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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10) 형제간 우애를 상징하는 나무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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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6월26일 17시03분

작성자

  • 김도훈
  •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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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우리를 다시 한번 들었다 놓았다 했습니다. 한때는 한국정부와 대통령을 아주 업신여기듯이 조롱하면서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등 긴장을 고조시키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든 위협조치를 보류한다고 발표해 버렸습니다. 이런 일을 주도한 사람들은 오누이 사이인 김정은 위원장과 김여정 부부장입니다. 하루 사이에 양 극단을 보여준 오누이는 사이가 좋아서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극단적으로 반대의 성향을 가진 것일까요? 여하튼 종잡을 수 없는 오누이인데 아무래도 둘 사이는 매우 좋은 관계이면서 각각 다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요즈음같이 형제간의 혹은 자식들 사이의 友愛라는 말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시대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성인이 된 이후의 형제간 사이는 더욱 그렇게 비쳐집니다. 적어도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의 모습은 말입니다. 그런데 과거 우리 조상들도 형제간 우애를 많이 걱정했나 봅니다. 이번에 소개할 나무들은 우리 조상들 특히 선비들이 형제간의 우애를 돈독히 하라고 집안에 심어두고 그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했던 나무들입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제가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하는 것을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많으시지만 저보다 더 일찍 본인의 전공과 상당히 멀어진 나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한 분으로서 유학을 공부하고 계명대학교에서 사학을 가르치는 강판권 교수라는 분이 계십니다. 저는 이 분이 쓴 '나무를 품은 선비'라는 책에서 우리 선조들이 집안에 나무들을 심은 의미를 많이 배웠습니다. 강교수에 의하면 우리 선조들이 특히 선비들이 자식들 사이의 우애를 높이기 위해 심은 나무들이 바로 박태기나무와 앵두나무라고 합니다. 이 두 나무의 꽃과 열매들이 서로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처럼 형제들 사이도 서로 가까이 하여 우애를 돈독히 하라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강릉 선교장이라는 대표적인 옛 사대부의 집에서 이 나무들을 발견하고서도 이러한 의미를 알게 된 것은 훨씬 뒤인 강교수의 책을 읽고 난 후였습니다.  강릉 선교장은 효령대군 11세손인 이내번이 경포대 근처를 거처로 삼은 이후 강릉을 대표하는 양반이면서 대부호 집안으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조선 사대부가의 대표적 대저택의 하나로 알려져 있고, 이제는 외부 사람들도 예약해서 묵을 수 있는 '한옥체험'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국가미래연구원 산업경쟁력포럼 운영위원들이 함께 1박2일 워크샵을 위해 강릉에 갔을 때 이곳에 묵게 되었는데 이른 새벽에 넓은 경내를 한 바퀴 도는 동안 많은 좋은 나무들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그다지 크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두 나무가 심어져 있어서 의아해 했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 나무들이 사대부의 집에 심어져 있는 까닭을 강교수가 일깨워 준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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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23일 강릉 선교장 박태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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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23일 강릉 선교장 앵두나무 

 

책이나 인터넷에서 박태기나무의 원산지가 중국이라고 적혀 있어서 저는 전통적으로 중국에서만 많이 심어지다가 우리나라에는 최근에나 식재되기 시작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른 봄 피는 꽃이 예뻐서 우리나라의 건설 붐을 거치면서 우리 주거단지나 공원, 혹은 학교 캠퍼스 등에 심어지는 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의 생각은 제가 2015년에 중국 칭다오를 방문했을 때 아침 해변길을 걸으면서 이 나무의 인상적인 모습을 보고서 더욱 굳어졌었습니다. 그러던 저의 생각을 바꾸어 준 분이 바로 강판권 교수인 셈이죠. 강교수가 소개한 바로는 조선 중기의 문인이며 서예가로 알려진 象村 신흠 선생이 동생인 명원 신감에게 보낸 시에서 애절한 형제애를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어느 때 형제의 모임 이루어서 박태기나무꽃 속에 두 사람 마주할꼬.' 이렇게 옛날부터 선비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박태기나무가 지금은 낯선 나무로 인식되고 있는 점은 매우 아쉽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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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중국 칭다오 해변공원에서 본 박태기나무 

 

여하튼 박태기나무는 이른 봄 위로 벋은 가지들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자주색꽃을 다닥다닥 피워내는 모습만으로도 공원에 반드시 심어야 할 나무로 인식되기에 충분합니다. 이 나무는 꽃을 떨어뜨리기 시작하는 즈음에 동그란 모습의 잎을 내밀기 시작하는데 그 아래로 주렁주렁 콩깍지 모양의 열매를 매답니다. 이 콩깍지가 한여름을 지나면서는 까맣게 변하는데 이 모습만을 본 사람들은 왜 이렇게 까맣게 볼 품 없는 콩깍지들을 매단 나무를 공원에 심었는지 의아해 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봄에 이 나무 꽃을 보아야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셈이지요. 신기하게도 제가 캐나다 토론토 인근에 출장갔을 때 넒은 정원을 가진 호텔에서도 이 나무를 발견했으니 중국 원산이라 하지만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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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24일 서강대 박태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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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17일 캐나다 토론토 교외 호텔 박태기나무 

 

강판권 교수에 의하면 앵두나무의 경우는 작고 예쁜 열매들이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열리는 모습에 우리 선비들이 주목했다고 합니다. 공원이나 정원 등에서 이 나무의 빨갛고 예쁜 작은 열매들이 그런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경우는 좀처럼 발견하기 힘듭니다. 앵두가 그렇게 익어가는 모습을 발견하면 어느 누구나 그 열매를 몇 알이라고 따먹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 마련이니까요. 그렇지만 이 나무가 이른 봄에 꽃을 피워내는 모습은 참으로 볼만 합니다. 매화, 벚꽃, 살구꽃 등이 제법 키가 큰 나무에 달리기 때문에 사람들의 주목을 뺏아가는 사이에 키는 작지만 정원의 빈 공간을 멋지게 채워주는 역할을 잘 담당하고 있지요. 자랑스런 키큰 사촌들과 같은 장미과 집안에 속해 있으니 꽃 모양도 비슷합니다. 나무 전체를 덮으면서 가득 피어 있는 모습은 볼수록 멋진 장관을 이룬다고 할만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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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10일 분당 아파트단지 앵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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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2일 분당 아파트단지 앵두나무 

 

앵두나무의 잘 익은 열매들이 가지에 그런 대로 제법 많이 붙어 있는 모습을 본 것은 산업연구원 직원들이 2015년 6월 초에 부산에 연찬회를 갔을 때 이튿날 귀경길에 들른 양산 통도사 앞의 음식점에서였습니다. 신기하게도 같은 집에서 박태기나무도 볼 수 있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분도 조상들의 전통가치를 잘 알고 살려보려는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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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5일 양산 통도사 앞 식당 앵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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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5일 양산 통도사 앞 식당 박태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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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12일 서강대 캠퍼스 앵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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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6월26일 17시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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