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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도 잘 읽는 한국. 중국 의도도 잘 읽고 있을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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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4년11월05일 22시07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3시17분

작성자

  • 이성현
  • 일본 규슈대 교수 (前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팬텍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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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의도 잘 읽는 한국. 중국 의도도 잘 읽고 있을까?

 김정은이 40일 동안 보이지 않는 기간동안 그의 실각설·쿠데타설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을 때 필자는 마침 워싱턴에서 한 북한관련 비공개회의에 참석 중이었다. 미국 참석자 어느 누구도 김정은의 권력장악에 이상이 있다고 보지 않았다. 언론보도와 체감온도가 틀렸다. 참석자들의 면면을 보면 그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수준이 일반인과 원체 틀리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인사들이 언론을 상대로 북한 상황에 대해 어떤 말을 하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워싱턴에서도 ‘북한’은 다양한 오디언스(audience)를 염두에 두고 펼치는 정치다.

     

2011년 12월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이 갑작스레 사망한 후 언론에서는 ‘북한 붕괴 초읽기’를 점쳤다. 베이징의 미국대사관 한 관계자가 면담을 요청해왔다. 필자는 당연히 그가 ‘북한이 붕괴되면 중국에 흡수될 것인가?’라는 당시 언론이 많이 관심을 갖는 질문을 던질 줄 알았다. 그의 질문은 예상 밖이었다. “향후 20~30년 후에 북·중관계는 어떤 식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보는가?” 적어도 앞으로 20~30년 동안은 북한이 망하지 않고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하고 던지는 질문이었다. 필자는 그 미국 관계자가 비범하다고 느꼈다. 

     

북한의 상황에 대해 전문가그룹이 가지는 인식은 때론 이처럼 언론보도와 꼭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핵심 외교 전략가들이 내부적으로 얼마나 정세를 면밀히 잘 판단하고 있는가일 것이다. 특히 주변국들과 시너지가 필요한 북한 문제의 경우 미·중 등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주는 주변 강대국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잘 읽는 것은 당연히 매우 중요하다. 한국은 구한말 주변강대국들의 의도를 잘못읽어 수십년동안 다른 나라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나중에 또 분단의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한국은 미국의 의도는 잘 읽는다. 한국의 전략적 실수는 중국의 의도를 잘못 간파하는데서 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바마의 남은 임기 약 2년 동안에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정책, 즉 ‘전략적 인내’를 적극적 개입이나 획기적인 관계개선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는가하는 질문에 답은 ‘노우’이다. 이것이 아주 ‘센 노우’ 인지 아니면 ‘약한 노우’인가? ‘아주 센 노우’이다. 이것은 6자회담이 다시 개최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이런 큰 그림을 잘 읽어야 한다. 즉, 미국이 스스로 북한에 대한 정책을 바꿀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한국이 주도해서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해 나간다면 미국은 협조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예스’이다. 한국의 전략가들은 이 점을 숙지하고있고 향후 전략적 체스판의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중국이다. 한국이 중국의 실체를 정확히 모르면 잘못된 외교 처방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이미 중국을 오판한 전과(前科)가 있다. 그중 하나가 중국을 이용해 북한문제를 해결하려는 한국의 접근법이다. 이 전략은 한국언론에서도 북핵 문제를 다루는 주요 해법으로 인식이 될 정도로 한국에서 주류 담론으로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심지어 한 신문은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에게 ‘중국이 한국과 함께 북한정권을 붕괴시킵시다’라는 글도 실었다. 소설 형식을 빌었지만 한국이 북한문제에 대해 중국의 역할에 얼마나 큰 기대를 하는지 투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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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방한한 시진핑은 한국 안방에서 중국의 대북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한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흥분케 했던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것이다’는 담론도 주춤해졌다. 북한 문제에서 중국을 활용하려고 한 한국이 오히려 한·일 간 틈새를 벌여놓려고 하는 중국의 전략에 활용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는 ‘균형외교’로 나가자, 중국은 남북한 사이에 균형외교를 펴며 한반도에서 자기의 입지를 넓혔다.

