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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맞으며> 세모(歲暮)의 단상(斷想)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1년01월03일 17시10분

작성자

  • 조장옥
  • 서강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前 한국경제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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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안팎으로 지난 한 해는 그야말로 다사다난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코로나의 대유행, 부동산가격의 요동과 정책실패,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 등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한 해가 이렇듯 정상이라고 보기 어려운 사건들로 점철된 경우는 일부러 그러려 해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위기로 통치의 실패가 가려져 있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위기 다음이 더 걱정이다. 다수당을 차지한 여당은, 그 동안 세계역사에서 존재한 적이 없는 무슨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겠다고 온갖 법안을 쌓아가고 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이나 국민과는 괴리된 무언가에 취해 있다. 그가 하는 발언은 왜 그리 거리의 사람들과는 먼 것인가? 국난을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위기 다음에 과연 빠르게 정상이 회복될 것인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후보 문재인의 공약집 제목이 ‘나라를 나라답게’이다. 이게 그가 꿈꾼 나라다운 나라인가? 

 

혹한이 온다는데 마당 가 철없는 명자나무에 벌써 꽃망울이 맺혔다. 시든 장미꽃은 말라가고 새로 올라온 꽃봉오리는 얼었다. 지난 3월에 탄생 50일 만에 입양한, 참을 수 없이 귀엽던 그 강아지는 이제 성견이다. 밤에 짖는다고 이웃이 경찰을 불렀다. 시골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가 그 정도로 거슬릴까 싶어 화가 낫다. 낮술 한잔 된 김에 다퉜다. 크게 반성한다. 

 

세모(歲暮), 온갖 상념 가운데 무엇보다도 걱정은 전염병이고 나라살림이다. 누구보다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의료인들, 소상공인들께 응원을 보내고 싶다. 새해를 맞으며, 시련이 우리를 단단하게 하고 더욱 뭉치게 하길 빌어본다. 지난 한 해 썼던 잡문 몇 개를 고쳐 써 여기 싣는다.   

 

우리는 언제나 역사의 한 가운데 있다

 

유럽의 역사를 읽다보면 왕가 사이의 빈번한 혼인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나라가 왕의 사유물처럼 상속되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왕이 서거하였을 때 국가가 다른 나라의 군주 혹은 누군가에게 상속되기도 하고 다른 나라를 상속받기도 하였다. 때로는 이와 같은 상속에 의하여 대제국이 탄생하기도 하였다. 

 

스페인의 카를로스 1세와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1500-1558)는 동일 인물로 그가 상속받은 나라가 그랬다. 상속받은 나라가 다르니 왕명도 나라에 따라 달리 불렸던 것이다. 1519년이 되면 상속에 의하여 그는 스페인, 네덜란드, 부르고뉴, 독일, 오스트리아, 보헤미아, 헝가리와 이태리의 일부를 차례로 거느리게 된다. 그와 더불어 콜럼버스가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적극적으로 신대륙의 정복에 나선 것이 스페인이었다. 코르테스와 피사로로 하여금 마야와 잉카를 정복하도록 허락한 것도 그였으며 마젤란의 세계일주항해가 이루어진 것도 그의 치세에서다. ‘태양이지지 않는 제국’이라고 하면 영국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그 원조는 스페인이었다. 

 

16세기 신대륙에서 막대한 금과 은이 유럽으로 유입되었다. 신대륙에서 유럽으로 유입되는 귀금속은 스페인의 세비야로 집중되도록 되어있었다. 세비야에 금과 은의 무역을 관리하는 무역거래소(Casa de la Contratación)가 있었다. 이를 통해 신대륙에서 유입된 금과 은은 유럽의 각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신대륙의 귀금속은 한 세기 가까이 유럽의 물가를 상승시키고 그것이 자본주의의 근본이 되는 자본 축적의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알려져 있다. 

 

카를로스 1세가 다스리는 영역은 불란서를 에워싸고 있었다.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다. 당시 유럽은 만만치 않은 세력가들이 다스리고 있었다. 카를로스 1세를 비롯하여 지금도 불란서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군주라는 프랑수와 1세, 영국을 로마 가톨릭의 지배로부터 독립시킨 헨리 8세 등 서로 잘 지내기가 쉽지 않은 절대군주들의 치세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런저런 이유로 전쟁도 끊이지 않았다. 신흥 이슬람 세력인 오토만 제국과도 전쟁이 없을 수가 없었다.   

