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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전반기를 평가한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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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9-09 22:34:25 최종수정 2016-02-26 18: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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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不通)의  박(朴)정권’  비판은  정당한가?
 박근혜 정권이 반환점을 지났다. 권력(power)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제 내려가는 길만이 남아있다. 관료집단과 언론부터 대통령을 비롯한 그 주변 인물들을 얕보기 시작할 것이고, 어떤 영(令)이나 단속도 깔아뭉개거나 엇박자를 놓는 빈도가 한층 늘어날 것이다. 더더욱 대통령의 대(対)언론관이, 예컨대 기자회견을 기피하는 것과 같은 폐쇄성(閉鎖性)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면, 앞으로 언론에 비춰질 국민의 비판과 외면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런 폐쇄성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가장 먼저 대통령 스스로의, 아니면 측근들의 대통령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가 가장 큰 요인일 수 있다. 어떤 주제든지 언론과 시원하게 때로는 재미있게 논쟁할 수 있는 지혜가 부족할 때 열린 기자회견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 (옛날 YS를 상기시킨다). 설사 지혜를 갖추었더라도 그것을 담아낼 수 있는 언어적 그릇이 협소할 때, 폐쇄성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다시 YS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그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소통의 감[感]에 능했다)
 
. “침묵이 금”인 것은 이심전심이 전제되어 있는 경우의 금언(金言)이지,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오직 다른 금언(禁言)일 뿐이다. 불행히도 국민에게 각인된 박대통령의 이미지는 컴퓨터 자막을 읽는 모습이지, 그것이 전하는 소통내용이 아닌 것을 측근들은 아는지 모르겠다. 가끔 병원을 방문할 때 의사(醫師)가 소통(疏通)하는 것은 그 앞에 놓여 있는 컴퓨터이지 환자인 내가 아닌 것을 느낄 때와 비슷하다. 
대국민 소통의 폐쇄성은 또한 대통령과 국민의 수직적(垂直的) 관계 설정에 대한 믿음에서 나올 수 있다. “오직 국민만 바라 보고…”의 실제 지향점은 정책수립에 관여하는 소수집단의 선민의식(選民意識)을 부추기는 기호(記號)일 수 있다. 그들 집단사고(groupthink)의 가장 큰 단점은 자신들의 생각은 결코 그릇된 것일 수가 없다는 자기과신(illusion of invulnerability)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내리는 모든 정책결정은 오직 국리민복을 위한 것이니 국민들은 그냥 수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의식이 측근들에게 잠재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오히려 “오직 국민을 외면하는…” 불통 비난에 좋은 정책들을 파묻히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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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의 결여 내지 선민의식을 감추는 포장재로 순수성이 이용되기도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일종의 근본주의에 가깝기 때문에, 좀처럼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다. 특히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는 순수함은 또한 충성심, 애국심, 일사분란을 과도하게 요구하기도 한다. 순수성에 기반한 국가주의적 애국심이 범람할 때 전체주의가 싹트는 것을 비단 히틀러 체제뿐만 아니라 남•북한 체제 모두에서 똑같이 경험했다. 닫힌 청와대를 지향했던 것으로 비춰진 김기춘 비서실장의 행태와 일사분란에 반기를 들었다가 배신자로 낙인 찍힌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태)를 통해, 소통의 민주주의 정신을 좀먹는 순수성, 애국심, 일사분란의 위험성을 감지할 수 있다. 
 
소통은 쉽고,만병통치약 이라는 두 가지 함정
일반적으로 소통의 두 가지 함정은 그것이 너무 쉽게 가능하다고 인식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만병통치약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불통의 박정권' 비판이 정당하다면 대통령과 측근들이 소통의 두가지 함정에 빠져들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전설은 그런 함정에 깊게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익명의 많은 유권자들과 악수하고, 미소짓고 나면, 곧 바로 투표로 이어지곤 했던 연결고리(connection)들을 다수 체험하면서, 마치 신령(神靈)에 가까운 소통능력을 가진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아마도 박정희 전(前)대통령 및 육영수 여사의 음덕(蔭德)이 얼마나 컸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을 부정하는 경지에까지 다다를 수 있다.
소통의 함정, 곧 소통에 대한 오해는 미디어 내지 메시지 결정론에 쉽게 빠져들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저, 연결고리(connection)를 만들어주는 미디어만 존재하면 그리고 그것을 통해 메시지만 보내면, 수용자는 어떤 내용이든지 얼른 집어먹을 것이라는 확신 말이다. 인터넷 예찬론은 그런 착각의 대표 사례다. 불행히도 소통학(學)을 전문적 업(業)으로 삼고 있는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 학자들도 동일한 착각에 빠져 있다. 그래서 청와대와 정부, 공공기관들이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고, 자신의 정책에 대한 캠페인성 내용물을 쏟아내면 만사형통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그들로 인해 수용자의 이해가 넓어지기보다 더 많은 오해와 갈등과 분노, 정쟁(政爭)이 일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왜 그럴까?
 
