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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패권 시대 : 신기술 승인·인증기관의 절대권력을 경계한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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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6월23일 17시10분

작성자

  • 김광두
  • 국가미래연구원 원장, GFIN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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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이 경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 핵심은 반도체, 통신기술이다. 이 기술은 4차 산업혁명의 성공적 추진과 안보 능력 강화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에는 절대권력기관들이 이런 국제 환경에 역행하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고, 정치인들은 모르거나 무관심하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짐이 국가다.”란 말로 유명하다. 그가 통치했던 프랑스는 절대왕정의 절대권력에 의하여 움직였다. 왕을 정점으로 귀족들이 모든 특권을 누렸고 시민들의 자유는 억압됐다. 이런 상황에 대한 저항은 용납되지 않았다.

 

영국에서 일어난 1차 산업혁명은 당시 영국사회의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에 가능했다. 시민들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산현장에서 쉽게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정치 사회적 질서가 형성되고, 그러한 활동에 대한 보상이 충분히 주어지는 제도적 장치가 갖추어져 있었다.

 

 때문에 당시 유럽의 강국이었던 프랑스가 아닌 약소국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에서 코로나19 백신이 제약회사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실용화된 것은, 스타트 업 벤처기업들 때문이었다. 이들이 암 극복을 위한 연구를 10여년 간 꾸준히 진행해온 결과를 코로나19 예방 목적에 원용한 결과이다. 이런 실용화가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해당 국가들의 승인·인증기관들의 발 빠른 움직임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만약 이런 벤처기업들이 한국에 있었다면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에디슨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발명왕이 되었을까? 이런 질문과 유사한 의문이다.

 

좋은 성과를 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의 신기술 인증기관들의 관료적 경직성과 전문성 부족, 그리고 잠재적 기득권 카르텔 구조 때문이다. 이 기관들의 심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시간이 부지하세월로 흘러 적절한 실용화 시점을 놓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관리청, 중소벤처기업부 등등 다수의 기관들이 각종 인증과 인·허가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 기관들은 흔히 기술적 전문성을 내세워 자기들의 절대적 권위를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성역이다. 이들의 “규격에 맞지 않다, 위험하다”는 등등의 주장에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다. 그 권위는 이 기관들의 실무자 수준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상급자의 의견이 실무자들에 의해서 거부될 수 있고, 그 근거로 전문적 식견을 내세우면 어쩔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을 개혁의 최우선 대상기관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기술 패권시대에는 산업의 기술경쟁력 강화가 국민들의 민생을 더욱 윤택하게 해줄 수 있다는 관점에서 이런 다수의 인증 승인 기관들의 개혁도 그 중요성이 검찰개혁 못지않다고 본다.

이 기관들이 보여주고 있는 마치 절대권력과 같은 이런 행태는 정치민주화는 물론 경제민주화와 상충되기도 한다..

 

산업 현장에서 보는 기술의 변화속도는 인증 관료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 인증·승인 권력을 가진 관료들이 어제까지 존재한 기술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신기술은 저 앞에 가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관련법규도 과거형이지 미래형일수 없다. 과거의 기술을 기준으로 한 법규와 인식 구조를 바탕으로 신기술을 심사 평가하여 인증 승인하고 있는 시스템에서 신기술이 신속하게 인증 승인 받기란 쉽지 않다.

 

거의 모든 신기술은 위험성을 내포한다. 새롭다는 것은 과거와의 차별 또는 단절을 의미한다. 때문에 익숙한 경험의 안전성 범위를 벗어나는 낯 설은 경험에 부딪히게 되고, 그것은 실패의 위험을 내포한다. 특히 그 실패가 재난 재해나 국민건강에 저해되는 사항과 연계된다면,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신기술 승인 인증기관들의 절대권력 행태의 논리적 뿌리가 여기에 있다. 만약 어떤 벤처기업이 이 기관들에 저항하면 루이 14세치하의 프랑스 시민처럼 견디기 힘든 고초를 겪어야 할 것이다. 이 회사들은 금융회사들이 금감원에 대들거나, 억울한 피의자가 검찰에 대드는 것보다 더 혹독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인증 승인기관들의 위험성 회피 논리는 그 자체로선 타당하다. 그런데 그 논리가 성립하려면 해당 기관의 전문성이 관련 벤처기업보다 우위에 있어야하고, 신기술의 승인이나 인증으로 인해 시장을 잃게 될 기존 기업들의 영향력 범위 밖에 있어야 한다. 한국의 식약처, 중소벤처기업부 등등 승인 인증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기관들의 현 상황은 어떨까?

 

왜 한국에서는 승인이 지체되고 있는 신기술이 실리콘밸리나 영국 등에서는 신속하게 승인받고 있을까? 이 나라들의 관련 기관들이 무책임해서? 전문성이 뒤떨어져서? 구체적 사안에 대한 비교 연구가 필요한 부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망각하면 안 되는 현실은 신기술에 의해서 경제 산업 생태계가 지각변동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흐름에 적응하지 못 하거나, 선도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더 발전하지 못함은 물론 상대적 후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들 기관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직원 재교육 훈련 제도의 미흡으로 오랫동안 일상적 업무에 시달리다 보면, 새로운 기술의 흐름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만약 신기술이 내포한 위험성이 현장에서 실제화 될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부담도 크다. 업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친숙해진 기존 업계와의 인간적 관계를 쉽게 버리는 것도 다하게 얽혀있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은 공무원 교육 훈련제도의 확충, 업무량 증대에 따른 인력 증원, 적극적 행정에 대한 면책 범위의 확대 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 기존 업계나 전문가 집단과 함께 형성하고 있는 기득권 카르텔은 그 해결이 쉽지는 않다. 잘 보이지 않고 구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현시점에서 세계에서 가장 신속하고 활발하게 신기술이 실용화되고 있는 실리콘 벨리의 인증 승인 기관들의 운용과 관련한 법규, 관료의 교육 훈련제도와 투입 예산, 기득권 카르텔의 작동 배제 등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이제 “있는 것을 나누자”는 80년대식 경제민주화 논의가 미래지향적 신기술 사업화 촉진을 통한 “진입문턱을 낮추어 산업 기업의 생태계를 바꾸자”는 논의로 진화해야 한다. 기존 은행들이 카뱅, K뱅의 신규 진입으로 큰 도전을 받고 있고, 전기자동차의 진입으로 엔진자동차 업계가 지각 변동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사업 기회의 균등”을 통한 신기술기업의 지속적 도전 가능성 제고가 이제부터 경제민주화의 키 워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국에는 현재 다한 신기술 인증·승인 기관들이 있다. 이들의 신기술 인증, 승인 행태에 대한 집중 조명과 분석, 그리고 실리콘 벨리의 승인 인증 행정 분석 등을 바탕으로 이 기관들을 기술패권경쟁 시대에 적합하게 개혁해야 한다. 특히 기득권 카르텔 문제는 공정 거래와 부정부패의 척결차원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

 

미국도 중국식 대규모 신기술 지원책을 시행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신기술 지원 규모는 상대적으로 현저히 약하다. 설상가상으로 신기술 인증·승인 기관의 절대권력은 오히려 신기술의 실용화를 저해하고 있다. 이대로 갈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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