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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망적 경제거래가 국가경제를 좀 먹는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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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4년11월23일 20시03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1시22분

작성자

  • 한만수
  •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변호사

메타정보

  • 32

본문

기망적 경제거래가 국가경제를 좀 먹는다

 

 최근에 언론에서 다음과 같은 범죄 사례가 눈길을 끌었다.

 

사례 1: 볼트 빼먹은 터널공사 업체(조선일보 2014. 10. 10.자 1면)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한 고속도로의 터널 공사 과정에서 터널 붕괴를 막는 락볼트(rock bolt)를 설계보다 수천 개에서 수만 개씩 적게 넣어 시공한 뒤 수억~10여억 원씩 공사 대금을 빼먹은 건설사 직원들이 무더기로 적발되어 특정경제범죄처벌법상 사기 등으로 기소되었다. 적발된 12개 기업 중에는 굴지의 대기업도 포함돼 있었다. 검찰이 2010년 이후 착공한 121개의 터널에 대한 전수 조사를 진행한 결과, 전체 터널의 64%에 달하는 78개 터널에서 락볼트가 설계 수량보다 적게 시공된 것으로 확인됐고, 그 중에는 락볼트의 수량이 당초 설계보다 최대 70%나 적게 시공된 공구도 3곳이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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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 2: ‘세균범벅’ 유기농 웨하스 유통(2014. 10. 10. 조선닷컴 기사)

 

모 유명제과회사가 자신이 제조한 유기농 웨하스 제품에 대한 자가품질검사 결과 기준치 이상의 미생물과 식중독균이 검출되어 폐기하여야 함을 알고도 5년 동안 31억 원어치를 계속 유통시킨 혐의로 기소되었다. 자가품질검사에서  부적합 결과가 나올 경우 반드시 보건 당국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지만, 해당 업체는 보건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임의로 재검사를 거친 뒤 시중에 판매했다. 문제가 된 제품에서는 기준치보다 최고 280배나 많은 세균이 나오거나 식중독균인 ‘황색포도상구균’이 발견되기도 했다.

 

위 2개 사례의 경제적 면에서의 공통점은, 해당 비리를 저지른 기업들은 모두 실제로 창출하지도 않은 가치를 창출하였다거나 별로 가치가 없는 것을 가치가 높은 것처럼 상대방을 속여 허구의 가치를 창출했다고 표방한 것이다. 이러한 허위의 가치창출액은 고스란히 국민의 총생산액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실제로 창출되지도 않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였다고 속여 부풀린 규모가 국민총생산액 중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가 되는지 구체적으로 산출한 통계는 없겠지만, 우리의 생활에서 직.간접적으로 빈번히 경험하는 사례에 비추어 보면 그 규모는 국민총생산의 수십 %는 될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허구의 생산은 우리의 경제에 어떠한 폐해를 가져오는 것일까? 다음의 3가지 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기망적 경제거래는 후생의 결핍을 가져온다. 기망적 경제거래로 인한 허구적 가치창출액에 대응되는 실물적 가치(실제의 재화나 용역)는 실제로 창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구성원들이 경제성장의 지표에 걸맞는 수준의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삶의 질 향상에 필요한 실물적 가치는 생산되지 않은 채 이 주머니에서 저 주머니로 화폐만 옮겨가는 zero-sum 현상이 야기된다는 것이다. 한 마을의 모든 주민이 농한기에 모여 앉아서 노름만 하여 어떤 사람은 돈을 잃고, 어떤 사람은 돈을 따고 한 경우 전체적으로 생활에 보탬이 되는 어떤 것도 생산해 내지 못한 결과임을 상정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정직하지 못한 사회의 경제규모 통계는 실제의 경제규모와 다를 수 있고, 따라서 그 통계적 수치에 걸맞는 수준으로 국민의 삶이 영위되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 기망적 경제거래의 악성은 강한 전염성을 갖는다. 기망적 경제거래를 통해 적게 노력하고 쉽게 많은 이득을 얻는 자를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그 유혹에 쉽게 빠져 들어 자신도 같은 유형의 행위에 가담하기 쉽다. 예를 들면, 가방에 진실한 상표를 붙여 판매하여 적은 이득을 보는 상인이 유사한 제품에 가짜 유명상표를 붙여 수십배의 이득을 챙기는 행위를 옆에서 지켜보게 되면, 그 진실한 상표를 붙여 거래하는 상인마저 가짜 유명상표를 붙여 판매하려는 유혹에 빠져들기 쉽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원리가 여기서도 작동하는 것이다. 기망적 경제거래의 ‘강한 전염성’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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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 기망적 경제거래는 다수의 비(非)가담자 말살 효과를 초래한다. 즉, 기망적 경제거래는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는 효과를 넘어서 그 행위자가 속한 집단 내의 정직한 자가 행하는 다른 경제거래까지 위축 내지 말살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유기농법으로 재배하지 않은 농산물에 가짜 유기농법 재배 표시를 붙여 판매하는 사례들이 반복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알려지면 실제로 유기농 재배를 하는 농부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에 대한 신뢰도 잃게 되어 전체 유기농 재배 농가가 설 땅을 잃게 될 수 있다. 소비지들은 진위에 대한 감별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부를 보고 전부를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부정한 소수가 정직한 다수를 말살시키는 효과이다. 이러한 부정한 소수에 의한 정직한 다수의 말살효과로 인해 일시적으로 이득을 보는듯했던 부정행위자도 장기적으로는 도태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기망적 경제거래로 인해 다수의 거래상대방의 생명을 파괴하는 극단적 경우도 발생한다. 2014년 4월에 발생한 세월호 침몰로 인한 다수의 인명 상실 사건과 그로 인한 우리 경제의 장기간 위축이 그 대표적 예이다. 사람을 태우고 장거리를 운항할 수 없는 상태의 배를 정직하지 않은 선원들에게 맡겨 운항하게 한 기망적 경제거래의 극치였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 경제대국에 진입하려면 자기파괴적 기망적 경제거래의 악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단속이 아니라 교육이다. 단속은 근본적으로 원인을 제거하지 못한다. 내가 행하는 기망적 경제거래가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나와 내 가족의 삶의 질까지 훼손한다는 원리를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직.간접 방식의 교육을 통해 몸에 익힌 정직성은 평생을 가기 때문에 그들이 성장해서 활동하는 사회는 정직한 사회가 될 것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2, 30년 전을 돌이켜 볼 때 우리 사회의 기망적 경제거래의 발생 빈도가 많이 줄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정직한 경제거래의 대열에 동참하여야 할 필요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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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1시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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