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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국제정세] ② 지정학의 귀환과 강대국 관계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1년01월01일 16시00분
  • 최종수정 2021년01월01일 11시44분

작성자

  • 이상현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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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세종연구원이 발간하는 [정세와 정책 2020-특집호-제36호]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편집자>​

 

지정학의 귀환

 

근간 국제질서에서 뚜렷한 추세 중 하나는 흔히 ‘지정학의 귀환’으로 불리는 강대국 정치의 부상이다.주1) 

냉전이 끝났을 때 대부분의 서구인들은 국제정치에서 가장 골치 아픈 지정학적 문제 중 하나가 해결됐다고 안도했다. 소련의 붕괴는 공산주의에 대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의 승리로 이해되었다. 전체주의와 자유민주주의 간 오랜 이념적 투쟁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최종적 승리를 거두었다는 의미에서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이를 ‘역사의 종언’이라고 불렀다.

 

 이념 대결의 역사가 끝나자 국제정치 분야의 관심은 지정학에서 경제와 비확산, 기후변화나 통상 같은 분야로 옮겨갔다. 냉전의 종식을 목도한 빌 클린턴 행정부는 국방부와 국무부의 예산을 크게 줄였다. 9.11 테러가 터지자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중동에 근거를 둔 테러조직이 가장 위험스런 적이라고 판단하고 글로벌 차원의 대(對)테러전에 집중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이 다소 과도한 것이라는 평가 하에 전통적인 지정학에 주목하는 대신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유지에 최우선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틈을 비집고 등장한 것이 바로 중국, 러시아, 이란 등 수정주의 국가들이다. 냉전 종식 후 안착된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반기를 들고 나선 이들의 공통점은 국제질서의 현상을 변개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할 수 있는 한 소비에트연방 시절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중국은 국제체제의 이류국가 위상에 만족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수니파가 주도하는 중동의 질서를 테헤란 중심으로 바꾸려고 한다. 

 

이러한 수정주의적 야망을 가로막는 것은 바로 미국이다. 하지만 이들은 미국과의 직접 대결 대신 미국이 쳐놓은 규범과 그에 입각한 관계의 기저를 조금씩 잠식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수정주의 세력의 대두에 비해 미국인들은 현 국제질서의 효용에 의구심을 갖고 있을뿐 아니라 탈냉전 시대에는 미국이 국제질서를 위해 덜 쓰고 더 받아내야 한다는 엘리트들의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미국인들은 국내건 해외건 대규모의 새로운 정책구상 추진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지정학의 귀환 주장에 대해 오히려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건재를 주장하는 시각도 있다. 존 아이켄베리는 지정학의 귀환이 현존 국제질서의 성격을 크게 곡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이켄베리는 현 국제질서가 비자유주의 국가들의 일시적 성공이나 지정학적 갈등이 결코 흔들 수 없는 심층적 차원으로 구성된 것으로서 중국이나 러시아도 완전한 수정주의 국가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훼방자일뿐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근본적 위협이 되지는 못한다고 주장한다.주2) 

 

지정학의 복귀 현상은 영토와 영해의 통제를 둘러싼 갈등의 심화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지정학은 영토(영해)의 관할권과 거기에 사는 인구의 구성과 특징 및 경제적 차원을 포함하는 문제이다. 이는 결국 ‘누가 어디에 사는가(who lives where)?’의 문제와 직결된다. 국가라는 형태의 영토적인 경계와 구획은 민족·국가 정체성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영토적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고, 16세기 근대국가 형성 이래 오늘날까지 ‘국가주권-영토-민족·국가 정체성’은 국제체제의 핵심 요소로 간주돼왔다. 러시아가 구소련 지역의 영토와 주민에 대한 야심을 포기하지 않는 것과 중국이 동·남중국해 해양안보와 영유권을 추구하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강대국 전략경쟁

 

