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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북미대화의 재개 조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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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6월03일 16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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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성장
  •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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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하는 [정세와 정책 2021-6월호-제18호](2021.06.01.)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지난 4월 30일(현지시간)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진행되어 온 대북정책 검토가 완료됐다고 밝혔다. 당시 사키 대변인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가 유지된다면서 “우리의 정책은 일괄타결 달성에 초점을 두지 않을 것이며 전략적 인내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트럼프 행정부나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반복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미국의 정책은 북한과의 외교에 열려있고 “외교를 모색하는 실용적이고 조정된 접근”이라고 설명했다. 본고는 이같은 미국의 새로운 대북정책이 어떠한 긍정적 측면과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 먼저 분석하고, 북미대화의 재개 조건에 대한 북한의 입장과 딜레마를 고찰한 후 한국정부의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평가: 긍정적 측면과 한계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에만 해도 한미 간에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과 대북정책에는 매우 큰 이견이 존재했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와 한미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협의 과정에서 양국 간에 대북정책에 대한 이견이 상당히 좁혀졌다.

 

지난 5월 21일 백악관에서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은 바이든 행정부가 실용적, 점진적, 단계적, 유연한 방식으로 북한과의 대화에 접근할 것임을 확인시켜주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굉장히 실현하기 어려운 목표’임을 인정하면서 ‘실용적인 접근’을 강조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관계자들은 애초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의 정상회담에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미 정상 공동성명은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의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는 공동의 믿음”을 재확인했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김정은의 말만 가지고 북한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며 미 국무장관이나 다른 당국자가 먼저 북한과 협상을 진행해 구체적인 합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과 북한의 협상팀이 먼저 만나 핵무기 감축과 긴장완화 등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이루어져야 미북정상회담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는 실제에 있어서는 트럼프와는 다른 대북 접근법을 추구하면서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남북한의 입장을 배려하는 유연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지난 4월 16일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 후 발표된 공동성명에서는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도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북한을 바이든 행정부가 배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후 기자회견 과정에서 올해 1월 스티브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이 퇴임함으로써 4개월간 공석으로 남아있었던 대북특별대표에 성 김(한국명 김성용)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을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성 김은 서울 태생으로 1970년대 중반 부친을 따라 미국에 이민해 1988년 외교관이 된 인물이다. 그는 2002∼2006년 주한 미대사관 정무참사관을, 2006∼2008년 국무부 한국과장을, 2008년 7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냈으며 이어 2014년 10월까지 주한미국대사를 역임했다. 그 후 성 김은 필리핀 대사로 재직하면서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회담 전날까지 최선희 당시 북한 외무성 부상과 합의문을 조율했고, 동년 10월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에도 동행하는 등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도 북미협상에 관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처럼 북핵 문제와 한국을 모두 잘 아는 한국계 외교관을 대북특별대표에 임명함으로써 한국과의 긴밀한 조율 하에 북한과의 실무협상을 통해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어내고자 하는 그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서 2018년 판문점 선언을 인정하는 입장을 보이기는 했지만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한반도 ‘종전선언’과 남북협력사업(금강산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 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비록 한미 정상이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 제공과 이산가족 상봉 촉진 지원에 합의했지만 북한은 이 같은 지원에 부정적 입장을 보여왔다.

바이든 행정부가 현재 매우 유연한 대북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북한에 대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중국의 적극적 협조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북한의 협상 태도를 변화시키는데 명백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행정부가 미중과 남북한이 참여하는 북핵 4자회담이나 일본, 러시아까지 참여하는 6자회담 추진 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직까지도 적실성 있는 대북 협상전략을 마련하지 못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미대화 재개에 대한 북한의 입장과 딜레마

 

현재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과의 실무협상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북미대화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북한의 호응이 필수적이다.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유연한 대북 접근을 선택함으로써 북한의 대미 입장에도 향후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김정은은 올해 1월에 개최된 8차 노동당 대회에서 향후 “대외정치 활동을 우리 혁명 발전의 기본장애물,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지향시켜나가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미국에 대해 ‘최대의 주적(主敵)’이라는 매우 강경한 표현을 사용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누가 집권하든 미국이라는 실체와 대조선 정책의 본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은 또한 사업총화보고를 통해 “새로운 조미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 데 있다고 하면서 앞으로도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는 입장을 천명했다.

 

지난 3월 18일에는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담화를 발표해 바이든 행정부가 2월 중순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대북 접촉을 시도해왔지만 무시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미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한 그 어떤 조미접촉이나 대화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미국의 접촉시도를 무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대미정책을 주관하고 있는 최선희는 또한 “미국에서 정권이 바뀐 이후 울려나온 소리는 광기어린 《북조선위협》설과 무턱대고 줴치는 《완전한 비핵화》타령뿐이였다”고 바이든 행정부를 비난했다.

