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시리즈 NO.5- 최경회의 여자. 논개 > Kai Jun의 忙中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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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감상을 통해 지친 현대인에게 힐링의 시간을 제공한다.

반만년의 역사를 지켜온 우리의 힐링법. 망중한의 대표적인 방법은 서화이다.

국가의 위기나 당쟁으로 심각한 상황에서도 냉철한 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임금이나 사대부들이 서화를 즐기며 자기관리를 했었던 것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고려의 태조 왕건, 공민왕, 조선의 성종 등 수없이 많은 사례가 있다. 서양에서도 윈스턴 처칠은 미술과 문학을 통한 자기관리로 세계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게 되었던 사례가 있다.

본 연재는 지친 현대인에게 망중한 시간을 만들어 주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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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 Jun의 忙中閑
한국인 시리즈 NO.5- 최경회의 여자. 논개 본문듣기
기사입력 2018-01-17 19:09:46 최종수정 2018-01-19 22:54:20
전완식 | 한성대 ICT디자인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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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소개

우리나라의 의로운 여성의 대표격인 논개’.

예전 진주성을 방문했을 때 논개의 일화를 알고 있었던 터라 그런지 촉석루에 올랐을 때 전율이 왔었다. 촉석루에서 바라보는 남강은 예사롭지 않게 흐르는 것 같았고 진주성의 성벽에도 수많은 주민이 장맛비에 무너지는 성벽을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 보이는듯했다. 한걸음 한걸음 진주성에서 발을 떼어낼 때마다 420여 년 전에 벌어졌던 그때의 상황이 상상되었다.

20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격어야만 했던 비애가 가슴 아팠다. 국가의 존망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지아비마저 눈앞에서 잃어야하는 슬픔과 6만 명의 도성사람들이 살육당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 피눈물이 그녀의 가슴에서 남강까지 이어져 흘렀을 것이다. 안타깝고 안타까웠다.

깊은 숨을 몰아쉬고 진주성을 나와 차에 탔을 때 나얼의 바람기억이라는 노래가 나왔다. 바람기억의 가사가 마치 논개의 얘기인 것처럼 느껴져서 감정이 북받쳤다. 전혀 관계없는 노래였음에도 그 때는 그랬다. 지금도 바람기억을 들으면 무척 슬프다.

 

슬프고, 숭고하고, 고맙다. 그녀의 삶과 결단을 본받아 다시는 그녀와 같은 결단을 내릴 일없도록 해야겠다. 앳된 20살 여인의 비장함을 표현하기 위해 표정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 결연한 의지가 보이도록 피부 표현을 점묘화처럼 아주 작은 터치를 찍어가며 그렸다. 눈동자는 눈물이 고인 것처럼 하였으며 손은 논개가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할 때 뿌리치지 못하게 손가락마다 가락지를 끼고 있었던 모습을 강조하기위해 명암의 대비를 심하게 주어 밝게 표현하였다. 

 


화가: Kai Jun/ 제목 : 한국인 시리즈 NO.5- 최경회의 여자. 논개/ 유화/ 116.8cm X 91cm/ 2017

 

주논개

최경회에 관한 기록은 많이 있으나 논개에 대한 문헌적 기록은 매우 미흡하다. 그 부족한 부분을 해주 최씨 승지공파의 17세손 최경회의 부실(副室)로 기록 된 족보와 최경회에 대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논개의 구전 내용을 결합하여 구성하였다.(최경회의 설명은 4편 참고)

 

