기에 사업을 벌이면서 재정지출을 늘렸다. 그리고 임기 중반 이후에는 긴축을 하면서 국가채무의 증가 속도를 낮췄다. 국가채무비율이 40%가 넘지 않도록 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그래서 재정을 견실히 해 다음 대통령에게 물려줬다. 하지만 이번 정권은 임기 초부터 일자리 추경이니 뭐니 해서 계속 본예산 외에 추경을 편성해 썼다. 올해도 벌써 4번째 아닌가? 현 정부의 중장기 재정계획은 임기 말까지 갈수록 돈을 더 많이 쓰는 걸로 잡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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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의 경제운용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정부 재정을 관리할 때에는 대통령의 의지와 능력이 중요하다. 문 대통령은 재정지출 중독증에 걸린 것 같다. 대통령이 정책 능력이 있으면 돈 안들이고 커버할 수 있는 많은 영역들이 능력이 부족하니 그 부작용을 국민 세금으로 틀어막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략)

 

―한국은 외환위기를 겪은 경험이 있으나 재정위기는 겪은 적이 없다. 재정위기는 어떤 형태로 오나?

 

"베네수엘라 등 외국의 사례를 보면 경제 체력이 약화되면 가계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 주체의 채무가 증가한다. 민간 부문이 약해지면서 세입 기반도 약화돼 정부가 해외에서 국채를 발행해 돈을 마련해야 한다. 만약 국가재정 상황이 좋지 않으면 해외투자자들이 신규 국채를 사기는커녕 기존 국채도 팔아버린다. 해외에서 국채를 팔지 못하면 중앙은행은 발권력을 동원해 국채를 발행한다. 이때 시중의 유통 자금이 늘어나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해외투자자들은 빠져나가고 국가부도 상태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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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에 8번 국가부도 선언한 아르헨티나

 

재정건전성을 따지지 않고 돈을 펑펑 쓰다가 재정위기, 외환위기, 국가부도사태를 겪거나 위기에 처한 나라들은 많다. 대표적인 국가는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이탈리아, 그리스, 일본 등이다. 이중 아르헨티나의 사례만 살펴보자. 아르헨티나는 ‘페론주의(Peronism)’라는 포퓰리즘의 대명사다. 많이 알려졌지만 중요한 사례이기에 간단히 일별한다. 

페론주의는 아르헨티나의 대중(大衆) 영합적 정치운동이다. 1946-1955년, 1973-1974년 두 차례 집권한 후안 페론(Juan Peron) 전 대통령과 영부인 에바 페론(Eva Peron)의 정치 활동이 그 출발점이다. 페론주의는 현대 포퓰리즘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정책으로는 외국자본 배제, 산업국유화, 보호무역주의, 복지확대와 임금 인상을 통한 노동자의 소득증대 등으로 요약된다.

후안 페론 대통령은 국가 주도로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민간 부문의 역할을 줄였다. 철도·항만 등을 국유화했고 산업은행을 설치했다. 자유무역 대신 보호무역주의를 주창하며 교역을 통제했다.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핑계로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고, 노동자의 임금을 크게 올렸으며, 복지확대를 위한다는 명분하에 재정지출을 급속도로 늘렸다. 이는 심각한 비효율을 낳았고, 결국 ‘정부 실패’로 이어졌다.

‘정부 실패’의 주된 요인으로는 국유화와 보호주의에 따른 비효율, 산업경쟁력 약화, 페론 대통령의 정치적 실정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원인이 재정지출 확대를 기조로 하는 포퓰리즘이 핵심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페론이즘=포퓰리즘이란 등식이 일반화됐다. 

1946년 페론 정권이 들어선 후 공공지출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46년 GDP의 25%였던 정부지출은 1948년에는 40%를 넘어섰다. 시중에 막대한 돈이 풀리자 물가상승이 뒤따랐다. 1946년 19%였던 물가상승률은 5년 만에 50%를 넘어섰다. 재정이 파탄나면서 1955년 페론 정권은 실각했다. 

그러나 페론주의의 불꽃은 꺼지지 않은 채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 정부가 지급하는 연금과 월급은 2018년 한 해 두 배로 올랐고, 정부에서 연금이나 월급을 받는 국민은 40%에 달한다. 저소득층에는 매월 일정액이 지급된다. 모든 학생들에게 최신 모델의 넷북이 무상으로 지급되기도 했다. 정부 지원에 익숙해진 국민들에게 다른 대안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엄청난 국가채무와 물가, 무기력에 빠진 아르헨티나 경제는 갈수록 더 피폐해졌다. 페론 이후 아르헨티나는 여덟 번이나 국가부도(디폴트)를 선언해야 했다.

