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두운 시대의 대중과 지식인을 말한다-2020년 대한민국의 초상화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10월21일 11시20분
  • 최종수정 2020년10월21일 10시41분

작성자

메타정보

본문

통제받지 않는 정권의 폭주가 계속된다. 

정의를 참칭하고 전유(專有)한 정권을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대중이 있다. 

이들 대중이 보기에 정권의 일탈과 오류는, 정권의 거대한 사명에 비춰보면 사소한 것이다. 나라를 망가뜨린 구체제(앙시앙 레짐)를 혁파하기 위해선 지도자와 정권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이들은 확신한다.

 

신념 차원에서 정권을 지지한 지식인들은 정권의 부패와 무능을 보면서 실망하면서도 침묵한다. 최악의 기득권 세력이 엄존하는 터에 정권비판은 결과적으로 적을 도와주게 된다는 논리다. 이들은 현실정치에선 최악보단 그래도 차악이 낫다고 합리화한다. 보편이론의 성채로 도피하면서 정권참여의 부담을 희석시키는 지식인도 있다. 

 

정권을 중립적 입장에서 관망하던 대중과 지식인들은 파당정치가 전쟁정치로 악화되어가는 현실에 연루되는 걸 꺼려 침묵한다. 현실정치란 원래 더러운 것이므로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내 일을 열심히 하자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정권에 비판적인 대중과 지식인들이 목소리를 높이지만 사회적 반응은 미미하다. 정권이 이미 권력기구들을 완벽히 장악한데다 시민사회와 언론까지 정권친위조직으로 변질시켰기 때문이다. 정치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유령처럼 배회한다.

 

야권과 일부 언론, SNS 등에서 비판이 흘러나오지만 단발성 발언에 그친다. 정권이 일체의 국가기구를 식민화시킨 상황에서 이무리 외쳐도 무반응인 세태에 총체적 무력감이 사회 곳곳에 전염병처럼 만연한다. 그런 무력감의 수사학적 표현이 정권에 대한 조롱과 비꼬기의 글쓰기다. 

 

광범위하게 유포된 사회적 무력감이야말로 장기집권을 노리는 정권의 꽃놀이패다. 정권은 반대세력을 분할통치(divide and rule)하면서 약화-고립시킨다.

정권은 고정지지집단을 강고하게 유지하고, 정권보위대에겐 각종 떡고물을 나눠주며 운명공동체 의식을 불어넣는다. 친위 이데올로기 국가기구는 그들만의 이익공동체를 보편적 가치공동체인양 포장하는 선전선동을 일삼는다. 

 

정의와 불의가 역전되고 도덕과 비도덕이 뒤집히는 비정상상태가 정상이라고 선전된다. 총체적 아노미 상태가 현실이 된다. 지록위마가 일상이 되면서 사람들의 무력감은 더욱 깊어진다. 정권은 대중의 무력감을 영속화시키려 획책한다. 

 

코로나 상황이라는 예외상태의 일상화는 사람들의 무력감을 더욱 구조화한다. 코로나가 더 악화시킨 경제위기가 내 삶의 기둥뿌리를 흔드는 현실에서 위의 분석따위는 한가한 자들의 정치놀음에 불과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게 바로 깨어있는 시민의 출현을 경계하는 정권이 노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의를 배반하고 사회를 분열시키며 무능과 부패로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정권에 대한 민심의 분노가 쌓이면서 내연(內燃)한다. 민심이반의 에너지가 차근차근 축적되고 있는 것은 '이 정권 때문에 못살겠다'는 이심전심의 실감 때문이다. 

만약 정권을 대체할 대안적 리더십이 나타난다면 민중의 에너지가 그 리더십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결집될 가능성이 있다. 그건 21세기 버전 '못살겠다, 갈아보자'로 표출될 것이다. 예컨대 2012년을 강타한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 개인이 아니라, 당시의 대중과 시대가 만들어 낸 것이다. 

 

민중의 에너지가 광장에서 폭발할 수 있는 모멘텀을 제약하는 최대 변수는 코로나다. 역설적인 얘기이지만 유효한 코로나 백신의 등장은 정권에겐 양날의 칼이다. 정권의 정당성을 높일 기회임과 동시에 광장정치를 물리적으로 막아온 코로나 예외상태의 종언을 뜻하기 때문이다. 

 

코로나의 종언에 대비해 정권은 국가의 접수, 시민사회의 식민화, 시장의 종속이라는 권력장악 시나리오를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는 중이다. 정권이 민주공화정의 기둥들을 무너뜨리면서 생기는 온갖 파열음이 그 증거다. 연성 파시즘이 한국의 현실이 되고 있다. 

하지만 정권의 이런 정략은 한국현대사라는 큰 그림에 비춰보면 매우 초라하고 기괴한 것이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던 박정희와 전두환의 강성 파시즘조차 한국 시민사회의 저력 앞에 허망하게 무너졌다.

 

나는 근본적으로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다. 언젠가 코로나는 극복되고 연성 파시즘은 역사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진정한 지식인은 어둠의 시대를 뚫고 외치는 자이며, 대중은 그런 어둠의 시대를 끝내는 역사의 주체다. 

희망은 현실의 '아직 아님'을 넘어서는 궁극의 힘이다. 인간은 희망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ifsPOST> 

 

3
  • 기사입력 2020년10월21일 11시20분
  • 최종수정 2020년10월21일 10시41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