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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37) 나무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1년01월01일 17시02분
  • 최종수정 2020년12월31일 10시28분

작성자

  • 김도훈
  •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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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 지면을 빌어 나무사랑과 꽃 이야기를 매주 올린 것이 36회를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글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은 바가 컸던 것은 물론입니다.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어떤 글을 올릴까 생각하다가 조금 철학적인 주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나무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나무를 사랑하는 필자의 생각이 조금 지나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필자는 적어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나무의 효용’보다는 나무들이 더 많은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나무들의 가치에서부터 출발해서 조금 더 고귀한 의미의 가치까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인간들에게 나무는 원시적인 시대에 맹수들의 위협으로부터 피하는 은신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두 팔로 나뭇가지를 잡고 높이 올라갈 수 있는 동물은 많지 않았을 것이니까요. (동물의 왕국을 보면 표범이 제법 높이 올라가기는 합니다만...)

좀 더 의미 있는 효용은 아마도 불을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른 나뭇잎은 불쏘시개, 마른 나무 등걸은 좋은 땔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나무의 효용은 산업화가 덜 진행된 개발도상국에서는 아직도 유효합니다. 우리나라도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효용이 크게 작용하여 민둥산의 원인이 되었었지요. 북한이 민둥산 때문에 해마다 홍수를 겪고 있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필자가 금강산 관광을 갔을 때 금강산에 이르기 직전까지의 산들은 참으로 벌거벗은 모습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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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14일 오른 해남 두륜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산들이 녹색으로 뒤덮인 모습

 

어쩌면 지금 우리나라 모든 산들이 울창한 숲을 가지게 된 것은 연탄의 등장과 함께 더 이상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지 않게 된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가까운 산들에 나무 심기를 열심히 전개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땔감으로서의 나무의 효용은 개도국에서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필자가 살아본 유럽과 미국 모두 집안에 벽난로를 만들어놓고 타오르는 불꽃 앞에 모여앉아 커피나 와인을 마시며 정담을 나누는 것을 최고의 호사로 여기고 있으니까요. 

 

그 다음으로는 목재로서의 가치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좋은 건물을 짓는 재료로써 나무의 가치가 매우 컸습니다. 궁궐, 절, 좋은 고택들의 건축 재료는 역시 나무였습니다. 큰 나무가 풍부한 미국과 북서 유럽에서는 아직도 고급 주택은 나무로 짓기를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시멘트로 지은 집보다는 훨씬 자연 친화적인(?) 느낌이 들어서 그렇겠지요. 목재로서의 나무는 많은 가구의 재료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요즈음 다른 재료들이 많이 대체한다고 하지만 가장 좋은 고급 가구는 역시 나무로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늦게 자라면서 목재의 재질이 치밀해지는 나무들이 목재로서 사랑을 받고 있지요. 열대지방에서 온 티크, 마호가니 등이 고급가구로 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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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3일 들른 창덕궁 인정전의 모습: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사용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나무는 우리 인간에게 많은 먹을거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한때 나무를 심으려면 유실수를 심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지요. 열매만이 아니라 나무는 새순 수준인 어린잎은 물론 꽃, 뿌리 등을 먹거리로 제공하기도 하지요. 

 

필자는 위와 같이 나무들의 생명을 해치면서 얻어지는 효용에서보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얻어지는 효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무와 함께 살면서 인간이 얻는 효용이지요.

먼저 많은 종류의 자연재해를 막아주는 효용입니다. 나무는 단단히 땅에 박은 뿌리의 힘으로 흘러내리기 쉬운 산의 토사를 잡아줍니다. 토목을 전공하신 분들은 오리나무, 아까시나무, 리기다소나무 등을 사방공사로 많이 심었다는 지적을 해 주시곤 합니다. 사람들이 밟아서 단단해진 등산로의 흙이 비가 많이 온 뒤에 나무가 잡아주는 주변 흙보다 더 깊이 패여 있는 것을 보아도 그 효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변가에 조성된 방풍림은 강한 바람을 막아주기도 하지요. 눈사태도 나무가 없는 곳에서 잘 일어나는 것은 물론입니다. 도시의 가로수와 공원수들은 더운 여름에 따가운 햇살을 막아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주기도 합니다.​ 

 

더 높은 수준의 나무의 효용, 어쩌면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효용은 인간에게 숨쉴 만한 정화된 공기를 제공해주는 기능이 아닐까 싶습니다.