 

재정적자, 외환위기 초래 수준 GDP의 5% 넘어 

 

돈을 펑펑 써도 재정이 튼튼하면 큰 문제가 없다. 문제는 나라의 곳간이 넉넉한가 여부다. 즉, 재정건전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재정건전성을 평가하는 지표인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어느 정도면 위험한가는 의견이 분분하다. 과거 사례를 분석하여 60%~90%를 기준으로 제시한 연구들이 있지만, 국가마다 시기마다 기준이 다르다. 채무비율이 높은 경제도 명목 GDP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 재정건전성에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문 정부 들어 지속적으로 성장률이 둔화됐다. 향후 전망도 밝지 못하다. 그런 상황에서 재정적자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지속적인 확장재정 기조에다 문 정부 들어 아홉 차례나 추가경정예산안이 편성됐다. 이에 따라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적자 비율은 2020년 사상 처음으로 6%를 넘어 6.1%를 기록하기도 했다(2020년말 최종 5.8%). 관리재정수지는 정부의 모든 수입과 지출의 차이인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의 수지를 제외한 것으로 정부의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다.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해도 재정적자 악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경제학에서는 재정적자가 GDP의 5%를 넘을 경우 위기로 본다. 외환위기 등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재정적자만이 아닌 국가채무상황, 경상수지적자, 물가, 이자율, 성장률 등 국가 경제의 전반적인 지표를 갖고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5%가 넘는 재정적자는 불길한 조짐임에 분명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이 같은 점을 의식했는지 “재정수지 적자가 6%를 넘어서며 여러 가지 지적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일시적 조치였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며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이런 고(高) 재정적자 상황이 과연 일시적인 걸로 끝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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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까지만 해도 재정수지 적자 비율 3%는 역대 정부, 그리고 재정당국에서 일종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겼다. 예를 들어 지난 2016년 정부가 발의한 재정건전화 법안에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GDP의 3% 이하로 유지한다고 했다. EU 또한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 이내에서 운용할 것을 재정준칙으로 삼고 있다. 

2019년에는 정부가 513조5,000억원의 슈퍼예산을 편성하면서 크게 논란이 됐다. 그 결과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3.6%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 비율이 3%를 초과한 것은 글로벌금융위기 이듬해인 2009년 이후 11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런데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불과 1년 만인 2020년에 약 2배인 5.8%를 기록했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그리고 저성장으로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건 모두가 인정하지만, 우리 경제의 자랑이던 재정건전성이 너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는 게 문제”라며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쌍둥이 적자 현상이 발생했을 때만 해도 우리가 (미국의) 재정수지 적자가 5%가 넘으면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는데 이번에 우리가 6%를 넘겼다는 건 우리나라로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숫자.”라고 우려했다.

 

문 정부, 나라 곳간을 천문학적 빚으로 채워 

 

신종 코로나19 사태로 나랏빚이 느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위기 시 시중의 유동성을 늘리는 정책은 경제학에서 필수적이다. 국민들도 그쯤은 이해한다. 그러나 문제는 나랏빚이 불어나는 속도, 재정운용의 방만함이다. 위 전문가들도 지적하듯이, 역사상 이렇게 빨리 빚을 늘린 정부는 없었다. 재정관리가 부실해지면 나라 경제가 망가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문 대통령은 2015년 9월 민주당 대표시절 “1997년 외환위기 속에서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2002년에는 관리재정수지를 흑자로 전환시켜 노무현 정부에 넘겨줬다.”며 박근혜 정부의 재정 상태와 비교해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도 흑자 재정을 만들어 이명박 정부에 넘겼다. 이때만 해도 나라 곳간에는 쓰고 남은 세금이 16조5000억원이 있었다.”고도 했다.

상황을 이렇게 잘 파악하고 있는 문 대통령이, 박근혜 정부의 재정적자를 걱정하며 재정관리를 잘하라고 질책했던 문재인 대표가 어찌 자신이 대통령이 된 후에는 180도 다른 행보를 보이는 걸까? 

앞선 진보적인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 보수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도 나라 곳간을 쓰고도 남은 돈으로 넉넉히 채웠다. 그런데 왜 야당 시절 그렇게 바닥난 재정을 성토했던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곳간을 여윳돈 대신 천문학적인 빚으로 채우려 하는가? 역대 모든 대통령이 지키고자 했던 국가채무비율 40%를 왜 한방에 허물어버렸는가? 

과거 “국가채무비율 마지노선인 40% 선을 넘었다.”며 박근혜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던 그 추상같은 신념과 호통은 어디에 내던졌는가? 이런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표변(豹變)에 국민들은 절망하며 땅을 친다. 

 

 ※이 글은 필자의 신간 <무너진 정의 :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내팽개친 공정 ‧ 민주주의>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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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9월23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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