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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樂觀)이 부른 저성장 쇼크…정책기조 전환 시급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10월25일 18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10월25일 21시13분

작성자

  • 이계민
  •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前 한국경제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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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기 경제성장률 0.4%의 의미, 올해 2% 달성도 난망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연간 2%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가뜩이나 어수선한 사회분위기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24일 3/4분기 경제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0.4%증가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전년 동기대비(연율)로는 2.0%였다. 이런 성장쇼크는 그동안 수없이 지적돼왔던 건설 및 설비투자부진과 민간소비 위축, 수출입 감소 등 모든 분야에서 부진을 면치 못한 탓이다. 특히 그나마 성장률을 뒷받침해왔던 정부재정지출이 전 분기에 비해 줄어들면서 성장률 둔화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 한국은행과  경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는 지난해 말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2.6~2.7%로 잡았다가 몇 번에 걸쳐 2.0~2.1%까지 하향조정했으나 이것마저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올 들어 경제성장률은 1분기에 전 분기 대비 –0.4%로 마이너스 성장을 나타낸 뒤, 2분기에는 1분기 마이너스성장의 기저효과와 재정지출확대 등의 영향으로 전 분기대비 1.0%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3분기에 0.4%에 그치면서 연간 2%대 성장 ‘턱걸이’도 힘들 것이라고 한다. 달리 표현하면 ‘1%대 성장’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연간 경제성장률이 2%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4분기에 최소한 1% 성장이 이뤄져야 한다. 박양수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올해 성장률이 연간 2%가 되려면 4분기에 (성장률이) 잠재성장률(분기별 0.67%)보다 높은 0.97%(반올림하면 1.0%) 이상 나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미·중 무역분쟁, 일본 수출규제, 홍콩 시위 사태, 영국 브렉시트 등 대외 불확실성이 큰 국제환경을 감안하면 사실상 달성이 어려운 수치라는 결론이 나온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소주성’이 기업 활력 파괴

 경제성장률 2%미만이 갖는 의미를 따져보면 더욱 답답할 뿐이다. 한국 경제의 ‘2%대 성장률’은 국민과 정부의 심리적 지지선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해외 충격과 경제위기가 닥칠 때는 2% 성장률이 깨졌다’는 인식과 경험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2% 밑으로 떨어진 것은 성장률 집계를 시작한 1954년 이후 네 번밖에 없었다. 1956년(0.7%)에는 심각한 흉작 때문에, 1980년(-1.7%)은 2차 오일 쇼크로, 1998년(-5.5%)은 외환 위기로, 2009년(0.8%)은 글로벌 금융 위기 때문이었다. 쇼크 수준의 내·외부 충격이 없는데도 올해 경제성장률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2%가 무너진다면 내년에는 더 심각한 충격이 다가올 것이란 불안도 가중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지금 심각하게 논의해야 할 일은 “왜 우리 경제가 ‘저성장 쇼크’에 이르렀나?”를 규명해 보는 것이다. 그래야 대책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청와대를 비롯한 정책당국의 ‘경제낙관론’이다. 경제학자나 연구기관들이 한 목소리로 경제불안 현상을 진단하면서 정책기조 전환을 주장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나 홍남기 부총리를 비롯한 경제정책 당국자들은 한 결 같이 ‘경제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식의 낙관론을 펴왔다. 그 같은 인식은 수보회의나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적나라하게 표출됐다. 그 결정판이 지난 10월 22일 국회에서 문재인대통령이 밝힌 2020년 예산안 제출에 즈음한 ‘시정연설’이 아닌가 싶다.

문 대통령, “우리 경제 견실함 세계가 높이 평가, 고용률 역대 최고…”

이날 경제분야를 설명하면서 문 대통령은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 순위, 3대 국제신용평가기관의 국가신용등급 등을 언급하고, “우리 경제의 견실함은 우리 자신보다도 오히려 세계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올해 9월까지의 평균 고용률이 66.7%로 역대 최고 수준이고, 청년 고용률도 12년 만에 최고치를 보였다”며 “연간 취업자 증가 수가 목표치 15만 명을 크게 웃도는 20만 명대 중반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소득여건이 개선되고” 있고, “일자리의 질도 개선되고 있다”는 게 문 대통령의 경제 진단이었다.

 물론 최근 들어 문 대통령의 경제행보도 약간은 달라진듯하다. 얼마 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을 방문해 투자확대 등에 대한 격려와 함께 지난 10월 17일에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해외출장 중인데도 긴급 경제장관회의를 소집해 기업투자 격려 및 지원, 속도감 있는 규제혁신 등을 통해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데 최선을 다하라고 장관들에게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의 확대 재정정책 기조의 유지 필요성도 피력했다. 경기가 어려울 때 재정지출을 확대해 경기를 보강하고, 경제에 힘을 불어넣는 것은 정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그동안 정부는 적극적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의 급격한 위축을 막고 경기반등 여건을 조성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며 "이런 노력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람직한 행보다.

