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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동반성장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08월08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20년08월08일 15시40분

작성자

  • 정운찬
  •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KBO총재,전 국무총리

메타정보

본문

나는 15년 남짓 전부터 중견 기업인 한 분을 알아왔다. 그는 경영 실적도 좋을 뿐 아니라, 사회적 기여도 많이 하는 분이다. 그 기업인은 내가 재벌의 행태를 비판할 때마다 자기가 거래하는 대기업은 다르다고 옹호하였다. 그러나 내가 총리로 일하던 2010년 봄에 이르러서는 생각이 달라보였다. 어느 날 찾아와서는 아예 이민을 가야겠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자기가 거래하는 재벌기업이 해도 너무하다는 것이었다. 그 대기업은 다르다더니 무엇이 문제냐고 다시 물으니 “납품가를 너무 후려쳐서 생존이 힘들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나는 총리실 담당 공무원에게 수출 대기업과 30년을 잘 거래해 오던 기업인이 갑자기 한국을 뜨겠다고 얘기하니 실태를 파악해보라고 했다. 담당자들이 조사한 객관적 실태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대기업은 협력기업에 대해 여러 가지 형태의 불공정 거래를 한다. 근거가 분명한 서면 주문 대신 구두로 주문하고, 기술 탈취를 일삼으며, 납품 대금은 현금 대신 장기어음으로 결제할 뿐 아니라 매 4분기마다 가격을 깎는 ‘납품가 후려치기’를 예사로 한다. 1997-98년 경제위기 전에도 그랬지만, 그 이후에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 IMF로부터 받은 550억 달러 구제금융을 빨리 갚으려면 수출을 늘려야 한다, 수출을 더 많이 하려면 물건이 좋아지거나 값이 더 싸야 한다, 물건을 더 좋게 만드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거나 원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가격 경쟁 유혹을 받는 건 이 때문이다. 

 

가격 경쟁은 원가 절감에서 온다. 그런데 원가 절감 대상이 마땅치 않다. 임금을 내리겠는가, 공공요금을 깎겠는가, 이자를 깎을 수 있는가. 그러니 만만한 협력업체 팔목을 비틀어 납품가를 깎는 수밖에 없다. 종전 같으면 매스컴에서 문제 삼을 수도 있었겠지만, 외채상환을 위해 수출을 늘려야한다는 논리 앞에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그 결과는 수출대기업과 협력중소기업의 양극화다. 대기업의 수익률이 중소기업의 3배를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기업은 높은 수익을 투자에 쓰지 않고 수십조 원씩 사내에 유보하고 있고, 기업소득 증가율은 20% 가까운데, 가계소득 증가율은 5%를 훨씬 밑도는 수준으로 벌어졌다.

 

나는 당장 청와대로 달려가 “중견 기업인이 이민 가겠다고 하는 상황이니 중소기업은 오죽하겠느냐”며 이명박 대통령에게 특단의 조처를 건의했다. 애당초 내가 대통령의 총리 지명을 받아들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정 총장도 서민 출신이라면서요? 나도 서민 출신입니다. 서민을 위해 같이 일합시다.”는 권유였다. 나는 “특단의 조처가 없으면 경제는 불균형 때문에 더욱 어려워지고 사회는 양극화로 파탄 지경에 빠질 수도 있다”고 역설했다. 그해 초가을 청와대는 경제인들 모임에서 동반성장위원회를 설립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때는 이미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어 나는 총리직을 자진해서 물러난 뒤였다.

 

청와대 회의 후 늦가을에 청와대는 나에게 동반성장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동반성장 필요성을 내가 발제하지 않았느냐며 재차 제의를 해오는 바람에 받아들였다.

 

처음부터 나는 대기업을 다루는 위원회는 대통령 직속 기구가 되어야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생각은 달랐다. 단기적으로는 대통령 또는 정부 직속 위원회가 더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민간 위원회가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동반성장위원회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민간 조직으로 설립된 경위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산의 대부분을 전경련이 ‘대중소기업 협력자금’으로 모아둔 것, 그리고 정부, 정부기관 또는 전경련 이외의 다른 경제 단체들에서 거둔 것으로 충당하므로 그들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는 애당초 힘든 구조였다.

 

동반성장은 특혜와 독점으로 성장해온 한국 경제의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혁명적인 과업이다. 기득권 세력은 처음부터 강한 저항으로 응수했다. 2010년 12월 13일 동반성장위원회가 발족된 날, 최경환 지식경제부장관은 “위원장님 소신대로 밀어붙이십시오. 저희는 열심히 백댄스를 하겠습니다.”라며 나를 격려해주었다. 든든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대기업에서 온 9명, 중소기업에서 온 9명, 공익위원 6명, 그리고 위원장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첫 회의를 시작한 지 10분도 못되어서 재벌기업에서 온 A가 나에게 “위원회의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엄밀히 따지면, 법적 근거는 없는 것이었다. 법적 근거가 있으려면 대한민국 법전 어딘가에 ‘동반성장위원회’란 용어가 적혀 있어야 한다. A의 질문이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 귀에는 동반성장에 대한 강한 거부반응으로 들렸다. 

