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는 확실한 법칙 : 혼군(#8B) 폭정의 교과서, 유송(劉宋) 유자업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05월22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20년05월20일 10시56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본문

 

 혼군(昏君)의 사전적 정의는 ‘사리(事理)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다. 암주(暗主) 혹은 암군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군의 숫자는 너무 많아져 오히려 혼군이라는 용어의  의미 자체를 흐려버릴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통틀어 사리에 어둡지 않은 군주가 몇이나 될 것이며 어리석지 않은 군주가 몇 이나 되겠는가. 특히 집권세력들에 의해 어린 나이에 정략적으로 세워진 꼭두각시 군주의 경우에는 혼주가 아닌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의 혼군 시리즈에서는, 첫째로 성년에 가까운 나이(17세) 이상에 군주가 된 사람으로서 둘째로 상당 기간(5년) 군주의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군주의 역할이나 올바른 정치를 펴지 못한 군주로써 셋째로 결국 외부 세력에 의해 쫓겨나거나 혹은 제거되거나 혹은 돌연사 한 군주로써 끝으로 국가의 존립기반을 크게 망쳐 놓은 군주를 혼군이라고 정의하였다.  

 

<8> 심경지와 채흥종

 

심경지는 황제에게 안사백과 유원경의 황제시해 모의를 사전에 밀고한 공으로 황제의 환심을 산 인물이다. 그는 학식은 없어서 글을 읽지 못했고 집안이 어마어마한 거부였으나 본인은 몸종 서, 너 명에 불과했고 언사가 겸손하고 소박하여 아무도 그가 삼공인줄 알지 못했다. 그런 심경지가 자주 황제의 잘못을 지적하고 실책을 간하였으므로 점차 황제는 그를 멀리 하였다. 

 

황제가 자신을 멀리하려는 의도를 알아차린 심경지는 나라 걱정에 문을 닫아걸고 출입을 끊어버렸다. 심복 범선을 채흥종에게 보내 안부를 물어보게 하였다. 채흥종이 범선에게 이렇게 답했다.

 

“ 공께서 문을 닫고 손님을 받지 않는 것은

  청탁을 피하려 하심입니다.

  저는 공에게 부탁할 것이 없습니다.

  어찌 저를 만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범선이 그런 채흥종의 뜻을 듣고 전하자 심경지는 바로 그를 불러 만났다. 채흥종이 말했다.

 

“ 주상의 하는 일이 인륜의 도를 벗어났고

  덕을 행하여 잘못을 고치는 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지금 꺼리는 것(즉, 반란)은 오직 공에게 달려있고 

  백성이 옹옹하며 쳐다보는 것 또한

  오직 공 한 분이십니다.“

심경지가 이렇게 대답했다.

 

“ 오늘날의 근심과 걱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오직 천명에 맡길 뿐입니다.”

 

채흥종이 대답했다.

 

“ 이번 모의는 우리가 부귀영화를 누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조석으로 닥칠 광적인 혼군의 폭정에서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심경지가 거부하며 말했다.

 

“ 경의 지극한 말이 감동스럽습니다마는

  이 일은 큰일이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곁에서 듣고 있던 조카 심문수가 눈물을 흘리며 간청하여 말했다.

 

“ 시기와 잔인함이 심하여 예측하기 어려운 재앙은 

  나가든 들어오든 피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의 힘을 이용하면

  일을 도모하는 것은 손바닥 뒤집는 일보다 더 쉽습니다.“

 

심경지는 끝내 황제시해 모의에 가담하지 않았다. 반란모의를 하다가 잡힌 하매를 죽이려 할 때 심경지가 와서 반대할 것을 우려한 황제는 다리를 끊어 버렸는데 심경지는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결국 돌아갔다. 황제는 심경지의 당질 직합장군 심유지를 보내 심경지에게 사약을 내렸다. 심경지가 사약을 거부하자 심유지는 이불로 덮어 질식사시켰다. 그의 나이 여든이었다. 심경지의 큰 아들 심문숙이 막내 동생 심문계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 나는 죽을 수 있으나 너는 반드시 복수해야 한다.“ 

  

심문숙과 그 아래 동생 심소명은 같이 사약을 받았으나 막내동생 심문계는 도망쳐 살았다.

