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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길을 묻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애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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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3월11일 14시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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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동료들 점심도 같이 안 먹으려고 해"
"회사는 정규직 전환 유혹하며 야근까지 강요"

 

 4년제 지방 사립대를 졸업한 최모(30)씨는 유통업체 비정규직 MD다. 2017년 9월부터 2년 계약으로 일을 시작해 현재 1년 6개월째 근무하고 있다.

이전 직장에선 정규직이었지만 회사 분위기, 직무가 잘 맞지 않아 이직해 계약직의 길을 걷게 됐다. 정규직과 비슷한 업무를 해도 손에 쥐는 돈은 다르다.

최씨는 "나는 비정규직이라 영업활동으로 성과를 내도 인센티브는 '0원'"이라며 "정규직은 성과에 대한 인센티브, 다양한 복지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전 직장 경력이 인정되지 않아 연봉이 깎여서 지금은 3천만원 초반"이라며 "정확히는 모르지만 정규직 연봉은 4천만원 정도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이지 않는 차별도 적지 않다. 정규직일 때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최씨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료지만 정규직들은 점심도 같이 안 먹는다"며 "회의를 하더라도 비정규직이라 회의실에 데려가지 않을 때도 있고 어떤 팀은 비정규직한테 명함도 만들어주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 비정규직, 성과 인정 못받아…"정규직 전환 가능성 때문에 다녀"

더 뼈아픈 것은 업무에서 성과를 인정해주지 않을 때다.

최씨는 "다른 업체와 함께 한 업무가 잘 됐는데 내 이름은 쏙 빠지고 다른 정규직의 성과로 인정된 적 있다"며 "너무 속상하고 화나지만 정규직 전환되고 싶어서 다닌다"고 푸념했다.

그런데도 최씨가 회사에 다니는 것은 정규직 전환에 희망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계약직으로 들어오더라도 성과가 좋으면 회사가 정규직 전환 면접 기회를 준다고 했다"며 "면접을 세 번이나 봐야 하고 구체적으로 몇 명이나 합격시킬지 모르지만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조금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해준다고 희망 고문하면서 비정규직들을 야근시키기도 한다"면서 "순진하게 그런 말을 믿어 이용당하고 싶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1월 한국은행 보고서를 보면 1년 6개월 초과 근속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율은 점차 하락해 2016년 16.8%에 불과했다.

1999∼2009년 임시직의 3년 후 정규직 전환율을 보면 한국은 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 대상 16개국 중 꼴찌였다.


◇ 구직 2년에 부모님 눈치 보여 '알바' 뛰기도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홍모(28)씨는 취직을 위해 전공과 상관없는 코딩 공부를 하고 있다.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을 탈피하기 위한 나름의 대책이었다.

홍씨는 "대학 재학 중일 때 휴학하고 인사 컨설팅 회사에서 6개월 인턴 생활을 한 적 있어서 인사 쪽으로 취업하려고 했다"며 "그런데 인사 직무는 뽑는 인원이 너무 적어서 취업이 안 될 것 같았다"고 돌아봤다.

그는 지난해 7개월간 국비 지원 프로그램으로 코딩 수업을 들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6시까지 수업이 이어지는 강행군이었다.

작년 하반기엔 취업을 노렸지만 고배를 마셨다.

취업 준비 기간이 2년이 되면서 괴로움은 커졌다.

장성한 자녀가 일도 없이 부모님에게 얹혀산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그는 두 달 전부터 의류업체 아르바이트도 병행하고 있다.

홍씨는 "작년 하반기에는 3곳만 소신 지원했는데 이번 상반기에는 눈을 낮춰서 10곳 정도 지원할 계획"이라며 "구직 기간이 길어지며 눈치도 보이고 부모님께 더는 신세 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 외환위기 이후 계층이동 기회 감소

우리 사회의 소득 격차 확대의 피해는 비정규직과 청년층 등 취약계층에 집중된다.

비정규직은 소득 격차 확대 과정에서 양산됐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2000년대 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 차원에서 기업들이 주기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 채용을 확대하면서다.

같은 일을 해도 비정규직은 임금·복지 등에서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있긴 해도 크지 않다.

청년 취업이 갈수록 험난해지는 것도 같은 연장선에 놓인 문제다.

일자리 이동 사다리가 무너진 상황에서 청년들은 처음부터 처우가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매달릴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이 계속해서 양산되고 청년 실업이 심화할수록 빈곤층은 늘어나고 소득 불평등은 더 악화할 수 있다.

비정규직, 청년 실업이 심화하면 소득분배는 더 악화할 공산이 크다. 이들이 저소득층으로 떨어질 수 있어서다.

실제로 청년 실업률이 뛰기 시작한 2016년 이후 청년 빈곤층은 늘어나는 추세다.

김태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포용복지연구단장의 지난 1월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토론회 발표문,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 계층 가운데 34세 이하 1인 가구 비중은 2017년 1분기 1.2%에서 상승해 지난해 2분기엔 4.1%로 뛰었다. 작년 3분기엔 3.5%, 4분기에는 4.0%로 횡보했다.

중위소득(전체 가구의 소득을 한줄로 나열했을 때 정 가운데 있는 소득) 50% 미만인 빈곤층 중 임시·일용직 등 비정규직은 작년 3분기 기준으로 20.1%에 달했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성장률이 둔화하며 못사는 사람들이 잘 살 기회, 상위 계층으로 이동할 기회가 줄었다"며 "청년실업이 늘어나면 청년들은 소득이 없어지고 장기간 취직에 실패한 이들은 결국 계속 직장을 잡지 못하는 '영구실업' 상태를 겪기 때문에 소득 불평등이 더 확대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이어 "정부가 분배 개선을 추구하되 하위 10%의 소득 증대에 집중할지 하위 30%의 소득을 늘릴 것인지 등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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