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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기자의 유쾌한 명상체험기 ‘쉐우민 이야기’ 다섯 번째 이야기 사야도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7월22일 18시11분

작성자

  • 김용관
  • 동양대학교 교수(철학박사), 전 KBS 해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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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신 떼자니아 사야도


  센터의 수행자들은 승속을 불문하고 인터뷰를 해야 한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 자신의 수행경험을 이야기하고 의문 나는 점에 대해 물어야 한다. 가고 있는 길이 잘 가고 있는 길인지를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인터뷰 소임을 맡고 있는 이가 바로 사야도로 법에 관한 한 센터의 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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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쉐우민 센터의 인터뷰는 아신 떼자니아 사야도가 맡고 있다. 떼자니아 사야도는 센터의 설립자인 꼬살라 사야도의 법제자로 올해 56살이다. 그는 13살 때 처음 쉐우민에 왔다고 한다. 꼬살라 사야도 밑에서 사띠빳다나 수행을 배웠는데, 그 때 이미 ‘마음’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한다. 세속에 나가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다가 37살 때 뒤늦게 꼬살라 사야도에게 이끌려 다시 센터에 들어와 정식 비구가 됐다. 꼬살라 사야도에게는 몇 명의 제자가 있었지만 떼자니아를 그는 법제자로 지명했다. 

 

  센터의 인터뷰는 일 대 일이 아닌 그룹별로 진행된다. 워낙 대중이 많아서 어쩔 수 없다. 그룹은 보통 나라별로 나뉘어 영어로 진행한다. 사야도의 영어는 쉽고 명쾌하다. 통역자가 있는 나라는 자국 말을 미얀마 말로, 사야도의 미얀마 말을 자국 말로 통역해 진행하는데, 한국과 베트남 그룹이 대표적이었다. 코리안 그룹의 통역자는 청연 비구니 스님인데, 20년 쯤 미얀마에서 살았고 영어와 미얀마 말을 유창하게 구사한다. 

 

  떼자니아 사야도에 대한 첫인상은 무척 독특했다. 첫 인터뷰가 있던 날 사야도를 처음 대면했는데 모두를 숙연하게 무릎은 꿇거나 정좌하고 그를 기다렸다. 오후 6시 반이 인터뷰 시간인데 10분쯤 늦게 거구의 스님이 나타났고,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3배를 하는 바람에 “아~ 이 분이 사야도구나~”하고 생각했다. 절을 하든 말든 사야도는 입구 책상에 앉았고, 간호사로 보이는 신도가 그의 혈압을 쟀다. 그런 다음 커다란 책상 앞의 회전의자에 편안하게 앉는다. 이내 휴대폰을 꺼내들더니 들여다본다. 

 

  인터뷰가 시작된다. 수행자가 한국말로 질문하는 동안 사야도의 인터넷 검색은 계속된다. 청연 스님의 미얀마 통역이 시작되고, 사야도는 한편으로 질문에 대답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검색을 계속한다. 

 

  “뭐, 저런 사람이 있나? 설사 말이 통하지 않아도 눈과 눈을 마주치면 마음이 통하는 법인데. 무슨 큰스님이 저럴까?”하고 나는 맘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사야도의 태도에 왈가왈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상한 분위기였다.

 

  인터뷰는 그룹별로 보통 5일에서 7일에 한 번 치러진다. 한 번 두 번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이상스럽게도 그런 사야도의 태도가 내게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수행자들의 질문에 대한 사야도의 대답은 첫 산행을 인도하는 베테랑의 길안내처럼 거침이 없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같았다. 주제가 ‘수행’이었다는 점이 다를 뿐. 

 

  그런 그에게서 한국 큰스님에게서 느껴지는 권위와는 다른 권위가 느껴진다. 사야도는 히말라야를 오르는 등반대를 안내하는 셀파와 같은 존재다. 셀파는 이미 오르는 길을 알고 날씨의 변화를 경험으로 안다. 사야도는 수행자가 산 어디 쯤을 오르고 있는지, 바른 길을 가는지, 엉뚱한 길을 가고 있는 건 아닌지를 인터뷰를 통해 점검한다. 그래서 수행자는 정직해야 한다. 그룹 인터뷰라서 내가 하는 보고와 질문 모두를 모두가 듣는다. 밑천이 드러나는 거다. 