 

나는 그 후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위원들, 특히 김영환 강창일 김성태 의원 등을 설득하여 「상생협력법」에 ‘동반성장지수는 공정거래위원회와 동반성장위원회가 공동으로 작성한다.’는 문구를 삽입함으로써 위원회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동반성장위원회에 대한 재벌 측의 불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니, 그것은 재계를 넘어, 각계에서 나를 공격하는 신호탄이었다. 내가 (초과)이익공유제 도입 계획을 발표하자 재벌총수 B는 “어릴 때부터 기업가 집안에서 자라 경제학 공부를 해왔으나 이익공유제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면서 “사회주의 용어냐, 공산주의 용어냐, 자본주의 용어냐”고 비판했다. 

 

낡디 낡은 ‘색깔론’을 들고 나오다니, 참으로 답답했다. (초과)이익공유는 이미 1920년대 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관행이다. 제작자가 영화를 만들 때, 흥행 결과를 미리 알 수 없으니 배우 감독 배급처 등에 일정 수준에서 보수를 개런티 해주되, 대박이 나면 초과이익을 공유한 게 그 기원이다. 그 뒤 롤스로이스, 크라이슬러, 캐리어 같은 굴지의 회사에서도 적용해온 비즈니스 관행이다.

 

정부 역시 비협조적이었다. 부정적인 반응은 먼저 청와대에서 나왔다. 2010년 연말, 나는 대통령을 만나 “이미 배정된 예산과 인력으로는 동반성장 업무를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그랬더니 대통령은 “정부 예산 가운데 예비비를 충분히 갖다 쓰라.”고 했다. 2011년 초 청와대의 C를 만나 예비비 지원을 요구하였으나,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그해 7월 언론을 향하여 “동반성장의 논의구조가 구체적인 케이스가 많음에도 (초과)이익공유제니 동반성장지수니 하는 너무 추상적인 개념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동반성장위원회를 비판까지 했다.

 

청와대 기류에 민감한 국무위원 D는 비협조를 넘어 도발적이었다. 내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를 발표하자 그는 동반성장위원장 말이 항상 다 옳은 것은 아니라며, 적합업종 선정이 동반성장위원회 마음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엇박자를 놓았다. 2011년 2월 국무위원으로 취임하자마자 스스로 동반성장위원회에 나타나 “위원장님이 추진하는 모든 것을 전폭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지 며칠 안 돼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일부 정치인은 아예 말 같지도 않은 말로 대기업 편을 들었다. 여당의 중진의원인 E는 내가 (초과)이익공유를 제안한지 얼마 안 돼 나를 ‘급진 좌파’로 몰아세웠다. 재계와 어떤 관계인지는 몰라도 어처구니없는 언어도단이었다. 

 

저항은 2011년 말과 12년 초에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 나는 만 1년만 위원장으로 봉직하고 11년 12월 13일 그만 둘 생각이었다. 원래 임기는 2년이었지만, 고군분투하는 데 지친 데다, 그 와중에도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선정했고 중소기업 위주의 정부 구매제도도 확고히 했으므로 (초과)이익공유제만 통과시키면 내 임무는 완수하는 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위원회 발족 1년이 되던 날, 논의 주제로 잡힌 (초과)이익공유제를 반대하는 대기업 대표 9명이 전경련의 권유를 받고 모두 회의에 불참했다.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곧 가라앉히고, 이듬해 1월 17일에 회의를 다시 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대기업 대표는 아무도 안 나타났다.

 

회의 1주일여 전 전경련의 F에게 대기업 대표들을 회의에 나오게 독려해달라고 전화로 간곡하게 부탁했고, 긍정적인 답변도 얻었는데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할 수 없이 나는 이들의 행태를 언론에 알렸다. 그러고는 2월 2일에 다시 회의를 소집했다. 

 

그러자 전경련에서 “(초과)이익공유제는 내용은 괜찮은데 이름이 오해를 살 소지가 있으니 협력이익배분제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순순히 들어주었다. 형식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초과)이익공유제는 마침내 협력이익배분제라는 이름으로 위원회를 정식으로 통과했다. 이것을 실천하는 대기업에게는 각종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그러나 아직도 본격적으로 실천하는 대기업은 없다. 결국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과 중소기업 위주의 정부구매는 관철시켰으나, (초과)이익공유제는 이름만 남게 되었다.

 

가장 큰 관심을 가져야 할 중소기업도 소극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 가운데 대기업의 1차 협력업체들은 그래도 형편이 좋아 불만이 덜했고, 다른 업체들은 생존에 허덕일 뿐 아니라 동반성장에 관심을 두었다가는 대기업에게 피해를 볼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정치적으로 자유가 공짜가 아니듯, 경제적 이익도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중소기업중앙회 같은 조직들이 앞장서서 동반성장을 위한 활동을 다양하게 전개해야 한다.

