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드러난 월성1호기 조기 폐로(閉爐)의 진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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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1호기 조기 폐로를 의결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이사회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보고서가 공개됐다. 산업부의 조직적인 감사 저항 때문에 국회법에 정해진 시한을 8개월이나 넘겨야 했던 극심한 산고(産苦) 끝에 나온 절묘한 작품이었다. 국회가 요구한 조기 폐로 결정의 ‘타당성’에 대한 직답(直答)은 의도적으로 회피해버렸고, 국회가 요구한 한수원 이사들의 업무상 배임죄도 인정하지 않았다. 산업부 장관, 한수원 사장, 청와대 비서관에게도 면죄부를 줘버렸다. 그러나 경제성 평가가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 되었고, 이사회의 의결이 ‘합리적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밝혀냈다.
행간을 읽어야 하는 ‘감사보고서’
그렇다고 감사원이 내놓은 200쪽의 ‘감사보고서’가 무의미한 맹탕이었던 것은 아니다. 엉터리 대선 공약을 핑계로 청와대와 산업부가 경제성 평가를 엉망으로 왜곡했고, 한수원 이사회의 의결에 부당하게 개입했던 정황을 구구절절 기록으로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조작·왜곡·개입’ 등의 직설적인 표현은 찾아볼 수 없지만,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감사보고서가 정말 밝히고 싶었던 진실을 파악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자료를 남겨 두었다. 언젠가 관련자들에게 실질적인 사법적 책임을 묻는 소중한 증가로 활용되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감사원이 밝혀낸 진실은 충격적인 것이다. 산업부와 한수원이 월성1호기 계속 가동의 경제성을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하도록 만든 주범이었다. 월성1호기의 이용률을 60%로 추정했으면서도, 회계법인의 경제성 평가에서는 의도적으로 원전 이용률이 84%일 때의 낮은 ‘전망단가’를 적용하도록 강요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결과적으로 계속가동 시 회계법인이 당초 예상했던 3,707억 원의 이익을 224억 원으로 축소시켜버렸다는 것이다.
한수원 이사회가 월성1호기의 ‘즉시’ 가동 중단을 의결해버린 정황도 분명하게 밝혀냈다. 월성1호기의 가동 중단은 원자력안전법과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원안위의 영구정지 운영변경 의결을 거쳐 결정하는 것이 법과 제도에 따른 원칙이다. 산업부와 한수원이 모두 그런 합법적 절차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수원 이사회가 산업부 장관과 한수원 사장의 맹목적인 강요에 무릎을 꿇어버렸다. 청와대의 협조 요청도 구체적으로 밝혀놓았다. 심지어 대통령의 발언도 적어놓았다.
원안위의 불법적인 행태도 밝혀냈다. 원안위가 월성1호기의 가동 정지를 허가한 것은 한수원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이었던 작년 12월 24일이었다. 원안위가 국회와 감사원의 권위를 통째로 무시해버렸다는 뜻이다. 결국 산업부·한수원·원안위가 힘을 합쳐서 멀쩡한 월성1호기를 불법적으로 포기해버렸던 셈이다. 한수원이 올릴 수 있었던 3,707억 원의 수익이 공중으로 날려 보내버렸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떠넘겨져 버렸다.
월성1호기 조기 폐로의 가장 중요한 명분은 ‘낮은 경제성’이었다. 그런데 경제성 평가가 산업부 장관과 한수원 사장의 개입으로 왜곡되었다면,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 폐로 결정은 원인 무효가 돼버린 것이다. 당연히 2018년 6월 한수원 이사회의 의결은 취소되어야 하고, 월성1호기는 즉시 가동을 재개해야 한다. 연료봉만 다시 넣으면 기술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일이다. 월성1호기 즉시 가동 중단과 같은 이유로 의결했던 신한울3·4호기의 건설 중단 결정도 취소하는 것이 마땅하다.
감사원이 내세운 한수원 이사들에 대한 배임죄 면책 사유는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한수원 이사가 ‘이익을 취득하지 않았고’, 한수원에 재산상 손해를 가할 ‘의사가 없었다’는 감사원의 지적은 ‘업무상 배임’이 아니라 ‘업무상 횡령’의 면책 사유에 더 가까운 것이다. 이사들의 불성실한 결정으로 한전의 주주들과 국민들이 막대한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는 사실을 더 심각하게 고려했어야만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감사원의 어설픈 결론이 훗날 한수원 이사들에게 더욱 확실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을 남겨주었다고 볼 수도 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산업부
감사원의 감사 과정에서 산업부가 주말 야밤에 444건의 자료를 의도적으로 파괴해버린 정황도 밝혀졌다. 영혼을 잃어버린 산업부의 관료들이 명백한 범죄 행위를 저질러버린 것이다. 부끄러운 수준의 전문성으로 대선 캠프나 기웃거리다가 한 자리를 꿰찬 ‘어공’들을 위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본분을 망각한 ‘늘공’들이 범죄자로 전락해버린 현실은 안타까운 것이다.
산업부가 아직도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안전성과 지역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의결이었다는 산업부의 때늦은 반발은 어처구니없는 억지이고, 심각한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산업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모든 원전의 가동을 즉시 중단해야만 한다. 백 걸음을 양보하더라도 월성1호기와 동일한 중수로인 월성 2·3·4호기에는 반드시 적용되어야만 한다. 산업부가 엄청난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산업부는 회계법인과 한수원의 요청으로 회의에 참석해서 의견을 제시했을 뿐이고, 이용률이나 발전단가를 바꾸라고 부당하게 지시하지 않았다는 변명은 윤리적으로 타락해버린 사이비 정치인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다. 산업부가 감사원의 결론이나 시각에 ‘동의’해야 할 이유도 없다.
산업부가 강조하는 ‘적극행정 면책’은 영혼을 빼앗겨버린 사실을 인정해달라는 후안무치한 요구다. 세상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정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업의 담당자들을 엄중하게 징계해버린 전력을 가지고 있다. 법치 국가에서는 대선 공약과 국정 과제라도 법과 제도에 따라 집행해야 한다는 것이 새로운 원칙이다. 산업부가 감사원의 결론이나 인식에 동의해야 할 자격도 없고, 이유도 없다.
헌법기관인 감사원에 대한 여당의 무분별한 공격도 부끄러운 것이다. 특히 감사원장 가족의 직업이나 정치적 성향을 들먹이는 것은 유치하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연좌제는 봉건시대나 권위주의 시대의 부끄러운 통치 수단이었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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