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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29) 단풍나무의 모든 것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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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11월06일 16시53분

작성자

  • 김도훈
  •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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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글에서 왜 나무들은 가을에 잎을 그렇게 울긋불긋하게 물들일까 라는 명제 하에 조금은 재미없는 과학 공부를 해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가을이 무르익어 갈 때, 나무들의 잎 색깔이 바뀌는 것을 이렇게 과학적으로만 보는 것은 역시 정서가 모자라는 일이지요. 봄이 오면 곧바로 연상되는 것이 꽃이라면 가을이 오면 연상되는 것은 역시 단풍인데 말입니다. 사람들을 유혹하는 힘이 어느 쪽이 더 센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한 곳에 모인 사람들이 많기로는 진해 벚꽃과 더불어 내장산 단풍이 단연 으뜸이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곳에 가까운 강진이 고향인 김영랑 시인은 단풍의 정취를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오이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 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시인의 노래처럼 지금 온 세상은 단풍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어딘지 모르게 단풍으로 물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단풍의 ‘단’ 자는 붉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내장산, 설악산과 같은 산에서 만나는 단풍처럼 붉은 단풍이 대표적이겠지만, 묘하게도 단풍이란 말은 가을에 나무의 잎들이 초록 옷을 벗어 버리고 다른 색깔 옷으로 갈아입는 현상을 모두 일컫는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은행나무의 노란색, 참나무의 갈색, 옻나무의 오렌지색 등이 흔히 보는 가을 옷 색깔들입니다. 

그래도 가을 단풍 하면 역시 그 이름을 준 단풍나무가 최고이지요. 단풍나무는 산에서만 만날 수 있는 나무가 아니라 우리 주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정다운 나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멀리까지 여행을 떠나는 번잡함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주변의 공원, 궁궐, 학교 캠퍼스, 강가, 호숫가 등으로 가서 제법 볼만한 단풍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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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3일 창덕궁 단풍나무의 단아하면서도 화려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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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4일 일산호수공원의 단풍나무 역시 단아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단풍나무는 가을에만 감상하기에는 아까운 참으로 단아한 나무입니다. 키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등걸이 비교적 매끈함을 유지하고 있어 단단한 모습을 하고 있고 위로 형성되는 잎들도 공원에서 제법 그늘을 만들어줄 정도로 울창합니다. 가장 단풍나무를 특이하게 만드는 것은 역시 기하학적으로 만들어진 잎이라고 해야겠지요. 잎들이 그렇게 여러 갈래로 그리고 깊숙이 갈라지는 나무들도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단풍나무가 속하는 단풍나무과라는 가족 계보에도 참으로 많은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우리가 산이나 공원에서 만나는 단풍나무 중에서도 보통 단풍과 잎의 갈라진 부분이 조금 더 통통한 당단풍을 구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머리속에 대표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는 단풍나무는 잎이 보통 5-7갈래로 갈라지고, 당단풍나무는 9-11갈래로 갈라집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통 단풍잎보다 당단풍잎이 갈라진 부분이 좀더 통통해 보이지요. 이것만 구분할 수 있어도 단풍나무에 한 걸음 더 다가간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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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18일 경희대 단풍나무(위)와 당단풍나무(아래)

 

단풍나무가 반드시 붉은 색으로만 물들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는데 필자는 용인대학교에서 극명하게 대조되는 색으로 물든 단풍나무들을 만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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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1일 용인대학교 캠버스의 단풍나무들이 극명하게 다른 색깔로 물든 모습

 

단풍나무나 당단풍나무 모두 다른 큰 나무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편입니다. 어쩌면 우리 주변의 야산에서 멋진 단풍나무들의 향연을 보기가 어렵고, 설악산이나 내장산과 같은 바위가 많은 산에서 단풍나무를 더 즐길 수 있는 이유도 바로 단풍나무가 상대적으로 키가 작아서 수도권의 나지막한 산에서 맹위를 떨치는 참나무들에 묻혀 버려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키가 큰 단풍나무를 찾았는지, 공원이나 아파트단지에 제법 많이 심어져 있는, 잎이 세 갈래로 얕게 갈라진 키 큰 중국단풍이라는 나무들을 종종 만나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녀석의 이름 때문에 중국에는 이 단풍만 있는 줄 아시겠지만, 실은 중국에도 보통 단풍, 당단풍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습니다. 그냥 이 종류의 단풍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이 녀석 이름 때문에 일본단풍도 있냐고 물으시는 분도 있어서...) 이 녀석은 대체로 오렌지색으로 잎이 물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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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2일 일산호수공원 중국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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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4일 일산호수공원의 중국단풍