 

  그렇지만 ‘정직은 최선의 정책’이다. 가지 않은 길을 간 것처럼 얘기하는 수행자를 사야도는 정확히 감별해낸다. 수행자는 자신이 가는 길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사야도는 수행자의 과장 보고를 들으면서도 기를 꺾지 않고, 이렇게 말해준다. 

  “서두르지 말라. 어떻게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수행하는 것은 탐욕이다.” 

 

 

  “분노는 두고 가라” 


  사야도의 집무실에는 확대한 사진들이 여기 저기 많이 걸려있다. 거의 다 자신의 모습을 찍은 것이다. 스승인 꼬살라 사야도와 찍은 사진, 젊은 시절의 사진(그 시절엔 지금처럼 뚱뚱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제법 나이 들어 찍은 사진, 뜻 있는 장소를 방문한 사진... 등등. 

 

  ‘세상에는 집착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도 가르치는 사람이 웬 사진 찍기를 그리 좋아하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번은 한국의 나이든 아저씨들끼리 핸폰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데 사야도가 나타났고, 사진 같이 찍자는 제의를 흔쾌히 수락했다. 이후 사진 찍기를 좋아하다기보다 권위의식이 없다는 쪽으로 생각을 고쳤다. 

 

  이제 떼자니아 사야도의 일화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어느 나라인지는 밝힐 수 없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비구니 스님 한 분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이 비구니 스님이 퍽 왈가닥이셨던가 보다. 커다란 삿갓을 쓰고 센터 안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센터 한 가운데로 난 시멘트 길은 2차선 정도의 폭에 길이도 1킬로미터 쯤 된다. 수행자들은 나무마루로 된 경행대 뿐 아니라 이 도로에서도 경행을 한다. 보다 못한 미얀마 신도 누군가가 이 스님을 제지했다. 

 

 

센터 안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규정에 위배된다고. 


  이 사건은 스님의 마음 속 도사(Dosa, 분노)의 불씨에 기름을 부었고, 스님은 불같이 화를 냈다. 인터뷰 시간, 사야도에게 “미얀마의 신도들은 도대체 비구니를 뭘로 보고 예의 없이 구느냐. 승속이 분명한데 속인이 감히 스님을 가르치려 드느냐”고 따졌다. 당장 비행기 타고 자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펄펄 뛰었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대로 미얀마에는 ‘비구니’가 없다. 

비구니의 맥이 끊겨 어느 누구도 비구니계를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띨라신’이 있을 뿐이다. 띨라신은 ‘계를 지키는 여성’이라는 뜻으로, 계를 받지 않았지만 스스로 삭발하고 승복을 입고 계를 지키며 생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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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떼자니아 사야도는 이런 난감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사야도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래, 그렇다면 가야지. 내가 돌아가는 걸 어찌 말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분노(Dosa)는 미얀마 것이니 두고 가시게. 도사라는 것이 똥보다 더럽고 냄새나는 것인데. 아무리 꽁꽁 싸고 포장을 잘 해도 주위에 냄새를 풍기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닌가?”

 

  그 비구니 스님도 보통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야도의 이 말에 당장 무릎을 꿇고 사죄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분노는 보통 불에 비유된다. 한 번 타오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삽시간에 번진다. 이에 비해 탐욕이나 어리석음은 비교적 가리기 쉽다. 그러나 분노만은 절대 가릴 수 없다. 분노는 금방 표정으로 드러난다. 마음 속 화를 숨기고 태연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소식 한 사람이거나, 무서운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최근의 뇌과학에 따르면 뇌 속 ‘아미그달라’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곳 빨간 불이 켜지면 화가 난다고. 그러나 화난 마음을 차분하게 지켜보면 화낸 상태는 90초를 넘기지 않는다고 한다. 분노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 - “늘 네 마음을 지켜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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