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의 한국 잠룡님 전 상서(前 上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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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해 리더가 되려는가, 적어도 자신은 알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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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8월08일 12시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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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수
  • 무역협회 경제통상자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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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블 붕괴 후 ‘잃어버린 25년’ 중에 딱 한번 일본경제가 빛을 발한 때가 있었다. 거센 당내 저항을 극복하고 5년 5개월의 총체적 구조개혁으로 일본을 다시 일어서게 한 고이즈미 내각(2001~2006년) 때가 바로 그 때였다.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개혁 리더십의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의 장래를 자기에게 맡겨달라는 잠룡들에게, 고이즈미가 편지로 전하는 충언을 한번 들어보자.    ​

 

<편지 1> 무엇을 위해 리더가 되려는가, 적어도 자신은 알고 있어야 한다

 

국민과 공유하는 소명이 있어야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소명(召命 mission)이 있어야 한다. 지도자의 자리를 원하는 자는 무엇을 위해 지도자가 되려는지, 그게 뚜렷이 서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끊임없는 소통으로 국민과 공유해야 한다.

지도자로 나서려면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확신이 서 있어야, 최고 권위의 자리에 재임 중에 늘 불기 마련인 역풍이나 비판 또는 거센 저항에도 정책의지가 흔들리지 않고, 시류에 따라 정책관이 널을 뛰지 않게 된다. 그리고 국민도 왜 그 지도자를 선택했는지,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공유하게 된다.

 

그 소명은 뚜렷하고 흔들림 없이 확고해야 한다. 소명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찰나의 순간에 번득이듯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집권을 위해 급조한 ‘자문단’에 의해 마련된 공약의 집대성이 아니다, 같은 시대를 사는 지도자로서 해내야 하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국가과제에 대한 배움과 성찰을 통해 머리와 가슴에 확신으로 뿌리내린 결의이다. 나는 전문가나 학자 또는 (여야를 막론하고) 뜻을 같이 하는 국회의원들과의 공부모임(硏究會), 정책에 관한 공개토론회 등을 통한 수십 년에 걸친 배움으로 자신의 소명을 일궈왔다. 

소명은 국민과 공유해야 한다. 훗날 선거 등을 통해 국민들로부터 평가와 선택을 받을 때 비로소 지도자와 그 정권의 공약으로 자리매김 하게 된다. 그래서 늘, 끊임없이 소명에 관해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 우정민영화나 자민당 개혁 등 나의 소명은 저서, TV 공개 토론회, 인터뷰 그리고 3 번의 총재 선거 입후보의 공약과 후보토론회를 통해 국민과 소통하고 국가과제를 국민과 공유하고자 노력했다. 

 

‘자리’가 아니라 ‘일’에 집착해야

 

나는 ‘고이즈미 개혁’을 위해 총리가 되고자 했다. 총리가 되기 전 오랫동안, 총리가 되지 않으면 경제개혁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대신(大臣)을 세 번 지내고, 총리가 되기 위해 자민당 총재 선거에 세 번 나가면서, 내 안에는 ‘자민당 개혁’과 ‘고이즈미 개혁’ 나아가 ‘일본의 개혁’을 위해 총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확신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고 권위의‘자리’에 연연해한다. 정책에 소신이 없는 상태에서 자리에 연연하다 보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또는 그 자리에 남아있게 위해 파벌들과 타협하고 악마와 손잡기도 한다. 나는 총리 자리에 집착하지 않았다. 내가 총리로서 이루고자 하는 ‘것’에 집착했다. 나에게 ‘총리 자리’는 이루고자 하는 것,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 내지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세 번 출마했다. 그 때 나는 총재 출마로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 총재가 되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지,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단지 총재 후보로 이름 한번 올려놓아서 ‘정치 거물’ 행세를 하기 위해서나, 일본 총리가 되고 싶어서 총재 선거에 나간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 총재 출마는, 파벌 간의 밀실 타협이 아니고 총재 공선을 통해 총재를 뽑게 하려고 승산이 없는 선거에 출마했다. 그것으로 자민당의 파벌주도 정치체제를 타파하고 자민당을 개혁 정당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시모토 내각에서 나는 후생대신이었지만 내각의 일원으로서 우정민영화 추진을 멈추지 않았으나 일개 대신의 힘은 우정민영화 같은 국가과제를 밀어붙이기에는 너무나 미약했다. 그 실패와 좌절을 통해, 나는 ‘자민당 총재가 되기 전에는 자민당 개혁을 하기 힘들고, 일본 총리가 되기 전에는 국가 총체적 개혁을 추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때로는 총재 선거에서 질 줄 알면서도, 나의 공약이 절박한 국가과제라는 걸 당원과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출마를 했고, 때로는 국민의 지지를 얻어 총재와 총리가 되어 그런 개혁을 주도하여 추진하기 위해서 출마를 했다. 나의 두 번째, 세 번째 총재 출마는, 일본총리가 되어 우정민영화 등 공기업 구조개혁, 재정개혁을 통한 재정건전화 등 ‘고이즈미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나는 국민을 향해 내가 총리로서 이루고자 하는 바를 설명하고 주장하고 알려,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얻어 총리가 되고자 했고, 그 목표를 향해 좌고우면(左顧右眄) 하지 않고 앞으로만 내달렸다.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 나타나면 잠시 속도를 늦추거나 돌아가는 일은 있어서 목표를 달리한 적은 없다. 그 목표는 나의 신념이자 국민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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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이 없는 자는 기득권에 휘둘리게 돼

