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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법 여부, 국민 투표에 부치자 (부제: 최후의 1인)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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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4년08월24일 00시10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5시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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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법 여부, 국민 투표에 부치자 (부제: 최후의 1인)

 나라와 백성이 사느냐 죽느냐하는 국가 존망의 위기에 한사람이 의연하게 우뚝 서서 나라를 구한 인물의 이야기, 영화 “명량”(최민식 주역)이 현재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단기간에 1500만 명을 넘어 관객이 계속 몰려 종전의 흥행성과를 갈아치우고 있다. 이것은 근래 바로 되는 일은 없고, 어처구니없는 세상일들은 많아, 애국충절의 감동에 목마름을 느끼는 인구가 많다는 반증이다.

 

  이순신은 시대를 초월한 민족의 영웅이다. 그를 추앙하는 인구가 저리도 많은데, 어찌하여 요즘 나라꼴은 이래도 신통치 아니할까? 어느 사회에나 사람들의 영화관람 취향과 일상적 개인생활 방향 사이에는 틈새가 벌어져 있기 마련이다. 아마도 “마지막 한사람”이란 우쭐한 생각이 깔려있는 듯싶다. 여기에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다툼의 대상 선정이고, 그 다음은 다툼의 방법이다.

 

“라스트 맨 스탠딩”(1996년 작)은 일본 극본을 토대로 만든 미국 영화이다. 제목 그대로 최후까지 버틴 사나이 스미스(부르스 윌리스 역)은 금주(禁酒)시대(1920-1933) 갱단들 틈새에서 활약하던 총잡이 역이다. 보안관도 지방유지도 모두 타락한 도시는 선과 악의 구별이 애매모호한 상황을 만들고 갱들은 빈번하게 끔찍한 총격 살인 장면을 연출한다. 반전을 거듭하다가 마지막까지 홀로 살아남아 빈털터리 신세로 멕시코 국경을 넘는 주인공이 의(義)롭고 선(善)하다기보다 찜찜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 물론 당시 시대 상황에서 고지식하게 반듯한 사람들은 살아 숨 쉬기 어려웠을 것이다. 혼자 최후까지 살아남는다고 진정한 영웅이 아니다. 누구를 상대로, 어떻게 맞서 싸우느냐가 영웅을 규정한다.

 

요즘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마지막 버티기가 횡행하고 있다. “알배기”는 부동산 시장에서 최후의 1인을 말한다. 마지막까지 버텨내기(hold-out)가 주특기이다. 각종 지역개발, 아파트 재개발 사업 등에서 한사람 또는 극소수가 시일을 질질 끌며 선량한 다수 시민에게 상당한 경제적·정신적 손실을 입히고, 사업주와 뒷거래로 이익을 챙기고도 버젓하게 승자로 살아간다. 

 

 국내외 금융시장, 특히 구조조정 협상 테이블은 버티기 무리들의 놀이터이다. 지난 8월 7일 아르헨티나 역사상 여덟 번째 국가채무 디폴트가 발표되었다. 사태가 이렇게 꼬이게 되기까지 헤지펀드들의 집요한 버티기가 있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죽은 시체 뜯어먹고 사는 새 “벌쳐“(vulture)라는 별명이 따른다.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기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저항 움직임은 포용되어 온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고 치자. 그런데 이것이 불씨가 되어 곳곳에 번져 불타올랐다. 노동 분쟁터에서, 터널·송전탑 등 기간시설 공사장에서, 해군기지 건설 현장에서 환경 등을 이유로 막장까지 버티기가 다수 국민의 공익을 좀먹어 들어가는 균사체로 번지고 있다. 이를 부채질하기에 이골이 난 일부 단골 인사들이 유명인사 대접받고, 대중매체들은 이들의 앵무새 입이 되어 여론을 오도하고 있다.

 

 이순신은 못난 임금 선조와 속 좁은 반대파에게 여러 차례 시달림을 받았다. 그가 뛰어난 것은 그런 고초 속에서도 금도(襟度)를 가지고 절도(節度)를 지켰다는데 있다. 만부득이 선물을 바치는 등 에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작은 일에는 외고집을 부리지 않되 큰일은 기여코 이루었다. 유연함이 있었기에 강인할 수 있었다. 주어진 시대상황의 틀 속에서 그 한계를 알고 불가능한 승리를 불가피한 귀결로 이끌어 내는 것이 그의 성공비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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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은 세월호 후유증에 지쳐있다. 침몰 이후 만 4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희생자들을 애석히 여기고 경박함을 삼가는 조문 분위기가 여전하다. 3년상을 지키던 예전과 달리 초상 치르고 삼우제 마치면 대게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요즘 세태에도 말이다. 불행하게도 아직 10구의 시신이 바다에 갇혀 있다. 국민은 조속한 수색 성과를 바라는 마음이 한결 같지만, 일상 복귀와 경제 활성화를 재촉하는 자연스런 욕구가 점차 강한 압력으로 감지된다. 5천만 국민 대다수는 친부모상보다 긴 문상 분위기에 피곤을 느끼고 있다. 만사에 무게중심이 있는 법, 기울어진 균형은 되잡아야 한다. 문제해결도 보상도 그러하다. 대중매체는 세상 여론이 바람개비임을 알아야 한다.

 

 일부 유가족들이 버티고 있다. 국민에게 폐를 끼칠 수 있다는 인식에 눈을 떠야한다. 투표로 당선된 국회의원은 마땅히 다수의 유권자들을 의식해야 한다. 유권자들은 불만을 속으로 삭이고 있다. 국민의 손에 선출된 적 없는 소수 인사들에게 볼모잡힌 정치인들은 풀뿌리 정서 변화를 놓치고 있다. 대통령에게 따로 무슨 비장의 해법이 있다고 또다시 면담을 요구하는가? 법 질서를 교란시키고 국민부담 늘이는 길 이외는 말이다. 사건 있을 때마다 특별법이 재정된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특별법이 만들어져야 하나? 한번 전례가 만들어지면, 반복을 막을 장사가 없다. 그래도 특별법? 그렇다면 반드시 국민투표를 거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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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은 싸워도 주어진 제도 속에서 싸웠다. 그러다가 스스로 죽음의 자리를 선택해야 하는 한이 있어도 말이다. 그래서 이순신은 영웅이고, 라스트맨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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