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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교육과정은 범정부 기구에 맡겨야 한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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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4년08월28일 22시59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5시10분

작성자

  • 이덕환
  •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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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교육과정은 범정부 기구에 맡겨야 한다

 과학계가 교육부의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정과 수능 개편 작업에 대해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민들이 과학·수학을 ‘적대시’하고 있다는 시대착오적 인식에서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는 교육부의 ‘이과 폐지’ 시도를 즉시 중단하고, 민주화·다원화·선진화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요구가 충분히 반영된 미래지향적인 교육과정과 수능 개편안을 마련하기 위한 범정부 기구를 서둘러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과학·수학 교육을 무력화시키고 이공계 기피를 심화시켜왔던 교육부와 일부 교육학자들에 대한 불신이 반영된 요구이기도 하다.

 

  학생을 ‘문과’와 ‘이과’로 구분해서 가르치는 관행은 일제가 남겨준 잔재로 일본·한국·중국·대만 등 동아시아에서만 볼 수 있는 기형적인 교육제도다. 문·이과 구분 교육이 학생의 적성과 진로를 고려해서 학습 부담을 줄여준다는 주장은 황당한 궤변이다. 문·이과 구분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능인’을 값싸게 양성하기 위한 교육행정편의주의적 제도일 뿐이다. 

 

  물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에는 문·이과 구분 교육이 쓸모가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졌다. 이제는 몇 푼의 사회적 비용을 아끼기 위해 모든 학생들에게 적성과 진로 선택권의 절반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일은 그만 둬야 한다. 학문적·교육적·사회적으로 아무 근거가 없는 문·이과 구분 교육은 다양한 분야의 융합을 강조하는 새로운 시대적 요구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등학교에서의 어설펐던 문·이과 선택을 후회하는 대학 신입생이 적지 않다는 사실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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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의 잔재인 문·이과 구분 교육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제오늘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1995년 범사회적 기구였던 교육개혁위원회의 5·31 교육개혁안에 따라 1997년에 개정된 제6차 교육과정이 그 출발이었다. 문·이과 구분 폐지를 위한 준비 단계로 ‘공통사회’와 ‘공통과학’을 신설하고, 새로운 과목을 가르칠 교사의 임용을 시작했다. 그리고 1997년의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실제로 문·이과의 구분을 확실하게 폐지했다. 다만 급격한 교육 제도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 수능에서는 문·이과의 구분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기로 했을 뿐이었다. 과학계가 2009년에 문·이과 구분 폐지를 처음 주장했다는 일부 교육과정학자들의 주장은 명백한 오류다. 문·이과 구분 폐지를 위한 더 이상의 준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변화도 거부해왔던 사범대학이 문·이과 구분 폐지에 반발했다. 제6차 교육과정에서 문·이과 구분 폐지의 준비 단계로 시작한 공통사회와 공통과학을 가르칠 교사의 양성을 위한 학사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았다. 국비로 운영되는 국립대의 사범대학이 국가의 핵심 정책의 수행을 정면으로 거부한 셈이다. 결국 공통사회와 공통과학 교사는 학교 현장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형편이다. 시대적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범대의 현실은 심각하다. 대부분의 교육학자들은 과학적 소양이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나 필요한 것이고, 과학 교육은 이공계 대학으로 진학하는 이과 학생들에게만 제공하면 된다는 낡은 인식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있다. 문·이과의 구분 없이 모든 학생들에 대한 과학·수학의 교육을 강조하는 선진국 교육의 변화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교육학자들의 시대착오적이고 반(反)교육적인 인식이 결과적으로 공교육 현장에서 과학·수학 교육을 황폐화시킨 요인이 되어 버렸다. 현재 공교육 현장에서 과학 교사의 수는 사회 교사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버렸고, 지방의 경우에는 1~2명의 과학 교사가 근무하는 학교가 대부분이다. 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으로 구분된 현재의 틀에서는 학생들의 자율선택권도 보장해줄 수 없는 형편이다. 더욱이 문과를 선택한 학생들이 과학·수학을 자신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인식해서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언필칭 과학기술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 학생들이 최소한의 과학적 소양과 논리적 사고력을 키워줄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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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교육과정에서 사라져 버린 문·이과의 ‘통합’은 의미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국가와 학생의 미래를 무시한 문·이과 구분의 흔적을 제거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문과’나 ‘이과’의 낙인을 찍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렇다고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은 교육을 시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허울뿐인 자율선택을 핑계로 독서·화법·문법·작문·문학·고전처럼 과도하게 쪼개놓은 교과목을 통합해야 한다.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여준다는 황당한 핑계로 쉽고 재미있는 것만 가르치겠다는 반(反)교육적 주장도 거부해야 한다. 자신들이 좋아하고, 잘 하는 과목을 더 높은 수준까지 더 많이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문·이과 구분 폐지의 진정한 뜻이다.

 

  황우여 신임 교육부 장관이 취임사에서 밝혔듯이 공교육은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국민 개개인의 행복 구현이라는 본질을 회복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교육학자들의 기득권 챙기기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려 이미 학교 현장에서 무력화된 국가교육과정을 바로 세우는 일이 교육의 기본적 가치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는 ‘바른 교육’을 실천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우리 교육이 추구해야 하는 새로운 미래지향적 인재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문·사회·과학·기술·문화·예술·산업 분야의 명망 있는 인사들로 구성된 범사회적 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교육의 목표를 설정하는 일은 교육학  전공자들이나 교육부의 업무 영역을 훌쩍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범사회적인 교육개혁위원회가 그런 일을 했고, 2009년의 교육과정에서는 교육과 과학기술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우리 사회가 어렵게 민주화를 달성한 이후에 확실하게 만들어진 새로운 전통을 무시하는 교육부의 퇴행적 자세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교육부가 교육과정 개정의 절차를 완전히 무시하고 밀실에서 무력화시켜버린 2009 개정 교육과정도 원상회복시켜야 한다. 교과목간 이해관계 조정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정체불명의 ‘교육과정학중심주의’는 아무도 원치 않는 것이다. 공교육의 황폐화를 걱정하고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해왔던 과학계를 교육에 무지한 이기주의적 집단으로 매도하거나 세계사의 비극적 사실에 빗대어 폄하하는 발언도 위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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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5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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