 

1556년 스페인, 네덜란드 등은 아들 펠리페 2세에게,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보헤미아 등 신성로마제국은 동생 페르디난드 1세에게 제국을 분할하여 양위하고 카를로스 1세는 스페인의 한 수도원에서 여생을 마친다. 그가 아들에게 물려준 것은 양분된 제국만이 아니었다. 막대한 국가부채와 재정적자도 함께 물려주었다. 

 

펠리페 2세, 그 자신도 만만찮은 호사가였다. 특히 가톨릭교회의 수호자로서 루터 이후 크게 일어서고 있던 신흥 개혁종교에 대하여 적대적이었다. 개신교 세력의 핵심이었던 네덜란드에 대한 탄압으로 독립전쟁이 촉발되었고 그것이 길고 긴 80년 전쟁이다. 개신교 국가인 영국을 쳐부수겠다고 보낸 무적함대가 참패를 당한 것도 그의 치세이다. 펠리페 2세는 1557, 1560, 1569, 1575과 1596년 국가파산을 선언하였다. 당시에는 왕이 파산한다고 채권자들이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 이후 스페인은 60여 년 동안 여섯 번 더 국가파산을 선언한다. 그리고 다시는 카를로스 1세나 펠리페 2세 시대의 국가적 위세를 회복하지 못한다. 

     

유럽의 강국 스페인이 몰락하는 과정을 보면 국정이라는 것이 쓸모없는 이념과 감정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우리는 언제나 역사 한가운데 있다. 지금의 잘못을 바로잡기에는 이미 늦게 되는 시간이 온다. 그래서 두려운 것이다. 지금 코로나와의 전쟁 중이다. 그러나 빚을 내서 전쟁을 치르는 후과를 어찌할 것인가.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GDP대비 국가부채비율이 39%에서 44%로 증가하니 벌벌 떤다고 폄하한다. 국가부채가 무엇인지 모르는 참으로 한심한 인사다. 이재명 지사! 고개를 들어 우리가 서있는 역사의 한 가운데를 보라. 

 

자본주의는 멈춰서 있을 수가 없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짧다. 18세기 중반 이후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노동 이외의 생산수단이 중요해지면서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면 너무 좁게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공장이나 기계설비와 같은 생산수단의 소유가 노동과 괴리되면서 자본가 계급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을 산업혁명과 분리해서 생각하기는 어렵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주로 상업 자본이었다. 자본주의의 출현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나 새로운 기술과 생산수단의 축적을 통해서가 아니라 교역과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것이다. 

 

당시 동양과 서양의 무역에서 중요한 품목이 비단과 향료였다. 비단은 동양 특히 중국의 특산품이었다.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비단의 생산이 이루어졌지만 유럽에 비단 생산기술이 알려진 것은 10세기 이후 이탈리아이다. 그리고 제노아, 베네치아, 피렌체 등 지중해의 무역도시에서 비단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더 늦은 12세기경이다.

 

비단보다 더 큰 이득은 향료의 무역으로부터 발생하였다. 향료를 한가득 싣고 동양으로부터 유럽의 항구에 큰 배가 무사히 도착하면 그 가치가 왕실의 1년 재정에 버금갈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 향료에 대한 수요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해적이나 풍랑과 같은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으나 그만큼 수지가 맞는 장사였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허락(Royal Charter)을 얻어 영국이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를 1600년 처음 설립하고 네덜란드와 프랑스 등이 뒤따른 것도 향료 때문이었다.

 

신대륙이 발견되고 얼마 되지 않아 금과 은광이 발견되면서 다량의 귀금속이 유럽으로 유입되었다. 그 가운데 특히 은은 많은 양이 동양으로 유출되었다. 산업혁명으로 면직물이 섬유의 대종으로 등장하기 이전까지 동양과의 무역에서 유럽은 항상 적자였다. 수입의 50% 이상이던 적자를 동양인들이 선호하던 신대륙의 은으로 메꾼 것이다. 

 

16세기 이후 이와 같이 활발해진 무역과 신대륙의 발견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생활수준 개선은 미미하였다. 산업혁명이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거의 모든 사람의 경제적인 형편이 개선된 것은 기술진보와 자본 축적에 따라 자본주가 등장한 산업혁명 이후이기 때문이다. 