 지정학의 귀환 이면에는 강대국 간 정체성의 정치가 자리 잡고 있다. ‘정체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란 상이한 집단에 속하는 구성원들 간에 존재하는 포용(inclusion)과 배제(exclusion)의 정도를 결정하는 동학을 의미한다. 타자와의 구분 및 관계 설정이라는 차원에서 포용성과 배타성은 정체성의 정치의 결과를 가르는 핵심 요소가 된다. 정체성이 포용적이냐 배타적이냐에 따라서, 즉 자신과 구분되는 타자가 공존할 수 없는 적인지, 상호 공존하는 경쟁자인지, 또는 상호 협력하는 친구인지에 따라서 국제정치에서 행위의 선택과 그 결과는 대립과 갈등, 폭력적 분쟁 및 전쟁, 경쟁, 협력 등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강대국 전략경쟁은 상당 부분 이러한 정체성의 정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2020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미 진행 중이던 강대국 전략경쟁을 더욱 악화시킬 전망이다. 코로나19로 사람과 물자의 자유로운 이동이 차단되면서 나타난 가장 뚜렷한 징후로는 세계화의 후퇴 및 반세계화 정서의 부각을 들 수 있다. 국제제도와 레짐의 무력화 현상도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국제제도와 레짐, 다자주의 거버넌스의 약화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이미 진행되어 오던 현상으로서 레짐 붕괴(regime meltdown)로도 불리는 상황이다. 코로나19 발생 원인론을 둘러싼 미중 간 갈등은 기 진행 중이던 무역전쟁에서 여론전, 심리전 양상으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미중 갈등 심화는 곧 글로벌 리더십의 약화와 탈-G2 현상 가속화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 우선주의 기치 아래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대외정책을 추진해왔다. 중국은 시진핑 체제하에서 중국몽,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외치면서 2049년까지 ‘두 개의 백년’을 완성해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상하겠다는 야심을 감추지 않는다. 국가주석 10년 연임 제한 규정조차 철폐한 시진핑은 ‘시황제’라는 별칭을 듣고 있다. 과거 소비에트연방 제국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또한 연임 제한을 철폐함으로써 사실상 ‘차르’로 군림하고 있다. 이러한 세 강대국의 배타적 국가전략 추구로 인해 강대국 전략경쟁은 당분간 국제질서의 뉴노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강대국 전략경쟁은 지구촌 모든 나라들의 전략적 계산에도 영향을 미쳐 이제는 강대국, 약소국을 불문하고 모든 나라가 스스로 자국의 이익을 확보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미중관계는 이제 본격적인 체제경쟁, 이념경쟁, 가치경쟁으로 전개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코로나19와의 전쟁 와중에 중국을 상대로 한 미국의 향후 전략 및 정책 방향을 담은 보고서를 공개했다. 동 보고서에서 미국은 중국에 대해 협력보다는 공개 압박과 사실상의 봉쇄전략 등의 ‘경쟁적 접근(competitive approach)’을 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사실상 양국 간 ‘신냉전’을 선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3)

 

뿐만 아니라 미국은 코로나19에 대한 중국 책임론과 안보 위협 등을 거론하며, 경제번영네트워크 (EPN·Economic Prosperity Network)를 비롯해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구상을 가속하며 동맹의 참여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코로나19를 계기로 미중 간 디커플링 가능성 우려는 더욱 커졌으며 세계는 반중국과 친중국 진영으로 양분될 가능성이 점차 커지는 상황이다. 

 

강대국 정치의 또 다른 관심사는 미·러관계의 향배이다. 러시아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특히 민감한 사안이다. 러시아는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해킹을 통해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불리한 정보를 퍼뜨렸다는 사실이 후에 로버트 뮬러 특검에 의한 수사로 밝혀졌다. 당시 미국 정부는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된 러시아 외교관 35명을 추방했고, 러시아도 그 이듬해에 미국 외교관 추방으로 맞대응했다. 2018년 3월에는 영국에 망명한 전직 러시아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 부녀의 독살 시도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며 시애틀 러시아 영사관을 폐쇄했다. 러시아는 그 보복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미국 영사관을 맞폐쇄 했다. 