 

최선희는 3월 18일 담화에서 “싱가포르나 하노이에서와 같은 기회를 다시는 주지 않을 것임을 명백히 한다.”라고 밝힘으로써 미국과 다시 영변 핵시설의 폐기에 대해 논의하지 않겠다는 비타협적 입장을 드러냈다. 그리고 “미국이 즐겨 써먹는 제재 장난질도 우리는 기꺼이 받아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현재 북한 지도부가 언급하고 있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에는 한미연합군사훈련뿐만 아니라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배치 및 미국의 대북 정찰 활동, 한미의 북한 급변사태 대비 계획 수립, 미국의 북한 인권 비판, 북한의 인공위성로켓과 단거리로켓 발사 등에 대한 대북 제재 등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이 이 같은 ‘대북 적대정책’을 먼저 철회해야 북한이 미국과의 접촉이나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은 달리 말해 미국과 대화할 의사가 없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북한이 이처첨 미국이 수용할 수 없는 강경한 조건을 고수한다면 북한은 언제까지나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없고 북한경제의 회복과 발전도 쉽지 않을 것이다.

 

미북 협상에서 처음부터 북한이 수용하기 어려운 핵 리스트 신고를 요구하면서 ‘선 비핵화, 후 제재완화’라는 일방주의적인 입장을 취했던 트럼프 행정부와 다르게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와 상응조치 교환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같은 대북 접근법은 과거에 김정은이 트럼프 행정부에게 요구했던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북한은 한국정부의 노력에 의해 어렵게 마련된 바이든 행정부와의 좋은 협상 기회를 스스로 발로 차버리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18년 신년사에서 미국에 대해 초강경 입장을 보였던 김정은이 이후 한국의 지원을 받아 북미대화에 나서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처럼, 올해에도 김정은은 다시 바이든 행정부 및 주변국들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 그가 집권 직후 대내외에 약속한 것처럼 주민들이 다시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북한의 핵능력 감축과 대북제재 완화에 대한 북미 합의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북핵 4자회담의 필요성과 한국정부의 과제

 

북한과 미국 간에는 매우 뿌리 깊은 불신과 적대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양국이 협상을 통해 핵심 현안들에 대해 접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북미 간에 대타협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미국의 입장을 잘 이해하면서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한국과 북한의 입장을 잘 이해하면서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중국이 참여하는 미중과 남북한의 북핵 4자회담 개최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와 관련, 중국이 올해초부터 한반도 문제의 외교적 해결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고, 약 2년간 공석으로 남아있었던 한반도사무특별대표직에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주북한 대사를 역임했던 류샤오밍(劉曉明) 영국 주재 대사를 지난 4월 한중외교장관회담 후 임명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 정부는 코로나 방역과 인도주의적 문제 등에서 남북협력을 추진함으로써 북미 협상과 남북 협의를 상호 추동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김정은은 올해 1월 제8차 당대회에서 남한이 첨단군사장비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해야 한다는 북한의 거듭되는 경고를 계속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가 방역협력, 인도주의적 협력, 개별관광 같은 비본질적인 문제들을 꺼내 들고 남북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따라서 한국정부가 방역협력 등을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한국정부는 방역협력이나 인도주의적 협력과 같은 낮은 수준의 협력보다 미국과 중국, 남북한 등이 참가하는 북핵 다자회담 개최를 통해 북한의 단계적 핵능력 감축과 대북 제재 완화, 한미연합훈련의 축소나 중단,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북미 관계 개선 등에 대해 관련국들이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합의안 도출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현재 코로나19의 국내 확산에 대한 우려로 대외협상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한국정부는 우선 4자 화상실무회담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여력이 생기면 북한에 백신과 치료제를 제공하면서 북한이 한국 및 국제사회와의 대면 대화와 교류에도 나올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정부는 북한과의 대화를 추구하면서도 비핵화 협상의 실패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대해서도 동시에 대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를 적극적으로 설득해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의 미사일 개발을 제약해온 한미미사일지침의 종료를 이끌어낸 것은 매우 중요한 성과이다. 그런데 한국정부가 향후 전략사령부 창설을 통해 육군과 공군, 해군이 각기 운용하고 있는 미사일에 대한 통합된 지휘운용체계를 수립하지 않는다면 향후 미사일 개발과정에서 수많은 국고 낭비가 이루어지고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한 효율적 대응도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전략사령부 창설을 다시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전작권 전환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략과 체계를 수립해야 할 것이다. 북한과의 무한 군비경쟁 대신 기존의 군사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남북대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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