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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게시판 내 결과

  • [양병무의 행복한 로마읽기] <31> 권한 위임의 달인 새창

    “아우구스투스에게 아그리파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아그리파 없는 아우구스투스의 운명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아그리파는 충실한 부하로서, 때로는 미더운 동역자로서 아우구스투스가 내전에서 승리하고 제정 체제를 확립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감당했다.아그리파는 기원전 63년에 태어나 기원전 12년에 사망했다. 17세 때 카이사르에게 발탁되어 동갑인 아우구스투스의 협력자가 되었다. 군사적인 재능이 부족한 아우구스투스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카이사르의 배려였다. 아우구스투스가 거둔 군사적인 승리는 모두 아그리파의 전략과 지휘 덕택에 가…

    양병무(mooo) 2018-05-17 17:30:00
  • [양병무의 행복한 로마읽기] <30> MBO의 원조, 철저한 목표 관리(기원전 29~서기 14) 새창

    기원전 29년 8월, 승리자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에서 사흘 동안 웅장하고 화려한 개선식을 거행했다. 당시 개선식에서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큰 소리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외치게 했다. 이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오늘 승리했다고 개선식을 치르지만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에서 생겨난 전통이다.카이사르의 유언장이 공개되었을 때 철부지라고 놀림받았던 옥타비아누스가 로마 세계의 최고 권력자로 역사의 전면에 우뚝 섰다. 그 광경을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양병무(mooo) 2018-05-10 17:30:00
  • [양병무의 행복한 로마읽기] <29> 옥타비아누스, 마침내 1인자가 되다(기원전 31~30) 새창

    기원전 31년 3월, 옥타비아누스는 모든 전력을 이끌고 안토니우스가 머무르고 있는 그리스로 건너갔다. 마지막 운명의 결투가 기다리고 있었다. 옥타비아누스와의 결전을 준비하던 안토니우스 역시 마지막 전투에 몰두했다. 클레오파트라는 작전 회의에도 참석하여 의견을 개진했다.작전 회의가 거듭될수록 안토니우스 휘하의 장수들의 절망도 깊어갔다. “우리는 로마에 충성을 맹세했다. 이집트 여왕의 남편에게 충성을 맹세한 적은 없다.” 이런 불만들이 쌓여가면서 옥타비아누스가 그리스에 상륙하자 진영을 이탈하는 장수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장수가 이탈하…

    양병무(mooo) 2018-05-03 17:30:00
  • [양병무의 행복한 로마읽기] 클레오파트라 앞에만 서면 착해지는 남자(기원전 37~31) 새창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남매를 데리고 달려왔다. 4년 만의 만남이었다. 그녀는 애인 관계를 청산하고 정식으로 결혼할 것을 요구했다. 클레오파트라 앞에만 서면 안토니우스는 순한 양처럼 착한 남자가 되었다. 클레오파트라가 요구한 대로 안토니우스는 그리스 식 결혼식을 올리고 두 아이를 적자로 인정했다. 나아가 오리엔트 지방의 통치권을 결혼 선물로 주었다. 그 대부분이 로마 속주이거나 로마가 동맹자로 인정한 제후의 영토였다. 안토니우스가 허락하지 않은 것은 헤롯 왕이 다스리는 유대뿐이었다. 여자의 힘은 정말 놀…

    양병무(mooo) 2018-04-26 18:08:16
  • [양병무의 행복한 로마읽기] 천년제국 로마에서 배우는 지혜와 리더십 <27>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만남(기원전 42~37) 새창

    “정치 투쟁에서 권력투쟁으로.”카이사르 암살에서 브루투스가 죽을 때까지 2년 동안 진행된 로마의 내전은 정치 투쟁이었다. “원로원 주도의 공화정을 유지할 것인가, 한 개인이 통치하는 군주정을 채택할 것인가?” 하는 공화정과 군주정이라는 로마의 국가 시스템을 두고 싸운 정치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정치 투쟁에서 군주정이 승리를 거두었다. 다음 순서는 누가 군주가 되느냐를 놓고 권력투쟁이 벌어졌다.앞으로 10여 년 동안 벌어질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싸움은 권력투쟁인 동시에 정치 투쟁 성격으로 변질되었다. 카이사르가 설계해놓은 로마 세…

