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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투자'에 나라곳간 확 푼다…구조조정으로 건전성도 확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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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8월29일 10시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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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총지출증가율, 9년만에 최대…일자리·소득기반 확충에 방점
돈 쓸 때 쓰는 '큰 정부'로 전환…"재원 조달안 부족" 지적도

 

 문재인 정부가 '사람 중심의 지속 경제'로 경제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 내년 나라 곳간을 과감하게 연다.

내년 재정 총지출은 9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나고 정부가 재량으로 줄이기 쉽지 않은 의무지출 비중도 50%를 넘기게 됐다.

특히 지속가능한 성장의 선순환 고리가 될 가계 소득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일자리·복지 예산 증가율을 올해의 두 배 수준으로 올려 잡았다.

총지출이 큰 폭으로 늘어나지만, 안정적 세수와 뼈를 깎는 지출 구조조정으로 재정수지 등 재정 건전성은 양호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정부는 전망했다.

다만 이례적인 총지출 확대를 뒷받침하기 위한 재원 조달 방안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설계돼 불확실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출산 고령화에 대한 중장기적 대응 차원에서 혁신성장을 위한 SOC(사회간접자본) 투자나 R&D(연구·개발) 예산을 보강하고 총지출 증가 속도를 다소 보수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 총지출증가율 9년 만에 최고…"건전성보다 재정 확대가 더 먼저"

정부가 29일 발표한 내년 예산안의 총지출 규모는 429조원으로 올해(400조5천억원)보다 무려 7.1%나 더 많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확장적 재정을 편성한 2009년(10.6%) 이후 9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 폭이며 내년 경상 성장률 전망인 4.5%보다도 2.6%포인트(p)나 높다.

다시 말해 내년에는 경제가 성장하는 정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재정을 풀겠다는 뜻이다.

내년은 새 정부가 정책과제를 본격적으로 이행하는 첫해기 때문에 임기 내 정책 집행을 위해 필요한 예산 소요가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됐다.

특히 공적·기초연금 등 정부 재량으로 줄일 수 없는 의무지출 비중은 197조원에서 218조원으로 10% 넘게 늘어나면서 사상 처음으로 전체 예산의 절반을 넘게 된다.

적극적인 재정에도 관리재정 수지, 국가채무비율 등 재정 건전성은 상대적으로 양호하게 유지될 전망이다.

수출 회복세, 부자증세 효과 등에 따른 세수 수입 증대와 강도 높은 지출 구조조정 덕분이다.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에서 4대 사회 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관리재정수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적자 규모는 2017년 -1.7%(28조3천억원)에서 내년 -1.6%(28조6천억원)으로 다소 개선될 것으로 전망됐다.

정부는 문 대통령 임기 중 재정 건전성보다는 적기 적소에 재정을 과감하게 푸는 큰 정부 역할에 더 중점을 둘 방침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정의 적극적 역할과 재정 건전성 중 우선순위를 묻는다면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우선"이라며 "재정 건전성이 악화되더라도 적극적 재정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정부의 과감한 재정 투입은 경기 부양의 목적도 있지만 소득주도와 혁신성장을 축으로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는 정부 의지의 결과이기도 하다.

내년도 예산안은 그동안 총량 면에서 상당한 재원이 투입된 SOC와 산업 등 이른바 '물적 투자'를 줄이되 일자리와 복지, 교육 등 '사람 중심 투자'에 초점을 맞췄다.

실제 내년 복지 예산은 12.9% 늘어나면서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4%로 사상 최고를 기록할 전망이다. 여기에 11.7% 증가하는 교육 예산을 감안하면 전체 예산의 절반이 복지와 교육 예산으로 짜여진다.

이는 최근 5년 중 4년 동안 2%대 성장에 그치는 등 한국 경제의 저성장이 굳어지면서 대기업의 성장 과실이 시장 전반에 확산하는 이른바 '낙수효과'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반성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기업소득환류세제 등 각종 유인책에도 30대 그룹의 현금 유보금은 올해 3월 기준 691조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에 달했지만 채용 투자는 여전히 부진해 청년 실업률은 최악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 부총리가 지난 6월 후보자 당시 인사청문회에서 낙수효과 대신에 복지를 동력으로 경기를 살리는 '분수효과'를 새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로 제시한 것도 이런 배경과 관련이 있다.

최근 경기 침체로 저소득층 가구의 소득이 뒷걸음질 치면서 소득 분배가 악화한 점도 '사람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 필요성에 힘을 싣고 있다.

고소득층의 가처분소득은 늘고 저소득층은 줄어드는 추세가 계속되면서 전국 가구 기준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올해 2분기까지 6분기 연속 악화했다.

김 부총리는 "저성장 고착화, 양극화 등 구조적 문제로 서민의 삶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일자리와 분배, 성장 선순환 구조 구축을 위해 재정의 선도적인 역할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 일자리·복지 예산 '껑충'…소득주도 성장 기반 다지기

올해보다 12.4% 늘어난 내년 일자리 예산은 경제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한 재정의 핵심 역할 중 하나다.