소통을 연결고리(connection)로 보는 관점은, 기본적으로 그것만 실현되면 상호간의 갭 줄이기(gap-bridging)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숨은) 전제를 깔고 있다. "아이구, 맙소사!" 그런 갭 줄이기는 정보공급자의 욕심, 아니 희망일 뿐이다. 나는 나의 언술(言述)이 강력해질수록 나의 아내, 자녀, 그리고 학생들과의 갭 줄이기에 너무나 효과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한평생 경험해왔을 뿐이다. 보다 진솔하게 말하면, 그들로 하여금 오히려 나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더 많이 유도했다고나 할까.
 
‘갭 줄이기’가 아니라 ‘갭 제거하기’의 소통이 필요
 그렇다면 처음부터 소통의 목표를 ‘갭 줄이기(gap-bridging)’에서 아예 ‘갭 제거하기(gap-removing)’로 잡는 것은 어떨까? 갭을 끝까지 줄여나가면, 결국 갭이 완전히 제거될 수 있을까? 이미 지적한 것처럼 전자가 불가능하다면, 후자는 더더욱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갭 제거하기’는 영영 불가능한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소통에 대한 나의 장고(長考)의 지적 결론이다. 
소통을 통한 ‘갭 제거하기’는 소통의 당사자들끼리 “처음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나가려고 할 때 마침내 가능해진다. 즉, 그럴 경우에는 갭(gap) 자체가 성립될 여지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 때 갭 제거하기는 갭 줄이기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의 소통원리다. 예를 들어, 박 대통령과 유승민 의원이 처음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 나가려고 시도했다면 ‘배신자의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각자 자신의 주장을 ‘기준’으로 상대방과 갭 줄이기를 시도하면서 통박(朴)의 바가지는 깨질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과 국민이 처음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함께 만들어가는 소통과정을 엮어갔다면, 세월호 내지 메르스 참사 이후의 국민안전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향상되었을 것이다. 즉 애초의 목표가 ‘갭 제거하기’의 소통이었다면, 국민안전처 내지 질병관리 차관직 신설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안전 방책들이 국민 의식이나 생활 속에 자리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정권과 국민이 처음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함께 만들어 나가려는 ‘갭 제거하기’의 소통에 나선다면, 민주주의의 완성에도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물론 그런 소통과정에 대한 새로운 절차의 수립과 구성원들의 이해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다면 측근 내지 전문가 위주의 ‘전통적인’ 정책수립과 결정과정이 지속되고 있다면, 지적 수준이 엄청 높아진 21세기 한국사회에서 비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불통(不通) 정권이라는 비판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물론 박정권뿐만 아니라 전세계 대부분의 정치권력이 헤쳐나가야 할 보편적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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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처음부터 ‘갭 제거하기’의 소통에 얼마나 가깝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어떤 정권에 대해서든 ‘불통 정도’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가깝게는 노무현, 이명박, 그리고 박근혜 정권, 멀리는 오바마, 메르켈, 그리고 아베 정권과 서로 비교해보자. 그러면, 이미 전반기를 넘긴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불통의 정권’ 비판이 얼마나 정당한 것인지 누구나 평가할 수 있지 않겠는가. ‘갭 줄이기’가 아니라 ‘갭 제거하기’의 소통, 그것만이 후반기 박정권과 국민을 하나로 만들고, 사회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충만하고, 나아가 이웃 나라들과의 평화와 공존번영도 가능하게 만드는 길이다. 그러나 박대통령과 측근들에게서 그런 소통을 기대할 수 있는 지혜와 역량과 전략이 조금이나마 보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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