    양병무(mooo) 2018-04-19 17:30:51
  • [양병무의 행복한 로마읽기] 18세 애송이 옥타비아누스의 대담한 행동 (기원전 44) 새창

    카이사르의 암살 소식은 어린 옥타비아누스에게 청천벽력이었다. 카이사르는 옥타비아누스의 종조부, 즉 외할머니의 오빠였다. 영웅으로 생각했던 할아버지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로마로 돌아가는 것이 자손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당시에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지시로 그리스의 아폴로니아에 파견 나가 있었다. 앤서니 에버렛은 『아우구스투스』에서 옥타비아누스가 당차게 대처하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암살 소식을 듣고 그는 지체 없이 로마로 향해 길을 떠났다. 도중에 카이사르가 자신을 후계자로 지명하고 양자로 삼아 성까지 물…

    양병무(mooo) 2018-04-12 16:46:00
  • 카이사르는 영웅인가, 재앙인가? (기원전 49~44) 새창

    카이사르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 15권 중에서 카이사르에 관한 내용을 두 권에 걸쳐 집필했는데, 4권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상』, 5권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하』로 이름 붙였다. 그는 카이사르에 대해 이탈리아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실린 글을 인용하면서 100점 만점을 주었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다음의 5가지다. 지성, 설득력, 지구력, 자제력, 지속적인 의지. 카이사르만이 이 모든 자질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녀는 카이사르에 심취하여 카이사르를 지나치게 미화하고 제국주의를 …

    양병무(mooo) 2018-04-06 09:51:02
  • 행복한 로마 읽기-천년제국 로마에서 배우는 지혜와 리더십 <24> 역사를 바꾼 카이사르의 유언장 (기원전 44) 새창

    “우리가 카이사르를 죽인 것은 그를 미워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보다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를 그대로 두면, 카이사르를 제외한 모든 로마인은 노예가 될 것이다. 우리는 로마인의 자유를 빼앗으려 한 카이사르를 쓰러뜨렸다.”브루투스가 카이사르 암살 다음 날 포로 로마노 광장에서 연설한 내용이다. 암살의 정당성을 알리려 한 것이었지만, 군중의 싸늘한 반응에 오히려 당황했다. 다른 암살자들이 카이사르를 비난하자 군중의 분노가 폭발했고, 암살자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피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군중의 분노는 “당신들은 …

    양병무(mooo) 2018-03-29 18:14:05
  • 행복한 로마 읽기-천년제국 로마에서 배우는 지혜와 리더십 <23> 브루투스 너마저!카이사르의 암살 (기원전 44) 새창

    “로마가 낳은 유일한 창조적 천재.”공화정시대의 로마사를 쓴 몸젠이 카이사르를 평가한 말이다. 카이사르는 최고 권력자가 되고 5년 동안 쉬지 않고 빠른 속도로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서 개혁을 거듭했다. 앞에서 소개한 개혁 내용은 대표적인 사례일 뿐이다. 그는 마치 최고 권력자의 임기가 5년 단임제인 것처럼 개혁을 추진했다. 급진적인 개혁은 원로원파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대로 가면 공화정은 끝난다. 왕정이 시작된다”고 믿었던 보수적인 원로원파는 카이사르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숨 가쁘게 몰아치는 개혁의 …

    양병무(mooo) 2018-03-22 16:27:23
  • 행복한 로마 읽기-천년제국 로마에서 배우는 지혜와 리더십 <22> 퍼주는 복지에서 엄격한 복지로 전환하다 (기원전 49~44) 새창

    복지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요한 이슈다. 카이사르의 정치적 기반은 민중파였지만, 최고 권력자가 된 카이사르는 자신의 지지자들만을 위한 편협한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다. 국가 전체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를 염두에 두면서 정책을 펼쳐나갔다. 대표적인 사례가 복지 정책이다.기원전 123년, 가이우스 그라쿠스는 곡물법을 만들어 국가가 밀을 사들인 후 빈민층에 곡물을 싼값으로 배급하는 복지 정책을 시행했다. 원로원파인 술라는 이 제도를 폐지했으나, 아우렐리우스 코타에 의해 다시 부활되었다. 카이사르 당시에도 곡물법을 둘러싸고 정쟁이 끊이…

    양병무(mooo) 2018-03-15 16: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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