일자리 예산의 궁극적인 목표는 청년·여성 등 취업 취약계층과 서민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 '실업→가계소득 감소→내수 침체'의 악순환을 차단하는 데에 맞춰져 있다.

정부는 내년 생활·안전분야 공무원을 1만5천명 늘리고 신성장분야 중소기업의 청년 고용을 지원하는 등 고용 한파에 대응해 재정을 적극 동원하기로 했다.

아빠 육아휴직 등 일·가정 양립 지원, 일 학습 병행제, 최저임금 인상 등에도 예산을 배정해 일자리 질도 높인다.

취업자 수 회복에도 자영업자 증가, 청년 실업 악화 등 일자리의 질은 회복이 유난히 더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실업급여 인상, 청년 구직촉진수당 지급 등으로 실업 안전망도 강화한다.

선진국에 비해 취약한 우리나라의 실업 안전망은 안정적인 구직 활동을 어렵게 하고 시급한 산업 구조조정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꼽혀왔다.

저출산 고령화에 중장기적으로 대응하고 가계의 소득기반도 확충하는 차원에서 아동·노인 등에 대한 보편적 복지도 확대된다.

내년 7월부터 모든 0∼5세 아동에게 매달 10만원씩 수당이 지급되고 65세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 지급되는 기초연금도 20만6천원에서 25만원으로 인상된다.

생계 곤란 가구의 주택을 국가가 사들여 저렴한 비용으로 다시 임대해줌으로써 서민의 생활비도 줄인다.

이런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년 보건·복지·노동 예산은 146조2천억원으로 올해보다 12.9%나 늘어난다. 올해 보건·복지·노동예산 증가율(4.9%)의 두 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정부는 복지 예산의 확충과 함께 공정경제 질서의 회복, 렌트 배분 체계의 개선 노력도 병행할 계획이다.

과감하게 늘린 복지 재정이 소모성 예산이 되지 않고 가계소득 회복, 소득 분배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반면 내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17조7천억원으로 올해(22조1천억원)보다 20%나 줄어들었다.

R&D 예산은 19조6천억원으로 올해(19조5천억원)보다 0.9% 늘어나는 데 그쳤다.

사람에 대한 투자는 대폭 확대하는 반면 물적 투자는 '적정하게' 관리한다는 새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에 따른 것이다.

김 부총리는 혁신성장 예산이 적다는 지적에 대해 "정부가 예측 가능하고 일관된 사인을 보내면 기업은 투자한다"며 "혁신성장을 위해 정부가 새로운 산업 분야를 정해 재정지원을 하면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주저앉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세수 전망 지나치게 낙관적…국가 부채총량 관리 필요"

문제는 큰 폭으로 늘어나는 재정 소요를 어떤 방법으로 충당할 수 있느냐다.

특히 공무원 증원, 아동수당·기초연금 인상 등은 내년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정부가 감당해야 할 재정 지출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적극적 재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동의하면서도 정부가 제시한 재원 조달안에 대해서는 상당수가 의구심을 나타냈다.

정부가 경제 상황이나 세수에 대한 전망을 지나칠 정도로 낙관적으로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내년 예산안은 기본적으로 낙관적으로 짜여있다"며 "초고소득자에 대한 증세로는 새 정부 정책 집행에 필요한 재원 조달이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여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새 정부의 정책을 집행하기 위해 공공기관이 동원되면 이들이 부채도 늘어날 수 있어서 국가 부채를 관리할 때 공공기관 부채와 연기금 충당성 부채를 모두 합친 개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고령화 등으로 성장세가 떨어질 가능성이 큰데 너무 낙관적인 국내 경제 흐름 전망을 기초로 세수를 추계한 느낌"이라며 "내년은 가능하겠지만 그 이후에 예산 균형이 가능할지는 불확실하다"고 전망했다.

올해보다 20% 줄어든 SOC 예산의 감소에 대한 우려도 내놨다.

SOC 예산 감소가 당장 복지재원 마련에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미래에 대한 투자 개념으로 SOC 예산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SOC라면 단순히 건설만 생각하기 쉬운데 통신 인프라 등 4차 산업혁명의 기본"이라며 "R&D를 포함한 투자 개념으로 SOC를 이해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요구에 맞춰 예산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SOC는 고용 효과 등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상당히 크다"라며 "주택경기가 안좋아지고 건설투자도 전기 대비 줄어드는 상황에서 SOC까지 줄이면 여러 면에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번 늘어난 재정지출은 다시 줄이기 쉽지 않은 만큼 생산가능인구 감소, 저출산 고령화 등 미래의 재정 수요에 대비해 좀 더 보수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성태윤 교수는 "지금 우리나라의 경상 성장률이 5%를 달성하기도 쉽지 않은 점에 비춰보면 총지출 7% 증가는 다소 높은 측면이 있다"라며 "우리의 경우 인구구조 측면에서 앞으로 재정 수입을 확보하기 어려움이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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