 

지난 12월 18일에는 러시아 정부와 연계된 해커 집단 ‘APT29’가 미국 정부기관과 민간 보안업체를 해킹한 것으로 드러났다. ‘코지베어’로도 불리는 APT29는 러시아 대외정보국(SVR) 산하 해커집단이며 미국뿐 아니라 타국 정부기관을 겨냥해 광범위한 첩보 활동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 해킹의 배후가 러시아가 확실하다고 못박은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배후가 러시아가 아닌 중국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올해 7월에도 미국, 캐나다, 영국 등에서 코로나19 백신 연구기관 해킹을 시도한 적이 있다. 2016년 대선에서 러시아의 개입이 대선 패배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민주당의 시각과 러시아에 줄곧 비판적 태도를 견지해온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미국에 대한 사이버 공격 배후에 있는 적으로 하여금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향후 미러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바이든 시대의 국제질서 전망

 

최근 국제질서에서 지정학의 귀환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쓴 역사의 종언에 대한 반박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공산주의에 대해 이념적 승리를 거둔 것은 결코 지정학적 경쟁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냉전의 종식으로 자유주의가 최종적 승리를 거둔 것이라는 명제는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예측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된 것은 이러한 강대국 경쟁의 시대적 추세를 되돌릴 수 있을까?

 

2020년 미국 대선은 미국의 장래와 국제질서의 미래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기로’에 선 상황에서 열렸다. 

첫째, 이번 대선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시작된 글로벌 거버넌스‧다자주의의 퇴조, 전후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탱해온 레짐의 붕괴 추세가 가속화 되는가 마는가의 선택이었다. 

둘째,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향후 더욱 추락할 것인가, 아니면 회복의 길로 갈 것인가의 선택이었다. 

셋째, 더욱 중요하게는 이번 선거는 미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테스트라는 의미가 컸다. 바이든의 당선은 이 세 가지 테스트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반전을 의미하지만, 2021년 국제질서 전망이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바이든 시대의 외교를 구체적으로 전망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바이든 후보는 전반적인 외교정책의 기조로서 미국의 리더십 회복을 매우 강조한다.​주4)

바이든은 대통령에 당선되면 첫 임무로서 미국의 민주주의와 동맹관계를 복원하고, 미국의 경제적 미래를 보호하며, 미국이 다시 세계를 리드하게 하겠다고 천명했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어젠다를 강조했는데, 첫째, 국내에서 민주주의를 혁신, 둘째, 미국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 추진, 셋째, 국제사회 리더의 자리로 복귀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도 있다. 첫째는 미국 우선주의이다. 트럼프 시대의 유산은 백인 정체성의 정치와 미국 국익을 앞세우는 대외정책을 일상적인 현상으로 만들었다. 둘째는 미중 패권경쟁의 지속이다. 미국 조야의 초당적 대중국 인식은 지난 40여 년간의 대중 포용정책이 중국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힘만 키워서 결국 오늘날 미국의 전략적 경쟁자로 만들었다는 실패론에 근거한다. 바이든도 이런 인식을 공유하기 때문에 그도 결국은 대중 강경파(China Hawk)라 할 수 있다.

 

2021년 국제질서는 결국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회복이 얼마나 신속히, 얼마나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가에 달렸다. 

첫째, 우선 국내적으로는 트럼피즘의 끈질긴 저항을 극복하고 분열된 정치를 치유하는 과제가 있다. 만일 상원을 공화당이 장악하면 바이든이 추진하려는 여러 어젠다가 정치적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 크다. 

둘째, 대외적으로는 중국, 러시아 등 전략적 경쟁관계에 있는 국가들은 물론 이란, 북한 같은 불량국가들과의 관계 ‘리셋’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가 중요하다. 트럼프 시대에 소원해진 EU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환대서양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셋째, 글로벌 거버넌스의 복원, 국제기구와 제도, 레짐의 위상 회복이 중요하다. 요컨대 미국이 국제질서의 골간을 이루는 공공재 공급자 역할로 얼마나 복귀할지가 관건이다. 2021년 국제질서는 코로나19의 충격과 강대국간 지정학적 갈등의 전개라는 두 가지 축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끝>

 

주1) Walter Russell Mead, “The Return of Geopolitics: the Revenge of the Revisionist Powers,” Foreign Affairs, May/June 2014.

주2) G. John Ikenberry, “The Illusion of Geopolitics: The Enduring Power of the Liberal Order,” Foreign Affairs, May/June 2014.

주3) The White House, “United States Strategic Approach to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May 20, 2020.

주4) Joseph R. Biden, Jr., “Why America Must Lead Again? Rescuing U.S. Foreign Policy After Trump,” Foreign Affairs, March/April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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