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52) 자작나무와 서어나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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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매화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식물의 번식에 필수적인 꽃가루가 암술의 씨방에 맺어지는 수정을 벌이나 나비와 같은 곤충을 매개로 하지 않고 바람을 매개로 하는 꽃을 일컫는 말입니다. 봄에 꽃가루가 날려 알레르기를 겪는 분들은 예쁘게 피어 있는 꽃들도 두려워하며 접근하기를 꺼리는 수가 있는데 그건 틀린 행동입니다. 매화, 벚꽃, 장미, 수수꽃다리, 진달래, 철쭉 등 우리가 예쁘다고 하는 꽃들은 방문하는 곤충의 몸에 꽃가루를 묻히려고 그 꽃가루들이 비교적 점성을 가지기 때문에 좀처럼 그 꽃가루가 바람에 날리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산에 가면 우리가 만나는 나무들의 90% 이상은 예쁜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 소나무 종류, 참나무 종류 모두가 그다지 예쁜 꽃을 피우지 않지요. 우리가 매일 먹는 쌀, 밀, 보리, 옥수수 등의 곡물들은 대부분 벼과 식물들인데 이들이 피우는 꽃들도 풍매화들입니다.
풍매화를 꽃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분들이 대부분일 듯합니다. 흔히 우리가 꽃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이미지는 바로 예쁜 색으로 물들인 꽃잎 몇 장으로 꽃의 몸체를 만들고 그 안에 암술과 수술을 단 모습일 테니까요. 풍매화는 이런 꽃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산에서 만나는 풍매화 나무들의 수꽃은 대부분 꽃가루를 잔뜩 머금은 작은 실타래 모양을 하고 아래로 축축 늘어지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이 수꽃에서 날아간 꽃가루를 받기 위한 암꽃들은 대체로 가지 위로 꼿꼿이 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이렇게 설명하면 짖꿎은 분들은 식물들은 왜 이렇게 동물들과 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느냐고 반문하곤 합니다.
우리가 즐겨 방문하여 거니는 공원, 대학 캠퍼스, 산책길 그리고 아파트 단지의 정원 등에 심는 나무들은 무언가 자랑할 만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꽃이지요. 그 다음 요소가 아마도 예쁜 열매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멋진 초록색 잎은 그냥 모든 식물이 가진 것이라고 본다면 말이지요. 풍매화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런 장소들에 초대받기에는 매우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들의 경우 사시사철 푸른 잎을 달고 있다는 점이 그 불리함을 만회할 수 있는 요소인 것 같습니다. 은행나무나 메타세콰이어 같은 나무들은 키가 커서 그늘도 만들어주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덕분에 겨우 초대받고 있고, 단풍나무 종류는 가을에 잎을 예쁘게 물들여서 불리함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원 등에서 흔히 만나는 자작나무와 서어나무는 그런 요소도 없는데 어떻게 종종 초대되는 것일까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자작나무에 대해서는 그 하얀 색의 깔끔한 이미지의 나무 등걸을 떠올릴 것 같습니다. 그 등걸을 무기로 이 자작나무는 곳곳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 나무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 기품있는 모습에 반해서 아마도 귀족적인 나무라서 ‘자작’ 칭호를 붙였나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이름 자작나무는 특이하게도 이 흰 껍질을 벗겨 불을 태우면 그 안에 배어 있는 기름이 타면서 ‘자작자작’ 하는 소리를 내어서 붙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름을 머금은 이 나무껍질을 북쪽 산촌에서는 지붕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비를 막는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이었겠지요. 필자의 뇌리 속에 남아 있는 이 나무의 가장 기품 있는 이미지는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눈으로 덮여 있는 러시아 중부 지방에 눈 색깔만큼 흰 모습으로 죽죽 늘어서 있던 나무들의 모습입니다.
이 나무는 이렇게 추위에는 잘 견디지만 더위에는 약한 편인데 공원을 장식하기 위해서 억지로 남쪽 우리 주변에도 그렇게 많이 심겨 있는 셈입니다. 남쪽에서는 가장 유명한 자작나무 숲이 강원도 인제에 있는데 필자는 한 시간 가까이 산 정상으로 올라가서 이 나무 군락이 자아내는 장엄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작나무가 이곳에서 이렇게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 역시 이 나무가 추위에 강하기 때문에 높은 곳에서 견디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필자는 여름에 방문했는데 더 장엄한 모습은 겨울에 가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서어나무는 어떤 무기를 가지고 있을까요? 서어나무의 등걸도 자세히 보면 매우 매력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등걸 전체가 매끈한 편인데 나이가 들면서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등걸에 울퉁불퉁한 굴곡이 지며 자라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무 책을 쓴 분들이 이 나무를 소개할 때도 이 나무의 등걸의 특징을 가리키면서 마치 ‘보디빌더’의 근육질 다리처럼 생겼다고 할 정도이지요.
필자에게 이 나무가 왜 서어나무로 불리냐고 묻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궁궐의 우리 나무’를 쓴 박상진 선생은 이 나무가 과거 이유는 모르지만 ‘西木(서목)’이라 불리다가 서나무 그리고 서어나무가 되었다고 설명하는데 다소 싱거운 것 같습니다.
필자는 이 나무의 가치를 여름이 지날 무렵에 달리는 묘한 열매 이삭의 모습에서 찾고 있습니다. 열매 한 알씩을 감싸고 있는 깃털 같은 초록 조직(포라고 부릅니다.)들이 겹쳐져서 주렁주렁 아래로 처지며 달린 모습은 벌레집 같기도 하고 매우 기하학적이기도 해서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열매 이삭 조직은 늦가을 잎이 다 떨어진 뒤에도 서어나무에 달려 있기도 해서 묘한 정취를 자아내기도 합니다.
앞에서 소개한 자작나무가 남쪽 산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데 비해 (종종 일부러 식재한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서어나무는 우리 주변 산에서 흔히 만날 수 있습니다. 참나무들에 비해 키도 작고 열매도 작은 편이라서 경쟁력이 그다지 없어 보이는데 잘 견디며 숲 속의 일원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나무학자들에 의하면 이 나무가 참으로 쓸모가 없어서 그렇다고 하네요. 나무를 잘라서 목재로 쓰려고 해도 그 울퉁불퉁한 모습 때문에 불편하고, 목재의 성질도 보기와는 다르게 단단하지도 않고 쉬 부패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약재로 쓰일 특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는데, 바로 이 점이 이 나무의 경쟁력이라고 합니다.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에 이 나무를 베어 가려 하지 않았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살아남을 수있었다는 것이지요. 인간사에서도 이런 현상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다소 씁쓸한 느낌도 가지게 됩니다.
이번 주에 이 두 나무를 소개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때가 이 두 나무들의 꽃을 많이 볼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꽃이라 하기에는 다소 불편한 모습이지만 밑으로 축 늘어진 모습을 한 가는 실타래 모양의 수꽃과 (자작나무의 경우) 가지 위로 꼿꼿이 서 있는 암꽃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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