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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 한가위 · 중추절 · 중추가절 ……?!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9월12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9월12일 17시10분

작성자

  • 이계민
  •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前 한국경제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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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추석(秋​夕)의 의미, 그리고 민심의 향배는?

 

‘가을 秋, 저녁 夕’

오늘(9월13일)이 추석이다. 글자그대로 해석하면 ‘가을 저녁’이지만 우리가 그냥 낭만적으로 말하는 “가을 저녁”은 아니다. ‘가을 추(秋)’는 ‘벼 화(禾)’와 ‘불 화(火)’가 합해진 글자다. 벼(곡식)가 불(뜨거운 태양)에 익어 결실을 맺는 계절이 가을인 것이다. 저녁 석(夕)은 초생 달을 형상을 본떠 만든 글자다. 옛날 농경 사회에서 달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달의 변화에 따라 시간을 예측하고, 이에 맞추어 농사를 지었기 때문이다. 추석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정치권의 추석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추석에 가족들이 모이기 때문에 여기서 전파되고, 형성되는 민심의 향배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향을 찾는 사람들에게 서울역에서,공항에서,그리고 버스터미널에서 고개숙여 정중하게 인사치레를 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짠하기도 하다. 조금이나마 우리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정성이 기특한 탓이다. 물론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정치꾼들이기에 호감을 갖기에는 부족하기 짝이 없지만…. 

 

어쨋든 추석은  명절중의 명절이다. 추석은 여러 가지 다른 말로도 불린다. 가배(嘉俳), 가배일(嘉俳日), 가위, 한가위, 중추(仲秋), 중추절(仲秋節),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도 한다. 가위나 한가위는 순수한 우리말이며 가배는 가위를 이두식의 한자로 쓰는 말이다. 쉽게 말하자면 추석은 가을의 ‘한가운데 달’이며 또한 팔월의 ‘한가운데 날'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명절이다. 팔월의 ‘한가운데 날’은 보름으로 가장 밝은 달이 뜨는 날이어서 명절의 의미를 더하게 한다.

 

추석의 유래에 대한 명확한 문헌 자료는 없지만 신라시대의 길쌈놀이인 가배(嘉俳)에서 유래됐다는 설(說)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 문헌에는 12세기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추석에 대한 기록이 최초로 나타난다고 학자들이 분석하고 있다. 신라 제3대 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나라 안의 부녀자들을 두 편으로 나누어 한 달 동안 길쌈을 해 마지막 날인 8월 15일에 승부를 가려 진  편에서 음식을 대접하고 '회소곡'을 부르며 밤새도록 노래와 춤을 즐겼는데, 이 길쌈놀이를 가배(嘉俳)라고 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이는 추석이 신라 초기에 이미 자리 잡았으며,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명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4대 명절중 하나로 달을 상징하는 송편 먹는 세시풍속

 

추석(秋夕)은 우리나라 4대 명절 가운데 하나다. 음력으로 정월 초하루 날인 설날을 시작으로 한식, 단오, 추석으로 이어지는 것이 4대 명절이다. 명절을 비롯한 여러 가지 세시풍속은 주로 계절 따라 달라지는 농사일을 바탕으로 조상숭배와 공동체 사회의 결속을 다지는 행사들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갖가지 의식(儀式)의 일상적인 규범이 만들어지고, 세월 따라 변하는 풍속놀이와 문화가 번창했고, 계절 따라 달라지는 음식인 절식(節食)이 탄생된 것이다. 추석의 송편(松䭏)도 그 가운데 하나다.

 

송편은 추석 때 ‘제일 먼저 수확한 햅쌀과 햇곡식으로 빚어 한 해의 수확을 감사’하며, 조상의 차례 상과 묘소에 올렸다. 소나무를 뜻하는 송(松)편이라 한 것은 예쁘게 빚은 떡을 솔잎을  깔고 쪄내기 때문이다. 송편은 ‘달(月)의 음식’이라고도 한다. 중국에서 추석에 빚어내는 떡을 월병(月餠)이라고 지칭하는 것도 ‘달 떡’이란 뜻이다.

 

추석에 먹는 송편이 달 모양을 한 것도 우연은 아니다.숭배 대상이었던 달의  ‘모양을 본떠’ 자연스럽게 송편을 빚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특히 송편을 만들 때 소를 넣기 전에는 보름달 모양이고, 콩이나 팥 등 소를 넣고 접으면 반달 모양이 된다. 송편 한 개에 보름달, 반달 모양을 모두 담아 달의 생성과정과 변화를 송편에 담았다는 해석도 전해진다.

