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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전략경쟁과 쿼드(Quad) : 함의와 한국의 선택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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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11월09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0년11월09일 10시08분

작성자

  • 김정섭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메타정보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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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하는 [정세와 정책 2020-11월호-제28호](11.03)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편집자>​

 

반중(反中) 안보연대의 움직임 : 쿼드와 쿼드 플러스

 

지난 10월 6일 일본 도쿄에서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외무장관이 참여한 쿼드(Quad) 회의가 열렸다. 코로나 확산의 와중에 4개국 외무장관이 직접 대면 회동을 했다는 점,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상황에서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일본 방문을 강행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그만큼 중국 견제를 위한 회동의 의의를 관련국들이 높이 평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세계가 너무 오랫동안 중국에 의해 위협을 받아왔다”고 지적하면서 “중국 공산당의 위협에 우리가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금번 모임의 의미를 설명했다. “중국에 대한 대응은 미중 양국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회담 결과는 미국의 입장처럼 강경 일변도로 귀결되지는 않았다. 일본의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은 “기존의 국제질서가 도전받고 있다”고 하면서도 도전의 주체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고, 인도와 호주도 중국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폼페이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회의 후 4개국 장관 명의의 공동성명 발표가 없었던 것은 중국 견제를 표출함에 있어서 참여국간에 온도 차이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회의 후에 “4개국에는 각자의 생각이 있고 (그것이) 완전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힌 일본 외무성 간부의 발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금번 쿼드 회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고 앞으로의 전망은 어떻게 내다보아야 할까? 사실 쿼드가 처음부터 반중(反中) 성격으로 출범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는 2004년 12월 동남아 대형 쓰나미 피해 복구를 위해 4개국이 ‘쓰나미 코어 그룹’을 결성했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러다가 2007년 8월 쿼드 4개국의 연대를 강조한 아베 일본 총리의 인도 의회 연설과 다음달 9월 쿼드 4개국과 싱가포르가 참여한 해양 합동훈련(Malabar naval exercise)을 거치면서 중국 견제 성격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예민한 반응으로 2008년 호주가 참여를 중단함에 따라 한동안 활동이 없다가 다시 쿼드 2.0으로 부상한 것은 2017년부터다. 쿼드 4개국이 2017년 11월 마닐라에서 개최된 ARF 회의 계기에 회동하여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지 선언을 했고, 이후 수차례 실무회담을 거쳐 2019년 뉴욕에서 첫 4개국 외무장관 회담을 가졌던 것이다. 

 

 금번 도쿄 회동이 바로 두 번째 장관급 회담에 해당한다. 쿼드는 확대 조짐도 있다. 올해 8월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은 쿼드에 “다른 나라들을 포함시킬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서 한국, 베트남, 뉴질랜드를 거론한 바 있다. 이미 올해 3월부터 코로나 19 대응을 위해 10여 차례 이상 유선협의를 진행해 온 7개국 차관급 협의체를 지칭한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 대응이 명분이지만 향후 모임의 성격이 안보 분야를 아우르게 될 경우 ‘쿼드 플러스(Quad Plus)’로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쿼드의 미래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쿼드가 지향하는 목표가 분명하지 않고 제도화도 불충분하며 군사훈련 등 실질적인 움직임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쿼드가 충분히 강력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반면 정반대 시각에서의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아시아판 나토를 추구함으로써 중국의 반발을 불러오고 아세안을 배제하는 역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참여국들의 헌신과 결속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지적되고 있다. 다시 말해 쿼드가 과도한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금번 도쿄 외무장관 회의도 바로 이 같은 한계를 보여주었다고 평가된다. 미국의 강력한 드라이브에도 불구하고 공동성명 채택도 없이 회의가 밋밋하게 종료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짖기는 하나 물지는 않았다”는 평가를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개국 장관급 인사가 직접 모여 중국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갈수록 공세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중국에 대해 4개국이 연대하여 공동 경고의 신호를 보낸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향후 반중 전선이 강화될 가능성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중 경쟁의 성격 : 신냉전 프레임의 문제와 한계 

 

우리 입장에서 문제는 미국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쿼드의 확대에 대해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이다. 우리도 쿼드 플러스의 일원으로 참여해야 하는가 아니면 반중 연대 전선 동참에 신중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전에 미·중 경쟁의 성격과 전망에 대해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쿼드는 미중경쟁이라는 큰 틀에서 이해해야 하며 그 바탕 위에서 한국의 전략적 선택을 고민해야하기 때문이다. 