주논개(朱論介) 義岩婦人. 신안주씨 전주파 중파손

15741593

논개는 주씨성이며 전라도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아버지는 훈장을 하던 주달문이며 논개가 14세 때 돌아가신다. 논개의 어머니는 자신과 딸의 생계를 시동생인 주달무에게 의탁하나 도박에 가산을 탕진한 주달무는 어린 논개를 김풍헌의 민며느리로 팔아넘기고 달아난다. 딸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논개의 어머니는 친정으로 도망을 가고 김풍헌은 관아에 고발하게 된다. 김풍헌의 고발로 당시 장수 현감이었던 최경회에게 심문을 받는다. 논개 모녀의 심문 결과 최경회현감은 무죄방면하며 갈 곳이 없는 논개 모녀를 관아에 머물며 병약한 최현감의 부인을 시중들게 한다. 논개의 시중을 받던 최씨부인은 논개의 재색이 뛰어남에 감탄하여 지병으로 숨을 거두기 전에 부실로 받아들일 것을 권유한다. 이후 최경회공과 함께하며 의병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그를 돕게 된다. 159369일간의 목숨을 건 치열한 전투에도 불구하고 2차 진주성 전투에서 패한 뒤 최경회장군과 함께하던 장군들이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하게 된다. 성의 함락과 승리를 자축하기 위한 왜군들의 잔치가 159377일 촉석루에서 주연을 벌이는데 논개는 최경회장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 기생으로 위장하고 참석한다. 주연에서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술에 취하게 한 후 장마철이라 물이 많이 불어있는 남강의 바위에 올라 그를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다. 논개는 10 손가락마다 가락지를 끼고 깍지를 끼었을 때 손이 빠지지 않게 한 상태였다. 논개와 게야무라 로쿠스케는 죽게 되고 이후 진주성전투에서 살아남은 의병들이 강 하류에서 최경회와 논개의 시신을 건져 고향땅에서 장사를 지내주려 운구하다가 왜군의 감시로 인해 함양군 서상면 방지리 골짜기에 묻었는데 1976년 발견되어 현재 최경회 장군과 논개의 묘소가 마련되었다.

 

논개가 떨어졌던 바위를 의암이라하며 1721년 경상우병사 최진한은 목숨을 바친 논개의 의열에 대한 국가의 포상을 비변사에 건의하였다. 최진한은 관민합동으로 의암사적비(義巖事蹟碑)를 건립한다.

1739년에 경상우병사 남덕하의 노력으로 의기사(義妓祠)가 의암 부근에 세워지고, 논개 추모제가 매년 국고의 지원을 받아 성대히 치루어지면서 국가의 공식적인 포상 절차가 진행되었다.

1868(고종 5)에는 진주목사 정현석의 노력으로 매년 6월에 300여 명의 여기가 가무를 곁들여 3일간 치제하는 대규모 추모 행사인 의암별제(義巖別祭)’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의암별제는 일제의 방해로 중단되고 의식 절차만이 교방가요(敎坊歌謠)에 전해질 뿐이다.

 

참고문헌

최경회 후손 기록 https://blog.naver.com/yschoimd/20137770329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3814&cid=46622&categoryId=46622 


제작 방식

방식은 빛과 어둠을 극적으로 배치하는 테네브리즘적인 표현으로 제작되었다. 키아로스쿠로 기법을 사용하였으며 유화물감을 두껍게 칠하여 질감 효과를 내는 임파스토 기법을 주된 방식으로 활용하였다. 조선시대의 초상화 표현 특징인 전신사조(傳神寫照)로 표현하였다. 얼굴 및 부분적 표현에 점묘화 기법을 활용한 병치 혼합적 입체감을 표현하였다.

 

미술 용어의 이해

테네브리즘’, ‘키아로스쿠로’ ‘임파스토1편 이순신장군 설명 참고

전신사조(傳神寫照)’2편 별을 바라보는 염근리 설명 참고

 

점묘화 : 점을 찍어서 표현한 그림을 말하며 신인상주의 화가 쇠라와 시냐크 등이 광학을 활용한 과학적 접근으로 만들어진 기법이다. 점묘화는 색과 색을 혼합하여 중간색을 만드는 방식이 아닌 각각의 색을 나란히 화면에 배치하여 색의 선명성을 유지하되 멀리 떨어지게 되면 두 색이 혼합된 것처럼 보이게 되는 병치 혼합의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신문, 잡지의 인쇄물도 각각의 망점이 색을 가지고 있고 이 점들이 모여 입체적인 그림이나 이미지가 되는 점묘화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이방식의 강점은 매우 선명한 색의 느낌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한국인 시리즈 NO.5- 최경회의 여자. 논개작품의 부분


Kai Jun(전완식)

르네상스시대부터 신고전주의 시대까지 활동했던 유럽 궁정화가들의 기법을 연구하였으며 그들이 만들어 냈던 화려한 기법을 활용한 독특한 인물화의 표현법을 개발하였다.

이에 대한 평가는 20094월 미국 최대 미술 산업 그룹 Redwood Media Group의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에 선정되었다. 또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이미지 변환에 대한 표현을 510년 만에 재현한 화가이다.

 

201512월에는 광복 70주년 국가 행사의 대표작가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전시를 했었다. 현재 한성대학교 교수이며,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산업대학원을 졸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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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1-17 19:09:46 최종수정 2018-01-19 22:5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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