 

추석은 농촌에서 가장 큰 명절로 오곡이 익는 계절인 만큼 모든 것이 풍성하고 즐거운 놀이로 밤낮을 지내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다. 그래서 이날처럼 ‘잘 먹고, 잘 입고, 잘 놀고’ 살았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우리에게는 항상 녹아있다. 그런 민초(民草)들의 바람은 속담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

 

추석은 오곡백과(五穀百果)가 익는 계절인 만큼 모든 것이 풍성하다. 추석에 즐기는 놀이인 강강술래, 줄다리기, 가마싸움 등을 하며 즐겁게 보내듯이 항상 이와 같이 지내고 싶다는 뜻을 담고 있는 속담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시끄러운데다, 경제는 깊은 고통의 늪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불경기여서 서민들의 주머니사정도 여의치 않다. 그렇게 보면 이 속담도 ‘그림의 떡’이라고나 할까. 그냥 민초들의 희망사항에 그치는 것 같다. 오히려 올해 추석이 외롭고 쓸쓸해 여느 해의 추석보다 뒷맛이 씁쓸할 것 같다.

 

“푼주의 송편이 주발 뚜껑 송편 맛보다 못하다”

 

정성과 사랑이 담기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그릇에 차려진 음식이라도 맛이 없다는 뜻이다. 푼주는 아가리가 넓고 밑이 좁은 너부죽한 사기그릇이고, 주발은 놋쇠로 만든 밥그릇을 뜻하는데 당시에는 주발보다 푼주가 더 비싼 그릇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백자나 청자그릇이었던 셈이다. 더구나 주발 자체도 아니고 ‘주발 뚜껑’에 담아놓은 것이지만 정성을 다해 빚은 송편의 맛이 훨씬 더 좋다는 비유다. 요새 현상에 대입해보면 온갖 미사여구(美辭麗句)로 포장했지만 효과도 없고 실속도 없는 정부의 경제정책이 ‘푼주의 송편’이 아닌가 싶다.

 

“작년 팔월에 먹었던 오례송편이 나온다”

 

다른 사람의 아니꼬운 행동에 속이 뒤집힐 것처럼 비위가 상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오례는 ‘올벼의 쌀’과 같은 말이다. 올벼쌀은 제철보다 일찍 여문 벼의 쌀을 말하는데 잘 여물지 않았어도 익혀 말려 쌀로 만들기도 한다. 사법개혁을 핑계로 국민들의 높은 반대여론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조국’ 전 민정수석을 기어코 법무부장관에 임명한 문재인 대통령의 ‘엄청난’ 결단을 보면서 ‘이미 썩어문드러진 작년 팔월의 오례송편’이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은 필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유두에 소 타지 말고 팔월에 타라”

 

음력 6월 농번기 때 놀 생각 말고 농사일에 매진하면 추수가 끝난 후인 팔월 추석 농한기 때 편안해진다는 뜻이다. 유두(流頭)는 유월의 명절로 음력 6월 보름날이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농사일을 도와준 이웃들과 함께 나눠먹고, 소를 타는 의식이 있다. 음력 유월 보름께면 일 년 농사가운데 힘들고 필수적인 농사일은 거의 마치고 수확시기까지 잠시 쉬는 기간이다.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너무 성급하게 김치 국부터 마셔도 탈이 나게 마련이다. 요새 정치권의 다툼들이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김치 국부터 마시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팔월 그믐에 마지막 쉰다”

 

가을인 음력 팔월에도 음식이 쉴 만큼 날씨가 덥다는 것으로 날씨가 선선할 때에도 음식이 쉴 수 있으니 항상 음식이 상하지 않게 조심하라는 뜻이다. 요새는 지구온난화로 추석이 됐는데도 하루 최고 기온이 30도를 육박하고 있으니 더욱 실감나는 속담인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요새 정치상황에 대한 경고로도 들린다.

‘촛불혁명’을 내세우며 집권해 2년여를 달려온 문재인정부의 궤적을 살펴보면 보면 정권 출범시의 국민들에 대한 약속은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다. 거창하고 거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는 이미 빛바랜 종이쪽으로 변한지 오래다. 여야의 극한 대립 속 정치혼란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보수와 진보로 나뉜 이념대결은 시간이 흐를수록 대립각이 가팔라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국민들의 생활형편은 더욱 어려워진데다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현상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일본 등 전통적인 동맹국들과는 협력 틈새가 넓어지고 있고, 북한 김정은에 대한 그칠 줄 모르는 현 정부의 짝사랑은 급기야 ‘국가 안보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오만한 정권’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뒤늦게라도 팔월 그믐에도 음식이 쉴 수 있다는 속담을 되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즈음의 추석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됐다. 추수(秋收)에 감사하고, 조상의 음덕(蔭德)을 기리는 전통명절보다는 ‘가족이 함께 해외여행 갈 수 있는 휴일’ 정도가 그 의미가 아닐까 싶다. 오죽하면 이런 유머가 나왔을까.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대화 한 토막.

