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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 그 허망한 실체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7월22일 16시49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1시14분

작성자

  • 김학수
  •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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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인성교육,” 그 허망한 실체

 

 지금 대학의 많은 학과목들에서 4~5명씩 조(組)를 짜주고, 각 조에게 어떤 과제를 던져주는 소위 조모임 활동이 유행이다. 인문사회과학의 과목들인 경우, 거의 대부분 그런 조모임이 요구되고 있다. 일방적으로 교수가 강의 하고, 학생들은 노트필기에 몰두하고, 그리고 나서 중간시험과 학기말시험을 통해 교수가 전달한 지식을 잘 암기했는가를 체크하는 옛날식 교육방식만을 고수하지 않는다. 조모임은 학생들의 자율성과 문제해결 역량, 그리고 발표능력을 훈련시킨다는 취지에서 성행하고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다양한 조모임을 통해 학생들이 얻는 경험은 대체로 긍정적이지 못하다. 우선 조가 구성되고, 과제가 주어지자마자 그들은 바로 노동분업에 들어간다. 즉, 각자가 해야 될 역할과 임무를 쪼개어 각자도생(各自圖生)하게끔 유도된다. 그래서 각 조가 내놓는 최종 생산물은 결국 각자가 준비한 내용을 단순히 모은 것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진지하게 함께 생각하고 노력한 흔적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각자가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할 역량이 부족하거나 노력을 게을리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들은 곧 무임승차자(free riders)로 편승한다. 반면에 부과된 과제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일부 조원(組員)은 사실상 그 전체 과제를 떠맡는 일이 발생하고 만다. 이렇게 되면서 대부분의 조원들은 조모임의 필요성과 보람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동료들에 대한 깊은 실망 내지 상처만 얻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원 각자가 이구동성으로 내뱉는 마음 속 독백(獨白)은  “혼자 하는 게 훨씬 나을 뻔 했다”이다. 조모임을 통해서 결국 타인에 대한 존경심과 배려심보다 ‘증오심’만 키워졌다고 보면 더욱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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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난감한 현실에 이른 바 인성교육의 허망(虛妄)한 실체가 모두 드러나 있다. 조모임을 통해 “자기”와 “전체”가 함께 성장하는 경험을 느끼지 못하는 한, 그것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깨달을 수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조모임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원리(原理)가 개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효과적으로 인도할 수 있는 교육방안도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학생들의 조모임은 자율성, 문제해결 역량 및 발표능력을 기른다는 허울 아래, 전적으로 학생들에게 내팽개쳐져 있는 게 현실이다. 만약, 성공적인 조모임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거의 우연히 일어났을 뿐이고, 그것도 대부분 어떤 한 사람의 “헌신적인” 노력(흔히 지도력)에 의해 가능했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조원(組員) 모두가 동등한 수준으로 성장하기보다 지도자와 추종자의 지도력 사이에 간극(間隙)만 더 넓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결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의 교육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현장의 모습이다. 

“인성교육”을 법제화시킨 ‘인성교육진흥법’이 7월 21일부터 가동된다. 여기서 인성(人性, personality)은 개인 중시의 성격, 예컨대 경쟁심, 이기심, 공격성 등을 가리키기보다 타인에 대한 배려의식, 즉 공동체의식 내지 시민의식 등을 중시하는 성격을 가리킨다. 세월호 참사에서 겪은 자기만이 살고 보자는, 사회적 직분의 책임의식을 내팽개친, 다시 말해서 공동체의식의 결핍을 극복해보자는 취지에서 법(法)이 만들어졌다. 

 

법만 만들면 공동체의식이 살아날 수 있다는 “허망한” 법 만능주의가 또 한번 발휘되었다고 보면 된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제일 먼저 자신과 전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원리(principles)”를 깨닫고, 다음으로 그들을 연습하고, 실천하지 않는 한, 모두 허망한 결과, 아니 거꾸로 된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다. 조모임 내지 집단활동의 경험에서 오히려 깊은 상처를 받는 일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정치집단의 집단활동이 스스로는 물론 국민적 공동체마저 파괴시키고 있는 모습이 아닌가 싶다. 

 

법제화는 또한 제도화로 나아가는 게 상례이다. 안전이 위협받으면 안전처를 만들고, 메르스 같은 전염병이 창궐하면 보건부를 독립시키고, 공동체의식의 인성이 부족하면 인성교육진흥위원회(시행령)을 설치하면 해결된다고 믿는 게 정부 정책이다. 제도 만능주의가 문제해결의 열쇠라는 생각을 결코 저버리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만든 수많은 제도들이 엄청난 인력과 예산의 낭비로 끝나는 것을 한없이 경험했건만, 새로운 창의적 해결방안은 결국 제도의 설립 내지 변경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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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이른 바 조모임의 생산성을 높이는 “원리”를 깨닫지 못하는 한, 어떤 인성교육도 허망할 뿐이다. 따라서 지금은 국가의 우선적인 지원 아래, 너무 서두르지 말고 그 원리를 탐구하는 데 진력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야 법과 제도와 교육이 나아갈 방향이 잡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한민국의 인성교육이 세계적 선도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도 생길 것이다. 공동체의식 내지 시민의식은 정치적 슬로건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전체”가 함께 발전하는 조모임(팀워크)의 경험을 하지 않는 한 결코 얻어질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전체를 위해서 나를 버리(라)거나, 나를 위해서 전체를 버리(라)는 관점들은 아주 잘못된 지향점들이다. 따라서 “영웅”의 숭배는 오히려 공동체의식의 기피를 조장할 수도 있음에 크게 유의할 필요가 있다. 거듭, “나”와 “전체”가 함께 성장하는 “원리”에 천착할 때만이 인성교육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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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1시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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