 

언론도 도움이 안 되었다. 동반성장위원회 발족 초기, 그리고 (초과)이익공유제 발표 이후 며칠까지만 해도 언론은 우리에게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대기업의 광고에 민감한 대부분의 언론은 우리를 계속 도와주기는커녕 사사건건 동반성장위원회를 몰아붙였다. 한 사회가 발전하려면 학자, 언론인, 법조인이 역할을 잘 해주어야 한다는 뢰프케(W. Röpke)의 말이 자꾸 생각났다. 그래도 그 중에는 극히 일부이기는 하나 양심적이고 우호적인 언론인과 언론기관도 없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2011년 12월에 위원회를 그만두려던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대기업의 행태를 뻔히 보고서도 그냥 떠나는 것은 책임 회피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위원회의 앞날도 걱정이 됐다. 

 

위원회를 재정비한 뒤 더 열심히 일할 각오로 대통령을 찾아갔다. 동반성장위원회의 예산과 인력을 적어도 두 배로 늘려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대통령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더니 그동안 할 만큼 한 것 아니냐며 노고 많았다고 치하했다. 그 즉시 사무실로 돌아와 잔무를 정리한 뒤, 2012년 3월 위원회를 떠났다.

 

평소 알고 지내던 청와대 사람들에게 “왜 정부가 위원회를 돕기는 커녕 견제하려 들었냐”?고 묻자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내가 동반성장을 대강대강 추진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제동이 필요했다고 답했다. 대기업의 영향력이 청와대까지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기업과 부자 편향 정책을 바로잡고 우리 사회에 균형추 역할을 하겠다는 뜻에서 총리직을 수락했는데, 여전히 재벌 위주의 경제운용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실이 안타까웠다. 

 

나는 대학에 갈 때 1919년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에 더해 만세운동을 널리 세상에 알린 그래서 제34번째 대표로 불리는 프랭크 스코필드(Frank W. Schofield) 박사의 권유로 경제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 박사님은 나에게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덕에 한국 경제가 성장은 하고 있지만 빈부격차가 더 심해졌는데도 한국의 부자들은 가난한 이들에 대해 눈꼽 만큼도 배려를 안 해주고 있다”고 안타까워 하면서 경제학과에 가 각종 격차해소 방안을 공부한 뒤 일생동안 각종 격차를 완화하는 데 노력을 경주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분 예상대로 우리 사회에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팽배해졌다. 여전히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보면서도 동반성장위원회를 그만둔 나는 스코필드 박사께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분은 내가 중학교·고등학교 다닐 때, 재정적인 지원뿐 아니라 인격 형성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은인이다.

 

그분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나는 2012년 6월 동반성장연구소를 만들었다. 동반성장위원회 때나 마찬가지로 동반성장 문화의 조성과 확산에 힘쓰기 위해서였다. 위원회는 민간위원회를 표방하나 실질적으로는 반관반민이다. 그러나 연구소는 위원회와는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순수 민간기구이다. 

 

우리 연구소는 지난 6년여 간 심포지움과 월례포럼을 약 60회 이상 열어 대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은 물론 지역 간, 도농 간,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세대 간, 남녀 간, 남북한 간, 국가 간 동반성장 등 매우 광범위한 주제를 놓고 의견을 교환하고 해법을 도출했다. 각 주제만 보아도 한국의 동반성장은 대체로 무엇이 문제고, 그 해결책은 무엇인가에 대해 대체적인 감은 잡을 수 있다. 이들 심포지엄이나 월례포럼은 모두 연도별로 묶어 책자로 만들었다.

 

동반성장연구소는 기업 또는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하여 ‘자본주의 정신과 동반성장’ 또는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간의 적정 동반성장 모형 작성’ 같은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나는 동반성장 전도사를 자임하면서 1년에 30회 정도 전국의 학교, 지방자치단체, 교회, 경제인단체 특강 등을 통해 동반성장 문화의 조성과 확산을 위해 힘써 왔다. 나는 그 성과가 작지 않다고 자부한다. 아직도 할 일이 많지만 말이다.

 

2016년 4.13 총선 이후 정당들이 모두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강조하며 동반성장, 경제민주화, 공정성장 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일단 고무적인 현상이다. 명칭은 각기 다르지만,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 점점 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동반성장위원회나 동반성장연구소가 동반성장 문화의 조성과 확산을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라는 생각도 들어서 내 자신도 뿌듯하다.

 

많은 중소기업인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중소기업적합업종이나 중소기업 위주의 정부구매가 무시할 수 없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또한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각종 불공정 행위도 만족스러울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 (초과)이익공유제는 미국에서도 광범위하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만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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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지난 4월 동반성장연구소가 발간한  책 ‘동반성장 원리와 자본주의 정신-동반성장 사회를 위한 정책과제’ (정운찬 엮음)에 소개된 글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소개하는 것임을 밝혀둡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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