필자가 다녀본 세계의 주요 도시들은 도심 한가운데나 주변에 대단히 넓은 공원들을 조성해 놓고 있었습니다. 뉴욕의 센트럴파크, 파리의 불론뉴숲, 동경의 우에노공원 등이 대표적이지요. 우리나라 신도시들에도 분당중앙공원, 일산 호수공원, 세종시 호수공원 등에 볼만한 숲들이 조성되어 주민들에게 좋은 휴식처, 산책로 역할을 하고 있지요. 이들 공원에 나무가 없다는 것은 아마도 상상할 수 없을 겁니다. 서울은 삥 둘러싼 산들과 가운데의 남산이 그 역할을 담당해 왔지만 최근 서울숲, 청계천, 용산가족공원 등이 조성되어 도심에도 숨구멍이 더 늘어난 셈입니다. 도시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뿜어내는 도시의 허파 노릇을 하기도 합니다. 정말로 나무를 가까이하면 몸과 마음이 치유될 수밖에 없는 셈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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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25일 산책한 남산타워 근처에서 바라본 서울 북서쪽 모습: 
북한산, 도봉산 연봉들과 북악산, 인왕산이 도시에 푸르름을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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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13일 들른 파리 불론뉴 공원에서 휴식을 즐기는 파리시민들: 
멀리 에펠탑의 모습이 보인다.

 

중국 북서쪽의 고비사막 주변의 사막화가 계속 진행되면서 우리나라에 황사와 미세먼지를 날아오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고 거기에 나무를 심어서 사막화의 진전을 막는 노력이 가해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나무의 역할을 염두에 둔 것이겠지요.

지구 전체 시각에서 보면 아마존의 정글이 인류의 허파 노릇을 한다는 글들은 모두가 접하고 있겠지만, 이 숲이 원주민들의 화전 경작 때문에 위협받는다는 이야기도 함께 접하곤 합니다.

자신들의 (다소 원시적이긴 하지만) 삶을 영위하느라 애쓰는 원주민들만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도 우리 주변에 더 많은 나무들을 심고 키우고 사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무의 효용 중에서 가장 고귀한 가치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대단히 부족해지거나 매우 더러워지고 난 극단적인 상황에서 공기와 물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듯이 나무에 대한 고마움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가까이 있으니 당연한 것으로만 받아들이고 그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나무는 삭막한 도시의 삶을 훨씬 풍요롭게 만들어줍니다. 콘크리트 건물만 있는 도시의 거리는 가로수가 심어짐으로써 그 삭막함을 많이 덜게 되지요. 필자는 유명한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가 도로 양쪽을 따라 줄지어 심어진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좀 흔한 나무이긴 하지만)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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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17일 들른 파리 샹젤리제 거리: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로 관광객들이 여유롭게 거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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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4일 들른 일산 호수공원 모습: 
이 공원의 나무와 물 덕분에 일산 신도시의 가치가 드러난다.

 

그뿐입니까? 나무들은 봄 여름에는 벚꽃으로 대변되는 아름다운 꽃을 피워서, 가을에는 산수유, 꽃사과, 아그배와 같은 예쁜 열매를 맺어서 우리의 메마르기 쉬운 정서를 적셔줍니다. 그래서 김소월이 진달래를 노래했고 이효석이 메밀꽃을 찬양했습니다. 구름 같은 사람을 모으는 설악산, 내장산의 단풍도 빼놓을 수 없지요. 여름에 거니는 숲길, 가을의 메타세콰이어길은 낭만이 무엇인지 가르쳐줍니다. 은행나무 노란 잎이 수북이 내려앉은 길도 이른바 ‘아베크족’들의 사랑의 깊이를 더해주는 역할을 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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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26일 들른 안산둘레길의 메타세콰이어길

 

현대인들이 겪는 정서 결핍의 위기는 아마도 너무 바빠진 생활로 나무와 함께 느끼는 이런 가치를 망각하고 살아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 조상들이 집안에 나무를 심어 놓고 친구처럼 스승처럼 생각하면서 살아갔던 이야기가 떠오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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