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의 한국 잠룡님 전 상서(前 上書)

고이즈미의 한국 잠룡 전 상서(前 上書) 본문듣기

<13,上> 머리를 손에 쥐라-골태방침은 ‘개혁의 바이블’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8월08일 12시07분
  • 최종수정 2017년08월08일 12시07분

작성자

  • 김정수
  • 무역협회 경제통상자문역

메타정보

  • 42

본문

 

 

 버블 붕괴 후 ‘잃어버린 25년’ 중에 딱 한번 일본경제가 빛을 발한 때가 있었다. 거센 당내 저항을 극복하고 5년 5개월의 총체적 구조개혁으로 일본을 다시 일어서게 한 고이즈미 내각(2001~2006년) 때가 바로 그 때였다.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개혁 리더십의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의 장래를 자기에게 맡겨달라는 잠룡들에게, 고이즈미가 편지로 전하는 충언을 한번 들어보자.​

 

 

 

<편지 13, 上> 머리를 손에 쥐라-골태방침은 ‘개혁의 바이블’


자문회의(‘경제재정자문회의’의 약칭)가 고이즈미 개혁 사령부라면, 골태방침(骨太方針)은 고이즈미 개혁의 바이블이다. (骨太는 기본 또는 핵심이라는 일본식 표현이고, 골태방침은 한해 경제정책을 집대성한 소위 ‘금후의 경제재정운영 및 경제사회의 구조개혁에 관한 기본방침’의 약칭이다.) 주요 경제정책은 모두 골태방침에 그 근거를 두고 있었고, 골태방침에 포함되지 않은 중요 정책은 추진되지 못했다. 

골태방침은 주요 경제주체에게 내 내각이 발하는 개혁의 메시지였다. 골태방침으로, 국민과 그 개혁의 꿈을 나누면서 동시에 그들의 개혁 지지를 호소하고, 내각에 대해서는 그들이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야 할 개혁의 방향과 정책을 제시하고 있었다. 골태방침은, 국회로 하여금 (찬성이든 반대이든) 조만근 그들이 결단을 내려야 하는 국가과제를 인지하게 하며, 개혁 반대 세력도 어쩔 수 없이 참여할 수 밖에 없는 (고이즈미) 개혁 논쟁의 틀(frame)을 설정하게 된다. 골태방침은 내 ‘내각의 언어’였다. 

 

5월 18일에 내 내각의 첫 자문회의부터 시작된 주요 개혁과제(자문회의의 역할, 관저주도체제, 중앙과 지방의 역할 분담과 재정건전화 등)에 대한 논의는 흐트러짐이 없이, 일사분란 하게 후속 자문회의로 이어졌다. 

5월 31일에 목차를 정하고, 6월 11일에 골태방침 초안을 채택한 후, 6월 21일 에는 일본 내각 최초의 골태방침(‘골태방침 2001’으로 불림)의 원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렇듯 한달 여 만에 한 해의 주요 국정과제가 마련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자문회의 민간위원과 대신(大臣)위원 대부분이 개혁의 기본방향뿐 아니라 구체적 주요 개혁과제에 대해서까지 나와 생각을 같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혁, 개혁, 개혁..끝없는 개혁의 메시지

 

골태방침 2001 의 캐치프레이즈는 ‘성역 없는 구조개혁’이다. 그 전문(前文)은 “과거 10년의 일본 경제의 실적은 일본의 경제사회가 본래 가지고 있는 실력을 밑도는 것이었다”로 시작하고 있었다. 면서, 당시 일본의 경제상황에 대해 “일본의 잠재력 발휘를 저해하는 규제 및 관행 그리고 제도를 근본으로부터 개혁함과 함께, 명확한 규율과 자기책임 원칙을 확립하고 동시에 스스로의 잠재력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틀이 요구되고 있다”는 인식을 보였다. 

그것은, 내의 지론인 ‘구조개혁 없이 성장 없다’는 각오로 “향후 2~3년을 일본경제의 집중조정기간으로 자리매김하고, 단기적으로는 낮은 경제성장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 후는 경제의 취약성을 극복하여 민간수요 주도의 경제성장을 실현하는 것을 지향”할 것을 선언하고 있었다.

 

골태방침 2001은 ‘7 가지의 개혁 프로그램’을 간판 정책과제로 삼고 있다. 그 첫 번째로 앞세우고 또 내각 출범과 더불어 즉시 추진에 들어간 것이 민영화 및 규제개혁 프로그램이었다. 그것은, 공익성을 내세워 별도의 주머니를 차고 정부의 보호와 지원에 안주해 오던 개혁의 성역(聖域) 특히 의료, 복지 그리고 교육을 경쟁에 노출시킴으로써 구조개혁을 추진하는 등 상당히 충격적인 개혁 추진을 예고하고 있었다.   

 

7 가지 개혁 프로그램뿐 아니라 골태방침 곳곳에 각종 개혁과제가 제시되어 있었다. 규제개혁(과 민간개방), 우정민영화, 특수법인 개혁, (성장률 내의 의료비 확대 억제 등) 사회보장제도 개혁, 연금개혁, (지방보조금 및 지방교부세 등) 지방재정개혁, 농림수산업 구조개혁, (도로특정재원의 일반재원화 등) 특정재원 개혁 … 등등. 