그러나 이런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말로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정책전환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우선 소득주도성장 기조를 그대로 두고 민간경제 활력을 되찾기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우리경제의 침체가 대외경제 환경의 변화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이나 주52시간 근무시간제 도입, 그리고 무리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유도 등에서 파생된 것임은 모든 경제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문제점이다. 여기에서 기업투자가 위축되고 일자리 감소와 자영업의 몰락을 불러 왔음은 자타가 공인한다.

막무가내 식 재정확대는 민간경제 활성화엔 “독약”

재정정책도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4일에 있었던 시정연설에서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여 대외충격의 파고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한다. 나아가서 우리 경제의 활력을 살리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맞는 말이다. 다만 경제를 살리는 ‘마중물’의 역할은 임시적이고 단기간에 그쳐야 옳다. 재정을 계속 확대해 갈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닌가. 재전건전성 측면에서도 그렇고, 민간경제의 활력을 제고하기 보다는 국가경쟁력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않다. 지난 3분기 경제성장률 0.4% 가운데 민간의 기여도가 0.2%포인트, 그리고 정부기여도가 0.2%포인트라고 한국은행은 밝혔다. 성장률 가운데 절반(50%)은 정부가 만들어 낸 것이다. 그나마 이 수치는 양반이다. 지난 2분기의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1.1%였다. 그런데 이중 정부의 성장기여도가 1.3%포인트에 달했다. 반면 민간의 성장기여도는 –0.2%포인트를 기록했다.정부가 2분기 경제성장률의 100%가 아닌 118%를 기여했다는 얘기다. 민간이 까먹은 0.2%포인트(약 12%)까지 정부가 메꿔준 것이다.아무리 적극적인 재정정책이라 하더라도 이런 경제성장은 비정상이라고 봐야 한다.

 한 가지 더 짚어볼 대목은 잠재성장률 문제다. 잠재성장률의 의미는 한나라의 경제가 보유하고 있는 자본, 노동력, 자원 등 모든 생산요소를 사용해서 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이룰 수 있는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말한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경제는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할 정도로 저물가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최고의 노력을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성장치”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이런 잠재성장률을 고정된 성장한도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주어진 환경이 변하면 잠재성장률도 변하기 마련이다. 투자가 늘어나고, 기술혁신이 일어나고, 경제제도가 바뀌면 그만큼 잠재성장률도 높아지는 것이다. 가끔 정책당국이 "잠재성장률 정도에 접근했으니 '무난한 성장'을 했다”고 스스로 평가하는 경우를 본다. 잘못된 인식이다. 저성장시대를 맞았으니 성장률이 2%대 미만으로 떨어져도 ‘당연한 결과’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민간투자활성화가 중요하고 정부정책이 중요한 것이다.

현실(現實) 외면하고 이상(理想) 추구하는 경제논리는 “허구(虛構)”

결론은 이렇다. 최고정책결정자인 대통령이 대기업을 방문해 격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런다고 경제가 저절로 살아날지는 의문이다. 그보다 먼저 기업하려는 의지, 기업의욕을 고취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기업환경을 바꿔줘야 한다. 대기업을 적대시하는 사회풍조나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지나친 적폐청산의 칼날도 조금은 거둬들일 필요가 있다. 말로만 주장하는 규제혁신, 흉내만 내는 벤처지원, 노조에 기울어진 노동현장, 절대적 평등과 절대적 공정을 주장하는 사회풍조, 여기에 국민 행복과 국가안보에는 안중에도 없는 정치권, ‘남북평화경제’라는 정책당국의 공허한 기대, 이념에 휘둘리는 사법, 이런 것들이 시정되지 않으면 국가장래는 어둡기만 하다. 3분기의 저성장 쇼크는 그러한 국가불안 조짐의 미세한 분말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것은 경제정책기조의 확실한 전환이다.​

문제를 경제에 한정시켜 대안을 찾아야 한다면 기업 활력을 되찾아주는 것이다. 그러자면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먼저 이상한 논리로 정당성을 부여하는 소득주도성장정책의 포기라는 결단이 시급하다. 여기에 규제혁신과 노동개혁 등이 뒷받침돼야 기업투자환경이 개선될 수 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현실을 외면하고 이상(理想)을 추구하는 경제논리는 국가경제를 수렁으로 몰아넣는 허구(虛構)일 뿐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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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9년10월25일 21시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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