 

자기가 지도자로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 뚜렷하고 확고한 소명 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지도자로서 하고자 하는 일이 있어서 지도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 자체가 지도자가 되려는 이유이자 목적인 사람들이다. 

흔들림 없는 소명 의식이 없이 다른 이들에게 리더로서 선택된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자기를 통해 무엇을 얻기를 원하는지, 자기로부터 무엇을 듣기를 원하는지, 자기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에 촉각을 세우기 마련이다.

그런데 일본 정치권에서 자주 관찰되는 현상은, 자민당 총재 선출과 그 결과로서의 일본 총리 선출이 발안되고 기획되고 실현되는 모든 과정이 파벌에 의해 주도되고 파벌들 간의 밀실타협에 의해 진행된다는 점이다. 나의 앞과 뒤, 아니 거의 모든 자민당 총재와 일본 총리가 그런 식으로 선출되었다. 90년 대 이후만 하더라도 하시모토, 오부치, 모리 등 나 이전의 모든 총리와, 나 이후 후쿠다와 아소도 파벌 간의 타협의 산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여당 총재와 일본 총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무엇을 위해 총재와 총리가 되려는 지 절실히 생각하기 보다는, 파벌들의 의향을 어떻게든 자기 쪽으로 돌려 자민당 총재와 일본 총리가 되는가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목적(추진하고자 하는 정책)과 수단(총재 및 총리 직책)이, 주객이 전도되는 것이다.

 

그렇게 선출된 총리는 파벌들의 의향에 반하여 아무런 일을 할 수 없다. 내각의 각료 구성은 당연하고, 주요 부처의 정무차관 자리까지 파벌의 의향 내지 요구(wish list)에 따라야 하고, 정책도 파벌과 소속 의원 그리고 그들과 결탁된 관료의 의향과 입맛에 맞는 것 외에는 추진할 수가 없다. 파벌과 관료와 그들과의 끈끈한 관계 속에서 기생하는 지방, 계층, 산업 등 ‘철의 삼각형’의 의향에 맞춘, 현실에 안주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개혁 추진은 더더구나 언감생심이다. 그런 사람들은 총리 같은 리더가 되어야 할 아무런 정당한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총리나 리더가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었음에도 2006년에 총리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그 후속 총리가 세 명 있었는데, 그 중 두 명이 소명의식이 약하지 않았나 싶다. 후쿠다는 총리로서 이루고자 하는 바가 없이 (당내 통합의 미명하에) 단지 파벌들에 의해 총리에 옹립되는 것만을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각을 (자기가 추구하는 바를 같이 이룰 사람들로 꾸미기 보다는) 파벌의 영수나 실력자들로 꾸몄고, (자기가 어떤 정책을 펴겠다는 구상은 처음부터 하지 않은 채) 그들이 어떤 정책을 원하는지, 그들이 어떤 개혁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지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총리로서의 집권 기간 대부분을 파벌들의 의향을 쫓느라 낭비하고 말았다. 결국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체 국민의 내각지지가 바닥이 나 (국민들에게) 쫓겨나듯이 물러났다.

 

아소도 대신 자리나 총리 자리를 차지하는 것 자체에 삶의 목적이 있는 듯이 공직에 임했다. 그가 (파벌들의 타협으로 자민당 총재가 되어) 총리로 지명 받기 전에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후보자였다는 사실에 가슴을 한껏 펴고 지낸 인물이다. 재정적자를 내어 국채발행으로 수십 조 엔에 이르는 경기부양에 쏘다 붓고 엄청난 적자를 야기하고 국가채무를 국내총생산의 200%를 넘어서게 한 것 말고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가 이룬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그는, 당내 개혁저항세력에 영합 하느라 우정민영화 등 나의 개혁 자체를 부인하기까지 했다. 그 또한 퇴임 시 한자리 수의 내각 지지율을 보였고, 그의 퇴임은 야당인 민주당의 압승으로 결말이 났다. <IFS post>

 

 <순서>

왜 지금 개혁의 리더십인가?

제 1부 제대로 된 잠룡이라면

제 2부 대권을 잡고 나면: 개혁의 무대는 이렇게 꾸며라

제 3부 모두를 개혁에 동참시켜라

제 4부 논란이 많은 개혁과제를 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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