 

미중관계가 신냉전으로 발전한다는 진단과 우려가 적지 않다. 실제 미중 양국이 그동안은 분야별 협력과 경쟁을 통해 완급을 조절해 왔으나, 이제는 무역, 인권, 기술, 군사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노골적인 대립을 본격화하고 있다. 2018년부터 관세 보복을 주고받은 무역분쟁에 이어 홍콩·신장 위구르 등 인권문제를 둘러싸고 날카롭게 대립해 왔고, 특히 화웨이 제재를 시작으로 한 미중 기술패권 경쟁은 AI 등 4차산업 전반으로 확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양국 간 경쟁이 이데올로기적 색채를 띠면서 체제 우위 경쟁의 성격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올해 7월 행한 ‘공산주의자 중국과 자유세계의 미래’라는 연설이 대표적이다. 그는 “중국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이며, 시진핑 총서기는 파산한 전체주의 이념의 신봉자”라고 규정하면서 “공산당 통치자들의 궁극적 야심은 미국과의 교역(trade)이 아니라 미국을 습격(raid)하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간 미국이 베풀어 온 포용정책으로 인해 “중국이라는 프랑켄슈타인을 낳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세계가 중국을 바꾸지 못하면 공산중국이 우리를 바꿀 것”이기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들의 새로운 동맹(a new alliance of democracies) 결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참으로 과거 동서 냉전 시대를 방불케 할 만큼 전방위적 갈등이며 극단적인 언사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미중 갈등이 실제로 신냉전으로 흘러간다면 다른 국가들에게 허용되는 자율적 공간은 점차 협소해지고 양대 블록에 대한 선택 압박이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는 미중 갈등의 성격을 신냉전으로 이해하는 것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 과거 동서 냉전 시대에는 자유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서로에게 존재론적 위협이었다. 경쟁에서 질 경우 정치·경제 시스템은 물론 삶의 방식 모두가 송두리째 바뀌는 세상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미중 갈등은 비록 이데올로기적 색채를 띠고 있지만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경쟁은 아니다.

 

 시진핑 시대에 중국 정치와 사회가 더욱 권위주의적으로 후퇴했고, 홍콩과 신장 인권 문제 등 서구 사회가 수용할 수 없는 수준의 억압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 냉전 시대 소련과 다른 점은 중국이 자국의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중국 국경을 넘어 확산시키는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일대일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채함정 외교(debt-trap diplomacy)’라는 비난은 있지만, 인프라 건설과 차관을 제공하면서 수혜국에 정치·경제적 부대조건을 부과하지 않는 것이 그 일례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미중 경쟁이 신냉전으로 악화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세계가 미·중 양대 진영으로 갈라서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신냉전이 되려면 미중 양국간 갈등을 넘어서 다른 국가들도 대립하는 진영으로 쪼개져야 한다. 미소 냉전 시대에는 양대 진영간 경제적 접촉면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했지만, 전 세계 공급망과 금융체제가 그물망처럼 얽혀 있는 현재는 완벽한 디커플링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자국 기업 리쇼어링이나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 움직임이 있지만, 첨단기술 등 일부 민감분야를 제외하고 전 산업으로 이런 흐름이 확대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 제품의 대중 수출 확대, 미국 기업의 중국 투자 확대를 위해 진행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무역 전쟁도 디커플링과는 정반대의 정책 목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현재의 미중경쟁은 본질적으로 패권경쟁이다. 즉, 누가 일등이 될 것인지의 문제이지 이데올로기 투쟁이나 블록간 대립이 아니라는 뜻이다. AIIB의 창설, 일대일로의 추진, 남중국해의 공세 등은 모두 중국이 자신의 세력권(sphere of influence)을 넓히고 공고히 하려는 시도들이다. 중국이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GDP가 등소평 시대엔 1%에 불과했던 것이 시진핑 시대에는 15%로 확대됐다. 대외전략이 ‘도광양회(道光養晦)’에서 ‘주동작위(主動作爲)’로 대담해지는 배경이다.