 

<9> 왕현모와 채흥종의 연합

 

영군장군, 즉 황군호위장군인 왕현모는 황제의 가혹한 사형집행을 여러 번 말리며 충간을 올렸으므로 황제가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왕현모는 자신의 측근 부하 포법영이 채흥종이 태수로 있었던 동양(산동성 청주)사람이었으므로 그를 보내 의중을 타진했다.

 

채흥종이 포법영에게 말했다.

 

“ 영군장군께서 걱정이 많으실 것이오.”

 

포법영이 말했다.

 

“ 잠도 거의 못 주무시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십니다.

  체포하려는 자가 곧 문밖에 있다고 느끼셔서

  잠시도 편치 못하십니다.“

    

채흥종이 말했다.

 

“ 어찌 앉아서 기다리고만 계실건가?”

 

포법영이 말을 달려 왕현모에게 채흥종의 말을 전달했다. 왕현모가 다시 포법영을 보내 감사를 표시하며 부탁했다.

 

“ 비밀을 누설하지 않기로 약속하십시다. ”

 

우위장군 유도륭은 황제의 신임을 받아 측근을 지키며 호위를 하고 있었다. 채흥종이 유도륭과 함께 황제를 모시고 외출을 나가면서 말했다.

 

“ 유군, 나는 근래 한사(閒寫)할까 생각 중이오”

 

한사(閒寫)란 한가한 시간을 내어 자서전이나 자신의 생각을 저술하는 것을 말한다. 유도륭이 그 뜻을 알아채고 다급히 채흥종의 손을 꼬집으며 나직히 말했다.

 

“ 채공, 너무 말을 많이 하지 마시지요.” 

 

<10> 황족을 가두고 능멸한 황제 유자업(AD465)

 

유자업은 황족들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 두려워 황족을 모두 건강(남경)에 가두어 감시했다. 때로 그들을 불러 구타하고 채찍질 했으며 견딜 수 없는 모욕을 주었다. 황족을 저울에다 올려 무게를 잰 뒤 상동왕 유욱에게는 돼지왕(저왕), 유휴인에게는 도살왕, 유휴우에게는 도적왕, 유위에게는 노새왕 등의 별명을 붙여 조롱하기를 서슴지 않았다.(AD465) 나무통에 밥과 여러 가지 음식을 섞어 담아 땅을 파 구덩이를 파고 대마무 통을 내린 뒤 유욱을 발가벗기고 구덩이 안으로 밀어 넣어 먹도록 강요했다. 나아가 여러 황족들의 비와 공주를 세워 놓고서 주위 사람들에게 능욕하도록 시켰다. 황족 유삭의 비 강씨가 황제의 명을 거역하자 강씨의 세 아들을 모두 죽였다.(AD465)  

 

당시 세간에는 상(湘)지역에서 천자가 나온 다는 소문이 있었다. 상지역이란 지금의 호남성장사다. 유자업은 상동왕 유욱이 그 지역을 관할하는 번왕이므로 황제가 직접 그곳으로 내려가기 그를 죽일 생각이었다. 황제가 유욱의 손과 발을 묶고 막대기로 꿰어서 사람들에게 메도록 한 뒤 말했다. 

 

“ 오늘 돼지를 잡을 것이다.”

 

유휴인이 곁에서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돼지를 잡으시면 안 됩니다.”

 

황제가 왜 그러냐고 묻자 유휴인이 대답했다.

 

“ 황제의 아들이 조만간 탄생할 것이니

  그 때를 기다렸다가 

  돼지의 간과 폐를 꺼내야 되는 법입니다.“  

 

아들 예기가 나오자 황제의 유욱에 대한 광기가 풀리면서 그를 풀어주게 하였다.