 

기득세력의 ‘철 밥통’ 차기 

 

내 내각 들어선 후 물러날 때까지 5년이 넘도록 첫 골태방침이 제시한 개혁의 기본방향이나 주요항목은 변하지 않았다. 골태방침 2001에 총망라되어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낸 개혁과제들은 추진속도에는 다소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 방향에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골태방침 2006’까지 추진되었다. 골태방침 2001은 가히 내 개혁의 원전(元典)’, ‘바이블’이자 고이즈미 내각의 ‘구조개혁 선언’이었던 것이다. 

내 내각이 몇 개월도 되지 않아 주저앉힐 내각으로 생각하던 개혁저항 세력은 골태방침 2001이 내건 총체적 구조개혁이 추진완료 될 때까지 거두어 들여지지 않을 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골태방침을 걸음마 단계부터 제지하지 않았던 것은 그들 개혁저항 세력의 결정적인 패착(敗着)이었다.

 

골태방침은 6월 26일 각의결정(閣議決定) 되어 내각의 권위가 실린 정책문서가 됐다. 내심 골태방침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던 자민당과 관계부처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기는 했다. 그 불만의 명분은 고이즈미 내각, 특히 자문회의가 사전승인(事前承認)이라는 종래의 정책결정 관행을 무시했다는 것이었다.

내 내각이 들어서기 전에는 내각이 중요한 정책을 추진할 때에는 사전승인 관행에 따라, 입안 단계에서부터 자민당이나 관계부처 사이에서 충분한 조정부터 이뤄져 여당이나 주무부처가 바라는 대로 나라 정책이 수립되고 추진되는 게 관행이었다. 사전승인은, 개혁저항 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당정 간의 ‘소통’이었지만, 개혁추진 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당·정·업(黨政業)간의 ‘철의 삼각형’ 멤버들 간에 이해를 주고 받는 ‘협잡’이었던 것이다.

 

물론 자민당 초유의 개혁 내각인 내 내각이 각종의 개혁법안을 처리해 줘야 할 자민당과의 협의를 전면 거부할 수는 없었다. 골태방침과 관련해서도 정부·여당 간담회가 몇 번 열기는 했다. 그러나 나와 자문회의는 그 간담회를 말 그대로 ‘의견을 듣는 곳’으로 여겼을 뿐, ‘의견을 반영시키는 곳’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자민당이나 관계부처로서는 그들의 정당한 의견이 무시 당했다고 하겠지만, 자문회의로서는 왜 개혁을 추진하면 안 되는지 그 이유만을 앞세우는 그들 의견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나와 자문회의 그리고 자민당, 관료 특히 부문별 개혁저항 세력 사이에는 합의나 타협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여당과 관계부처가 골태방침 결정 절차가 사전승인을 거치지 않았다는 불만은 명분이었다. 그들이 내심 불만을 가졌던 것은 골태방침의 내용이었다. ‘성역 없는, 작은 정부로의 구조개혁’을 이룩하겠다는 골태방침의 기본정신뿐 아니라, 그 개혁과제들이 그들의 밥그릇을 차버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개혁과제를 일람해 보면 그들의 반응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들로서는, 긴축하겠다는 것부터 말이 되지 않았다.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는 등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는 상태인데 경기부양을 못 할 망정 긴축을 하겠다는 것은 경제를 망가트리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았다. 

버블 붕괴 후 도래한 불황을 내 내각 이전의 모든 자민당 내각은 경기부양으로 넘겨 보려고 했다. 국회의원은 경기부양의 돈 주머니인 재정으로 지방에 공공사업을 벌여 지지기반을 유지해 왔고, 관료는 공공사업 예산배분을 자기네 영향력의 기반으로 삼아왔다. 경기지지율에 목을 매는 내각, 한 표가 아쉬운 국회의원, 승진과 정계 출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관료… 경기부양 중지와 재정지출 억제는 그 기득권 세력이 도저히 삼킬 수 없는 쓰디쓴 약이었다.

 

골태방침의 개별 개혁과제는 관료나 여당 국회의원에게 긴축보다 더 심각한 도전과제를 예고하고 있었다. 규제개혁을 하겠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규제를 담당하는 부처관료의 관할권을 줄이겠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분야별 (진입)규제로 콩 놔라 팥 놔라 하던 족의원(농림족, 후생족, 우정족 등 분야별 전문 국회의원)의 권력기반을 무너트리겠다는 것이었다.

 

우정민영화는 재정의 큰 돈주머니를 죄어 재정투융자와 공기업 등에 대한 부처와 여당의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것이고, 특수법인 개혁 또한 각 부처 산하의 공기업을 줄이거나 민영화하여 각 부처의 족쇄와 그 영향력를 해체하겠다는 것에 다름 없었다. 

연금이나 의료 등 사회보장제도 개혁은 사회보장 관련 부처가 주무르던 거대한 돈주머니를 내놓게 하겠다는 얘기이고, 지방재정개혁이나 농림수산업 구조개혁은 지방자치체나 농업부문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을 줄이겠다는 것이며, 도로특정재원의 일반재원화는 도로건설에만 쓰던 도로사용료 수입을 일반 세입으로 삼아 재정에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는 의미이다. 

 

이 같이 거의 모든 개혁과제는 부처의 관할권이나 재원을 통한 영향력이나 지지기반을 줄이거나 허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어 있었다. 

 

 <순서>

왜 지금 개혁의 리더십인가?

제 1부 제대로 된 잠룡라면

제 2부 대권을 잡고 나면  개혁의 무대는 이렇게 꾸며라

제 3부 모두를 개혁에 동참시켜라

제 4부 논란이 많은 개혁과제를 택하라​

 

 ​ 

42
  • 기사입력 2017년08월08일 12시07분
  • 최종수정 2018년11월02일 11시04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