 

▲며느리 : 이번 추석에는 어머님께 못 내려갑니다. 가족들이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오려고요. 그리 아세요.

▲시어머니 : 알았다. 여행 잘 다녀 오거라. 이번 추석에는 니들이 오면 집 팔아 남은 돈 9억 원을 첫째, 둘째, 셋째에게 똑 같이 나눠주려 했는데 이번에 안 내려온다니 무척 아쉽구나. 여행 잘 갔다 오거라!

▲며느리 : 아이고 어머님, 죄송해요. 친정에 보낸다는 문자가 잘못 갔네요. 요참에 친정 엄마랑 대판 싸웠거든요. 이번 추석명절에는 음식 만들어 어머님 일 하나도 안하시게끔 할께요. 사랑해요!

▲시어머니 : 애미야! 요즈음 내가 눈이 침침해 90만 원을 9억 원으로 잘 못 읽었구나. 조심해서 내려오고…. 음식은 내가 좋아하는 걸로 많이 싸 오거라. 고맙다~~~.”

 

추석명절 때  쫄쫄 굶은 ‘조상귀신들의 신세한탄’도 들어볼만 하다.

 

“명절 제사 음식 먹으러 후손 집에 가 보니, 아, 글쎄 이 녀석들이 교통체증 때문에 처갓집에 갈 때 차 막힌다고, 새벽에 벌써 지들끼리 편한 시간에 차례를 지내버렸지 뭔가? 가보니 설거지도 끝나고 다 가버리고 없었어.”

 

"자넨 그래도 나은 편이여, 나는 후손 집에 가보니 집이 텅 비었더라고. 알고 보니 해외여행 가서 거기서 제사를 지냈다는 거야. 거길 내가 어떻게 알고 찾아가누?“

 

“나는 상은 잘 받았는데 택배로 온 음식이 죄다 상해서 그냥 물만 한 그릇 먹고 왔어.”

 

"나쁜 놈들! 호텔에서 지낸다기에 거기까지 따라 갔더니, 전부 플라스틱 음식으로 차려서 이빨만 다치고 왔네."

 

열 받은 다른 조상귀신들의 힘없는 대화도 한번 들어보자.

 

"난 말이야. 아예 후손 집에 가지도 않았어. 후손들이 인터넷인가 뭔가로 제사를 지낸다고 해서, 나도 힘들게 후손 집에 갈 필요 없이 편하게 근처 PC 방으로 갔었지.“

 

"그래, 인터넷으로라도 차례상을 받았나?“

 

“먼저 카페에 회원가입을 해야 된다잖아. 귀신이 어떻게 회원가입을 하노? 귀신이라고 가입을 시켜 줘야지!”

 

“에이 망할 놈들!”

 

이런 얘기도 있다. 꼭 추석이 아니라도 평소에도 가정이 편안하려면 아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던가? 다음에 소개하는 변종 한자숙어(?)들을 보면서 이번 추석을 계기로 한번 실천해 보시면 어떨지? 하기야 요새 아내 때문에 혼나고,체면 구긴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기는 하지만….

 

인명재처(人命在妻) : 나의 목숨은 아내에게 달려 있다.

진인사 대처명(盡人事待妻命) :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아내의 명령을 기다려라!

지성이면감처(至誠感妻) : 정성을 다하면 아내도 감동한다.

처하태평(妻下泰平) : 아내 밑에 있을 때 모든 것이 편안하다.

사필귀처(事必歸妻) : 모든 결정은 아내의 뜻으로 이뤄진다.

 

 중추가절(仲秋佳節)……?!, 국민통합은 요원한 일인가?

 

추석 명절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 것인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남녀노소(男女老少)가 각자  다를 것이고, 가족성원이 많으냐 적으냐에 따라 다를 것이고, 형제간에도 장남인지 차남인지, 장녀인지 차녀인지 등에 따라서도 생각하는 자세와 결론이 다를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결혼을 했느냐 안했느냐에 따라 명절을 맞이하는 느낌도 다를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외국인근로자들도 있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한국에서 활동한다. 이들의 다른 처지도 명절을 대하는 자세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결론은 하나다. 함께 의지하고 배려하면서 안전하고 편안한 사회를 일궈나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자 바람일 것이다. 학식과 학력이 높고, 고관대작을 지내야만 국가지도자가 아니다. " 정권을 잡았으니 내 맘대로 하고, 우리 편만 챙기겠다"는 것은 국가지도자가 할 일이 아니다. 추석민심은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 궁금하다. 이번 추석을 계기로 국민통합을 유도하고 세계인들과 화합하며 안보불안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입법·사법·행정을 책임지는 3부요인은 물론 사회지도층의 리더들이 명심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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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9월12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9월12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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