 

<11> 유자훈의 유자업 타도 선포(AD465)

 

유자업은 또한 태조 유의륭(할아버지) 세조 유준(아버지)가 모두 셋 째 아들이었으므로 자신의 동생 강주자사 유자훈을 몹시 경계하여 죽일 생각이었다. 강주는 지금의 구강시로써 수도 건강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마침 하매가 모반사건과 연루되어 죽게 되자 그 사건에 유자훈을 함께 엮어서 죽이려고 주경운에게 유자훈을 체포하도록 명하였다. 그러나 주경운은 명을 받고도 나아가지 않으니 유자훈의 심복 사도매, 주수, 반흔지, 저령사 등이 그 소식을 듣고서 장사 등완을 포섭했다. 등완도 흔쾌히 동참하고 나섰다. 유자훈이 반흔지를 내세워 공식적으로 유자업 타도를 선포했다.  

 

<12> 유욱의 쿠테타 (AD465)

 

유자훈의 반란군은 구강에서 일어났으므로 황제가 살고 있는 건강에는 직접적이 타격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수도 건강에서는 온갖 능욕을 당했던 상동왕 유욱을 중심으로 강력한 쿠테타 세력이 형성되었다.

 

유욱의 의복담당 완전부, 왕도륭, 이도아, 유광세와 환관 전람생이 주도 세력이었다. 황제의 의복담당 수적지는 황제의 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평소 황제의 미움을 샀음으로 유욱 편에 가담해 반란에 동참했고 황제의 심복 종월과 대주 번승정 또한 소속은 황제아래에 있었으나 유욱 편이었다.

황제 유자업은 화림원의 죽림당이라는 황실정원에서 궁인들에게 나체로 숨바꼭질을 시켰는데  한 궁인이 옷 벗기를 거절하자 목을 벤 적이 있었다. 황제의 꿈에 어던 여자가 황제에게 욕을 하였다.

 

“ 황제 너는 패악하니 내년 곡식이 익기도 전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흉흉한 꿈을 꾼 유자업은 다음 날 궁인들을 모두 모은 뒤 꿈속의 모습과 비슷한 여자를 찾아내어 목을 베었다. 그 날 황제의 꿈속에 죽은 그 여자가 나타나 말했다.

 

“ 내가 황천 상제에게 너의 잘못을 모두 고해 바쳤다!”

    

황제가 이런 꿈을 무당에게 말하자 무당은 죽림당에 반드시 귀신이 있는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날 저녁 황제는 시종을 다 물리치고 죽림당에서 무당과 수 백 명의 화려한 옷을 입은 궁녀와 함께 귀신을 활로 쏘는 의식을 열었다. 활 쏘는 일이 끝나고 모여서 잔치를 베풀고 음악을 연주할 순간에 황제의 의복담당 수적지, 강산지 및 순우문조가 칼을 들고 들이닥쳤다. 수적지가 칼을 뽑고 다가오는 것을 본 유자업이 활을 쏘았으나 빗나갔다. 여자들은 혼비백산 도망쳤고 황제 또한 달아나다가 수적지의 칼에 맞아 죽었다. 17세 였다.

숙위에게 명령을 선포했다.

“ 상동왕 유욱이 태황태후 명령을 받아서

  광폭한 군주를 제거하고

  세상을 평정하였다.“

 

상동왕 유욱이 즉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유송의 7대 태종 명제이다. 

    

<13> 유자업의 종말과 유송의 멸망

 

유송의 황제 유자업은 혼군의 대명사다. 황제가 된 지 일 년 만에 쫓겨 나 죽었다. 아버지가 죽었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어머니가 죽어 가는데도 귀신이 무서워 문병하지 낳았다. 고명대신을 가차 없이 죽였으며 반란이 두려워 형제들을 무참히 살육했고 황실 가족들을 능멸했다. 그가 반란에 의해 축출되었으나 문제는 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황실 가족들이 곳곳에 반란이 일어나 나라가 쪼개지고 분열하였으며 잦은 변란과 내란으로 황위조차 불안정하게 계승되었다. 결국 증조할아버지 유유가 AD420년에 세운 송(유송)나라는 유자업의 폭정 일 년 만에 사실상 붕괴되었고 결국 유자업이 쫓겨난 지 14년 만에 제나라 창업주 소도성에게 멸망당하고 말았다.            (끝)

 

4
  • 기사입력 2020년05월22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20년05월20일 10시56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