 

 반면, 도전을 받는 미국이나 세력권 확장에 영향을 받는 주변국 입장에서는 이러한 중국의 부상에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지키려는 쪽과 변화를 추구하는 측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것이다. 다만, 이데올로기 투쟁이 걸려 있는 제로섬 게임은 아니며, 적대 진영으로 갈라질 수 있는 블록 경쟁이 아니라는 점은 미소 냉전과 확실히 다른 부분이다. 대부분의 미국 우방국들이 미중 양자간의 선택을 주저하고 곤혹스러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잘못된 상황인식은 그릇된 정책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친구와 연대는 필요하지만 진영을 나누는 외교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지도 못하고 부작용만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도 신냉전 프레임에 기초한 대중 전략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디커플링의 무리한 추진, 우방국에 대한 선택의 강요 등이 오히려 미국의 경쟁력과 소프트파워를 훼손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쿼드를 비롯하여 미중 경쟁에서 파생되는 이슈를 대할 때 유념해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한국의 선택

 

미중간 전략경쟁은 국제체제에서 상대적 힘의 변화라는 구조적 요인에 의해 촉발되고 있기 때문에 양국 지도부 변화에 상관없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어느 한쪽이 분명한 승리를 거두거나 중국의 확장된 세력권에 대해 미중간 타협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끝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도·태평양 전략이나 쿼드 같은 정책의 경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도 명칭이나 강조점은 달라질 수 있어도 중국 견제를 위한 국제적 연대라는 큰 틀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쿼드에 대해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아직 미국으로부터 공식적인 요청이 없었다고 하지만 향후에 참여 문제가 본격화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참여론과 신중론이 대립하고 있다. 참여론은 쿼드 불참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이 구상하는 질서에 우리가 배제되는 결과를 염려한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감소하고 동맹의 방기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중국과의 관계가 부담이지만, 이는 일본, 호주, 인도와 같이 일단 쿼드에 참여하면서 강약을 조절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신중론은 노골적인 반중 전선의 합류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중국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일본이나 호주와 또 다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단순히 경제 관계를 넘어 비핵화와 통일 등 안보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협력대상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대중국 무역 규모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의 경우 17%에 달한다. 미국의 경우 3%, 일본이 6%, 호주가 10%인 것과 비교해서 큰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이들 국가가 쿼드에 참여했다고 해서 우리의 참여도 당연시 할 만큼 국익의 구조가 비슷하지 않다는 것이다. 

 

원래 국제정치에서 신흥 강대국이 부상하면 편승(bandwagoning)보다는 균형(balancing)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편승 전략을 취할 경우 견제장치도 없이 신흥 강대국의 처분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미국이라는 소중한 동맹 파트너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국들이 있으므로 중국의 부상에 대해 기본적으로는 균형 전략을 취할 필요가 있다. 한미동맹의 공고화, 한일 우호관계 유지, 신남방정책을 통한 외교다변화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다만, 이같은 밸런싱은 연성 균형(soft balancing)인 것이 바람직하다. 중국을 직접적 위협으로 단정하는 반중국 연대에 참여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쿼드 참여도 이런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일각에서는 일단 쿼드에 참여한 후에 강약을 조절하면 된다고 하지만, 아시아판 나토로 거론되는 쿼드는 그 성격이 워낙 분명하여 우리에게 얼마만큼 자율적 공간이 허락될지 의문이다. 자칫 중국과 만성적인 긴장만 초래하고 미국의 요구도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는 불편한 상황만 만들 가능성도 없지 않다. 

 

공격적 현실주의를 대표하는 미어샤이머 교수는 번영과 생존 중에 생존이 중요하므로 한국이 미국 편을 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지금은 신냉전 시대도 아니고 번영과 생존의 기로에 몰린 상황도 아니다. 따라서 획일적인 양자택일 보다는 사안별로 우리 국익에 맞는 선택을 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운신할 수 있는 전략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미중 양국의 이해를 이끌어낼 수 있는 우리의 외교력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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