 

등장한 이후 자본주의는 멈춰선 적이 없다. 간혹 멈춰 세운 나라가 있었으나 그때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0세기 전반에 아르헨티나가 그랬고 후반에는 구소련이 그랬다. 지금은 베네수엘라가 그렇다. 역사에서 이보다 분명한 교훈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자본주의를 멈춰 세우면 새로운 낙원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위정자들이 아직 이 나라에는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궤변으로 시작한 문재인정부의 치세가 이제 1년 반도 채 남지 않았다. 자본주의를 그토록 미워하여 이룩한 것이 무엇인가? 이제는 부동산시장과 사유재산에 가하는 중과세와 규제가 자본주의를 멈춰 세울 기세다. 어떻게 자본주의 경제의 작용원리를 이토록 이해하지 못하는 인사들로 정부와 참모를 꾸릴 수 있는지도 경이롭다. 온갖 악법을 스스럼없이 제정하는 거대여당 또한 대단하다. 이런 식이면 대통령 문재인과 여당은 함께 침몰할 것이다. 서서히, 서서히, 서서히! 

 

다시 한 번 피력하지만 자본주의는 멈춰서 있을 수가 없다. 멈춰 세우면 그 순간부터 후퇴한다. 허황된 구호로 해가 뜨고 날이 지더니 어느덧 끝이 보이기 시작하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시장과 자본주의를 멈춰 세워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망상을 버리지 않는 한 그 무엇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정해진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닥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이 아니다

 

작은 도시국가 로마가 어떻게 전무후무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여러 가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느 가설에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애국심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시민군을 편성하였는데 군에 소집이 되면 필요한 장비와 식량을 스스로 준비하여 참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를 위해 전쟁에 참가한다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여겼다. 소집되지 못한 시민은 큰 불명예와 수치라고 생각하였다.

 

오랜 공화정 동안 위대한 양심들이 지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킨키나투스(Lucius Quintius Cincinnatus, 519-430 BC)는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농부이자 군인이었다. 한 번은 이웃 국가의 침입으로 다른 한 번은 내부 반란으로 로마가 심각한 위기에 놓였을 때 원로원은 그를 독재관에 임명하였다. 독재관은 나라의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왕과 같은 자리였다. 물론 위기극복을 위해 일시적으로 임명되었다.   

 

위기가 수습되자마자 그는 하루도 지체하지 않고 독재관의 자리를 내려놓고 농부로 돌아갔다. 여담이지만 그로부터 2,200년 이상이 지난 다음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 또한 킨키나투스의 전례를 따랐다. 그는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왕으로 등극하여 왕정을 펼칠 것을 권고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였다. 두 번 임기의 대통령을 마치고 1797년 그 또한 버지니아의 농부로 돌아갔다. 

 

작은 도시국가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로 그리고 지중해 연안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아가는 데에는 이런 애국심이 가장 중요한 기초였다. 그런데 로마의 영토가 확장되면서 전쟁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한 번 전쟁터에 나아가면 몇 년씩 전장에 있어야만 하는 경우가 나타나면서 고향의 농토가 황폐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였다. 점점 로마시민의 애국심이 바닥나기 시작하였다. 로마 시민권이 이탈리아 반도로 확대된 것이 그 즈음이다. 군벌 사이에 내전이 확대되면서 군인 모집이 용이하도록 시민권을 확대한 것이다. 

 

원거리 전쟁과 희석된 시민권 때문에 로마 시민의 애국심이 예전 같지 않았을 것은 자명하다. 공화정이 제정으로 바뀌고 동과 서로 제국이 분할되면서 로마의 애국심은 더욱 크게 퇴락하였다. 시민군은 용병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힘이 센 외세에게는 금은보화의 뇌물을 제공하여 침입을 막았다. 이를 위해 막대한 세금이 징수되었다. 먼 옛날의 애국심은 간데없고 각자도생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끝내는 제국이 사상누각(沙上樓閣)이라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나라를 지탱하고 번영하게 하는 필요조건은 애국심이다. 애국심이 존재한다고 나라가 반드시 번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애국심 없이 나라가 번영하고 오래 유지되는 법은 없다. 애국심의 첫걸음은 나라의 법과 규칙을 지키는 것이다. 특별히 순교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 법과 규칙을 무시하고 나라와 권력을 사리사욕(私利私慾)과 당파의 이익에 종속시킴과 동시에 나라는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이 아니다. 

