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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돈의 역사해석] 통합이냐 분열이냐, 국가 흥망의 교훈 #13 : 여광 일인국가 후량(D)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8년12월13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8년12월11일 15시32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 21

본문

 흥망의 역사는 결국 반복하는 것이지만 흥융과 멸망이 이유나 원인이 없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 나라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탁월한 조력자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진시황제의 이사, 전한 유방의 소하와 장량, 후한 광무제 유수의 등우가 그렇다. 조조에게는 사마의가 있었고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으며 손권에게는 육손이 있었다. 그러나 탁월한 조력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통합능력이다. 조력자들 간의 대립을 조정할 뿐 만 아니라 새로이 정복되어 확장된 영역의 구 지배세력을 통합하는 능력이야 말로 국가 흥융의 결정적인 능력이라 할 수가 있다. 창업자의 통합능력이 부족하게 되면 나라는 분열하고 결국 망하게 된다. 중국 고대사에서 국가통치자의 통합능력의 여부에 따라 국가가 흥망하게 된 적나라한 사례를 찾아본다. 

  

(16) 여광의 후량 건국(AD386) 

 

여광의 장수 팽황과 서경이 임도(감숙성 민현)에서 전량의 잔당 장대예를 크게 격파했다. 전량의 장천석이 부견의 공격을 받아 망하면서 동진으로 도망갈 때(AD376) 어린 세자 장대예를 왕목이 숨겨서 하서(감숙성 중서부)로 달아났었는데 이 지역을 장악하던 독발사복건이 장대예를 보호해 주었다. 독발사복건은  AD397년 남량을 세운 독발오고의 아버지다. 독발사복건은 장대예를 위안(감숙성 고랑현)으로 보냈는데 이 지역 사람 초송, 제숙, 및 장제 등이 장대예를 주군으로 모시고 여광의 영토 창송군(감숙성 무위시)을 점령하고서 반란을 일으켰다.  

 

여광은 장수 두진에게 장대예 무리를 토벌하게 했지만 두진은 패배했고 장대예 무리는 다시 후량 수도 고장(감숙성 무위시)까지 쳐들어왔다. 장대예의 충신 왕목이 이렇게 간했다.

 

 “ 여광의 군대는 양식이 풍부하고

   숙련된 전투병일 뿐만 아니라 갑병은 정예병인데다

   성벽이 공고하므로 그를 공격하는 것은 옳은 전략이 못 됩니다.

   영서지방(감숙성 장액, 주천 및 돈황지역)을 장악한 뒤에

   군사를 연마하고 나서

   틈을 보아 공격하면 일 년도 안 돼 여광을 잡을 수 있습니다.“

 

어린 장대예는 왕목의 말을 듣지 않았다. 스스로 무군장군 양주목이라고 일컫고는 왕목을 장사로 삼고 군사를 일으켜 여광에 대항하였다.(AD386년) 장대예가 왕목 및 독발사복건의 아들 독발해우와 함께 3만 군사로 고장(감숙성 무위)의 서쪽에서 여광과 대치했는데 여광이 직접 나아가 이들을 격파해 독발해우와 2만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AD386년) 장대예는 요행히 죽음을 면하고 빠져 나와 감숙성 남쪽으로 도망갔다. 

 

AD386년 부견을 죽인 후진 황제 요장이 장안에서 즉위했다. 부견의 사망소식을 늦게 전해들은 고장에 있던 여광은 AD386년 9월 군대 전체에게 흰 옷을 입게 하고 통곡했다. 그리고 10월 대사면령을 내렸으며 연호를 대안(大安)으로 정했다. 스스로 사지절 중외대도독 독농우하서제군사 양주목 주천공이라 불렀다.(12월) 이때가 사실상 실질적으로 후량을 건국한 셈이다. 

 

(17) 전량 후예 장대예의 최후와 이어지는 왕목, 팽황, 강녕의 반란(AD387년)

 

AD387년 여광의 장수 팽황과 서경이 임도(감숙성 민현)로 도망간 장대예를 공격하여 깨뜨렸다. 장대예는 광무(감숙성 영등현)로 도망갔고 왕목은 주천(감숙성 주천)으로 도망갔다. 그해 8월 광무 사람이 장대예를 사로잡아 고장으로 압송하자 여광은 그의 목을 잘랐다. 왕목은 주천을 점거한 후 스스로 대장군 양주목이라고 일컫고 자립하기로 했다(AD387년7-8월)

 

여광의 서평(청해성 서녕)태수 강녕도 스스로를 흉노왕이라 칭하며 황하(청해성 화륭현)태수 강희 살해한 후 반란을 일으켰다. 장액태수 팽황도 반란을 일으켜 동쪽 주천에 있는 왕목과서평에 있는 강녕과 연대를 모색했다.

