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의 편지> 과속 벌금딱지를 받고 보니 > 이생 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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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 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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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당히 느긋한 성격이다, 그래서 별명도 디즈니 월드의 곰돌이 캐리커쳐인 ‘푸(pooh)’로 종종 불린다. 최근 과속 벌금 고지서를 받았다. 그러나 이번 고지서를 접하고는 분노조절 장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분노가 폭발할 것 같았다. 사정은 이렇다. 지난 일요일 새벽 5시 고속도로 진입을 위해 한남대교를 달렸다. 다음날 오후 속도위반으로 단속되었다며 문자가 왔다. 알려준 사이트에 확인해 보니 시속 71 km, 규정보다 11 km 과속했다며 3만2천원을 벌금으로 납부하라는 것이었다. 아니, 횡단이 불가능한 한강다리에, 그것도 새벽 5시에, 시속 71 Km에 과속벌금이라니,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으며 홈페이지가 알려준 대로 가상계좌로 입금했다. 문제는 사흘 뒤다. 납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지서가 집으로 날라 든 것이다. 당연히 이런 류의 벌금이라면 질색을 하는 아내로부터 언짢은 소리까지 들었다. 

 

고지서에 나와 있는 대로 항의전화를 했다. “새벽 5시다. 11km를 더 달렸지만 71km다. 또 근본적으로 사람이 횡단할 수 없는 게 한강다리 아니냐, 고지서를 발부하는 것은 지나치다” 는 게 나의 주장이었다. 더구나 “문자 받고 곧바로 입금했는데 왜 또 고지서를 보내 집안에 분란을 일으키게 하느냐”고 항의했다. 그러나 답변하는 경찰은 규정을 들이대며 막무가내, 말이 통하지 않았다. 나는 몇 마디 더 얘기하다 전화를 끊었다. 도대체 뭐 때문에 휴일 새벽 5시, 한강다리 위에 71Km 달리는 차에게 벌금을 물리는지, 또 문자로 통보해와 입금했는데도 불구하고 확인조차 않고 고지서를 돈 들여 발송하는지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유학시절이다. 대학 주차장은 태평양 못지않게 넓었지만 학생들이 몰고 온 차들 또한 너무 많아 주차공간을 찾기가 힘들었다. 주차장을 서너 바퀴 빙빙 돌다가 용케 남에게 폐 끼치지 않을 정도의 공간을 찾았다. 하지만 선이 그어진 지정된 주차구역은 아니었다. 현지 학생에게 물었더니 “남에게 방해되지 않으니 당연히 주차가 가능하다”며 엄지를 치켜 올렸다. 

 

일주일 뒤 대학 당국으로부터 20달러짜리 벌금 고지서가 날라 왔다. 타인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은 공간에, 그것도 주차장 안에 주차한 나는 억울한 생각에 “이번 학기 입학한 유학생이고, 현지 학생에게 질문한 결과 가능하다고 해서 주차했는데 너무 심하지 않느냐”는 내용을 고지서에 제공된 메일주소로 보냈다. 돌아온 답변서 내용이 절묘했다. “CCTV 판독이다. 주차위반이 맞다. 불법주차가 명백하고, 따라서 벌금형이 맞다”고 적었다. 그러나 “비록 주차위반이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고, 또 항의 메일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벌금은 면제다. Welcome to America !” 라고 적혀 있었다.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이 답변서는 내게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이른바 합리성(make sense) 이 실감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많은 부분 어느 선진국 못지않게 비슷해지거나 오히려 좋아졌다. 줄서기가 생활화되고, 차로가 줄어들면 좌,우 한대씩 순서대로 진입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외제보다는 국산품이 월등하고, 커피숍에서 스킨십을 나누는 청춘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해외여행을 나가보면 나라밖이 오히려 불편하고 답답하고 촌스럽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경우가 잦다. 그만큼 대한민국이 일류국가로 자리를 굳힌 게 아닐까. 그러나 아직도 한국에만 있는 수준 이하가 있다. 공무원들이다. 상도유치원 붕괴사태를 보라. 막무가내로 권한을 휘두르면서 정작 필요한 것에는 게으르다. 한국인의 삶은 OECD 국가에서 여전히 바닥권이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기업은 일류, 관료는 삼류”라는 어느 재벌회장의 말에 실감했다. 정말이지 이런 국가에 세금내고 싶지 않다. 나의 애국심이 많이 멍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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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9-17 17: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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