     

한국은 ‘전과(前科) 2범’이다. 천안함사태 때에도 중국의 전략에 대해 오판을 내렸다. 당시 한국은 중국이 북한의 행위를 비난할 줄 알았다. 한데 중국은 ‘평정심을 지키라’고 했다. 유엔에서 강도 높은 결의안이 채택되는 것을 물타기해 강도가 낮은 ‘의장 성명’ (president’s statement)으로 그치게 한 것도 중국이었다. 한국 언론은 당시 한·중·일 회담 참석을 위해 제주도를 방문한 중국 원자바오 총리가 마침내 북한을 비난하는 발언을 해줄줄 알고 목이 빠지게 기대했지만 그 예측 역시 보기 좋게 빗나갔다. 원자바오는 북한을 언급하지 않고 제주 막걸리를 극찬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한국 대통령을 만난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숫제 `연평도` 란 단어도 언급도 없이 남북한이 "싸우지 말라"고 해서 한국인들의 염장을 질렀다. 

     

대국의 공의(公義)를 펼치지 못한 중국이 비난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중국의 전략적 속내를 꿰뚫어보지 못한 한국의 책임도 있을 것이다. 한국이 '중국의 본심'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중국이 여전히 속마음을 드러내길 부끄러워하는 사회주의 '극장 국가'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도 있겠지만, 그것이 한국의 중국전문가들에게 자동적인 면죄부를 주는 편리한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에서는 중국의 대북정책이 아직 근본적인 변화는 없지만 이것이 이미 시작된 큰 변화의 물줄기라고 보는 듯 하다. 중국의 대북정책이 이미 진화 (進化)하는 과정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한국이 이런 변화의 '큰 그림'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전략가들은 북핵실험으로 북·중 관계가 소원해진 틈을 타서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여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는 '적극적인 상황 변화'로 이어지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런 미래 지향적인 시각은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추진하는 것이 목표인 한국 외교의 정책 방향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많은 지지를 얻는다. 

     

이런 '희망의 논리'는 중요하다. 미래지향적인 전략적 시각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아·태지역 의 지정학적 측면에서 미국과 주도권을 다투는 중국이 한반도를 바라보는 전략적 마인드를 간과한 측면이 있다. 미ㆍ중이 세력 전이를 하는 과정에서 둘 사이의 경쟁과 전략적 불신이 더욱 치열해지고,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려는 아·태 전략에 중국이 대응하는 차원에서 북한에 대해 자꾸 집착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미·중 관계가 해결되지 않으면 북한을 포기할 필요가 없고, 또 포기해서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을 중국은 하고 있다. 또한 이를 포기하게 하려는 것이 미국과 한국의 전략이라고 중국 전략가들은 보고 있다. 러시아가 1990년대 북한에 등을 돌린 후 대북 영향력을 상실한 사례를 반면교사 (反面敎師)로 삼자는 인식이 중국 내부에서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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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의 위상이 구한말과 달리 더 이상 미·중 ‘두 고래 사이에 끼인 새우’가 아니라 덩치가 커진 ‘돌고래’로서 영민한 외교를 펼치고 있다고 외교관계자들이 자신감을 보이는 것에서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새 사위를 얻은 장모가 사위 잘되라고 끊임없이 걱정하는 마음으로 작금의 한국 외교를 걱정하는 오피니언리더들도 많다. 

     

한국의 전략가들은 우선 중국이 한반도에 그리는 큰 그림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그 첫째는 1992년 한·중 수교후 양국간 교류가 심화되는 것이 중국이 장차 북한을 포기하고 한국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과 수교한 중국의 전략은 북한만이 아니라 남북한 모두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 한국에서 발휘하는 영향력을 말소하고 한반도전체에서 중국의 독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이상적인 목표다. 옛날처럼 말이다. 

     

구한말에도 한국의 지식인들은 한국이 이래야 한다고, 혹은 저래야 한다고 충정이 깃든 전략을 내놓았다. 서로다른 전략들 사이에서 주도권을 잡으려고 경쟁했을 것이며, 때로는 자기와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을 모함도 했을 것이다. 본인이 접한 외국의 신문물과 사상에 감화를 받아 자기가 꿈꾸는 이상을 정책구현을 통해 추구하려 했을 것이다. 혹은 강대국들 사이의 세력전이를 개인의 국내적 신분상승 기회로 삼으려고 한 지식인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 한국은 잘못된 선택을 했고, 아픈 상처를 한국 역사에 남겼다. 역사는 반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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