 

여광은 직접 팽황을 공격할 생각이었다. 여러 장수들이 말리며 나섰다.

 

 “ 전하가 팽황을 공격하면 남쪽의 강녕이 협공하여 올 것입니다.

   매우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여광이 대답했다.

 

  “ 실로 제장들의 말이 맞소.

    그러나 내가 지금 가지 않으면 저들이 쳐들어 올 것이요.

    세 군대가 동시에 북, 남에서 쳐들어오면    

    나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 또한 당연하지 않겠소.

    지금 팽황이 처음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강녕과 왕목의 마음이 서로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오.

    이럴 때 갑자기 공략한다면 승산이 높지 않겠소?“

 

3만 군사를 이끌고 빠르게 진격, 20일 만에 팽황을 잡아들여 참수했다. 여광의 전략적 재능이 남다르게 뛰어났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림] 왕목, 강녕, 팽황의 반란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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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왕목의 단견과 멸망(AD387)

 

왕목이 주천에서 군사를 일으켰을 때 사자를 보내 돈황처사 곽우를 소환했다. 곽우는 저족여광의 지배하에 들어가면 모두가 야만인의 휘하에 들어가 좌임(옷을 좌쪽으로 맴)하게 될 것을 탄식하며 한족인 왕목을 돕기로 했다. 색하라는 사람과 함께 군사와 곡식 3만 석 모아 왕목에게 보냈다. 왕목은 고마운 곽우를 좌장사, 군사장군으로 삼았고 색하는 돈황태수에 임명했다. 

 

그러나 왕목이 참소하는 말을 믿고 색하를 공격했는데 곽우가 왕목을 말렸어도 듣지 않았다. 곽우가 성안으로 돌아와 대성통곡하면 말했다.

 

 “ 내가 다시는 너희들을 볼 수 없겠구나.”

 

복면을 덮어쓰고 곡기를 끊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광은 이렇게 말했다.

 

  “ 두 오랑캐가 서로 공격하면 이제 둘 다 사로잡는 것이다.

    이 호기를 잃을 수는 없다.“

 

보병과 기병 2만을 보내 주천을 공격해서 왕목을 이겼다. 왕목이 홀로 달아났으나 성마(감숙성 옥문)현령 곽문이 그를 잡아 머리를 베어 여광에게 보내왔다. 이로써 하서지역은 완전히 여광의 손아귀에 들어간 셈이다.

 

(19) 여광의 2인자 두진 제거(AD388)

   

여광이 양주 평정(AD385) 때 참모 두진의 공적 많았다.[위(13)참조] 여광은 그를 무위태수에 임명했으며 존귀함과 총애에서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여광의 조카 석총이 관중에서 돌아오자 여광이 이렇게 물었다.

 

   “ 중원지역 사람들이 내정치를 어떻게 평가하던가?”

 

석총이 대답했다.

 

  “ 두진이 있다는 말만 들었을 뿐

    외숙이 계신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여광이 후환을 두려워하여 두진을 죽였다. 여광이 여러 신하들을 불러 잔치를 열었는데 단업이라는 신하가 이렇게 말했다.

 

 “ 명공의 법치가 너무 엄격합니다.”

 

여광이 이렇게 대꾸했다.

 

  “ 오기(吳起,전국시대 초기 위나라 병가)가 은혜를 베푸는 일을 없애자 

    초나라가 강성해졌고

    상앙(商鞅)이 형벌을 엄하게 하자 

    진나라가 흥하지 않았소.“

 

단업이 반박하며 말했다.

 

  “ 오기는 결국 자신의 몸을 해쳤고

    상앙 또한 그의 가족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잔혹한 형벌 때문입니다.

    명공께서는 대업을 열어 세우시면서 

    요순의 밝은 정치를 하셔도 다스려지지 못할까 두려운데 

    오기와 상앙의 정치를 본받으시면 

    이것이 어찌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바람이겠습니까?

 

여광이 고개를 정중하게 숙이면서 사과하였다. 단업은 10여년 뒤 저거몽손과 힘을 합쳐 북량을 세운 사람이다. 

     

[그림] 후량(AD386-AD403) 왕조 계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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