 

잎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 것으로는 우리 토종으로 신나무라는 녀석이 있습니다. 야생에서 더 자주 만날 수 있는데 이 녀석이 물들면 더 예쁜 붉은색을 띱니다. 잎이 세 갈래로 갈라지다 못해 아예 세 개의 작은 잎이 되어 버린 녀석은 복자기라고 부릅니다. 비교적 키가 작은 편인데, 이 녀석과 비슷한 잎 모양을 한 키 큰 복장나무는 자주 만날 수 없어 아쉽습니다. 나무 백과라는 필자가 가장 즐겨 읽는 나무 책을 쓰신 임경빈 선생의 말씀에 의하면 정릉 숲에 있는 복자기나무의 짙은 붉은 색 단풍 사진을 들고 다니며 국제회의에서 자랑하곤 했다고 하고, 설악산에도 이 나무의 단풍이 빛나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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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1일 탄천변 신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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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2일 일산호수공원 복자기나무

 

봄에 수액을 받아먹는 나무로 유명한 고로쇠나무도 단풍나무과에 속합니다. 기실 단풍나무과의 나무들 대부분이 봄이 되면 뿌리로부터 물을 끌어올리는 힘이 강하다고 합니다. 그런 원리를 이용한 유명한 상품이 바로 캐나다산 ‘Maple Syrup’이지요. 우리 고로쇠나무 수액도 마셔보면 약간 단 맛을 느낄 수 있는데 캐나다의 설탕단풍은 조금 더 많은 양의 당분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설탕단풍을 비롯한 캐나다 및 북미 지역의 단풍들도 모두 키가 매우 큽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단풍나무들이 도입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은단풍이란 이름을 달고 있습니다. 키도 크고 그 잎 모양도 캐나다 단풍나무들과 비슷합니다. 외국에서 도입되었다면 공원 같은 곳에서 만날 것 같은데 특이하게도 필자가 본 은단풍들은 모두 옛 산성 안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부여 부소산성, 공주 공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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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3일 북한산 고로쇠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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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16일 캐나다 토론토 교외 호텔 근처 숲속의 캐나다 단풍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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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20일 부여 부소사성 은단풍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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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7일 공주 공산성 은단풍나무

 

필자는 나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분들에게 가을 단풍도 좋지만 단풍나무의 꽃 모양과 열매 모양에도 주목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곤 합니다. 기실 단풍나무의 헬리콥터 날개 같은 열매 모양은 참으로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날개를 단 단풍나무 열매들을 시과라고 부르는데 날개가 달린 만큼 떨어진 열매들이 부모로부터 좀더 멀리 갈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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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5일 분당 율동공원의 단풍나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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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8일 분당 중앙공원의 단풍나무 열매

 

단풍나무는 이렇게 우리 정서를 따뜻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재질이 매우 골라서 목재로도 잘 쓰입니다. 주로 고로쇠나무, 복자기나무, 복자기나무 사촌인 복장나무 등이 많이 쓰인다고 하는데 이 나무들에서 채취한 목재들을 모두 단풍나무라고 이름 붙이는 것 같습니다. 필자 집 식탁은 조금 낮아서 약간 불편한 점이 없지 않지만 고르고 매끈한 특성을 잘 드러내어서 제법 고급스럽고 매력적이라고 느끼면서 이용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야구선수들도 단풍나무 배트를 가장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박상진 선생의 글을 읽으면 가마, 소반 그리고 피아노의 액션 부분 나아가 테니스 라켓, 볼링 핀 등이나 체육관 바닥재로도 가장 고급으로 취급된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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