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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61) 요즘은 거북하지만 가을이면 귀해지는 밤나무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1년06월18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21년06월20일 15시53분

작성자

  • 김도훈
  •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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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등산을 하거나 산책로를 걷다 보면 약간 거북한 냄새가 풍기는 곳을 자주 지나치게 됩니다. 어김없이 활짝 꽃을 피운 밤나무가 있는 곳이지요.

벌이 날아드는 것을 보면 밤꽃에도 꿀이 숨어 있는 셈인데 왜 다른 꽃들처럼 향기로운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밤꿀도 잘 알려져 있으니 이렇게 산지 곳곳에서 자라는 밤나무는 대표적인 밀원식물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밤나무는 흔히 도토리나무로도 불리는 참나무들이 가족을 이룬 참나무과에 속하는데 묘하게 꽃을 피우는 시기도 매우 다르고 (참나무들은 4월에 개화하고, 지금은 이미 도토리들을 달고 익혀가고 있습니다.), 보통 참나무들이 풍매화인 데 비해 밤나무는 충매화인 것을 보면 식물 가족들도 참으로 다하게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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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5일 판교 궁내마을 근처 숲의 만개한 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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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4일 성남 코이카 내 숲속 밤나무도 꽃을 만개

 

우리나라 산골 이름 중의 하나로 복사골과 밤골 혹은 밤나무골은 단골 이름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밤나무들이 참나무들에게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번식력과 생명력이 매우 강해서 어느 곳에서나 제법 왕성하게 자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 같습니다. 전통적으로 밤이 과일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매우 중요했으므로 어쩌면 곳곳에서 보호받는 나무들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 인근에서는 과천이 시흥과 함께 밤을 생산하는 밤골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과천이라는 이름의 앞 글자가 과일 果(열매 과)인 이유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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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7일 지산퍼블릭 골프장 밤나무 밤송이들이 탐스럽다.

 

국립 수목원장을 지낸 이유미 선생이 저서 ‘우리 나무 100가지’에서도 언급했듯이 밤은 우리 생활 속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지는 과일이었습니다. 일단 제사상에서 대추와 함께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여 왔고 <'棗栗柿李檎'(조율시이금)이라는 과일 올리는 순서를 아는 것이 제사 예절의 기본 정도로 인식되었지요.> 결혼식 이후 신랑 신부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폐백 자리에서도 밤은 자손의 번성을 상징하는 과일로 취급되어 왔으니까요. 그만큼 귀한 과일인 밤이기에 지금 잠시 거북한 냄새를 풍기는 것쯤은 눈감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흐드러지게 피는 밤꽃은 냄새도 이상하지만 정말 꽃이라고 부르기에는 이상한 모으로 피어납니다. 그냥 긴 술을 펼쳐놓은 듯한 어찌 보면 먼지털이 모 같기도 하지요. 그 밤꽃 중에서 윗부분에 펼쳐진 조금 북슬북슬한 술이 수꽃이라고 하고 그 아래로 조금 날씬한 모의 술이 암꽃이라고 합니다. 이 사실을 아는 분들도 별로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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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18일 용인 고기리 천변에 서 있는 밤나무의 만개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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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23일 강릉 선교장 경내의 밤나무 개화한 모습: 선교장 기와 지붕과도 어울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밤나무를 그냥 내버려 두는 방식으로 재배해 왔다고 합니다. 뚜렷한 품종이 많지 않았으나, 지역의 특산물로 이름을 붙인 평밤(함종밤), 주밤(불밤) 등이 유명하였다고 합니다. 1958년 무렵에는 외부에서 들어온 밤나무혹벌이 큰 피해를 주어 밤나무들이 거의 전멸하기에 이르자, 일본에서 해충에 강한 품종을 들여왔지만 이렇게 들여온 밤나무의 약점은 단맛이 약하다는 것이라고 하네요. 

 

필자의 애독서인 ‘나무백과’를 쓰신 원로 수목학자 임경빈 선생이 극찬한 약밤은 밤알은 작지만 맛이 “꿀맛” 같다고 합니다. 임선생에 의하면 약밤의 한자 藥(약 약)은 이때는 ‘좋은’이라는 의미로 쓰인 것으로, 약수, 약주, 약밥 등에서도 같은 의미로 쓰인 것이라고 합니다. 여하튼 약밤은 일명 天津甘栗(천진감율)이라고도 하니 중국에서 건너온 것인데 우리나라에는 그 맞은 편쯤 되는 대동강 근처에 많이 심어졌다고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평밤 혹은 함종밤이 바로 그것이었겠지요. 필자는 이 약밤나무와 약밤이 익은 모을 과학기술연구원 (KIST) 정문 앞에서 보았는데 보통 밤보다 밤송이 가시가 다소 부드럽게 보였습니다. 이렇게 장점이 많은 약밤나무는 아쉽게도 밤나무혹벌이라는 해충에 매우 약한 것이 큰 약점이라고 하니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 없듯이 나무도 그런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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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28일 KIST 앞 외국수목원의 약밤나무 밤송이들: 가시가 덜 뾰족하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떨어진 밤을 주워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과거에는 밤나무골의 밤은 익기가 무섭게 쟁취하듯이 없어지곤 하였던 것 같습니다. 도토리조차도 경쟁적으로 따가던 시절이니 당연한 일이었지요. 필자가 프랑스 유학을 하던 시절인 1980년대 후반기에 우리 가족들은 종종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을 산책하면서 밤나무골의 밤을 주워와서 삶아 먹곤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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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10일 정안휴게소 근처의 산을 덮고 있는 밤나무 과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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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23일 월악산 월악미륵사지의 밤나무: 오래 되어 지지목을 받치고 있다.

 

필자는 밤나무 등걸의 갈라지는 모이 워낙 거칠어서 목재로서의 가치는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이유미 선생에 의하면 세계 각국의 침목은 거의 밤나무 목재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재질이 단단하고 탄성이 커서 승차감이 좋아서라고 합니다. 또한 나무 속에 포함된 타닌 성분 때문에 잘 썩지 않는 특성도 작용했다고 하니, 사람이나 나무나 겉모으로만 판단해서는 곤란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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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6월18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21년06월20일 15시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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