 

이 나라의 지도자라는 인사들의 일탈이 위험수준이다. 특별히 법과 규칙을 바로 세워야 할 법무부장관들이 법과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최악이다. 그런 사람들을 법무부장관에 임명하고 유지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가관(國家觀)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 나라는 대통령의 것도 법무부장관이나 민주당의 것도 아니다. 일시적으로 맡겨진 권력을 이런 식으로 행사한다는 것은 애국심에 크게 반하는 것이다. 파벌과 이념이 아니라 나라를 생각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나라를 위한 심모원려(深謀遠慮) 없이 행해지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정치와 정책이 염려스럽다. 이 나라의 미래가 염려스럽다.  

 

경제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경제학에 일어난 혁명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미래에 관하여 예측(기대)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1970년대 초반에 시작된 ‘합리적 기대혁명(rational expectations revolution)’의 요체는 경제주체들이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보고 기대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과거를 뒤돌아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경우에는 미래가 과거와 유사하지 않으면 기대 오차가 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낭패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미래까지를 고려하여 미래지향적으로 예측을 하면 그와 같이 큰 낭패를 피할 수 있다. 

 

기대가 ‘합리적’으로 형성된다고 해서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나 선택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투기와 거품이 그 가운데 대표적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거품은 수시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어떤 주식의 가격이 오르리라고 기대하면 미래에 시세차익을 누리기 위해 시장참여자들은 그 주식을 매입할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 주식가격은 상승한다. 물가가 오르리라고 예상하면 시장참여자들은 그 전에 재화를 구입하게 되고 실제로 물가는 상승한다. 

 

재미있는 것은 기대의 변화가 아무런 근거 없이 일어나는 경우에도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합리적인 예측(기대)을 자기실현적이라고 한다. 시장참여자들이 생각한 바가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대가 자기실현적이 되는 이유는 투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 가운데는 투기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장에서 투기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거래들이 한 둘이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투기는 해롭기보다 이로운 역할을 하는 경우가 오히려 많다. 모든 자원배분을 시장원리에 맡기자고 주장하는 이론가들은 투기의 위력을 믿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이든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여 가격이 상승할 것이 예상되면 당연히 그 전에 구매하고자 하는 (투기)수요가 증가하고 가격이 상승한다.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는 감소하고 공급이 증가하여 시장은 다시 안정적인 상태로 회귀한다. 

 

기대의 변화는 정부의 정책이 변화하는 경우에도 일어난다. 따라서 정책을 설계할 때에는 반드시 시장참여자들의 기대가 정책과 함께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고려하여야만 한다. 시장참여자들의 기대를 도외시한 정책은 반드시 실패한다. 그와 같은 정책실패가 문재인 정부에서 되풀이 되고 있다.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인사들은 매번 시장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더욱더 과격한 규제로 맞서곤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마 앞에서 언급한 부동산정책일 것이다. 매번 정책이 바뀔 때마다 시장의 반응은 반대로 가는 것을 보면서 정책변화에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까를 도대체 한 번쯤 생각해 보기는 하는 것일까 의심이 안 들 수가 없다. 이 나라의 부동산시장은 지금 정상이 아니다. 사사건건 규제로 맞서면서 오히려 서민들을 옥죄어 무주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주택정책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경제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문 정부는 국민을 사람 취급하는 것부터 배워야만 한다. 자기들이 선택하는 바에 따라 시장참여자들이 무슨 로봇처럼 따르리라고 보는 것임에 분명하다. 정책이 스물다섯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정책효과가 반대로 나오면 한 번쯤 성찰할 만도 하지 않은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책이 바뀌면 국민의 생각(기대)도 바뀐다. 인기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사람대접하는 정책만이 성공할 수 있다.  

 

송구영신(送舊迎新)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 때문에 일어나는 시간과 계절의 주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절묘하다. 올해가 다사다난 했던 만큼 새해에는 다행·다복이었으면 하고 빌어본다. 무엇보다 예방백신을 신속히 확보하여 코로나 걱정 없는 일상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기를 빈다. 당국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라는 요기 베라의 명언을 다시 한 번 상기할 것을 당부하고 싶다. 

 

국가미래연구원이 10년이 되었다고 한다. 축하한다. 한국의 민간 싱크 탱크의 중심이 될 것으로 기대해 마지않는다. 다가오는 소의 해, 국가미래연구원과 인연이 있는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운을 빈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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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1월03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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